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와 그 미래 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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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사회 과학 |
저자 | 시어도어 카진스키 |
출판사 | 워싱턴 포스트 |
출판일 | 1995년 9월 19일 |
개정 | 2016년 |
분량 | 35,000 단어 |
전문 링크 |
영어 원본 한국어 번역본 한국어 번역본 아카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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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he Industrial Revolution and its consequences have been a disaster for the human race.
산업 혁명과 그 결과는 인류에게 있어 재앙이었다.
서두
산업 혁명과 그 결과는 인류에게 있어 재앙이었다.
서두
유나바머로 유명한 시어도어 카진스키의 저서다. '유나바머 선언문(Unabomber Manifesto)'이라고도 불린다. 1995년에 워싱턴 포스트가 출판했다.
선언문은 주로 다섯 개의 주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 현대 기술은 분리할 수 없는,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난 자기 영속적 체제이다.
-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심리적으로 기술 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
- 기술 체제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간성의 파괴나 체제에 대한 영속적 예속과 같은 수습 불가능한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다.
- 기술 체제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1] 개혁할 수도 없으며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체제 = 기술 그 자체를 혁명적으로 전복시킬 필요가 있다.
- 좌파 사회 운동은 기술 체제의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는 일종의 유사 반란이다.
조사에 따르면, 카진스키는 프랑스 사회학자 자크 엘륄, 영국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 미국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2]의 연구 결과를 결합해 "산업 사회와 그 미래"를 집필했다고 한다.[3]
저자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는 후속작 반기술혁명: 목적과 방법에서 자신의 주장을 더욱 체계화하였다.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 총격 피살 사건의 범인 루이지 맨지오니[4]가 이 책을 읽고, Goodreads라는 책 평가 사이트에서 4점을 주며 "폭력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겁쟁이들과 포식자들의 논리이다."라는 서평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위 구절은 레딧의 r/climate서브레딧에서 카진스키의 책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글이 있었고 그 글에 한 사용자가 댓글로 작성한 서평을 인용[5]한 것중 일부분이다. 레딧에 있는 실제 서평[6]
2. 요약
산업 사회(기술 체제)는 그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 철저하고 엄밀하게 조직되어야 한다. 산업 사회는 구조, 지침, 생필품을 제공한다. 그래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목표를 갖고, 투쟁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방해한다. 산업 사회는 인간의 욕구 실현을 너무 쉽거나(복지 제도 등) 너무 어렵게(불법) 만들었다.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통제할) 자유는 체제를 원활하게 작동시키기 위해 대부분 제거되었다. '권력 과정(power process)'을 경험하지 못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에 시달리게 되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리 활동(surrogate activity)에 탐닉하지만, 여전히 박탈감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집단을 위한 대의에 뛰어든다. 그들은 사회에게 이러한 대의를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한다. 역설적으로, (주로 중상류층 좌파인) 그들은 이 문제들의 근본 원인인 기술 체제를 더욱 강화시키고자 한다.
역사의 장기적 경향은 내적으로 안정적이며 상호 의존적이다. 부분적 변혁으로는 이러한 역사적 경향을 바꿀 수 없다. 역사적 경향을 영구적으로 바꿀만한 충분히 거대한 변혁은 역사에 예측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이로부터 부정적인 역사적 경향은 개혁될 수 없으며, 오직 파괴하는 것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가 무엇으로 대체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적 경향을 정치 제도를 통해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기술 체제는 너무나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부분조차도 나쁜 부분에 의지하고 있다. 기술적 진보를 늦추는 것은 가능하지만, 결코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일단 이루어진 기술적 진보는 그보다 더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고서야 절대 제거할 수 없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환경 재앙이나 경제적 재앙으로 인해 체제가 충분히 약해졌을 때, (개혁이 아니라) 혁명을 통해 체제를 파괴하는 것이다. 개혁가들은 하나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만을 제안하기 때문에 언제나 소심하고, 추구하는 대의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혁명은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하나의 해결책을 제안하며, 추종자들은 새로운 이상 세계를 추구한다. (혁명이 완수되기 전까지는, 사람마다 추구하는 이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환경 파괴와 같은 단순하고 분명한 문제조차도 해결할 수 없었다. 설령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오직 그것이 우리 사회에 이익이기 때문일 것이다. 산업화의 문제점은 대단히 복잡하고 숨겨져 있다. 그리고 기술 체제 파괴는 우리 사회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과거의 사회들이 인간을 통제할 수단은 부족했으며, 인간을 지나치게 통제할 경우 사회 기능이 망가졌기 때문에 제한적으로만 인간을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술 사회는 약물, 오락, 정신 건강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서 전체 사회의 기능을 해치지 않으면서 인간을 훨씬 강하게 통제할 수 있다.
