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13:35:10

무관의 제왕

1. 개요2. 의미 변형3. 무관의 제왕
3.1. 실존 인물3.2. 가상 인물3.3. 작품

1. 개요

직역하자면 왕관이 없는 제왕이라는 말로 원래는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 단어다. 왕이란 원래 자신의 능력보다는 '핏줄의 힘'으로 군림하는 것인데 그런 핏줄의 도움 없이 남들 위에 섰다는 데서 '관 없이' 제왕의 지위에 오른 것으로 불러 주는 것. 중국어 '무관지왕(无冕之王)'이라는 표현의 언역이고 영어의 'an Uncrowned King'이라는 표현 역시 자수성가로 군주, 특히 봉건사회의 귀족 계층에 편입된 경우에서 나온 표현이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개천에서 용 나듯이 스스로의 힘으로 고귀한 지위를 차지한 사례는 있었기 때문.

2. 의미 변형

다만 한국, 일본 등지에서 전근대시기에 사용되던 본연의 의미보다는 스포츠나 창작물 분야에서 커리어와 관련된 용어로 탈바꿈하여 쓰인다. 어떤 분야에서 메이저한 대회 우승이 없거나 유명 시상식 참가 등의 소위 커리어라 불릴 만한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확실하고 누구나 알아주는 굵직한 선수명작 소리가 아깝지 않은 작품 등을 무관의 제왕이라고 부르게 된다.

스포츠 분야의 경우 '우승은 없는데 실력은 최고인' 사례는 보통 팀 경기에서 많이 나오기 쉽다. 개인 종목이라면 실력이 곧 우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말 운이 없지 않는 이상 무관의 제왕이 나오긴 힘들지만[1], 팀 단위로 봐야하는 스포츠에선 개인이 아무리 잘나 봐야 동료들이 받쳐주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기에 개인 성적이나 업적은 뛰어나지만 팀이 약체라서 우승하지 못한 케이스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우승 컵을 들어본 적이 없다'라는 점에서 콩라인이나 만년 2등과도 의미가 흡사하기도 한데, 저쪽은 아무래도 유래가 여기서부터 시작됐으니 비하나 조롱, 나아가 연민의 의미가 강하지만, 무관의 제왕이라는 별칭은 그와 반대로 존중, 경외의 의미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무관'에 방점이 찍히느냐, 무관의 '제왕' 에 방점이 찍히느냐에 따라서 콩라인과 무관의 제왕의 용법을 가를 수 있겠다. 경외의 의미로 쓰이는 만큼, 아무리 2등만 해본 선수라도 입지가 뚜렷하게 남은 선수가 아니라면 무관의 제왕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즉, '2등을 여러번 했다'는 점이 충분조건에 가까운 콩라인과 다르게 무관의 제왕은 그게 아니다. 2등은 커녕 팀 커리어는 바닥을 기었어도 해당 종목 분야에 큰 족적을 남겼다면 무관의 제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몇몇 창작물에서는 실력이 뛰어난데도 대회에는 나오지 않는 은둔고수를 이리 칭하기도 한다.

3. 무관의 제왕

(●) 축구의 경우는 클럽 대회도 다양하고 국가대표까지 있으므로 둘 중 어느 하나에서라도 우승한 경우 표시
(○) 올림픽 금메달은 없지만 선수권 금메달은 있는 경우

3.1. 실존 인물

  • 공자 - 사기의 저자 사마천의 평가. 이는 이 단어의 본의에 가장 근접한 표현이다. 사마천은 "공자는 평생 높은 벼슬을 오래 하지 못했고 현실에 좌절하고 떠돌아 다녔을지라도, 그 사람의 가르침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떠 받든다."라고 평가하면서 공자에게 무면지왕(無冕之王)의 칭호를 부여해줬다. 실제로 사마천은 이런 단순한 표현뿐만 아니라 실제로 공자의 생활을 왕이나 제후만 기록하는 《 사기》의 '〈世家〉' 편에 분류해 사실상 제후와 동급으로서 평가한 셈이다.
