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6:05:41

박근혜 정부/평가/국민갈등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박근혜 정부/평가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order-left: 10px solid #c9252b; border-right: 10px solid #c9252b"
{{{#!wiki style="margin: 0 -2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color=#c9252b><colbgcolor=#f5f5f5,#2d2f34> 구성 인사
여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정책 및 방향 초이노믹스 · 증세 없는 복지 · 노동개혁 · 국방개혁 기본계획(2014~2030) · 임금피크제 · 국정화 교과서 · 창조경제 ·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 행복주택 · 뉴스테이 · 테러방지법 · 위안부 합의 ·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 문화가 있는 날 · 4대 사회악 · 멈춰 캠페인 · 대학구조개혁평가 ·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 · 청탁금지법 · 대량응징보복 · THAAD 배치 · 중국 전승절 참석 · 한미 우주협력협정 · 국민안전처 · KC-X · 개성공단 가동 중단 · 파리협정 · 중고 CH-47 도입 · KF-X 사업
평가 대통령 이전 · 외교 · 지지율
비판 정책 분야 · 경제 분야 · 민주주의 후퇴 · 자질 · 역사관 · 개인처신 문제 ·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 · 사이비 종교 논란 · 국민갈등
타임라인
2013년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2014년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2015년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2016년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별도 문서가 없는 평가 및 논란은 해당 주제 관련 문서를 참고
박근혜 개인과 관련된 문서는 틀:박근혜 참고
}}}}}}}}}}}}




파일:external/image.ytn.co.kr/201702111900223203_t.jpg
박근혜 탄핵 찬성 집회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1. 개요2. 극도의 이념 갈등3. 성적 갈등 심화와 성평등의 후퇴4. 국민 대통합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asaninst.org/kor_07_12_new-19.jpg
사회 갈등 심각도 여부 여론조사
"국민 10명 중 7명, 지난 1년 이념 갈등 더 심해졌다"
이념격차 크지 않은데 이념갈등 극심한 이유는?
"한국사회 가장 큰 갈등 요인은 이념"
곤두박질치는 한국 사회 신뢰도
서울대 교수 시국선언.. “韓, 총체적 난국.. 대통령 책임”
확산되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태 시국선언
박근혜 정부는 여타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국민대통합을 대선 때부터 강조해왔으며 직선제가 도입된 후 첫 과반수 득표를 한 대통령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대로 잘 실천했다면 이 문서가 생성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국민 갈등은 한국 사회가 8.15 광복 이전부터 떠오르는 병폐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두드러진 것은 박근혜가 지역 감정을 조장하고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등의 사건으로 퍼진 남녀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 본격적으로 표면화된 남녀 갈등은 박근혜가 탄핵된 이후에도 날이 갈수록 매우 심각해지고 있다.

2. 극도의 이념 갈등

국민대통합을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국민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일베저장소,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세력을 넓혀온 극우 단체들은 물론 이승만 독재 정권 시절 악명을 떨친 서북청년단이 재건(?)되었고 대한민국 엄마 부대, 정게할배 등 신생 극우 단체들이 생겨나서 활발히 활동이 계속되고 있으며 21세기 들어 최초로 백색테러가 일어났으며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전라도에 대한 지역 차별,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군사 정권의 전쟁 범죄를 왜곡하거나, 중도주의자 혹은 진보좌파 성향을 가진 인물들을 종북 주사파라고 매도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한, 국가정보원 보수단체를 지원하여 여론전을 펼쳤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십알단, 이클린연대, 일베저장소 등 보수 단체를 지원하여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과 다르게 박근혜 정부와 보수 단체와의 유착은 심증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직접적으로 폭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명박 정부에 이어 정부가 직접 이념 갈등을 부추기고 나선다는 해석이 지배적인데 박근혜는 중대 국면(테러방지법, 국정교과서)마다 북한의 위협을 들먹이며 정책 추진을 밀어붙였다.
파일:external/image.isstime.co.kr/WPHOTO_20150228181066540698.jpg

극우파의 준동과 정부기관의 대선 개입 사실이 드러나면서, 민주주의 파괴, 정부의 역사 왜곡과 신자유주의 정책,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등에 대한 반향으로 다수의 민중가요가 태어났다. 미국, 유럽을 비롯한 한인 사회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연세대 사태 시기부터 쇠퇴했던 운동권이 되살아났다.[1]
파일:external/file2.nocutnews.co.kr/20150226133554344_004_prev.jpg
대통령 사퇴에 대선 특검 요구 실시를 목적으로 진보 성향의 시민이 분신하거나 #, 97년 이후 최초로 민주노총 사무실의 압수수색 사건이 일어났으며, 소위 SKY 등의 대학가와 종교계에서 잇따라 시국 선언이 발표되었고, 주요 도심에서 정부 규탄 성격의 전단지가 뿌려지는 등의 민중총궐기 같은 대규모 집회가 일어나고 있었다.