기술 체제의 완벽한 통제를 방해하는 ( 범죄 조직, 민병대, 게토 같은) 체제의 하부 구조로 인해 기술 체제는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하며, 기술 체제 파괴를 쉽게 만들기 위해 사회 혼란을 가중시켜야 한다.
기술 체제를 파괴할 경우 그 결과는 대단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기술 체제를 그것의 논리적 귀결점에 도달하도록 내버려두면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우리는 이성적인 언어로 지적인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감정적인 언어를 쓸 경우에도 진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해결책은 무의미하다. 혁명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다른 이슈로 산만해져서는 안 된다. 오직 전 세계 기술 체제의 완전한 붕괴만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대의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라, 좌익 이념이다. 좌파의 집단주의적 이념은 오직 기술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의도가 아무리 선하다 하더라도, 좌파들은 결국 기술 사회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좌파는 반기술 혁명 운동의 일원이 될 수 없다.[7]
3. 인용
Those who are most sensitive about “politically incorrect” terminology are not the average black ghetto dweller, Asian immigrant, abused woman or disabled person, but a minority of activists, many of whom do not even belong to any “oppressed” group but come from privileged strata of society. Political correctness has its stronghold among university professors, who have secure employment with comfortable salaries, and the majority of whom are heterosexual white males from middle to upper middle class families. Many leftists have an intense identification with the problems of groups that have an image of being weak (women), defeated (American Indians), repellent (homosexuals) or otherwise inferior. The leftists themselves feel that these groups are inferior. They would never admit to themselves that they have such feelings, but it is precisely because they do see these groups as inferior that they identify with their problems. Feminists are desperately anxious to prove that women are as strong and as capable as men. Clearly they are nagged by a fear that women may NOT be as strong and as capable as men.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라는 용어에 대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도시 빈민가의 보통 흑인이나 아시아계 이민, 학대받는 여성, 장애인이 아니라 소수의 운동가들이다. 그들 중 다수는 '억압당하는' 집단에 속해 있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사회의 특권 계층 출신들이다. '정치적으로 옳은' 운동은 안정된 봉급의 직장을 갖고 있는 대학교수 사이에서 든든한 지지를 얻고 있으며, 그들 대부분은 중상 계층 이상의 가정 출신인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다. 많은 좌파는 약함(여성), 패배(아메리카 인디언), 역겨움(동성애자) 등의 열등한 이미지를 지닌 집단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동일화한다. 좌파들 자신은 이들 집단을 열등하다고 느끼고 있다. 좌파는 결코 자신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집단의 문제와 자신을 동일화하는 것은 그들이 이들 집단을 열등한 집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힘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입증하려 절망적으로 발버둥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여성은 남성만큼 강하지도, 능력을 갖추고 있지도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라는 용어에 대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도시 빈민가의 보통 흑인이나 아시아계 이민, 학대받는 여성, 장애인이 아니라 소수의 운동가들이다. 그들 중 다수는 '억압당하는' 집단에 속해 있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사회의 특권 계층 출신들이다. '정치적으로 옳은' 운동은 안정된 봉급의 직장을 갖고 있는 대학교수 사이에서 든든한 지지를 얻고 있으며, 그들 대부분은 중상 계층 이상의 가정 출신인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다. 많은 좌파는 약함(여성), 패배(아메리카 인디언), 역겨움(동성애자) 등의 열등한 이미지를 지닌 집단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동일화한다. 좌파들 자신은 이들 집단을 열등하다고 느끼고 있다. 좌파는 결코 자신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집단의 문제와 자신을 동일화하는 것은 그들이 이들 집단을 열등한 집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힘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입증하려 절망적으로 발버둥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여성은 남성만큼 강하지도, 능력을 갖추고 있지도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Modern leftish philosophers tend to dismiss reason, science, objective reality and to insist that everything is culturally relative. It is true that one can ask serious questions about the foundations of scientific knowledge and about how, if at all, the concept of objective reality can be defined. But it is obvious that modern leftish philosophers are not simply cool-headed logicians systematically analyzing the foundations of knowledge. They are deeply involved emotionally in their attack on truth and reality. They attack