  • 카이사르 - 단 한번도 황제에 오른 적 없으면서도 '황제'의 상징이 된 인물. 당장 독일과 러시아의 '황제'를 뜻하는 단어인 '카이저'와 '차르'가 이 인물의 이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 기요하라 가즈히로 - 일본프로야구의 무관의 제왕. 통산 500홈런을 넘긴 90년대 최고의 홈런타자 중 하나이자 당대 일본리그를 대표하는 4번 타자였으나, 한 시즌도 타격왕과 홈런왕, 타점왕을 차지하지 못했다.
  • 김경문 - KBO 리그에서 선수, 코치, 그리고 국가대표 감독으로 우승 경력이 있는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감독이지만 감독으로써 KBO 리그 우승을 못해보았다.
  • 김동하 - LCK 6회 우승이라는 페이커의 뒤를 잇는 LCK 최다 우승 횟수 2위의 레전드 프로게이머지만 국제 대회에선 이벤트성 대회에 가까웠던 리프트 라이벌즈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국제 대회 우승을 하지 못했다.
  • 김상진(1970) - 밑에 후술된 한용덕과 같은 또다른 무관의 투수왕. 1995년 17승을 기록하며 의 정규시즌 우승을 이끌었고 통산 122승을 거둔 레전드 투수이지만 개인 타이틀이 하나도 없다.
  • 놀란 라이언: 통산 최다 탈삼진 5714개 기록 보유자로 정통파 우완 파이어볼러의 신화와도 같은 존재이자 3개 팀 동시 영구결번이라는 위업까지 달성한 선수지만 투수계의 MVP라고 할 수 있는 사이 영 상은 단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 니콜라 코바치 - 반론의 여지 없는 카스 글옵의 최고 무관의 제왕이다. PGL Major 2021 결승전 2세트 뉴크에서의 디글 미스샷은 그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 댄 마리노, 배리 샌더스 - NFL 대표 무관의 제왕. 둘 다 팀 영구결번은 물론 명예의 전당 들어간 선수들이다.
  • 돈 매팅리- 뉴욕 양키스의 영구결번자&주장을 통틀어 유일하게 우승반지가 없는 선수로 그가 부상으로 34살이라는 이른나이에 1995년에 은퇴하는데 다음해 1996년 부터 2000년까지 3번이나 우승을 했다.
  • 레이시 에반스 - 현재 WWE 여성부 로스터 중 얼마 안되는 무관의 여왕이다. NXT 시절 때도 타이틀을 획득한 적이 없었고 WWE 메인 로스터 입성 이후에도 위민스 챔피언십 벨트는 물론이고 WWE 24/7 챔피언십도 획득해보지 못했다. 결국 WWE에서는 아무런 타이틀이나 커리어를 쌓지 못한 채 떠나게 되었으며 다른 단체에서 커리어를 이어간다면 여기에 벗어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 마이크 무시나(○) - 골드 글러브 7회를 수상했지만 사이 영 상도 없고 월드시리즈 우승도 없다. 심지어 우승을 위해 양키스로 FA 이적했지만 그가 오기 1년 전 2000년에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고 2001년 2003년 월드시리즈는 준우승으로 그쳤다. 은퇴시즌인 2008년에 20승을 하고 MLB 무대를 떠났는데 다음 해 2009년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다.
  • 마키하라 히로미 - 일본프로야구 투수 중 하나. 19년간 선수 생활을 하며 통산 2000탈삼진을 넘기고 퍼펙트 게임도 기록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투수이나, 정작 다승왕, 방어율왕, 탈삼진왕 및 사와무라 상 등의 개인타이틀을 수상한 적이 한 시즌도 없다. 그나마 탈삼진은 88년에 1위를 기록하긴 했는데, 당시엔 일본프로야구에서 탈삼진왕을 따로 시상하지 않았다.
  • 미셸 콴(○) - 전설 같은 경력을 쌓았지만 그놈의 올림픽 금메달을 못 따서 이 별명이 붙었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그녀에게 '무관의 제왕'이란 별명은 찬사에 가깝다.
