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20 21:09:20

성상룡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 성상룡[1]으로 등재돼 있다.]}}}
成相龍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나리타 세이쓰이(成田盛穗)
송여(松如)
본관 창녕 성씨[2]
출생 1916년 3월 10일[3]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월리 30-1번지[4]
사망 1988년 7월 24일[5] (향년 72세)
경상북도 경산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195호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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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16년 3월 10일 경상북도 경산군(現 경산시) 남산면 사월리 30-1번지에서 아버지 백포(柏圃) 성호식(成好植, 1881. 10. 11 ~ 1951. 12. 11)과 어머니 경주 손씨(1896. 11. 12 ~ 1963. 12. 20)[6] 사이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자인공립보통학교(現 자인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농업에 종사했다.

1944년 7월 15일 송수답(宋水畓)을 비롯한 29명의 동지들과 함께 일본 제국 징용 징병제에 반대해 경산군 남산면 흥정리 대왕산(大旺山, 大王山)에 올라가 집결했다. 이후 죽창과 돌로 무장하고 일본 경찰에 집단 항거했으며, 그해 8월 10일 식량 조달을 위해 하산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4년 10월 4일 이른 바 보안법 위반 및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었고,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았다. 이틀 뒤인 1945년 8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 바 보안법 위반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 소송이 취소되어 곧 석방되었다.

8.15 광복 후에는 농협조합장을 지냈다.

198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고, 1988년 7월 24일 경산시에서 별세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당초 경산시 남산면 송내리에 안장되었다가 2017년 7월 19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에 이장되었다.

[1] 대전현충원묘적부에는 성 [2] 판서공파(判書公派) 25세 경(慶) 항렬. 족보명은 성상경(成相慶). [3] 창녕성씨인터넷족보에는 1915년 12월 15일생으로 등재돼 있다. [4] 디지털경산문화대전에는 130-1번지로 적혀 있다. [5] 음력 6월 11일. [6] 손수인(孫秀仁)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