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8 16:47:45

배산



1. 부산광역시의 산
1.1. 개요
1.1.1. 역사1.1.2. 명칭1.1.3. 주변 지리1.1.4. 교통편
1.1.4.1. 시내버스1.1.4.2. 도시철도
1.1.5. 사건 사고
2. 전라북도 익산시의 산
2.1. 개요2.2. 상세정보2.3. 주변 정보

1. 부산광역시의 산

1.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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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 수영구 망미동에 걸쳐 있는 . 정상부는 해발 256.3m로 목포시 유달산보다 조금 높고 서울특별시 남산보다 조금 낮은 정도다.

부산 중심부의 한복판에 위치한 산답게 등산로가 곳곳에 포진되어 있고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이 정상 부근까지 설치되어 있어, 현재는 사실상 주민 체육공원 정도의 기능을 수행하는 산이다.

1.1.1. 역사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39호인 부산 연산동 고분군이 배산 서북부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의 성격으로 볼 때 이 지역의 수장들이 묻힌 유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부산 동래 지역으로 비정되고 있는 거칠산국[1] 탈해 이사금 때 인물인 거도에 의해 이미 신라에 복속된 것을 감안하면 가야의 정치적 중심지로 보기는 어렵고 일찌감치 신라의 일부로 편입된 지역이지만 신라의 영향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던지 지역 수장들의 영향력이 오래 유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5월 이 산에 있는 고성터인 배산성지(부산시 기념물 제4호)가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석성 터로 보인다는 부산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가 나옴에 따라 7세기에 축성된 기장산성보다 이전에 상당한 노동력과 기술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전에는 이 산성이 토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이 발굴 조사에서 기단보축에다 기와 건물의 흔적까지 발견되었고, 현재도 남아있는 거칠산국 우물터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집수지(호안석축) 유적까지 발견되는 등 고대-신라시대 부산 지역사 연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산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거기다 2020년 1월에는 배산성지가 삼국시대식 축성법과 통일신라식 축성법이 혼재되어 있는 특이케이스라는 사실이 발견되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는 중. 기사

이후에는 동래현의 치소지가 이 산의 남쪽에 들어섰다. 현재의 망미동 부산지방 병무청이 위치한 자리에 동래현 치소지가 있었으며 후에 동래부가 지금의 동래구 칠산동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동래 지역의 중심으로 기능했다.[2] 또한 고려 의종 때 측신 정서가 동래로 귀양 왔을 때는 이 산의 동북쪽 끝자락에 과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오이를 키우며 왕의 부름을 기다리기도 했고 이 결과 우리 문학사상 유일의 작가가 알려진 고려가요 정과정이 탄생했다. 이 노래가 충신연주지사(연군가)의 시조격으로 정철의 가사문학에(!) 영향을 준 작품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만악의 근원인 셈. 쪼끄만 동네 야산 주제에 전국 수험생들을 괴롭히는 주범이라니 지금은 도시개발에 따라 배산 동쪽이 끊어지는 바람에 정과정 유적은 배산의 일부라기보다는 수영강변의 유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찾기가 쉽지만 이 영향으로 토곡을 가로질러 온천천을 따라가는 길의 이름이 과정로로 명명되어 있으니 의외로 역사적으로 의의가 깊은 산이다.

2018년 10월 대형 건물터가 발굴됐다. #

<동래부지>(1740)에는 척산(尺山)이라는 이름의 산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이 산을 일컫는 말로 추정된다.

1.1.2. 명칭

순우리말로 훈독하면 잔메다. 잔 배(盃) 자에 메 산(山) 자를 쓰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흔히 '산'을 덧붙여 '잔메 산'이라고 부른다. 어원적으로 겹말인 셈이다.

이 산의 이름이 잔메가 된 데에는 인근 주민들의 말로는 산세가 '술잔을 엎어 놓은 모양'이어서라고 하지만 부산대학교 유동석 교수는 위에서 설명된 성 유적의 흔적과 관련지어 이 산의 이름에 잔 배 자를 쓰는 것이 모양 때문이 아니라 '잣('성'의 옛말)'이 '메'와 만나 자음동화(그 중에서도 비음화)가 이루어지고, 한자 표기로는 잔 배 자를 쓰는 바람에 잔메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단순히 산의 모양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성이 있었던 옛 중심지'로서의 산의 기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연산1동 쪽의 일각에서는 묘봉산이라는 이름을 밀기도 한다. 동네 야산 치고는 봉우리가 제법 울퉁불퉁하고 가파른 편이라 봉우리가 멋있게 생겼다는 뜻인 듯하지만, 실상은 연산중학교 축제 이름인 '묘봉제'나 체육관 이름인 '묘봉관', 쌍미천로 쪽에서 배산으로 들어가는 길인 묘봉산로를 제외하면 누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이름이다.