  • 박광덕 -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씨름선수지만 씨름 최고의 영예라고 할수 있는 천하장사 타이틀을 거머쥔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테크노 골리앗으로 불리며 모래판을 호령한 최홍만도 짧은 씨름 커리어동안 천하장사 1회를 하였지만 박광덕은 천하장사에 오르지 못하였다. 다만 이만기나 강호동 못지 않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어서 예전부터 씨름선수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가진 거구하면 박광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 박용택 - 통산 최다 타수에 최다 안타라는 KBO 최고 안타머신이나 한국시리즈 전적 1전 1패[2] 로 우승 경력 없이 은퇴했다. 그리고 그가 은퇴한 이후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 트윈스는 29년만의 통합우승을 달성하였다. 무관기운 ㅇㅅㅇㅌㅅ
  • 박인수 -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현 카트라이더 리그의 최강자이고, 팀전에선 6회 우승해본 경력이 있지만 리그 최강자 칭호가 무색하게도 개인전 우승이 없다. 최고 기록은 5번의 준우승과[3] 두 번의 3위.[4] 심지어 박인수는 역대 카트라이더 선수 중 이재혁 다음으로 개인전, 팀전 레코드를 가장 많이 보유한 선수이고, 역대 카트라이더 리그 선수 중 단 4명 밖에 성공하지 못했던, 그리고 단 6번만 나왔던 개인전 50점 퍼펙트를 달성하기도 하였다. 팬들도 박인수의 개인전 우승을 간절히 바라고 있고, 리그 관계자들도 박인수의 개인전 우승 가능성을 높이 치고 있음에도 마지막 순간에 긴장 탓인지 실수를 하며 우승을 아깝게 놓치고 있다. 무관도 아니고, 카트라이더 리그에 큰 족적을 남긴 선수이기에 실로 안타까울 따름.
  • 배리 본즈 - 커리어 말미에 약으로 얼룩지긴 했지만 MLB에서 무관의 제왕을 대표할 만큼 전형다운 케이스.
  • 안토니오 디 나탈레 - 2010년대 세리에 득점 1위, 세리에 역사상 통산 득점 6위에 랭크 될 정도로 뛰어난 스트라이커였지만, 커리어에서 우승 경험이 단 한 차례도 없다.
  • 이경수 - 배구계의 대표적인 무관의 제왕. 본인은 190대 후반의 장신 레프트에, 공격력뿐 아니라 수비력까지 출중한 기적적인 만능 플레이어였으나 만년 하위권 팀의 원팀맨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로 별을 달지 못한 채 은퇴했다. LIG 손해보험의 상징적 스타.
  • 서재덕 - 이경수를 잇는 배구계 무관의 제왕. 폭발적인 공격력을 가진 국가대표 라이트이자 동시에 리그에서는 리베로급 수비력의 알짜배기 레프트로 다재다능한 만능 선수이나 만년꼴찌 한국전력의 원팀맨으로 뛰며 우승은 커녕, 봄을 맞아본 횟수조차 손에 꼽는다. 노답 팀의 노예가장으로 굴려져왔음에도 불구, 팀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 원팀맨으로 은퇴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5] 사실상 마지막 FA인 2022년에 또다시 한국전력과 재계약을 했기에 이 항목에서 삭제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 이대훈(○)
  • 이재혁(Cool) - 박인수와 마찬가지로 카트라이더 리그에서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으나, 박인수와는 반대로 팀전 우승이 없다.[6] 개인전의 경우, 문호준의 개인전 10회 우승 다음으로 많은 5회 우승을 차지했고, 문호준만 갖고 있었던 개인전 연속 우승 타이틀을 얻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팀전과는 유독 인연이 먼 모습을 보이고 있다.[7] 그러나 후속작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첫 정규 리그에서 양대 우승을 차지하면서 팀전 무관을 탈출했다.