위에서 설명한 정치/이념적 갈등을 넘어서 동남권 신공항 논란 등으로 영남 내 (PK/TK 및 경남 동·서부)[2] 갈등 등 각종 지역 갈등을 부추겼으며 경제 평가에도 나와있지만 친재벌 정책, 양극화 심화, 노조 탄압 등으로 계층 간의 갈등도 더욱 심화되었다.

또한 헬조선이라는 자국 비하 용어가 유행하면서 신세대를 중심으로 자국 혐오 성향이 퍼졌으며, 일베저장소, 메갈리아, 워마드 등의 여러 막장 커뮤니티가 들어서면서 남성혐오, 여성혐오와 같은 남녀 갈등은 물론 호모포비아, 이슬람포비아 등의 종교 갈등과 사회적 약자/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횡포 등 온갖 혐오 사상이 표출되고 국민 갈등이 격화되고 있음에도 이를 방조 내지는 조장[3]하고 있다는 지적도 등장했다.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 간의 갈등도 더욱 심각해졌다. 마침 박근혜가 당선된 제18대 대통령 선거부터 이 세대 투표가 매우 강하게 표출되었고, 여기에 더해서 청년실업, 노인 복지 문제 등으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인식은 더욱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양상을 띄게 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이런 세대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되었고 여전히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 대부분은 박정희 육영수를 그리워하는 소수의 노년층 뿐이다. 그러나 청년층 20대의 박근혜 지지율은 0%가 나올 정도로 반감이 극으로 치달았다.

결국 집회 때 노년층과 보수단체 측에서 하야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과 기자들을 폭행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등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악의 세대 갈등 사태까지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정게틀딱이라고 불리는 노년층, 보수 단체, 그리고 박사모 회원들이 이제 끝장을 보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탄핵이 가결되자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떠들자, 젊은 세대는 '박정희, 육영수에게 세뇌된 주제에 말이 많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보수 사상은 불필요하다.'고 격노했다. 노년층, 보수 단체는 젊은 층(촛불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특히)을 종북세력, 빨갱이라고 부르는 등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악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이러한 갈등을 단순한 세대 갈등 같은 것이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의 싸움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상식적으로 봐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당사자들의 범죄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되어서 수감된 범죄자들을 심판하는 사건이다. 그것도 양심수도 아니라, 죄질이 극히 악랄한 부정부패 사범을 옹호하는 게 세대 간의 의견 차이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게다가, 젊은 세대에서 박근혜를 옹호하는 의견이 제로에 수렴하는 것과 다르게 노년층에서 탄핵 이후에도 박근혜를 옹호하는 의견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부 지지층들이 정신도 못 차리고 범죄자를 옹호하는 것을 무슨 세대 갈등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세대 갈등은 오히려 19대 대선 때 박근혜를 감싼[4]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각각 노년층과 청년층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한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근혜에 대한 옹호는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그가 한때 대표하던 보수와 적대하는 진보에 대한 노인, 청년들의 엇갈리는 지지와 이에 따른 갈등 구조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3. 성적 갈등 심화와 성평등의 후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까지는 여성 대통령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래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당선된 박근혜가 여성 인권을 위해 한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여권(女權) 신장에 방해만 되었고 자국 이성 혐오로 대표하는 성 갈등도 박근혜 정부 들어서 최악으로 치달았고, 2020년대 현재까지도 지속 중이다. 박근혜는 여성 인권의 대변인 역할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여권 신장에 대한 저항만 훨씬 더 강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관련된 정책으로 보인 것은 여성가족부에 대한 막대한 지원 밖에는 없는데 "여가부가 과연 성평등을 위하는 기관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또한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캠페인 당시의 슬로건과는 반대로 그의 실체가 세상 물정 모르고, 최순실의 꼭두각시 인형이었다는 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밝혀졌다. 자신의 삶과 정치 경력에서 아직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성평등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적이 없고 임기 중에도 여성 정책을 특별히 펼친 행보가 전혀 없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변호사를 통해 "여성의 사생활"을 운운하며 여성성을 "보호 받아야 할 약자"의 것으로 규정하고, " 한국 남성들은 게임을 많이 해서 사회적으로 뒤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성차별적인 망언까지 했다.[5]

