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00:16:44

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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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제3기 내각 ~ 장면 제4기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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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제4기 내각 ~ 5.16 군사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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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정변 ~ 민정당 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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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창당 ~ 1차 진산 파동
민주당 민정당 자민당 국민의당
1차 진산 파동 ~ 신민당 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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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창당 ~ 2차 진산 파동
신파계 구파계 유진산계 국민당 민중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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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계 구파계 이철승계 민주통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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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내란 ~ 11대 총선
정치 활동 금지
11대 총선 ~ 12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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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구상 ~ 13대 대선
동교동계 상도동계 신민당 민한당
13대 대선 ~ 3당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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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화국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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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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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더불어민주당 내 계파 중 하나로, 줄여서 민주평화국민연대 또는 민평련이라고 한다. 조직적이고 공식적인 활동을 하는 유일한 계파로 볼 수 있다. 이름이 비슷한 민주평화당과는 관계가 없다.

2. 상세

김근태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재야 운동권 인사들로, 1999년 3월 발족한 국민정치연구회가 모태다. 핵심인 김근태- 인재근 부부 부터 그 계승자를 자처하는 이인영까지 대부분 당시 학생운동의 주요인사였다. 주로 서울 수도권 지역 학생운동 계열의 주류 고위 간부 출신으로 이뤄졌으며, 김근태의 이니셜을 따서 GT계로도 불린다. 대략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복귀한 시기 전후에 정계에 입문하기 시작했고,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의 당내 주류가 되었다. 2005년 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약칭 민평련)로 명칭을 바꾸었다. #

당시 열린우리당 당권을 두고 당 내에서 보수적인 견해를 보이던 인사들은 정동영을 중심으로 집결하여 정동영계가 되었고, 운동권 출신이나 진보적인 견해를 보이던 인사들은 김근태계로 나뉘었다. 중립계열, 안개모, 친노계는 중립지대에 있었다. 2006년 상반기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장관직을 끝낸 두 거물이 대결한 결과 정동영이 승리하여 의장이 되고 김근태는 수석상임중앙위원이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그 해 지방선거를 역대급으로 참패하면서 정동영이 사퇴, 결국 김근태가 당 의장에 올라 이후 수습을 맡았다. 이후 김근태 의장이 사임하였지만, 이후 당내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민평련계인 장영달 의원이 승리해서 원내대표가 되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정동영과는 당내 양대 계파의 수장으로서 썩 좋지만은 않은 관계였는데 열린우리당의 상황이 나빠지면서 정동영과 김근태 모두 노무현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것은 물론이며, 이후 성향이 달라 갈등을 빚던 두 계파가 연합해서[1] 대통합민주신당을 새로 차렸다는 것.[2]

18대 총선에서 김근태 본인과 장영달 등 민평련계 상당수가 총선에서 낙선했다. 충북의 노영민과 전북의 김재균, 최규성, 전남의 유선호를 빼면 전원이 낙선했을 정도. 당시 한나라당이 워낙에 압도적으로 18대 총선에서 승리한 것은 물론 친박연대까지 더하면 21대 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세력이 강했을 정도이다. 상당수가 원외 당협위원장으로 밀려나는 처지가 되었다. 일부는 손학규계로 편입되기도 했다.