  • 비슷하게 데뷔 때부터 단 한번도 다른 팀으로 나온 적이 없는 이재혁의 소울메이트 송용준도 무관의 제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쪽은 개인전 우승도 없는 순수 무관이다. 카트 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스피드, 아이템을 모두 잘하는 하이브리드형 선수이고 2019-1 팀전 3위, 2020-1 팀전 준우승과 2020-2 개인전, 팀전 양대 준우승, 2021-1 팀전 3위, 2021-1 개인전 4위[8], 22-1 개인전 3위를 이루워냈지만 아직 단 한 번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현재 카트 리그 최강자 선수들인 신 빅3의 유창현, 박인수, 이재혁,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선수들인 송용준, 배성빈, 박현수 중 혼자만 유일하게 개인전, 팀전 통틀어서 우승이 없다. 그래서 매번 우승을 한 번만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꾸준히 비추고 있다.
  • 이재혁(carpe) - 전 오버워치 프로게이머이자 현 발로란트 프로게이머로 오버워치 선수들 중 손꼽힐 정도로 오랫동안 프로 생활을 한 베테랑이자 리그 출범 시즌부터 지금까지 매 시즌 세최딜이라 평가받는 선수이지만, 어째 단 한번도 우승[9], 개인 수상(mvp 등) 도 한 적이 없는[10] 오버워치계 대표격이자 레전드급 무관의 제왕이다. 차라리 우승과 MVP에 거리가 멀었으면 몰라도 2위와 준우승을 밥먹듯이 하는 바람에 더욱 더 무관 이미지가 굳혀졌다.[11][12] 그나마 2018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무관 타이틀은 벗어났지만 리그에서는 여전히 트로피를 들지 못했다 이후 오버워치 프로를 은퇴하고 발로란트 프로게이머로 전향하며 오버워치 리그 무관 타이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 켄 그리피 주니어 - 이쪽도 반지 운은 지지리도 없었다.
  • 스즈키 이치로 - 미일 통산 4367 안타에 메이저리그에서만 3000 안타를 쳐낸 당대 최고의 안타 제조기에 신인왕,MVP,실버슬러거,골드글러브 등 웬만한 상들은 다 받아 봤지만 소속 팀인 시애틀 매리너스가 워낙 가을 야구랑 거리가 먼 팀이라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와는 인연이 없다. 40대에 접어들 무렵에 뉴욕 양키스에 뛰긴 했지만 이때 양키스도 월드시리즈 진출은 하지 못하였다. 그 대신 일본에서는 오릭스 소속으로 일본 시리즈 우승 반지를 한 번 획득한 바가 있다.
  • 스티븐 제라드(●)- 챔피언스 리그도 2회나 결승전에 진출했고 1회는 우승하기까지 하는 기록을 세웠지만, 자국 리그에선 98년 데뷔 이후 2015 이적할때까지 17년간 단 1회도 우승한 적이 없다. 그나마 우승에 가장 근접한 2009년과 2014년엔 결국 제2 위로 시즌을 마감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아르헨티나와 콜럼비아 스페인의 3중 국적을 달면서 그 나라 축구에 길이남을 전설급 경력를 쌓아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코파아메리카 우승, 아르헨티나 수페르리가 아르헨티나 우승 2회, 콜롬비아 카테고리아 프리메라 A 우승 2회,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프리메라리가 우승 8회, 유로피언 컵 5연패란 세계 축구사에서 전무후무한 업적을 달성했으나 월드컵에선 유독 불운이 따라와 단 한번도 출장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중 어지간한 축구 매니아가 아니면 스테파노를 모르거나 저평가하는 예가 잦다. 몇몇 사람들은 이 남자가 월드컵에 뛰어서 우승하기만 했으면 펠레의 라이벌이 됐으리라고 주장할 정도
  • 엘진 베일러 - NBA 역사상 이 별명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 이 사람도 무관의 제왕급 기록을 남겼지만 콩라인임팩트가 정말 강해서 이쪽이 묻히는 케이스. 더 안타까운 건 은퇴하자마자 그해 해당 시즌 소속팀 우승인데, 이 은퇴는 자신이 팀의 우승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고 본인이 내린 결정이었다.
