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6 16:16:43

믿고 거르는 고대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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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목록3. 원인
3.1. 지명 받은 프로 구단에는 이승현 이종현이 없다3.2. 대학 시절에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본기와 스킬을 갖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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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3년도 이후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지명된 고려대학교 출신 가드들이 농구팬들의 기대치만큼 팀을 이끌지 못하는 모습이 나오자, 어느새부턴가 농구팬들이 프로에서 뛰고 있는 고대 출신 가드들을 부르기 시작한 별명. 고대 출신 가드 유망주들이 나오는 기사마다 꼭 하나씩은 달리는 댓글 중 하나다.

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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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인

역대 KBL 드래프트를 살펴보면 그 시기에 각 대학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축 선수들이 프로에 데뷔해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비교적 최근인 2013년도 드래프트까지도 이게 이어졌다.

역대 드래프트 결과 중 괜찮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이나 타이틀 홀더 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연도 주요 선수
고려대 연세대 중앙대 경희대 명지대 한양대 동국대 성균관대 건국대 단국대 상명대 기타
1998년 현주엽
신기성
김택훈 이은호 윤영필 박재일
표명일
정락영
강기중
1999년 조상현
조동현
김성철
강혁
2000년 이규섭
김기만
이정래
강대협
은희석 임재현
2001년 전형수 송영진
황진원
김승현
2002년 김주성
박지현
정훈
진경석
이한권
2003년 이현호
오용준
김동우
2004년 이정석 한상민 양동근 김현중
2005년 김일두
김동욱
방성윤 김효범(뱅가드대)
2006년 주태수 전정규 이현민 이시준 김학섭
조성민
2007년 김영환 김태술
이동준
양희종
이광재
박상오
함지훈

정병국
우승연 김봉수
송창무
정영삼
2008년 차재영 하승진 윤호영
강병현
김민수 정재홍
기승호
천대현
2009년 박성진
박진수
김강선 허일영
2010년 이정현
박형철
박찬성
안재욱
류종현
박찬희 변기훈
2011년 정창영
유성호
김태홍
오세근
김선형

함준후
김현민 최진수(메릴랜드대)
2012년 김승원
장민국
최현민 박래훈 김시래
박지훈
차바위 최부경
2012- 13년 박경상
김지완
장재석
임동섭
유병훈

정성수
김현수
2013년 박재현 김종규
김민구
두경민
이재도 이대성 (중앙대 중퇴 및 브리검 영 대학교)
2014년 이승현
김지후
김준일
허웅
김기윤

최승욱
정효근
2015년 문성곤
이동엽
한희원
최창진
이대헌
서민수
정성우 송교창( 삼일상고)
2016년 이종현
강상재

최성모
최준용
천기범
박인태
박지훈
박재한
2017년 김낙현 허훈
안영준
양홍석
김국찬
이우정
유현준
2018년 박준영
전현우
김준형
우동현 변준형 서현석 권시현 김한솔 서명진(부산중앙고)
조한진(동해규슈대)
2019년 박정현
김진영
김경원
양재혁
김훈
문상옥
김세창

이진석
박찬호
권혁준
전성환
곽동기
2020년 이우석 박지원
한승희
전형준
박진철
이준희
이근휘
오재현
이용우 윤원상 차민석(제물포고)
2021년 하윤기
신민석
이원석
이정현