김근태 사후, 19대 총선 때 다시 상당수가 원내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18대 대선에서 민평련은 손학규를 과반 이상이 지지한다. 손학규 지지를 주도한 것은 설훈과 우원식으로 알려졌다. 2/3 이상이 지지해야 공식 지지로 선언할 수 있어 공식 지지는 실패했지만 설훈과 우원식 등 일부 인사는 손학규 캠프에 참여한다. 사실 손학규는 한나라당에서 자리가 없어 17대 대선을 앞두고 넘어온 인사였는데, 민평련의 수장이었던 김근태의 경기고 - 서울대 동기동창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손학규 영입 당시 김근태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하니 표심이 쏠린 결과인 셈. 또한 김근태는 참여정부 말기에 노무현 대통령과 갈등을 빚던 당내 인사 중 하나로, 친노와 김근태계는 갈등관계였다. 그 갈등이 반영된 셈. 당시 우원식은 문재인 대통령을 이미지만 있는 후보라고 비판했다. 이후 손학규는 여러 차례 정계은퇴 선언을 하고, 19대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이탈자가 생기면서 조직력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 계파로써 영향력과 국민의 지지도 딱히 높지 않고 그렇게 흩어지면서 국민적 지지와 관심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양향자 vs 유은혜 여성위원장 선거[3] 파동이나 지탄받는 여러 활동[4]에 비해 당내 요직, 비례대표 입후보 및 순위 배정에 있어서 적잖이 과잉대표된 결과를 보인다. 간단히 말해 당의 지지층이나 당원 전반에게 별로 지지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무관심(...)한데도 당내 영향력은 꽤 있다는 것. 이는 기본적으로 민평련 소속 의원의 숫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며, 넓게 보면 해당 지역구 대의원들에 대한 장악력이 강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따져보면 근 20년 정도 단일 계파로 존속했고, 소속으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은 다수가 다선이며, 다선이 아니더라도 대개 정치 경력 20년은 된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국민 또는 의회에서의 정치력이 별달리 특출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에게 어필할 만한 국감 또는 국조 활동이나, 사회적 이슈로 특히 입법이 간절한 법안 발의등이 상대적으로 현저히 떨어진다. 단독으로 150석을 넘겼던 열린우리당의 의회에서의 성과와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들어서기 전까지 의회에서의 성과는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점수를 주기 어렵다. 특히 열린우리당 시절은 오합지졸에 지리멸렬이란 평가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수준. 열린우리당 시절 최대계파였고 민주당계 정파의 평지풍파 내내 일정 정도 영향력을 유지한 계파란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평련이 계파로 더불어민주당까지 존속한 이유는 당내 정치에서 이렇다할 손해를 보지 않는 처신에 있다. 그나마 정치력 혹은 영향력이 발휘되는 부분은 당내 권력투쟁. 직접 당권에 도전하지 않을 때에는 당권 컨텐더에 이른바 세몰이[6]로 지지를 표하여 존재감을 행사하는 편. 정당의 어느 계파, 예컨대 친이/친박/친노/친문/비노/반문/비박 등등의 정당 내 정파들은 대개 당권에 도전한다. 당권을 쟁취하고 그 당권을 행사하여 여러 정치적 이벤트, 특히 대선/총선/지선 이벤트의 결과로서 정치적 자산을 얻기도 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도 한다. 민평련은 대체로 김근태의 건강이 악화된 이후[7] 이런 시도에 직접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적 자산도 책임도 질 것이 없어서 긴 세월동안 계파로 존속했다고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부침을 겪는 다른 정파와의 관계에 따라 소속 정치인들이 둥둥 떠다녀서 결속이 느슨해진 것이기도 하고. 결국 정치인 혹은 정파로서의 능력이란 것이, 당 바깥에서 다른 정당과 싸워 의회에서 성과를 내는 쪽이나, 혹은 대중들에게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서 표심을 확장하는 쪽은 별로고, 당내 영향력을 강화해 당직 배분과 공천 배분으로 정치 생명을 연장하는 보신주의에 치중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20년이란 기간은 정치인에게 결코 적은 시간은 아니다.

우원식은 을지로위원회를 만들어 주축으로 활동했고, 민평련의 지원으로 원내대표에 당선된다. 집권 초기 추미애 대표가 국민의당과 충돌하여 국회가 마비되자 김동철[8]을 회유해 추경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국민의당에게 끌려다니며 야당 하자는 대로 다 해줬다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이후 국민의당의 다수가 바른미래당으로 넘어가서, 사실상 5대 5구도가 되어, 2개의 야당을 상대로 협상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표계산에 실패해 자유한국당의 본회의 불참에 끌려 다니는 등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인영의 경우에는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이후로 꾸준히 민평련 세력을 동력 삼아 당권에 도전해 오고 있는 중이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도 당대표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그 후 같은 민평련 소속의 설훈과 후보 단일화 협상을 통해 이인영이 추대되었다. 이 단일화 과정에서도 민평련 소속 의원들이 잔뜩 모여서 협상 담판에 직접 참여했는데, 공개적으로 계파 행위를 하는데도 언론으로부터 별로 욕을 먹지도 않고, 큰 관심도 못 받는 중이다. 하지만 당원들로부터는 대놓고 '정치 담합'한다고 신나게 욕을 먹고 있긴 하다. 심지어 이인영에게 당대표 단일화를 해주고 뒤로 빠졌던 설훈이 갑자기 최고위원 후보로 등록을 해서 더 욕을 먹었다. 어쨌든 그 후 이인영은 별다른 퍼포먼스를 보여 주지 못하고 당대표 예선 경선에서 가볍게 탈락했고, 설훈은 결국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당선되긴 하였으나, 수도권 4선 의원+동교동계+민평련이라는 화려한 경력과 백그라운드 조직에도 불구하고 초선의 박주민과 재선의 박광온에게도 밀려 후보 8명 중 3위로 쳐지는 굴욕을 맛봤다.