  • 이규혁 - 前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세계선수권 메달은 석권한 그 사람이지만 6회 동안 출전한 올림픽엔 유독 인연이 없었다.
  • 이호종(Flame) - 한때 기장이라 불릴 정도로 최고의 탑솔러로 평가를 받았지만 본인이 직접 결승에서 뛰어서 우승을 해본 경력이 없다. 본인의 전성기였던 블레이즈 시절에도 MVP 오존에 막혀 준우승에 그쳤을 뿐 우승 기록은 없었고, LPL에서는 15 서머 LGD에서 정규 시즌에 Acorn과 주전경쟁을 하며 우승 커리어를 쌓긴 했으나 플레이오프 부터는 플레임 대신 Acorn이 계속 나와 우승을 한터라 플레임은 벤치에 머물러 있었다[13]. 2020 LCK 서머에서 우승을 달성하긴 했지만, 너구리에 밀려서 본인은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무전 우승이었다.
  • 정성훈 - 2000 경기 출장과 2000 안타라는 KBO 역사상에서도 손 꼽힐 대기록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작 개인 타이틀이나 MVP 그리고 골든글러브를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 대신 한국시리즈 우승은 현대 유니콘스 시절 2회 경험했다.
  • 정재훈 - 두산 베어스 투수로서 주무기인 포크볼로 2005년 구원왕, 2010년 홀드왕을 거머쥔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나 정작 우승 반지를 단 한 번도 못 껴 봤다. 특히 두산 베어스로 복귀한 2016년 팀은 역대급 페이스를 질주하며 통합 우승에 성공했고 본인도 전성기급 기량을 과시했으나 시즌 중간 부상으로 낙마하며 결국 우승반지를 손에 넣는 것에 실패했다.
  • 제이크 '더 스네이크' 로버츠 - 프로레슬링 팬들 한정 이 별명이 가장 잘 어울리는 레슬러. DDT의 개발자로 유명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레슬러. 냉철한 카리스마로 한 시대를 풍미한 名선수이자 DDP[14] 타미 드리머, 레이븐[15] 양성한 名트레이너지만 WWE에 있는 동안 1회도 타이틀을 따내지 못했다. 체격이 작은 것도 아니고 전성기 메인이벤터로서 팬들의 지지도 엄청났기에 아쉽다.[16][17]
  • 제임스 하든 - 정규시즌 MVP 1회 및 2위 3회를 비롯 올NBA 1st 6회, 득점왕 3년 연속 1위, MVP 쉐어 역대 12위 등 2010년대를 지배했던 가드로써 NBA 75주년 팀에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전성기를 보냈지만 정작 우승은 커녕 파이널도 식스맨 시절이던 2012년 딱 1번 진출한 것이 전부고 이후엔 컨퍼런스 파이널도 1번 진출한 것을 제외하면 매번 2라운드에 머물고 있다.
  • 젠쯔하오(Uzi) - RNG LPL의 영원한 슈퍼스타로 리그 오브 레전드 역대 최고의 원딜러 중 한명. 괴물같은 피지컬로 포지션을 막론하고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이지만 굵직한 대회에서 빈번히 준우승의 쓴맛을 보았고 롤드컵 우승이 0회라는 커리어의 오점이 있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개인상은 싹쓸이했다.
  • 조성주(Maru) - G5L 트로피 보유자, GSL 우승 7회라는 자국 리그에서 압도적인 우승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지만, 드림핵, World Cyber Games, 아시안게임 등 우승한 대회를 제외한 국제전, 특히 결산 대회에서 번번히 우승이 좌절되고 있다. 그나마 2023 IEM에서 생애 첫 결산대회 결승 진출을 이뤄냈지만 결승전에서 제대로 미끄러지며 우승이 좌절되었다.