these concepts because of their own psychological needs. For one thing, their attack is an outlet for hostility, and, to the extent that it is successful, it satisfies the drive for power. More importantly, the leftist hates science and rationality because they classify certain beliefs as true (i.e., successful, superior) and other beliefs as false (i.e., failed, inferior). The leftist’s feelings of inferiority run so deep that he cannot tolerate any classification of some things as successful or superior and other things as failed or inferior. This also underlies the rejection by many leftists of the concept of mental illness and of the utility of IQ tests. Leftists are antagonistic to genetic explanations of human abilities or behavior because such explanations tend to make some persons appear superior or inferior to others. Leftists prefer to give society the credit or blame for an individual’s ability or lack of it. Thus if a person is “inferior” it is not his fault, but society’s, because he has not been brought up properly. The leftist is not typically the kind of person whose feelings of inferiority make him a braggart, an egotist, a bully, a selfpromoter, a ruthless competitor. This kind of person has not wholly lost faith in himself. He has a deficit in his sense of power and self-worth, but he can still conceive of himself as having the capacity to be strong, and his efforts to make himself strong produce his unpleasant behavior. But the leftist is too far gone for that. His feelings of inferiority are so ingrained that he cannot conceive of himself as individually strong and valuable. Hence the collectivism of the leftist. He can feel strong only as a member of a large organization or a mass movement with which he identifies himself. Notice the masochistic tendency of leftist tactics. Leftists protest by lying down in front of vehicles, they intentionally provoke police or racists to abuse them, etc. These tactics may often be effective, but many leftists use them not as a means to an end but because they PREFER masochistic tactics. Self-hatred is a leftist trait.
현대의 좌파 철학자들은 이성, 과학, 객관적 현실을 포기하고 모든 것의 문화적 상대성을 주장한다. 물론 누구나 과학적 지식의 토대에 대해, 그리고 도대체 객관적 현실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좌파 철학자들이 지식의 토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냉철한 논리학자들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진리와 현실을 공격할 때 그들은 감정적으로 심한 흥분 상태에 빠져 있다. 그들이 이들 개념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들의 심리적 욕구 때문이다. 그들의 공격은 그들이 지닌 적대감의 배출구이며, 공격이 성공할 때 그들의 권력 욕망도 충족된다. 더욱이 좌파들은 과학과 합리성을 증오한다. 과학과 합리성에 의해 참된 신념들(즉 성공한 것, 우월한 것)과 거짓 신념(즉 실패한 것, 열등한 것)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좌파의 열등감은 점점 깊어져 어떤 것을 성공한 것이나 우월한 것으로, 그리고 나머지를 실패한 것이나 열등한 것으로 구분하는 것조차도 참을 수 없게 된다. 많은 좌파들이 정신 질환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IQ 측정의 유용성을 거부하는 것에도 역시 그 같은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다. 좌파들은 인간의 능력이나 행동을 유전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그런 설명이 어떤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우월하게 또는 열등하게 보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좌파들은 개인의 능력이나 무능력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설명을 선호한다. 따라서 만약 어떤 개인이 '열등'하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이다. 사회가 그를 올바르게 양육하지 않은 것이다. 좌파는 열등감 때문에 허풍선이, 이기주의자, 건달 두목, 자화자찬파, 무자비한 경쟁자가 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그런 유형의 사람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별로 힘이 없음을 알고 자부심도 약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강한 자가 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스스로를 강한 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그런 불쾌한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좌파는 거기에서 한참을 더 나간다. 그의 열등감은 워낙 깊숙이 뿌리 박혀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강하고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여기서 좌파의 집단주의가 생겨난다. 그는 자신을 동일화시킬 수 있는 거대 조직, 또는 대규모 사회 운동의 일원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강하다고 느낄 수 있다. 좌파의 전략이 지닌 마조히즘적 성향에 주목하라. 좌파들은 자동차 앞에 드러누움으로써 저항하는가 하면, 자신들을 학대하도록 경찰이나 인종 차별주의자를 일부러 자극한다. 그런 전략이 때로는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좌파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그것이 '좋아서' 그런 마조히즘적 전략을 사용한다. 자기 증오는 좌파의 속성 중 하나일 뿐이다.