실제 이력을 보면 2012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2017년 대선에서도 지지후보가 다양하게 나뉘었다. 노영민 전 의원처럼 애초부터 친문 핵심 격인 인사[9]도 있고, 진성준처럼 문재인 당대표 시기 어려울 때 곁을 지키며 문재인의 사람이 된 경우도 있고, 유은혜처럼 선거 때 문재인 캠프에 자연스럽게 합류한 케이스도 있다. 홍의락처럼 탈당했다가 마지막에야 복당하여 문재인 지지를 선언한 경우도 있었고, 설훈처럼 예나 지금이나 확고부동한 비문-반문 포지션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유승희처럼 최고위원 회의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혼자 노래나 부르면서 '봉숭아 학당' 소리나 듣다가 이재명 캠프에 합류한 경우도 있었고[10][11], 더러는 박원순을 밀어주는 분위기도 있었다.[12] 한편 이인영은 탄핵정국에서 민주당 측 개헌특위 간사를 맡는등 소극적으로나마 개헌론을 외치기도 했다. 이렇듯 민평련은 전체적으로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별다른 잡음도 없는 어중간한 계파라 할 수 있다.

실제로도 호남계와 친노계가 갈등할 때 중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해 오긴 했다. 2014년 김한길 - 안철수 당대표 시절[13]이나 2016년 문재인 대표 시절 친노와 호남 격돌시 중간에서 조정하는 윤활유 역할을 했었다. 김근태처럼 돈받지 않는 청렴정치를 정치 신념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과 통하는 점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김근태 전 의장의 별세도 오랜 세월이 지나 점점 계파 자체의 세력이 와해되어서 의탁할 곳이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중이라 그런지, 문재인 대통령이 가까이두고 중용하는 사람도 꽤 된다. 하지만 안철수와 김한길의 새정치연합 시기 민평련 주도로 소속원 기동민의 공천을 돕기 위해 김한길의 우군 정동영과 천정배의 공천을 반대하면서 정쟁과 분당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계파의 영향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뚜렷한 자체 대권주자도 없고, 대중성 있는 정치인도 없는 상황에서, 다른 대권주자나 지도자들을 지지하거나, 계파의 세력을 지렛대 삼아 당직이나 공천 지분을 어느 정도 챙기면서 겨우 기본적인 세력만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도 많이 받고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자기 계파를 드러내놓고 주장하며 정기적인 자체 모임까지 가지는 집단이지만, 언론의 관심도 별로 없다. 심지어 친문이나 이재명계들은 메신저 단톡방만 만들어도 언론에서 집중 포화를 받는 마당인데, 자기네들은 20년 동안 대놓고 계파질 하면서도 비판에서 자유롭다는 이유로 당원들로부터 그닥 좋은 시선도 못 받고 있다.

다만 2019년 하반기 홍영표가 원내대표 활동을 끝내고 차기 원내대표로 친문계와 함께 이인영을 선출해내면서 민평련의 활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14] 그러나 당대표인 이해찬이 본인이 담당하는 공천 체제에 민평련을 아무도 기용하지 않으면서 이해찬은 민평련 사이의 갈등에 본격적으로 불을 당기기도 했다.

2021년 당대표 경선에 우원식 의원이 출마했다. 비록 송영길 홍영표 대결에서 3위로 떨어졌으나 여전히 29.4%의 지지를 받아 3강구도를 유지하며 체면을 지켰다. 적극적으로 당선을 노리고 당권에 도전했다기보다는 민평련 자신의 세력 내지는 지분을 보여주기 위한 측면으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전후로 하여 민평련 출신 인사들의 공천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인재근 의원은 자의반 타의반 불출마하였고[15], 설훈 의원은 당 내에서 반명 성향이 두드러지는 인사이다.[16] 이 외에도 친명 인사로 활동하던 문학진 전 의원도 이재명 대표가 직접 수 차례 전화해서 불출마를 권유하고 있다. 4선에 도전하는 우원식 의원도 선거구 개편에 따라 상황이 좋지는 않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시절에 입각했던 인사들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맡았던 임종석 전 의원, 그 후임자인 노영민 전 의원도 당 내에서 정권을 빼앗긴데에 대한 책임론이 친이재명 성향 지지자들 사이에서 대두하고 있다. 이후 설훈은 아예 새로운미래로 당적을 옮겼다가 큰 표 차이로 낙선했다. 살아남은 초~재선급 의원들은 딱히 성향이 크게 두드러지는 인사들도 아닌지라 민평련 자체가 2024년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3. 인물