결국 박근혜는 "주체적인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그저 " 아버지의 후광을 타고 권좌에 앉은 전래동화 공주"에 불과할 뿐이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치권에서 진짜 여성 리더라 칭할 수 있는 건 대한민국에선 오히려 심상정, 이정미, 추미애 등 박근혜의 경쟁 상대라 할 수 있었다. 지방단체장까지 넓히면 정명희 부산 북구청장이나 홍미영 전 인천 부평구청장, 양향자 정도라 할 수 있다. 해외에서 여성 리더라 칭송받는 앙겔라 메르켈이나 힐러리 클린턴도 정치판에서 차별과 싸우면서 정치 커리어를 쌓았고, 아웅산 수지는 아예 독립운동에도 참여했고,미얀마의 성군이라 불릴 정도다.[6] 동유럽의 빈국 불가리아에서 가난한 언론인 가정에서 태어나 스스로 자수성가하여 국회의원과 외무장관에 이어서 유네스코 사무총장 자리까지 오른 이리나 보코바, 변호사로서 활약하며 이란 여성과 어린이, 빈곤 계층의 인권 개선을 위해 불철주야 힘을 쓴 시린 에바디, 1970, 80년대 일본 연예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영화배우였지만 말년에 배우에서 그치지 않고 반핵, 반전 운동가로 활동하던 요시나가 사유리 등 유능한 여성 리더의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또한 요즘 들어서 래디컬 페미니스트 행보를 계속 보여서 사회적으로 욕 먹고 있는 진선미, 남인순 등의 여성계 정치인도 자기 지역구의 관리 실력은 뛰어나거나 사회운동 경력은 있던 사람이고, 신지예도 학생 운동에서 꽤 목소리를 냈기라도 했기에 박근혜보다는 낫다.[7]

오히려 박근혜는 상기한 여성 정치인들보다는, 아버지인 자와넬라 네루의 후광을 입은 인디라 간디 글로리아 아로요 전 필리핀 대통령과 비교가 가능하다. 그나마 자와넬라 네루는 독립운동가였지만, 박정희는 오히려 친일파이기에 인디라 간디하고도 비교하기 뭣하다, 사실 탄핵당한 지우마 호세프마저도 인품이 좋고 개인적으로는 청렴하기라도 했기에 정치로 욕을 먹지, 인품이나 개인적인 재정 등으로는 욕을 하지 않는다. 결국 박근혜는 최악의 여성 고위직 정치인이자 대한민국에 여성 고위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만 증폭시킨 것이다.

2015 여성시대 대란,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인한 강남역 시위 충돌 사건 등의 여파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이 벌어지는 등, 자국 이성 혐오 대한민국 정부 역사상 절정에 달했다. 박근혜가 "준비된 여성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여 여성에게는 권익을, 남성에게는 자유를 주지 않겠냐 기대했지만 결과는 남녀 양측 모두에게 최악의 상황이 된 것이다.[8]

어찌 보면 대한민국에서 생물학적 의미의 여성 대통령이 당선된 사례만 남게 되었을 뿐, 진정한 의미의 여성 대통령은 아직도 나타나지는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2017년 3월, 탄핵이 인용된 후 많은 페미니스트들 또한 박근혜에게 등을 돌린 실정이며 박근혜를 '여성'보다는 '사람'으로 보고 믿으며 지지했던 중도우파~비박계 우파 세력 또한 난색을 표하고 있다.[9]

다만 페미니스트들 중에 워마드 계열은, 박근혜햇님[10]이라고 부르며, 박근혜 석방 집회를 혜화역 시위에서 외쳤다. "여자라서 탄핵당했다." 또는 무X 탄핵 유X 당선이라는 피켓까지 들고 시위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후 대한애국당과 연대하다가 완전히 갈라졌고, 워마드마저도 박사모에게 점령당해서 아예 쫒겨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말 그대로 수잔 팔루디가 쓴 백래시의 재림.[11]

4. 국민 대통합

"( 박근혜는)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서 내려오라고, 네가 무슨 대통령이냐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것이다."
- 김종필[12]

그리고 다시 하나로 합쳤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국민 대통합'을 내세웠지만 정작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국민을 이리저리 찢어 놓고 분열 시켰다.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오히려 국민들이 최순실의 공범 박근혜를 몰아내기 위해서 그들 스스로 뭉쳤다. 심지어 서울 뿐만 아니라, 보수 초강세이자 최전방 지역인 철원군에서까지 박근혜 퇴진 운동이 벌어졌을 정도니, 말 다한 셈. 거의 내부의 적으로 취급되며 압도적으로 욕을 먹는 중이다.

위에서 보듯이 진보 vs 보수, 한겨레- 경향신문 vs 조선일보- 동아일보, TK vs 호남, 60대 이상 vs 2~40대 등 세대, 지역, 정치 이념의 대립과 갈등이 점점 심해져서 위험한 수준까지 이르렀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몰상식의 극한을 보여주면서 국민의 대다수가 '기본 원칙과 상식이 무너지는 데서 비롯된 분노'라는 공감대 속에서 상호 간의 불신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언론이 하나로 뭉쳤다. 조선일보 TV조선을 통해, " 박근혜 2005년에 방북했을 당시, 이적시설인 주체사상탑을 방문해서 싸인까지 하고 갔다."는 폭로를 했고[13], 오마이뉴스는 아예 태그에다가 '종북논란'이라고 달아놨다. 그리고, 경향신문 박근혜 편지 사태를 폭로했고, 통일부가 "북한으로 편지가 안 갔다."고 변명하자, 바로 다음 날에 북한에서 답장이 온 것을 터트렸다. 진정한 대화합의 탄생.

