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7 23:47:31

브루저 브로디

파일:Bruiser-Brody-Giving-Pose.jpg
Bruiser Brody

1. 프로필2. 소개3. 커리어4. 사망5. 경기력6. 둘러보기

1. 프로필

파일:BruiserBrody_full.png
본명 프랭크 도날드 구디쉬 (Frank Donald Goodish)
출생일 1946년 6월 18일
사망일 1988년 7월 17일 (향년 42세)
출생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유니언타운
신장 203cm
체중 128kg
피니시 무브 킹 콩 니 드랍
테마 Immigrant Song
주요 커리어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PWF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1981년, 1983년 최강 태그 리그 우승
1979년 1월 3일 고라쿠엔 홀 헤비급 배틀 로열 우승
NWA 플로리다 헤비급 챔피언 1회
NWA 아메리칸 헤비급 챔피언 4회
NWA 텍사스 헤비급 챔피언 1회
NWA 웨스턴 스테이트 헤비급 챔피언 1회
유형 브롤러

2. 소개


미국의 前 미식축구 선수, 프로레슬러. 현존하는 프로레슬러의 경기 스타일 중 브롤러 스타일의 시조격인 인물이다.

3. 커리어

웨스턴 텍사스 A&M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식축구 선수로서 NFL 워싱턴 레드스킨스에 입단했지만 큰 활약은 하지 못한 채 선수로서 은퇴해 스포츠부 기자로 잠시 활동한다. 그러다 프리츠 폰 에릭에게 레슬링을 전수받은 뒤 1973년 댈러스에서 프로레슬러 생활을 시작한다. 2m가 넘는 키에 미식축구로 다져진 힘 덕분에 WWWF, SCW, DSW, CWF, AWA, NWA, WWC 등 여러 단체에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거기에 걸맞게 여러 단체에서 대단한 활약을 한다. 특히 WWWF에서는 당시 월드 챔피언인 브루노 삼마르티노와 대결했고, 빅 존 스터드의 태그팀 파트너로 활약한다.
파일:브루저 브로디 1.jpg
파일:브루저 브로디 챔피언 등극.jpg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스턴 한센과의 초수 콤비로 인기를 끄는 한편 인텔리한 괴물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하지만 단체와의 불화로 인해 1985년부터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한다. 안토니오 이노키와 아주 짧은 대립을 했고, 일본을 떠나 잠시 WWC에서 활동했지만 이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점보 츠루타, 텐류 겐이치로와 대립하는 한편 NWA 인터내셔널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이후 일본에서 계속 활동하며 압둘라 더 부처와 엄청난 혈투를 가졌으며 릭 플레어와 일본에서 NWA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 매치를 치른다.
파일:브루저 브로디 2.jpg
1986년부터는 플로리다의 CWF에서 활동하며 젊은 인재였던 렉스 루거와 대립을 했으며 이후에는 AWA에서 활동한다.

4. 사망

파일:브루저 브로디 死.jpg
1988년 7월 16일 푸에르토리코의 WWC 흥행에 참가한 브로디는 본래 댄 스피비와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WWC 소속의 레슬러 호세 곤잘레스의 칼에 찔렸고 끝내 숨지고 만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잡질을 절대 안 해주기로 유명했던 브루저 브로디와 WWC의 오너 카를로스 콜론 사이의 갈등이 문제가 되어 호세 곤잘레스가 사주를 받고 그랬다는 카더라가 있지만 법정에서는 증거 불충분 처리가 되면서 곤잘레스는 몇년 뒤 브로디가 먼저 공격을 해온 것에 대해 맞서다 살해하게된 정당방위가 되어 짧은 형량만 살다 출소했고, 사건은 그렇게 묻혀버리고 만다.

이 당시 토니 아틀라스가 살인사건의 목격자였으나 호세의 살인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을 하지않아 호세의 살인이 의도적인 살인이 아닌 정당방위가 되었는데 호세가 토니 아틀라스를 협박해서 증언을 못하게 틀어막았다는 설이 있다. 사건 특성상 곤잘레스는 현지인이고, 브로디는 외국인이라 재판에서 곤잘레스가 유리한 면이 있던 것은 맞지만 살인이 정당방위로 바뀔 정도로 결정적인 증언이 없었다는 것은 목격자인 토니가 협박을 받아 결정적인 증언을 하지 못했다는 설이 충분히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다만 협박설이 말 그대로 추측인 만큼 어쩌면 협박 때문에 증언을 안한게 아니라 토니가 브로디에 대해 감정이 좋지않아 일부러 증언을 안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것도 가능성은 충분한게, 브로디는 생전에 특유의 거만한 성격 때문에 브로디를 싫어했던 레슬러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호세가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것은 아틀라스가 결정적인 증언을 하지 않은 것도 컸지만, 브로디와 호세의 체급차가 컸던 것도 크게 적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브로디는 키가 200cm를 넘는 장신이었고, 반면 호세는 그렇지 않았기에 현실적으로 보면 이렇게 체급차가 크게나는 둘이 싸운다면 호세한테 대놓고 불리한 싸움인게 사실이라 호세가 브로디와 싸우다 칼로 찔러 죽였다해도 오히려 호세의 재판에 있어서 유리하게 적용된 셈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한동안 북미의 프로레슬러들은 푸에르토리코로 원정가는 것을 꺼렸었다.

한편 WWC 당시 흥행에 참가했던 더치 만텔[1]은 이 사건을 계기로 선수들간의 분쟁을 좀 더 유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 레슬러 법정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는 그를 기리기 위해 본 잡지에서 뽑는 베스트 브롤러 상의 이름을 브루저 브로디 메모리얼 어워드로 지정했다.

5. 경기력

역사상 최고의 브롤러로 칭송 받을만큼 2미터 넘는 거한인데도 날렵한 움직임과 탄력을 갖췄다. 특히 그 장신에 드랍킥까지 완벽하게 구사할 정도로 가공할 만한 체공력을 가졌다. 그의 피니시 무브인 킹콩 니 드랍은 남들이 쓰면 평범한 일반기지만 브로디가 쓰면 과연 피니셔라 할만하다할 정도로 엄청난 임팩트를 자랑한다.

6. 둘러보기

파일:Frank Gotch Award-logo.jpg
2018년 조르지 트라고스/루 테즈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jpw-logo.gif 역대 세계 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우승자
1980 1981 1982
사제 콤비([ruby(師弟, ruby=し てい)]コンビ)
자이언트 바바 & 점보 츠루타
야수 콤비([ruby(野獣, ruby=やじゅう)]コンビ)
브루저 브로디 & 지미 스누카
더 펑크스
도리 펑크 주니어 & 테리 펑크
1982 1983 1984
더 펑크스
도리 펑크 주니어 & 테리 펑크
초수콤비([ruby(超獣, ruby=ちょうじゅう)]コンビ)
브루저 브로디 & 스탠 핸슨
학용 콤비([ruby(鶴龍, ruby=かくりゅう)]コンビ)[2]
텐류 겐이치로 & 점보 츠루타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5성 경기
1984년 12월 08일
전일본 프로레슬링
세계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브루저 브로디 & 스턴 한센 vs 더 펑크스(도리 펑크 주니어 & 테리 펑크)

[1] WWE에서 잭 스웨거의 매니저였던 젭 콜터로 유명하다. [2] 점보 츠루타(鶴田)의 학(鶴)과 텐류(天龍)의 용(龍)을 합친 태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