[1] 심지어 당 내 보수파였던 강봉균 정책위의장이 김근태 당 의장에게 친북좌파 운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2] 그나마 친노 성향 시민들에게는 김근태는 정동영보다 이미지가 덜 나쁘게 각인되었는데 과거의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행적과 16대 대선 경선 등의 일들도 있었기 때문. 반면 정동영은 그런 것들이 없었고 결국 김근태와 다르게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도 못 하고 쫓겨난다. [3] 대의원 선거는 유은혜, 권리당원 선거는 양향자가 승리했다. 이 과정에서 양향자의 입지가 불리해지도록 정치질을 했던 것이 온라인 입당 후 권리당원이 된 친문 지지층을 자극해 양향자 당선에 영향을 주었다. 유은혜 역시 범친문으로 분류되나, 양향자는 문재인 당시 대표가 온라인 입당과 동시기에 추진한 인재영입으로 발탁된 순수 친문 인사이기 때문이다. [4] 세몰이로 존재감 과시하는 것이 잦다. 선당후사에 반해 자기 정치를 하는 정도까진 아니라도, 아주 적극적인 선당후사에 입각한 정치로 평가받기도 미묘하다 [5] 정치인이 항상 연달아 당선하는 것은 아니니까 [6] 예컨대 당권 컨덴더가 주최하는 행사에 우르르 참석해서 축사하고, 사진 찍을 때 머릿수 채워 주고, 후원금 모금해 주는 그런 것 [7] 김근태는 17대 대선 경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그래서 손학규, 이해찬, 정동영 등으로 지지세력이 분산되었을 정도. [8] 본래 열린우리당 시절에는 중도계열이었으나 19대 국회 이후에는 김한길계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9] 이후 노영민은 주중대사 - 대통령비서실장 같은 핵심 요직들을 지냈다. [10] 문재인 당대표 시기, 극심한 계파 갈등으로 당이 파국으로 치닫을 때, 최고위원 회의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뜬금없이 '봄날은 간다' 노래를 갑자기 불러서 당 안팎에서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11] 당시 상황이 가관인데 주승용 수석최고위원은 언제나 그랬듯이 문재인 대표를 비판했고, 이에 정청래 최고위원이 '주승용 공갈 발언'을 해버렸다. 이에 극대노한 주승용이 회의장을 나가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근데 그런 상황에서 유승희 최고위원이 분위기를 환기시킬 의도로 노래를 불렀다가 넌씨눈 소리를 들은 것. [12] 이인영이 박원순을 밀어주던 대표적인 예로, 박원순은 불출마 이후 문재인 캠프로 이적시키느라 공석이 된 서울시 정무부시장 자리에 구로구의 김종욱 현역 시의원을 데려가는 바람에 19대 대선 때 이 지역(구로구 라선거구)에선 전국 유일의 광역의원 보궐선거가 병행되었는데, 이 인물은 이인영의 고대 후배이자 초선 시절 보좌관 출신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사람이다. [13] 당시 비노계가 당 주류였다. 당 대표인 김한길 - 안철수는 물론 원내대표인 박영선, 사무총장인 주승용 등은 전부 비노계였다. [14] 경쟁자인 노웅래는 중도 내지는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인사로, 꾸준한 지지층이 있으나 반문에 가까운 인사이다. 또한 김태년은 대외적으로 친문계로 알려져 있으나, 세부적으로는 예전부터 이해찬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며, 이재명이 세가 없던 시기부터 그를 감싸준 만큼, 범친문 내에서도 궤가 좀 다른 부엉이 모임, 김진표-전해철 계열의 친문 성향의 의원들이 민평련계였던 이인영을 지지하고 있었다. [15] 인재근 의원은 민평련계 소속인 유은혜 전 사회부총리(교육부 장관)의 투입을 원하고 있으나, 이재명 대표는 김남근 변호사의 출마를 원하는 상황이다. 결국 둘 대신 안귀령이 공천되었다. [16] 공천 탈락 시에는 개혁신당 합류를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17] 이낙연계로도 분류. [A] 친문으로 편입된지 오래 되어 사실상 민평련계와는 멀어진 상태. [A] [20] 이낙연계로도 분류. [A] [22] 19대 대선 문재인 후보 지지를 하며 비문으로 보기에는 힘든 상황. 그렇다고 민평련과 멀어졌다고는 하기엔 힘들다. 국회의원 사무실에도 김근태 전 의장의 사진이 아직 걸려있다. [23] 문재인 정부의 사회부총리를 맡게 되면서 넓은 의미의 친문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분위기. [24] 사실 유은혜는 정계 입문 때부터 문재인과 연이 있던 사람이었다. [A]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