이 외에도, 우병우가 검찰조사를 받을 당시, 팔짱을 끼며, 거만한 태도를 보이고 검찰이 되려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모습을 TV조선의 모 인턴 카메라 기자가 찍은 사진도 진보 커뮤니티 등지에 상당히 많이 퍼져나갔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무시하고 직무 권한을 무분별하게 남용하면서 평가가 크게 엇갈릴 수 있는 소지도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 사회가 편 가르기 논리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양심에 의한 견제가 아직도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다는 믿음을 회복하는 계기가 역시 국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생겨났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박근혜의 만행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민주주의 국민들에게면 모를까, 박근혜 스스로에게는 절대로 긍정적인 평가가 되지 못한다. ' 아돌프 히틀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홀로코스트를 일으켜서 유럽권이 국가주의 파시즘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으로는 히틀러에게 좋은 평가를 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마디로 ' 반면교사로만’ 삼아야 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스스로 일어나 항거를 일으킨 것도 박근혜와 그 측근들의 만행에 대한 반면교사의 일환으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들은 다시 있어도, 일어나서도 안 되는 것이다.

5. 관련 문서


[1] 이 운동권은 박근혜 탄핵 인용 이후 자연히 해산한 듯하다. [2]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직후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두고 그녀가 일으킨 논란으로 인해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영남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동남권으로 따로 분류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오히려 경북과 경남 사이에 갈등과 대립만을 크게 악화시킨 것이다. [3] 사실 국민 간 갈등을 초래하게 하는 방법은 꼭 독재정권이 아니더라도 권모술수적인 면에서 매우 효율적이고 악랄한 방법이다. [4] 홍준표의 박근혜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는 좀 논란이 많은 편이다. [5] 참고로 후에 진보정당 소속이였던 작가가 그 망언을 또 시전하고 만다.진정한 좌우합작 좋소! [6] 물론 로힝야족 탄압 등으로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7] 다만, 어디까지나 저 세 사람이 박근혜보다는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이지, 절대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다. 저들 또한 논란이 매우 많은 정치인이다. [8] 워마드 쪽 여성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좋아하는 인물이다. 단, 얘네들은 박근혜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서 그럴 뿐, 딱히, 다른 건 없다. 위에도 설명됐지만, 박근혜는 직무가 정지된 기간에 여성의 사생활을 운운하는 등, 남성을 게임 때문에 사회적으로 뒤떨어진다고 비하했던 전적이 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워마드에서 "박근혜는 여성이라 탄핵됐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실망감은 보수 정당의 남성 정치인의 성차별적인 언행 등과 맞물려서 2030대 여성의 민주당 지지율 + 정의당 지지율이 과반수로 유지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9] 친박 극우 계열은 아직도 박근혜를 대놓고 옹호한다. [10] 문재인 대통령이 달님으로 불리는 것을 미러링한 것이다. [11] 다만워마드만 박근혜를 지지할 뿐, 여성시대 트페미 등은 친문적 성향이 짙은 편이다. 그 워마드에서조차도 박근혜 복권 → 홍준표 당선 → 한남민국 탄생(...)이니 강경화, 진선미 등 다른 여성 정치인을 옹호하자는 의견이 의외로 많다. 2020년 총선 관련해서는 여성의당으로 지지가 모인 경우가 종종 보인다. [12]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의 조카사위( 김종필의 아내 박영옥은 박정희의 형인 박상희의 딸)다. 박정희와 군복무도 같이 해서 사이도 아주 가까웠던 김종필이 이렇게 말했다. 즉, 어느 정도 정치를 못했다면 그래도 자신과 가까운 관계였던 사람의 자식이니 어느 정도 변호를 했겠지만 눈 감아주지 못할 정도로 최악의 수준으로 정치를 했으니 저렇게 말한 것이다. [13] 주체사상탑을 방문했던 건 2005년 당시에 이미 보도되긴 했는데 이 당시 박근혜의 변명은 "평양 시내가 여기서 잘 보여서 올라갔을 뿐이다.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고 했었고, 박사모는 "남북화합을 위한 행동이였다."며, 명백한 이적행위를 열심히 쉴드쳤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방명록까지 작성했다."는 폭로를 하면서, 대놓고 이적행위를 한 꼴이 되었다. 여기다가 편지 사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