특징이 한 가지 있다면, 로터리 픽에 유력한 선수가 걸리면, 그 출신 대학교의 동료 선수들도 1라운드에 지명받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그 단적인 예는 2007년 2012- 13년, 2014년 드래프트가 그랬다. 왜냐하면 가장 손발을 오래 맞춰왔기에 최상급의 경기력을 유지해왔으므로 자연스럽게 지명될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이처럼 로터리 픽이 유력한 선수들은 진작부터 주목을 받았으며, 2010년대 초반까지는 프로에서 지명을 받자마자 바로 활약을 했기에 최근에 들어서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즉시전력감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농구팬들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특히 가드 포지션의 경우 로터리 픽에 선택된 가드들이 레전드 급의 성적을 내는 경우가 많았고, 2010년대를 보자면 상위 로터리 픽에 들어간 가드인 박찬희, 이정현, 김선형, 김시래, 김민구, 두경민, 허훈 등 가드 포지션의 선수들은 그런 농구팬들의 기대에 걸맞는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러다 보니 현재 대학리그에서 왕조를 구축한 고려대 출신 선수들에 대한 기대감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에 걸맞지 못한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이에 대한 분석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3.1. 지명 받은 프로 구단에는 이승현 이종현이 없다

정확히는 포워드, 센터진이 부실할 경우 이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위의 문단에서 2010년대 상위 로터리 픽에 들어간 가드들이 배정된 팀을 보면 다음과 같다.
  • 박찬희 : 안양 KGC인삼공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원주 DB 프로미, 이정현: 안양 KGC인삼공사- 전주 KCC 이지스
    이 둘은 인삼신기라 불리던 2011-12시즌 당시 코트를 초토화 시켜 패기로 우승했다는 주목을 받았는데, 양희종의 제대, 오세근의 입단으로 인해 단숨에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했고, 양희종, 오세근의 미칠듯한 활약으로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이 두 프론트 코드의 특징은 시야가 넓고, BQ가 좋은 것은 물론 수비력도 출중했기에 공수 전반적으로 가드진들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었다. 실제로 양희종, 오세근이 부상으로 시달리는 시기를 보면 KGC의 경기력도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다만 이정현은 오세근 등이 부상에 시달리는 시기에 오히려 기량이 만개해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고 박찬희는 16-17시즌 확실한 빅맨이 없는 전자랜드로 가서는 패싱력이 만개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둘 다 강력한 프론트코트가 없어도 어느 정도는 제 몫을 하는 선수들이긴 하다.
  • 김선형: 서울 SK 나이츠
    입단 첫해에도 화려한 테크닉들을 앞세워 관중몰이를 하긴 했지만 주포인 알렉산더 존슨의 부상 이후 DTD를 시작하여 플옵 진출에 실패한 것을 보면 가드 혼자만으로 팀을 이끌기는 힘들다는 것을 증명했다. 정규리그 우승을 포함한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을 때는 애런 헤인즈, 코트니 심스, 박상오, 김민수, 최부경, 박승리 등의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기에 김선형의 공격 포텐셜을 줄이면서까지 포인트 가드로 육성을 했어도 상위권 전력을 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애런 헤인즈가 고양 오리온으로 간 이후에는 팀내 소년 가장이 되어버렸는데, 하이라이트 장면만 놓고 보면 언제나 빛바랜 김선형의 활약이라는 제목을 볼 수 있을 정도로 PO 탈락 시즌에는 매우 고통받고 있다. 사실상 SK 나이츠의 소년가장 신세. 하지만 주축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후에 헤인즈가 돌아오고, 최준용, 안영준이 드래프트에서 보강되며 다시 포워드진이 풍족해지자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는 등 팀도 선수 본인도 상승세를 타는 중.
  • 김시래: 울산 모비스 피버스- 창원 LG 세이커스- 서울 삼성 썬더스
    모비스 시기의 성적은 양동근 빨이라는 것이 중론이지만(...) 그래도 함지훈, 리카르도 라틀리프, 로드 벤슨, 문태영이라는 충격과 공포의 프론트 코트진을 바탕으로 우승을 경험한 것은 사실이다. 모비스 시절 시래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긴 했어도 뛰어난 포워드, 센터진에게 자신의 패스 센스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는 모비스의 통합우승을 일궈내는데 큰 도움이 됐다.