현대의 좌파 철학자들은 이성, 과학, 객관적 현실을 포기하고 모든 것의 문화적 상대성을 주장한다. 물론 누구나 과학적 지식의 토대에 대해, 그리고 도대체 객관적 현실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좌파 철학자들이 지식의 토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냉철한 논리학자들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진리와 현실을 공격할 때 그들은 감정적으로 심한 흥분 상태에 빠져 있다. 그들이 이들 개념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들의 심리적 욕구 때문이다. 그들의 공격은 그들이 지닌 적대감의 배출구이며, 공격이 성공할 때 그들의 권력 욕망도 충족된다. 더욱이 좌파들은 과학과 합리성을 증오한다. 과학과 합리성에 의해 참된 신념들(즉 성공한 것, 우월한 것)과 거짓 신념(즉 실패한 것, 열등한 것)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좌파의 열등감은 점점 깊어져 어떤 것을 성공한 것이나 우월한 것으로, 그리고 나머지를 실패한 것이나 열등한 것으로 구분하는 것조차도 참을 수 없게 된다. 많은 좌파들이 정신 질환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IQ 측정의 유용성을 거부하는 것에도 역시 그 같은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다. 좌파들은 인간의 능력이나 행동을 유전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그런 설명이 어떤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우월하게 또는 열등하게 보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좌파들은 개인의 능력이나 무능력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설명을 선호한다. 따라서 만약 어떤 개인이 '열등'하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이다. 사회가 그를 올바르게 양육하지 않은 것이다. 좌파는 열등감 때문에 허풍선이, 이기주의자, 건달 두목, 자화자찬파, 무자비한 경쟁자가 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그런 유형의 사람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별로 힘이 없음을 알고 자부심도 약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강한 자가 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스스로를 강한 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그런 불쾌한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좌파는 거기에서 한참을 더 나간다. 그의 열등감은 워낙 깊숙이 뿌리 박혀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강하고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여기서 좌파의 집단주의가 생겨난다. 그는 자신을 동일화시킬 수 있는 거대 조직, 또는 대규모 사회 운동의 일원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강하다고 느낄 수 있다. 좌파의 전략이 지닌 마조히즘적 성향에 주목하라. 좌파들은 자동차 앞에 드러누움으로써 저항하는가 하면, 자신들을 학대하도록 경찰이나 인종 차별주의자를 일부러 자극한다. 그런 전략이 때로는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좌파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그것이 '좋아서' 그런 마조히즘적 전략을 사용한다. 자기 증오는 좌파의 속성 중 하나일 뿐이다.
We attribute the social and psychological problems of modern society to the fact that that society requires people to live under conditions radically different from those under which the human race evolved and to behave in ways that conflict with the patterns of behavior that the human race developed while living under the earlier conditions. It is clear from what we have already written that we consider lack of opportunity to properly experience the power process as the most important of the abnormal conditions to which modern society subjects people. But it is not the only one. Before dealing with disruption of the power process as a source of social problems we will discuss some of the other sources. Among the abnormal conditions present in modern industrial society are excessive density of population, isolation of man from nature, excessive rapidity of social change and the breakdown of natural small-scale communities such as the extended family, the village or the tribe. It is well known that crowding increases stress and aggression. The degree of crowding that exists today and the isolation of man from nature are consequences of technological progress. All pre-industrial societies were pre-dominantly rural. The Industrial Revolution vastly increased the size of cities and the proportion of the population that lives in them, and modern agricultural technology has made it possible for the Earth to support a far denser population than it ever did before. Also, technology exacerbates the effects of crowding because it puts increased disruptive powers in people’s hands.