  • 존 스탁턴 - NBA 통산 어시스트 제1 위, 스틸 제1 위의 소유자. 하지만 평균 어시스트는 매직 존슨에 밀려 제2 위이며[18] 우승한 경력이 없다.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맨유를 제외하고 소속했던 팀마다 최소한 1회는 자국 리그 제1 위를 경험한 적 있는 리그의 왕. 그 반면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다만 맨유에선 리그 대신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했다.
  • 최인석(insec) - 최고의 리신, 정글러로 평가받지만 한국에 있을 때 2부리그 우승 빼고는 준우승만 한번 기록했고[19] 롤드컵에서도 2위를 기록하였다.
  • 스털링 모스 - 포뮬러 1에서 가장 유명한 무관의 제왕. 1955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1위 판지오), 1956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1위 판지오), 1957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1위 판지오), 1958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1위 호손). 물론 바리첼로처럼 대놓고 팀에서 2인자로서 설정한 경우가 아니었고 기량도 대단했으며, 나중에는 기사 작위도 받는 등 다수한 챔피언보다도 위상이 높은 선수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 칼 말론 - NBA 통산 득점 제2 위, 상기한 존 스탁턴과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한 NBA 대표 무관의 제왕.
  • 기요하라 카즈히로 - 홈런왕이나 타점왕 등 주요한 개인 타이틀이나 시즌 MVP 등 우수상을 받은 적은 없다. 단, 우승은 세이부 교진군에서 수회 했고 신인왕, 골든글러브 등을 받았다.
  • 타이 콥 -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의 타자로 손꼽힐 만한 그 남자도 우승 반지는 단 1회도 못 껴 봤다. 소속 팀이 약체인 게 죄.[20]
  • 테드 윌리엄스 - 그저 팀이 보스턴 레드삭스인 게 죄다.몇십년 늦게 아니면 빨리 태어났어야 했다
  • 페드로 히조 - 마크 콜먼, 댄 서번, 조쉬 바넷, 안드레이 알롭스키, 리코 로드리게즈를 UFC에서 잡았다. 위 5명은 모두 UFC에서 타이틀을 따냈던 선수. 랜디 커투어와의 제1 차전 패배도 편파라는 의견이 많았다. 제2 차전에서 리벤지에 실패하면서 묻혔지만... 둘다 퇴물이 됐지만 2010년엔 UFC 슈퍼파이트 챔피언이었던 켄 샴락까지 잡았다. 근데 정작 히조 자신은 타이틀전에서 계속 물먹었다;;
  • 한용덕 - 무관의 투수왕. 2018년 기준 통산 WAR 투수 제7 위, 탈삼진 제11 위에 위치한 팀의 레전드이지만 1회도 타이틀 홀더가 되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팀의 우승 시즌인 1999년에 커리어 로우를 찍어 버렸기에... 이러한 이유로 한용덕의 선수 생활은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 등에 밀려 젊은 팬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다. 다행히 코치 시절의 평가가 양호하고 감독으로서 팀의 암흑기를 끝내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선수로서의 기록도 재조명받는다.
  • 해리 케인 - 개인 수상은 득점왕을 휩쓸 정도로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평가를 받지만, 팀 우승이 단 하나도 없다. 이는 국가대표팀 또한 마찬가지.[21] 심지어 분데스리가 11연패 중이었던 뮌헨에 가서도 무관 위기였고 놀랍게도 케인이 이적하자마자 리그에서만큼은 어떻게든 우승을 가져왔던 뮌헨이 레버쿠젠에게 23-24시즌 리그 우승 타이틀을 내주면서 연속 우승 기록이 깨지게 된다.[22]
  • 홍진호 - 정말로 공식전 우승만 못 해본 저그의 1인자였다.
  • LW BLUE - 우수한 선수 라인업이 특징이였으나 끝내 APEX에서 우승하지 못했으며 그 후 뉴욕 엑셀시어로 이어져서도 리그에서 스테이지 2, 3을 우승했지만 결국 시즌 우승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 송지만 - 20 홈런 이상을 7회나 기록했고 부상으로 74 경기밖에 출장하지 못 했던 2003년을 제외하면 2010년까지 데뷔 이후 매 시즌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하며 꾸준함을 과시했다. 정작 홈런왕 같은 타격 타이틀은 아쉽게도 따내진 못했다.
