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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오 1세 |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 아메데오 | 아이모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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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데오 | 아이모네 | }}}}}}}}} |
<colbgcolor=#cc0000><colcolor=#ffffff> 제3대 아오스타 공작
아메데오 디 사보이아아오스타 Principe Amedeo, Duca d'Aos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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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8년 10월 21일 | ||
이탈리아 왕국 토리노 | |||
사망 | 1942년 3월 3일 (향년 43세) | ||
영국령 케냐 나이로비 | |||
재위기간 | 아오스타 공작 | ||
1931년 7월 4일 ~ 1942년 3월 3일 | |||
재임기간 |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총독 | ||
1937년 12월 21일 ~ 1942년 3월 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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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c0000><colcolor=#fff> 가문 | 사보이아카리냐노 가문 | |
이름 |
아메데오 움베르토 이사벨라 루이지 필리포 마리아 주세페 조반니 디 사보이아아오스타 (Amedeo Umberto Isabella Luigi Filippo Maria Giuseppe Giovanni di Savoia-Aos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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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 ||
어머니 | 엘렌 도를레앙 | ||
형제자매 | 아이모네 | ||
배우자 | 오를레앙의 안 공주 (1927년 결혼) | ||
자녀 | 마르게리타, 마리아 크리스티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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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왕국의 통치 가문인 사보이아 왕가의 방계 왕족이자 제3대 아오스타 공작.로돌포 그라치아니가 리비아 주둔 총사령관으로 영전하면서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의 후임 총독으로 재임했다.
2. 생애
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1]와 아오스타 공작부인 엘렌 도를레앙[2] 사이에서 출생하였다.아메데오는 매우 키가 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3] 아메데오 기예[4]에 따르면 한 언론인이 "Your Highness"[5]라고 말했고, 공작은 농담으로 "198센티미터"(6피트 6인치)라고 대답했다.
아메데오는 나폴리 눈치아텔라 군사 학교에 들어가 이탈리아 왕국군에 입대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포병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후 이탈리아 군대에 다시 합류하여 조종사가 되었다. 1932년에 그는 이탈리아 왕립 공군에 입대했고, 아메데오는 제2차 이탈리아-세누시 전쟁의 후기 단계 동안 로돌포 그라치아니 원수와 당시 리비아 주지사인 피에트로 바돌리오 밑에서 근무했다.
1931년 7월 4일 아버지인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가 사망하자 후임 아오스타 공작 자리에 올랐다.
1937년 로돌포 그라치아니가 리비아로 가면서 다음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의 총독이 되었으며, 가혹한 통치와 학살로만 일관했던 그라치아니와는 달리 유화적인 통치를 펼쳤다.[6]
2.1. 제2차 세계 대전
1940년 6월 10일 이탈리아가 영국과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날렸을 당시 아메데오는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이탈리아군의 사령관이 되었다.수단과 케냐로의 초기 이탈리아 진출을 감독했고, 8월에는 영국령 소말릴란드에 대한 이탈리아의 침공을 감독했다.
이후 1941년 1월에 영국군이 반격을 시작함에 따라 이탈리아군은 동아프리카에서 수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점점 식민지인 에리트레아와 여러 지역이 함락되었고, 1941년 5월 18일에 연합군에게 항복했고 나이로비에 있는 전쟁포로 수용소에 억류된다.
2.2. 사망
1942년 3월 3일, 수감 직후 결핵과 말라리아로 인한 합병증으로 인해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이후 아오스타 공작위는 아메데오의 동생인 아이모네가 계승했으며 아이모네는 아메데오가 항복한 당일인 1941년 5월 18일부터 안테 파벨리치에 의해 크로아티아의 왕으로 즉위한다.사후 케냐 니에리에 있는 이탈리아 가톨릭 교회에 안장되었다.
3. 가족 및 후손
1927년에 오를레앙 가문의 수장 기즈 공작 장[7]의 셋째딸이자 본인의 이종사촌인[8] 안 도를레앙(1906~1986)과 결혼, 슬하 2녀를 두었다.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 / 자녀 |
1녀 |
오스트리아에스테 대공비 마르게리타 (Margherita di Savoia-Aosta) |
1930년 4월 7일 | 2022년 1월 10일 |
오스트리아에스테 대공 로베르트[9] 슬하 3남 2녀 |
2녀 |
부르봉양시칠리아의 왕자비 마리아 크리스티나 (Maria Cristina di Savoia-Aosta) |
1933년 9월 12일 |
부르봉양시칠리아의 카시미르[10] 슬하 2남 2녀 |
장녀 마르게리타는 1950년에 카를 1세와 부르봉파르마의 치타의 차남인 로베르트 대공과 혼인하여 3남 2녀를 두었다. 둘의 장남인 로렌츠 대공은 벨기에 국왕 알베르 2세의 딸 아스트리드 공주와 결혼하여 벨기에에 정착하였으며, 부마 자격으로 벨기에 공 작위를 받아 벨기에의 방계 왕족으로 살고 있다. 로렌츠의 맏아들인 아메데오는 부친의 외조부의 이름을 따서 작명되었다. 차녀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양시칠리아 왕가의 방계 왕족인 카시미르 왕자와 혼인하여 2남 2녀를 두었다.
한편 아메데오의 조카이자 차차기 공작위 계승자인 5대 아오스타 공작 아메데오는, 아메데오의 처조카로 본인에게는 큰어머니의 친정조카가 되는[11] 클로드 도를레앙과 결혼해 1남 2녀를 두고 이혼했다.
4. 대중매체
- Hearts of Iron IV에서는 BBA DLC 이후 이탈리아로 에티오피아[12]를 협정을 통해 합병을 한 후 중점 "이탈리아령 아프리카부"와 "에티오피아의 새로운 황제"를 찍고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수립" 디시전을 통해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를 괴뢰국으로 만들면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의 지도자가 된다. 능력치는 "제 3대 아오스타 공작": 정치력 획득 +10%, 전쟁 지지도 +5.00%, 매일 지휘력 흭득 +0.05% "철의 공작": 저항도 증가 속도 -15%, 주둔군 피해 -10.00%.
- 모드인 카이저라이히에서는 사보이아 왕가가 사르데냐로 달아나서 수립한 사르데냐의 왕이 되어 있다. 직계가 모두 패전의 책임으로 쫓겨나서 방계인 아오스타 가문이 왕이 되었다는 설정이다.
[1]
아마데오 1세의 장남.
제1차 세계 대전 때 이탈리아 제3군 사령관을 역임하였다.
[2]
루이필리프 1세의 손자이자 프랑스 왕위 요구자였던 파리 백작 필리프의 차녀,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외할머니인 루이즈의 언니다.
[3]
당시 이탈리아 국왕이자 오촌 숙부였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고작 153cm의 단신이어서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4]
이탈리아 육군 장교이자 이탈리아 외교관이었고, 전쟁에서 기병대를 지휘한 마지막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무려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정도로
장수한 인물.
[5]
이탈리아어로 "your height"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6]
그래서 전후
하일레 셀라시에가 그의 가족들을 에티오피아로 초대하기도 했다.
[7]
루이필리프의 차손인 샤르트르 공작 로베르의 3남이다.
[8]
안의 어머니인 이자벨이 아메데오의 어머니인 엘렌의 여동생이다.
[9]
카를 1세의 차남이다.
[10]
양시칠리아 국왕
페르디난도 2세의 4남 알폰소 왕자의 막내아들인 가브리엘레 왕자의 3남이다.
[11]
안의 남동생인 앙리의 5녀.
[12]
에티오피아가 망명간 상태가 아닌 평화 협정이 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