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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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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무황제
2.1. 일세일원제로 연호를 따서 부르는 경우2.2. 창작물
2.2.1. 작품명2.2.2. 등장인물2.2.3. 한백무림서의 무제
3. 무왕
3.1. 한국3.2. 중국3.3. 베트남

1. 개요

중국사에서 무()라는 시호가 붙는 인물은 주로 생전에 무공이 있거나 철혈통치를 내세웠던 군주가 많다.

2. 무황제

황제에게 자주 사용되는 명칭. 무협지 등에서 제목이나 등장인물 이름으로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성명 시호 묘호 재위기간 비고
유철(劉徹) 효무황제(孝武皇帝) 전한세종(前漢世宗) BC141~BC87 7대 황제
유수(劉秀) 광무황제(光武皇帝) 후한세조(前漢世祖) 25~57 16대 황제
조조(曹操) 무황제(武皇帝) 조위태조(曹魏太祖) - 위문제 추존
사마염(司馬炎) 무황제(武皇帝) 서진세조(西晉世祖) 265~290 초대 황제
이웅(李雄) 무황제(武皇帝) 성한태종(成漢太宗) 306~334 초대 황제
석호(石虎) 무황제(武皇帝) 후조태조(後趙太祖) 334~349 3대 황제
유유(劉裕) 무황제(武皇帝) 유송고조(劉宋高祖) 420~422 초대 황제
소색(蕭賾) 무황제(武皇帝) 남제세조(南齊世祖) 482~493 2대 황제
소연(蕭衍) 무황제(武皇帝) 소량고조(蕭梁高祖) 502~549 초대 황제
진패선(陳覇先) 무황제(武皇帝) 남진고조(南陳高祖) 557~559 초대 황제
우문옹(宇文邕) 무황제(武皇帝) 북주고조(北周高祖) 560~578 3대 황제
이극용(李克用) 무황제(武皇帝) 후당태조(後唐高祖) - 장종 추존
양행밀(楊行密) 무황제(武皇帝) 남오태조(南吳太祖) 902~905 초대 황제
장자문(蔣子文) 장무제(蔣武帝) - - 남당 추존[1]
이공온(李公蘊) 신무황제(神武皇帝) 태조(李太祖) 1009 ~ 1028 초대 황제
완복활(阮福濶) 건강위단신의성유인자예지효무황제
(乾剛威斷神毅聖猷仁慈睿智孝武皇帝)
세종(阮世宗) 1738 ~ 1765 8대 국왕
완문혜(阮文惠) 무황제(武皇帝) 서산태조(西山太祖) 1788~1792 초대 황제

2.1. 일세일원제로 연호를 따서 부르는 경우

성명 시호 묘호 연호(재위기간) 비고
주원장(朱元璋) 개천행도조기입극대성지신인문의무준덕성공고황제
(開天行道肇紀立極大聖至神仁文義武俊德成功高皇帝)
대명태조(大明太祖) 홍무(洪武, 1368 ~ 1398 초대 황제

2.2. 창작물

2.2.1. 작품명

2.2.2. 등장인물

2.2.3. 한백무림서의 무제

철위강의 사부로 사패 이전의 천하제일인(?). 본명은 불명이고 스스로 무제라 자칭했다.

사패 중에서도 싸움 하나로는 극강이었던 철위강의 사부답게 무지막지하게 강하다. 주먹 한방에 아름드리 나무를 꺾어버리고 술 마시고 던진 바위가 산사태를 일으킬 정도. 죽고나서 5년이 지나도록 시체가 썩지 않았고 무제의 내공을 이어받고 나선 철위강은 당대 최강자 중 한 명으로 군림했다.

스스로 말하길 천하제일 장삼봉 진인과 싸워 무공으론 반초차로 이겼지만 인품에서는 반초 차이로 졌다고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무제는 죽기살기로 싸웠고 장삼풍은 자애로운 마음으로 싸웠다고 한다. 그런데 장삼풍이 필사의 마음가짐으로 다시 싸워도 결과는 변함 없을거라고.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산 속에 은거 중이었다. 그렇다고 도를 닦는 것도 아니고 항상 속세로 나가고 싶어했는데도 장삼봉과의 대결로 인해 산 속에 은거중이라고 작가가 질답란에서 말하였다.

한백무림서 최강자 논쟁을 벌이면 장삼풍, 사패와 함께 꼭 등장하는 인물로, 특히 장삼풍과의 결전이 논란의 대상이 된다. 다시 싸워도 결과가 변함 없을거라는건 한백무림서의 파워밸런스상 쉽게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저런 논의가 오기기도 한다. 특히 철위강과 옥황과의 싸움에서 궁극에 달한 술법은 천룡무제신기를 깰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실제로 철위강이 옥황의 술법 보조를 받은 위타천에게 위기를 맞기도 하는 등 술법과 무공에서 모두 극의에 오른 장삼풍이라면 천룡무제신기를 깰 수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나오는 등...좀 더 두고봐야할 떡밥.

3. 무왕

3.1. 한국

3.2. 중국

3.3. 베트남


[1] 蔣武帝 참조. [2] 훗날 아들 조비가 황제에 오르면서 무제(武帝)로 추존된다. [3] 원래는 무공이었으나 증손자 장조(張祚)가 왕으로 추존했다. [4] 베트남식으로는 '찌에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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