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49:12

박남권

파일:박남권.jpg
성명 박남권(朴湳權)
생몰 1898년 12월 2일 ~ 1960년 9월 20일
출생지 경상남도 합천군
사망지 경상남도 합천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남권은 1898년 12월 2일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말 합천군 곳곳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자, 당시 정태리에 살고 있던 그는 면내 유지들과 모의하고 3월 28일 야로읍내 장날에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합의했다. 이후 그는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와 '대한제국 독립만세'라는 표어가 적힌 기치를 제작했다.

이윽고 3월 28일 오후 3시경, 박남권은 문창성과 함께 읍내에 모인 장꾼들에게 준비한 태극기들을 나눠주고 문창성에게 기치를 높이 들게 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했다. 이에 장에 모인 많은 군중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후 군중이 박남권의 주도하에 시장을 누비해 행진하자, 일본 헌병들이 출동해 총검을 휘두르며 군중을 해산시켰다. 그는 이 일로 헌병대에게 체포되었고, 1919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으로 태형 90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검사는 형벌이 약하다며 공소했고, 5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후 그는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출옥 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냈다. 8.15 광복 후 대한독립촉성회에 가담해 신탁통치 반대 투쟁을 전개했고, 1960년 9월 20일에 사망했다.

박남권의 여섯째 아들 박성로 씨는 부친이 사망한 뒤 부친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애썼다. 그러나 그가 대구 형무소에서 복역했음을 입증할 복역증서가 6.25 전쟁으로 분실되었기 때문에, 그는 부친의 독립운동 활동을 증명할 기록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6년 정부기록보관소 부산지소에서 부친의 야로읍내 만세운동 관련 공판기록이 발견되었다. 이에 국가보훈처는 1997년 박남권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박성로 씨는 "선친의 공적이 이렇게 늦게서야 인정받게 돼 자식으로서 죄스럽고 한편으론 늦었지만 당신의 애국애족 정신이 빛을 보게 돼 기쁘다.이제서야 자식된 도리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

2003년 2월 18일. 서울보성고등학교는 3.12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퇴학 당해 고교 졸업을 하지 못한 박남권의 명예졸업장을 박성로 씨에게 전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