    12-13 PO 우승 이후 충격적인 트레이드를 겪었지만 LG 시절에도 문태종, 김영환, 김종규, 데이본 제퍼슨 이라는 스타급 선수들 속에서 본인의 역량과 페인트 존의 시너지가 합쳐져 매년 PO에는 꾸준히 진출했었고 13-14 시즌 LG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다만 15-16 시즌부터 상무에 입대를 하게 되었으며 상무 제대 후 복귀한 16-17시즌에는 확연히 떨어진 기량 때문과 적응문제로 인해 고전을 했다. 17-18 시즌에는 그 이전과는 상전벽해한 외곽슛으로 팀에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데뷔 이후 첫 어시스트 킹에 오르기도 했다. 18-19 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이더니 팀 성적이 오르기도 했다. 비록 FA 5년 계약이후 첫번째 시즌이었던 19-20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결장이 많았지만 19-20 KBL 올스타 게임에서 최다투표 2위와 함께 TEAM 김시래를 구성하면서 이날 일일심판을 통해 인기스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LG에서 성장한 슈퍼스타다. 하지만, 2년전 FA 때 루머가 뜬 삼성으로 구단 프런트의 계산속에 충격적인 트레이드를 겪게 되었다. 이후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삼성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 이재도: 부산 kt 소닉붐- 안양 KGC인삼공사- 창원 LG 세이커스
    전창진 감독이 직접 뽑은 선수. 하지만, 전창진 감독이 물러난 이후 조동현 암흑기 속에 팀의 대선배인 조성민과 함께 트레이드의 아픔을 겪었다. 공교롭게도 전창진 감독 밑에 수업을 받았던 김승기 수석코치가 감독이 된 안양 KGC인삼공사였다. 이정현의 KCC 이적 이후 사실상 팀의 리딩을 맡으면서 KGC를 강팀으로 이끌었다. 20-21 플레이오프 10전 전승의 주역. FA로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하면서도 여전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암흑기의 팀을 이적 2년만에 22-23 시즌 정규리그 2위로 이끌었다. 역시나 시야와 리딩을 제외하면 장점인 수비와 속공 포함 모든 능력에서 고른지 KGC 팬들만 아니라 LG 팬들도 인정하는 가드다.
  • 김민구: 전주 KCC 이지스- 원주 DB 프로미-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음주운전 이전에는 말 그대로 국대 10년을 책임질 초특급 가드 유망주였던 만큼 허재 전 감독이 차기 시즌 구상을 했을때 김민구를 핵심에 놓고 운영했었다. 경기 운영 능력과 순간적인 센스는 동년배 가드들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고 슈팅력과 피지컬도 우수하여 포인트 가드의 롤만 수행했음에도 데뷔시즌 평득 13.39점이라는 높은 득점을 기록했다. 김민구 이후 드래프트로 입단한 가드 중 데뷔 시즌에 평균 12점은 고사하고 8득점을 넘긴 선수가 아예 없는 수준인지라[1] 위의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농구팬들의 기대치는 매우 높았다. 이처럼 역대 KBL 가드 중 신인 시즌 커리어가 특출나기로는 손에 꼽는 선수였던 만큼 음주운전 시기로부터 꽤 많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무자비한 비판과 동정론이 2:1 수준까지로 좁혀질 정도로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본인의 손으로 날려버렸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표현하는 농구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DB와 현대모비스에서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중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부상으로 인해 20-21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하면서 스킬 트레이너로 새로운 농구인생을 쓰고 있다.
  • 두경민: 원주 동부-DB 프로미-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원주 DB 프로미