현대 사회의 사회적, 심리적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현대 사회가 지금까지 인류가 그 안에서 이제껏 진화해 왔던 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도록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또 과거의 환경에서 살면서 발전시켜 온 행동 양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현대 사회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온갖 비정상적인 환경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권력 과정에 제대로 참여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것만이 사회 문제의 유일한 근원은 물론 아니다. 사회 문제의 한 근원으로서의 권력 과정 붕괴를 다루기에 앞서 우리는 몇 가지 다른 근원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현대 산업 사회가 안고 있는 비정상적 환경으로는 과도한 인구 밀도, 자연으로부터의 인간 소외,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회 변동, 대가족이나 마을, 부족 등과 같은 자연스러운 소규모 공동체의 붕괴 등을 들 수 있다. 인구 과밀이 스트레스와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인구 과밀과 자연으로부터의 인간 소외는 테크놀로지 발전의 결과로 빚어진 현상이다. 산업화 이전의 모든 사회는 전적으로 농업 사회였다. 산업 혁명으로 인해 도시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으며, 도시에 사는 인구 역시 엄청나게 늘어났다. 한편 현대적 영농 테크놀로지 덕분에 지구는 이제껏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과밀한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테크놀로지로 인해 인구 과밀의 부정적 효과는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는 테크놀로지가 사람들의 손에 더욱더 강한 파괴력을 쥐여 주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사회적, 심리적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현대 사회가 지금까지 인류가 그 안에서 이제껏 진화해 왔던 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도록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또 과거의 환경에서 살면서 발전시켜 온 행동 양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현대 사회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온갖 비정상적인 환경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권력 과정에 제대로 참여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것만이 사회 문제의 유일한 근원은 물론 아니다. 사회 문제의 한 근원으로서의 권력 과정 붕괴를 다루기에 앞서 우리는 몇 가지 다른 근원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현대 산업 사회가 안고 있는 비정상적 환경으로는 과도한 인구 밀도, 자연으로부터의 인간 소외,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회 변동, 대가족이나 마을, 부족 등과 같은 자연스러운 소규모 공동체의 붕괴 등을 들 수 있다. 인구 과밀이 스트레스와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인구 과밀과 자연으로부터의 인간 소외는 테크놀로지 발전의 결과로 빚어진 현상이다. 산업화 이전의 모든 사회는 전적으로 농업 사회였다. 산업 혁명으로 인해 도시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으며, 도시에 사는 인구 역시 엄청나게 늘어났다. 한편 현대적 영농 테크놀로지 덕분에 지구는 이제껏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과밀한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테크놀로지로 인해 인구 과밀의 부정적 효과는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는 테크놀로지가 사람들의 손에 더욱더 강한 파괴력을 쥐여 주었기 때문이다.
First let us postulate that the computer scientists succeed in developing intelligent machines that can do all things better than human beings can do them. In that case presumably all work will be done by vast, highly organized systems of machines and no human effort will be necessary. Either of two cases might occur. The machines might be permitted to make all of their own decisions without human oversight, or else human control over the machines might be retained. If the machines are permitted to make all their own decisions, we can’t make any conjectures as to the results, because it is impossible to guess how such machines might behave. We only point out that the fate of the human race would be at the mercy of the machines. It might be argued that the human race would never be foolish enough to hand over all power to the machines. But we are suggesting neither that the human race would voluntarily turn power over to the machines nor that the machines would willfully seize power. What we do suggest is that the human race might easily permit itself to drift into a position of such dependence on the machines that it would have no practical choice but to accept all of the machines’ decisions. As society and the problems that face it become more and more complex and as machines become more and more intelligent, people will let machines make more and more of their decisions for them, simply because machine-made decisions will bring better results than man-made ones. Eventually a stage may be reached at which the decisions necessary to keep the system running will be so complex that human beings will be incapable of making them intelligently. At that stage the machines will be in effective control. People won’t be able to just turn the machine off, because they will be so dependent on them that turning them off would amount to suicide. On the other hand it is possible that human control over the machines may be retained. In that case the average man may have control over certain private machines of his own, such as his car or his personal computer, but control over large systems of machines will be in the hands of a tiny elite — just as it is today, but with two differences. Due to improved techniques the elite will have greater control over the masses; and because human work will no longer be necessary the masses will be superfluous, a useless burden on the system. If the elite is ruthless they may simply decide to exterminate the mass of humanity. If they are humane they may use propaganda or other psychological or biological techniques to reduce the birth rate until the mass of humanity becomes extinct, leaving the world to the elite.