  • 손흥민 -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하고 차범근, 박지성 이후 명실상부하게 한국인 정상 축구선수의 '계보'를 이었다고 평가받지만, 저 둘과는 다르게 활약하고 있는 프로 무대, A매치 대회에서의 우승 기록이 없다. 리그 자체도 우승한 적이 없으며,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아시안컵 준우승이 최고 기록이다.[23] 이로 인해 '무관민'이라는 별명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별명 문서로.
  • 조셉 베나비데즈 - 8패 중 6패가 양 체급 언들 세 명에게만 진 것이며, 그 중 두 번은 스플릿을 갈 정도로 선전하긴 했다. 이로 인해 밴텀급에서도 2위, 플라이급에서도 2위로 콩라인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결국 2인자 자리를 유지하다 올라오는 신예들에게 세대교체를 당하고 은퇴 선언을 했다.
  • 제롬 르 밴너 - 자타공인 K-1의 우승 후보 1순위이자 무관의 제왕이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우승을 한번도 하지 못하고 준우승 2번에 머물렀던 선수였다.
  • 토니 퍼거슨 - 하빕의 유일한 대항마로 평가 받고 11연승을 기록했지만 5차례의 타이틀전 펑크로 인해 잠정 챔피언에 그쳤다. 이후 노쇠화와 조현병 약 부작용 때문에 철저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 펑크 - 미국을 대표하는 스트리트 파이터 최강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플레이로 세계적인 스파 강자로 인정받았지만 정작 EVO, 캡콤컵, 레드불 쿠미테 등 이런 권위가 매우 높은 대회들을 우승하지 못해서 이쪽 한정으론 무관의 제왕이지만 다른 대회들은 그래도 많이 우승하였다.
  • 폴 토마스 앤더슨 -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 팬텀 스레드 등 최고의 걸작을 기복 없이 만들어내는 근 30년간 최고의 영화감독 중 한 명이지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이 단 한번도 없다. 2007년, 데어 윌 비 블러드라는 최고의 걸작을 만들었지만 하필이면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개봉한 해여서 상을 모두 뺐겼다.

3.2. 가상 인물

3.3. 작품



[1] 단 일대일 격투기에서는 챔피언이 약한 상대만 골라 싸울 수 있어서 진짜 강한 선수가 챔피언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2] 이마저도 신인이었던 2002년의 기록으로 이후 은퇴하기까지 19년간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3] 2019 시즌 1, 2021 시즌 1과 수퍼컵, 2022 시즌 1과 수퍼컵 [4] 2020 시즌 1과 시즌 2 [5] 당연하지 게임에서 타 팀으로 이적할 거냐는 질문에 당연하다고 답하지 못해 패했을 정도. [6] 박인수는 카트라이더 리그가 떡상하던 2019-1, 2019-2 때 팀전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를 계기로 박인수의 인지도가 크게 상승했으며, 문박대전이라는 희대의 라이벌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7] 2019-1에 꾼팀으로 참가해 4위, 2019-2에는 ROX Raptors로 참가해 3위를 차지했다. 2020-1에는 ROX Gaming으로 출전했고, 결승전에도 진출했으나 문호준의 한화생명에게 가로막히며 준우승했다. 