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20:00:44

안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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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LCK_LOGO.png 한국외국어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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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국외국어대학교 흰색 엠블럼.svg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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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대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대한민국 제52대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
安秉萬 | Ahn Byung-man
파일:external/monthly.chosun.com/1002_152.jpg
<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출생 1941년 2월 8일
충청북도 괴산군
사망 2022년 5월 31일 (향년 81세)
본관 순흥 안씨
재임기간 제52대 교육과학기술부장관
2008년 8월 6일 ~ 2010년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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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가족 부인 박정희, 슬하 1남 1녀
병역 대한민국 공군 중위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
학력 전주북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플로리다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박사)
약력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제5·7대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한국대학총장협회 회장
풀브라이트재단 이사장
제53대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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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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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책학자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과 제53대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을 역임했다.

2. 생애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괴산군 출신.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법학 석사를 졸업하였고 플로리다 대학교 정치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명지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서 행정학을 가르치다가 1994년부터 1998년,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외대생들로부터 워낙 명망이 높은 교수였던지라 90년대 말까지 학내분규가 극심했던 교내 상황을 수습할 적임자로 여겨졌고 총학생회 대의원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취임했으나, 막상 임기 중에는 다소 독선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학생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학내자치에 적지 않은 손실을 입혔다는 평도 존재한다.[1][2]

2008년 8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비교적 오랫동안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다. # 사교육에 밀려 비중이 작아지는 공교육을 소생시키기 위해 여러 정책들을 시행했다. 기본적으로 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3불 정책을 유지했다.

하지만 재임 기간 중 학업성취도 평가,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 시국선언 교사 중징계 등 교육계 내에서 갈등이 잦았다. 2008년 9월, 수능성적과 학업성취도 평가 원자료, 즉 성적 결과를 국회에 공개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었다.

대입 자율화를 위해 입학사정관제 확대, 학생부 전형 확대 등을 추진했다.

2010년, EBS 교재만으로도 100점 맞을 수 있게 하겠다며 대입수학능력시험 개혁을 시도했다. 그전까진 EBS 수능 강의 내용이 수능에 약 30% 가량 영향을 주었으나, 당해부터는 EBS 연계율을 70%까지 높히겠다고 발표했다. # 이에 사교육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고 사교육비 경감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2년 5월 31일 사망하였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내면서 공교육 살리기와 사교육 억제에 노력한 점이 주요 성과로 평가받는다.[3]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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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 명단
기획재정부장관 <colbgcolor=#ffffff,#1f2024><colcolor=#0095DA> 강만수 윤증현 박재완
교육과학기술부장관 김도연 안병만 이주호
외교통상부장관 유명환 김성환
통일부장관 김하중 현인택 류우익
법무부장관 김경한 이귀남 권재진
국방부장관 이상희 김태영 김관진
행정안전부장관 원세훈 이달곤 맹형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 정병국 최광식
농림수산식품부장관 정운천 장태평 유정복 서규용
지식경제부장관 이윤호 최경환 최중경 홍석우
보건복지가족부장관 보건복지부장관 김성이 전재희 진수희 임채민
환경부장관 이만의 유영숙
고용노동부장관 이영희 임태희 박재완 이채필
여성부장관 여성가족부장관 변도윤 백희영 김금래
국토해양부장관 정종환 권도엽
특임장관 주호영 이재오 고흥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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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대의 많은 학생자치단체들이 본격적으로 학교의 간섭을 받게 된 것이 안병만 총장 체제부터이다. [2] 외대 10-11대 총장을 지냈었던 김인철 교수가 안병만을 은사로 삼고 있다고 밝혔는데, 김인철 교수 역시 총장 재임 시절 독선적인 운영과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사건사고로 비판을 받았다. [3] 하지만 수능 탐구 영역의 지나친 과목 수 축소로 인해 훗날 탐구 영역의 난도가 급상승하여 결과적으로 사교육이 억제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