컴퓨터 과학자들이 모든 일을 인간보다 잘 처리하는 인공 지능 기계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거대하고 고도로 조직적인 기계 시스템이 모든 노동을 담당할 것이고, 인간의 노력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그런 경우의 가능성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인간의 감독 없이 기계가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리거나, 아니면 여전히 인간이 기계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기계가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전혀 예측할 길이 없다. 그런 기계가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짐작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다만 인류의 운명이 기계의 자비심에 달려 있다는 것뿐이다. 인류가 기계에게 모든 힘을 넘겨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가 자발적으로 기계에 힘을 넘겨주거나 기계가 자신의 의지로 권력을 장악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인류가 쉽사리 기계에 종속된 지위로 떨어질 것이며, 결국 기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리라는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따라서 사회 문제들도 점점 더 복잡해짐에 따라, 그리고 기계가 점점 더 지능화함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결정권을 기계에게 넘겨줄 것이다. 단순히 기계에 의한 결정이 사람에 의한 결정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마침내는 체제를 계속 돌아가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결정이 너무나 복잡해져서 인간의 지능으로는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는 그런 단계가 도래할 것이다. 그 단계에서는 기계가 통제권을 장악한다. 이제 인간은 기계를 꺼 버릴 수조차 없다. 기계에 철저히 종속된 인간이 기계를 끈다는 것은 곧 자살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간이 기계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경우, 보통 사람도 자동차나 PC 같은 개인 소유 기계는 통제할 수 있겠지만, 대형 기계 시스템에 대한 통제권은 극소수 엘리트의 손에 쥐어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거기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진보된 기술 덕분에 엘리트는 대중에 대해 더 강화된 통제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노동이 불필요해진 탓에 대중은 불필요한 존재, 즉 체제에 떠넘겨진 쓸모없는 짐더미가 되어 버린다. 무자비한 엘리트라면, 간단히 엄청난 인구를 죽여 없앨지도 모른다. 인간적인 엘리트라면 프로파간다나 심리적, 생물학적 기술을 활용해 출산율을 줄이는 식으로 대부분의 인구를 멸종에 이르게 한 뒤, 남은 세상을 독차지할 것이다.
컴퓨터 과학자들이 모든 일을 인간보다 잘 처리하는 인공 지능 기계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거대하고 고도로 조직적인 기계 시스템이 모든 노동을 담당할 것이고, 인간의 노력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그런 경우의 가능성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인간의 감독 없이 기계가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리거나, 아니면 여전히 인간이 기계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기계가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전혀 예측할 길이 없다. 그런 기계가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짐작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다만 인류의 운명이 기계의 자비심에 달려 있다는 것뿐이다. 인류가 기계에게 모든 힘을 넘겨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가 자발적으로 기계에 힘을 넘겨주거나 기계가 자신의 의지로 권력을 장악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인류가 쉽사리 기계에 종속된 지위로 떨어질 것이며, 결국 기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리라는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따라서 사회 문제들도 점점 더 복잡해짐에 따라, 그리고 기계가 점점 더 지능화함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결정권을 기계에게 넘겨줄 것이다. 단순히 기계에 의한 결정이 사람에 의한 결정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마침내는 체제를 계속 돌아가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결정이 너무나 복잡해져서 인간의 지능으로는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는 그런 단계가 도래할 것이다. 그 단계에서는 기계가 통제권을 장악한다. 이제 인간은 기계를 꺼 버릴 수조차 없다. 기계에 철저히 종속된 인간이 기계를 끈다는 것은 곧 자살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간이 기계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경우, 보통 사람도 자동차나 PC 같은 개인 소유 기계는 통제할 수 있겠지만, 대형 기계 시스템에 대한 통제권은 극소수 엘리트의 손에 쥐어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거기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진보된 기술 덕분에 엘리트는 대중에 대해 더 강화된 통제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노동이 불필요해진 탓에 대중은 불필요한 존재, 즉 체제에 떠넘겨진 쓸모없는 짐더미가 되어 버린다. 무자비한 엘리트라면, 간단히 엄청난 인구를 죽여 없앨지도 모른다. 인간적인 엘리트라면 프로파간다나 심리적, 생물학적 기술을 활용해 출산율을 줄이는 식으로 대부분의 인구를 멸종에 이르게 한 뒤, 남은 세상을 독차지할 것이다.