    데뷔 시즌부터 경기력 기복이 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중심을 지켜주는 김주성, 윤호영, 허웅, 로드 벤슨, 웬델 맥키네스의 존재는 외곽에서 볼 배급만 해줘도 손쉽게 득점이 가능한 두경민의 장점이 합쳐져 14-15 시즌~15-16 시즌까지는 말그대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애당초에 동부의 2015-2016 시즌 3점슛 성공률이 고양 오리온에 이은 2위이다. 심지어 신인 시절 김주성이 빠져 두 자릿수 연패를 찍을 때도 외곽에서 유일하게 제몫을 해줬던 선수였다. 클러치 약점이 너무 부각되는 바람에 두 역귀라는 멸칭이 붙긴 했지만..... 2017-2018 시즌에는 김주성의 마지막 투혼, 윤호영, 벤슨의 프론트 코트진으로 정규리그 우승과 함께 2017-2018 시즌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2년뒤 상무 전역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했다. 하지만, 팀에 허웅의 위상이 커지면서 FA 1년을 남기고 트레이드로 DB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허웅의 KCC 이적 이후 FA로 풀릴 때 친정인 DB로 복귀했다.
  • 이대성: 울산 모비스-현대모비스 피버스 전주 KCC 이지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김시래처럼 양동근의 후광을 받은건 사실이지만(...) 그때보다 약해진 스쿼드임에도 함지훈, 리카르도 라틀리프, 문태종, 아이라 클라크 등의 잔뼈가 굵은 팀 동료들이 여전히 있었다. 대쉬라는 별명답게 거침없는 플레이로 통합 우승에 기여하며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이후 현대모비스의 리빌딩으로 인해 라건아와 함께 현대가 맞수인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적응하지 못한 뒤 FA로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이적했다. 허일영 이승현을 살리는 플레이메이커로 예전 모비스 시절보다 한층 더 발전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추가로 최진수를 대신해서 모비스 시절 동료였던 이종현과 재회를 하게 된다. 이 정도면 KBL의 슈퍼스타다. 영웅학 개론 창시자의 비호 아래 2020 KBL 컵대회 우승과 20-21 시즌과 21-22 시즌 베스트 5 수상까지 커리어 하이를 찍는 등 영웅대성의 면모를 보여주며 여전히 스타 플레이어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2-23 시즌에는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로 트레이드로도 좋은 활약을 했다.
  • 허훈: 부산/수원 kt 소닉붐
    루키 시즌에는 경기력 기복이 심하며 데뷔 시즌에 팀은 최하위였다. 그해 본인은 3점슛 성공률이 현재처럼 좋지 못했다. 하지만, 끊임없는 슈팅노력과 패스센스를 바탕으로 데뷔 3년차만에 KBL 최고가 되었다. 그것도 전통적으로 토종 스타 빅맨이 없는 팀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장한 것이다. 물론 팀에 최고참이자 리더인 김영환의 헌신과 후배 양홍석의 성장이 있지만 그 중심에 있었던 건 부인할 수 없다. 최약체 팀이 3년 연속 6강권에 있는것도 인정해야 한다. 2019-2020 시즌에는 정규리그 6위에도 불구하고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2년뒤 팀을 만냔 중하위권이었던 666에서 벗어나 연고이전 이후 2위의 주역이 되면서 이성구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 변준형: 안양 KGC인삼공사
    일명 변거박으로 이어진 놀람감이었지만 성장의 중심. 얼리엔트리 출신이다. 16-17 KBL 통합우승팀에서 주전으로 도약하며 선배들의 공격활로를 풀어주고 있다. 팀에 오세근 양희종 그리고 문성곤의 희생과 함께 이재도 박지훈을 보고 성장했다. 18-19 시즌 신인왕은 덤. 이후 꾸준히 KBL 올스타 게임에 나갈정도로 스타로 인정받고 있다. 유일한 약점은 3점슛 성공률과 자유투다.
  • 이정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고양 캐롯 점퍼스-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팀에 이대성 이승현이라는 국가대표 선배들의 영향이 있지만 아마추어 시절부터 공격의 박자와 드리블의 리듬은 기본기가 장착되었다. 선수층이 엷은 비판을 받는 오리온에서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하면서 팀을 중위권으로 이끌었다. 오리온의 매각 이후 자금난에 시달렸던 캐롯(데이원)에서도 MVP급 활약을 보이면서 농구대표팀에 승선했다. 캐롯 후신인 소노에서도 부상으로 고전하나 MVP급 클래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로터리 픽에 꼽힌 가드 포지션들의 선수들도 신인시절에는 본인 혼자만의 힘으로 수위급 가드 물망에 올랐다기 보다는 나머지 팀원들의 공로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박재현, 김지후, 이동엽 등이 지명된 당시 삼성과 KCC를 보면 포지션에서 어딘가에서 나사가 빠진 곳이 있기에 공수 부담이 가중되어 대학시절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다만 다른 측의 시선에서는 오히려 대학 시절 이승현, 이종현의 수혜를 입고 편하게 농구를 했기 때문에 프로에 와서 본실력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3.2. 대학 시절에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본기와 스킬을 갖추지 못했다