2020-2에도 2020-1과 마찬가지로 한화생명에게 2:0으로 패배하며 준우승. 2021-1에는 한승철의 번아웃으로 인한 팀 퇴단, 리그 규정 관련 팀전 로스터 이슈, 박인재 감독의 휴식, 송용준의 비매너 플레이 논란 등이 겹치며 팀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못했고, 이재혁 자신은 리그 평균 순위 2.33이라는 괴물같은 폼을 보여줬음에도 팀전 3위에 그치고 말았다... [8] 원래 공동 2등이지만, 무려 3명이나 같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에 순위 결정전을 통해 최종 4위로 결정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경기를 이긴건 위에서 나온 박인수. [9] 이는 그랜드 파이널 우승이나 정규 시즌 1등 등의 큼지막한 타이틀 뿐만 아니라, 매 시즌 4개씩 있는 토너먼트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이다. 즉, 카르페는 지금까지 총 27번의 우승 또는 1위 기회를 놓쳤다는 것. [10] 개인 통계로 보면 출범 시즌에서 21시즌까지 보았을 때 막타, 처치, 딜량 모두 2위이다. 참고로 이 세 통계 모두 1등이 프로핏. 심지어 리그 통산 최초 10000킬과 5000 결정타도 프로핏에게 빼앗겼다(...). 그나마 전체 솔로킬은 최초로 600 달성에 최다이며, POTM 수도 최다에 최초 4000킬 타이틀은 가져갔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점. [11] 심지어 오버워치 리그 출범시즌 MVP마저 투표율 2위를 했다. [12] 참고로 카르페는 출범 시즌부터 쭉 필라델피아 퓨전 소속이었기에, 퓨전도 오버워치 리그의 대표 콩라인이자 무관의 제왕으로 불린다. [13] 정규시즌에는 한경기 에이콘이 뛰고 한경기 플레임이 뛰고 이런 식이었지만 데마시아컵이나 플레이오프, 롤드컵 진출전 등 중요경기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천주가 단독으로 기용되었다. [14] DDP는 후에 알콜 중독으로 크게 고생하던 로버츠를 요가 치료로써 갱생하게 해 그 사람을 건강해지게 했다.오오 DDP [15] 이 두 사람은 로버츠에게 직접 DDT를 전수받은 얼마 안 되는 선수다. 그 때문에 DDT의 위상이 많이 내려간 지금도 여전히 DDT를 피니쉬 무브로 쓴다. [16] 어쩔 수 없는 게 당시에는 선역 톱으로 헐크 호건이 있었고 그 뒤로 얼티밋 워리어, 마초맨 등 쟁쟁한 실력자가 톱을 노리고 있었다. [17] 실은 그 외에도 '밀리언 달러 맨' 테드 디비야시, 빅 보스 맨, '미스터 퍼펙트' 커트 헤닉, '래비싱' 릭 루드 같은 쟁쟁한 선수가 챔피언십을 따내본 적이 없다. [18] 이는 스탁턴이 경기수가 매직의 1.5배가 넘을 정도로 오래 뛰면서 평균을 많이 깎아먹었은 탓이 크다. 실제로 매직과 동일한 경기수를 뛴 시점에서 보면 스탁턴의 평균 수치가 더 높다. 이는 매직이 1991년 은퇴할 당시를 기준으로 잡아도, 1996년 은퇴할 당시를 기준으로 잡아도 마찬가지. [19] 그나마도 정글러로서가 아니라 탑솔 포지션이었다. [20] 여담이지만, 타이 콥도 이렇게 될 걸 직감한 건지 월터 존슨을 보자마자 어떻게든 자기 팀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던 워싱턴 세네터스( 텍사스 레인저스의 전신이 아닌 미네소타 트윈스의 전신)에 있으면서 팀을 우승하게 한 존슨을 보면... [21] 토트넘에서는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과 카라바오컵에서도 준우승에 그쳤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역시 유로 2020에서 준우승에 그쳤다. [22] 참고로 레버쿠젠은 축구계 대표적인 콩라인팀으로 무려 120년만에 분데스리가 첫 우승을 하게된거다. [23] 유일하게 '우승'을 해본게 아시안게임 금메달인데, 이건 연령 대회라 정식 A매치는 아니다. [24] 페어 듀얼 대회를 우승하기는 했는데, 공식 듀얼 대회가 아닐 뿐더러, 참여자도 적었고, 태그 듀얼 대회였으며, 무엇보다도 만죠메 쥰, 마루후지 쇼, 요한 안데르센, 에드 피닉스 등 쥬다이와 맞비슷하게 맞다이를 뜰 만한 참가자가 참가하지 않았다. 결승전인 vs 켄잔&레이 전을 제외하면 양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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