4. 평가
나는 카진스키를 변호하고 싶지 않다. 17년에 걸친 그의 폭탄 테러 행위 때문에 세 사람이 죽었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다. 카진스키의 폭탄 하나는 내 친구이자 우리 시대의 가장 총명하고 비전 있는 컴퓨터 과학자인
데이비드 겔런터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혔다. 많은 내 동료들처럼, 나 자신도
유나바머의 다음번 목표일 가능성이 크다고 느꼈다.
카진스키의 행위는 살인적인 것이었고, 내가 보기에는 범죄적일 만큼 미친 짓이었다. 그가 러다이트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의 논리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로서는 고통스럽지만, 이 구절에 담긴 논리가 갖는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빌 조이, Why the future doesn’t need us 한국어 번역
카진스키의 행위는 살인적인 것이었고, 내가 보기에는 범죄적일 만큼 미친 짓이었다. 그가 러다이트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의 논리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로서는 고통스럽지만, 이 구절에 담긴 논리가 갖는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빌 조이, Why the future doesn’t need us 한국어 번역
그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는,
올더스 헉슬리의 “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
1984”와 나란히 할 자격이 있다.
- 키스 애블로(Keith Ablow), Fox News #
- 키스 애블로(Keith Ablow), Fox News #
그의 논문은 뛰어난 대학원생이 수업 과제가 아니라 스스로 연구한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광인의 글이라면,
장 자크 루소,
토머스 페인,
카를 마르크스도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 제임스 윌슨(James Wilson), 정치학자, 뉴욕 타임즈 #
- 제임스 윌슨(James Wilson), 정치학자, 뉴욕 타임즈 #
5. 관련 문서
[1]
카진스키는 자동차를 예로 들었다. 자동차가 발달하면서 오직 자동차를 위한 도로가 생겨나고, 사람이 걸어서 왕래할 수 있는 길이 축소되거나 아예 없어지기까지 했다. 이를 확대해 보자면 사람이 아닌 자동차와 같은 기술들이 더 우선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
[2]
학습된 무기력을 연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3]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13569317.2021.1921940
[4]
공교롭게도
루이지 맨지오니는
유나바머와 마찬가지로 '강력범죄자는 교육 수준이 낮고 가정 폭력이 빈번한 저소득층 가정에서 발생한다'라는 통념을 다시 깬 사례가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해 생활고를 겪는 저소득층에서 범인이 나올거란 추측이 우세했다. 물론 미국의 의료보험 문제는 아버지 조 바이든이 7선 상원의원에 당시 부통령이었고, 자신은 주 법무장관이었던 보 바이든조차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해 생계가 곤란해질뻔 할 정도로 심각하다.
[5]
실제 내용 읽어봤다면 바로 눈치챘겠지만 인터넷에서 본 흥미로운 내용을 직접 인용 한 것이므로 인용하는 글의 앞과 끝에 큰따옴표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6]
원 작성자도 CEO 총격 사건의 용의자가 자신의 글을 인용한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관한 내용이 최근에 추가 되었다.
[7]
요약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카진스키는 좌파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 대단히 일반론적이며, 당연히 모든 개별 사례에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