대학농구 지도자들이 가장 큰 비판을 받는 점이기도 한데, 성적에만 혈안이 되어 어린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드리블, 수비 로테이션, 슈팅 밸런스를 잡아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로는 1픽임에도 불구하고 농갤 아이돌로 취급을 받는 장재석 문성곤, 김종규[2]이 있다.

장재석은 그 사이즈 치고는 대단한 운동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슈팅 밸런스와 공격기술의 부재 때문에 지금까지도 매경기마다 농구 팬들에게 빅재미를 선사해주고 있으며,[3] 문성곤은 국가대표로 선발된 적이 있을 정도로 수준급의 공수 포텐셜을 가지고 있음에도, 대학 시절엔 이승현, 이종현에게 공격을 맡겨 사실상 외곽 해결사로서의 롤을 부여하지 않았다. 프로 지명 이후에는 팀내 장신 라인업의 핵심인 양희종이 커리어 로우를 찍고 오세근이 혹사와 부상으로 결장 중인 와중에 순위 싸움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벤치 멤버에게 출전 시간을 매우 적게 할애한 탓에, 프로에서 가장 중요한 1년차 시기였던 15-16시즌에 경기 감각을 익히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4]

믿거고 가드들을 보면, 박재현, 이동엽은 스피드, 키 외에는 사실상 장점이 없는 상황이며, 김지후는 슈팅이라는 확실한 강점이 있긴 하지만 수비 조직력 및 공격 기본기에서 약점을 보여 프로 적응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약점들이 드래프트 후배들에게도 똑같이 적용 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2016년 드래프트 빅 3로 불렸던 이종현, 최준용, 강상재가 기대보다는 못 미친 활약으로 프로에서 적응하는 데 애를 먹는 반면 바로 전년도에 3순위로 뽑힌 고졸 출신 송교창은 데뷔 시즌 D리그에서 폐관 수련을 하며 기량을 쌓아 2년차에 리그에 적응해 그 시즌 기량발전상까지 받았다. 특히 국내 역대급 센터 자원이라는 소리를 고교 1학년 때부터 들어왔고 대학교 신입생 시절 프로 선배들과 대등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종현과 비교했을 때는 더 안타까운 상황. 이처럼 당장 대학을 4년 다 채우고 나온 선수들이 기대치만큼의 포텐을 보여주지 못하자 농구팬들은 당장 프로에 갖다놔도 될 정도의 애들을 데려가 놓고 실력을 키우기는커녕 부상당하게 만들고[5]선수단에 대한 관리가 전혀 안 된다는 이야기다.] 기량이 떨어지기만 하면 대체 대학교 4년을 꽉 채워서 프로에 보내야 할 이유가 있냐?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초고교급 선수들이 미래에 어떤 선수가 될지 보여줄 좋은 예가 있다. 중앙대 4년을 꽉 채우는 조건으로 입학했지만, 성인 국대 참여 이후 2017 드래프트 얼리 진출을 선언한 양홍석과 스페인 농구리그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돌아온 양재민,[6] 대학 선배 정효근에 이어 얼리 진출을 하는 유현준이 있다. 과연 대학교 4년을 꽉 채우고 드래프트로 나오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이 세 유망주가 증명해줄 것으로 보인다.[7][8]

