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반란을 진압할 힘이 없던
메흐메드 알리 왕조의 헤디브(군주) 테우피크 파샤는 1882년 아라비 파샤를 군사 대신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반란군과 타협했다. 군사 대신이 된 아라비 파샤는 영국의 군사 개입을 반대하는 데 앞장섰는데, 이 때 몇몇의 급진파가
알렉산드리아의 외국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은 이 사건을 빌미로 파병하여 아라비 파샤를 체포하고 그 일파들을 진압했으며, 이후 이집트에 영국군을 주둔시킨 후 영국의 보호령으로 삼아버렸다. (
영국 치하 이집트)
1882년 영국인들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영국령 실론(오늘날 스리랑카)로 유배당했으나 1901년 죄가 풀려 이집트로 돌아왔으며, 1911년 이집트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