1.1.3. 주변 지리

주봉인 배산 정상부를 포함해 산의 대부분이 연제구 연산동에 포함되고 나머지 부분은 수영구 망미동과 살짝 인접해 있다. 옛 배산 영역 전체를 두고 이야기한다면 망미동과는 살짝 접해 있는 수준이 아니라 망미동 전역이 배산 자락이 되고 정과정 유적지가 있는 수영강 서안까지가 모두 배산이었다. 남쪽으로는 연산6동, 연산3동을 사이에 두고 금련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예전에는 백양산 쇠미산처럼 연결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래도 부산의 대표적 인구포화지역인 토곡 망미동을 끼고 있다 보니 문자 그대로 산을 빙 둘러 가며 각종 아파트, 학교 및 교육시설, 공공기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아파트는 너무 많아서 적을 여백도 없을 지경이니 자세한 설명은 패스하고(...) 초등학교는 배산초, 연동초, 동명초, 연일초가 각각 산의 동서남북을 끼고 들어서 있고, 중학교 역시 망미중, 연제중, 연산중, 연일중, 연천중이 원을 그리며 들어서 있다. 초등학교보다 중학교가 더 많은 것 같은 건 기분 탓이 아니다 고등학교도 부산외고, 남일고, 연제고의 3개교가 들어서 있으며 특수학교 동암학교, 2년제 전문대학인 부산경상대학교까지 배산을 끼고 있어 초,중,고,대,특수학교까지 그야말로 학교에 관해선 있을 건 다 있는 산이다.[3] 따라서 등산로가 학교 입구인 경우가 많다.[4] 물론 부산은 금정산, 금련산, 승학산, 장산, 백양산, 구덕산, 엄광산, 윤산, 봉래산 등 대학을 끼고 있는 산이 유독 많기는 하지만 언급된 다른 산의 규모와 배산의 규모를 비교하면 잘 쳐줘야 매미 파리 정도의 차이니(...) 배산이 얼마나 붐비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달리 말하면 배산자락까지 산동네가 들어서있다는 말.. 거기다 부산과학교육원, 부산영재교육진흥원, 부산교육연수원[5], 부산소방재난본부 같은 공공기관들은 덤.

1.1.4. 교통편

1.1.4.1. 시내버스
1.1.4.2. 도시철도

1.1.5. 사건 사고

2001년 한 여대생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는데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미제 사건이다. 자세한건 부산 배산 여대생 피살사건 참조.

2. 전라북도 익산시의 산

2.1. 개요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과 신동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연일 정씨 문중의 소유인 사유지이다. 해발고도는 95m.

2.2. 상세정보

2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큰 배산, 작은 배산이라고 부르며 각각의 정상에는 연주정과 배산정이 세워져 있다.
또한 배산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여기서 매년 벚꽃축제가 열린다.

등산로는 큰 배산 기준 3곳으로 하나는 배산근린공원을 통해 동굴을 지나는 루트, 근린공원 또는 배산체육공원에서 둘레길을 통해 북쪽의 계단을 타고 올라간 뒤 밧줄을 타고 올라가는 루트, 그리고 남쪽의 약수터를 통해 올라가는 루트가 있다. 배산은 동쪽에 호남선 호남고속선이 지나서 시간만 맞으면 지나가는 열차를 구경할수도 있다. 맑은 날에는 군산 논산까지 보이기도 한다.

2.3. 주변 정보

서쪽으로는 배산체육공원이 있고, 남쪽으로는 배산지구와 익산경찰서, 익산우체국이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호남선, 호남고속선이 지나가는데 호남고속선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건널목이 있었지만, 호남고속선이 건설되면서 복복선이 되고 방음벽까지 설치되어 현재는 건널목 남쪽에 지어진 육교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1] 거칠(荒)+산(嶺)으로 오늘날 황령산의 어원이 되었다. [2] 이 자리는 현재 배산의 일부라고 보기 어려운데 도시개발로 인해 배산 동쪽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3] 비슷한 예로 백양산이 있다. [4] 예를들어 망미동 남일고등학교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하나 있다. [5] 이 건물들은 모두 과거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7] 부산과학고등학교[8]의 부지였다. [6] 망미역은 배산 옛 동쪽 부분(주공아파트)과는 가깝지만 현재 의미에서의 배산과는 거리가 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