사실 대학 감독들이 성적에 연연해 KBL 진출에 맞도록 신인을 키우지 않는다라는 현상은 한국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NCAA 농구 리그 시스템에서도 대학교 농구부에 들 정도면 이미 완성된 농구선수로 취급하며, 대학팀의 성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NBA급 신인을 키우는 것보다 성적을 더 내려고 한다. 이 때문에 팀의 명성이나 권위가 센 일부 대학교들은 NBA 진출을 노리는 고교생들이 오히려 기피하는 편이다.

가장 이런 쪽으로 악명 높았던 학교로는 시라큐스 대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짐 뵈하임 감독이 30년 이상 재임하면서 오로지 2-3 지역방어만 시키면서 수비 전술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유망주들이 대놓고 기피했었다. 반대로, 팀과 헤드코치가 유망주의 NBA 진출가능성을 높여주고 자신의 강점을 살리는 시스템을 활용하는 학교는 SSS급 유망주들이 몰려들어와 번호표 대기를 받거나, 아니면 아예 좀 약한 학교에서 자기가 다 해먹는 1옵션으로 1년 빡세게 뛴 다음 NBA로 빨리 가버리는 원앤던을 하게 된다. 대표적인 시스템으로는 켄터키 대학교의 존 칼리파리 헤드코치의 드리블 드라이브 오펜스가 그러한데, 이 학교는 칼리파리가 유망주 학생들의 NBA 진출 컨설팅을 잘 해주는데다, 드리블 드라이브 오펜스 시스템은 듀얼가드 에이스의 피지컬과 스킬을 극한으로 뽑아먹는 선수빨 크게 타는 오펜스라, 시스템에 맞기만 하면 NBA에서 통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듀얼가드 유망주들이 서로 가려고 번호표 뽑고 대기타는 것이다.


[1] 이 기록은 허훈이 17-18시즌 평득 10점을 넘기면서 깨지긴 했다. [2] 프로 데뷔하고 몇 년간 공격에서 나사가 빠진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마족규'란 별명으로 채팅창이 도배가 된다. 그 후 중거리 슈팅 능력도 갖추는 등 조금씩 발전해 나갔다. [3] 물론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수비는 일취월장했으며 16-17시즌에는 공격력도 나름 준수해졌다. [4] 사실 5라운드 시점에서는 KCC 모비스가 크레이지 모드를 달리고 있었고, 6위권과의 승차가 꽤나 벌어진 상태였기에 맘 편하게 6강 PO를 대비한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총력전을 선언해놓고 승률은 9승 9패로 딱 5할을 찍었으니... [5] 심지어 이종현 모비스 입단 후 재활 훈련을 하기 전까지 "이렇게 체계적인 재활 시스템은 처음 경험해 본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상 아마추어 단계에선 부상 관리고 재활이고 교정이고 뭐고 [6] WKBL 양원준 사무국장의 아들이다. [7]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팬들이 고교 졸업 후 바로 또는 대학에 가도 얼리로 나오라며 외쳐도 선수들 자신의 생각은 다르다는 점이다. 송교창이 얼리로 나오는 과정에서 상당한 잡음을 빚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 그리고 정유라 건으로 인해 앞으로 얼리 엔트리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얼리 엔트리를 하면 3학년 때 진출하지 않는 이상 학적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므로 자퇴생 신분으로 참가할 수도 있는 것. 만일 조기은퇴를 할 경우 다른 스포츠보다 학연이 유독 심한 농구계에서의 입지가 좁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은희석 감독과 이상윤 감독은 얼리로 나올 지는 선수 자신의 뜻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8] 하지만 송교창의 얼리 진출 이후 초고교급 선수이나 프로급 기량을 갖춘 저학년생들의 프로직행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좋아졌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당장 초고교급 선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오세근도 후배 양홍석의 얼리 진출을 대단히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