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미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널리 퍼져 있는 서브컬처(특히 전래동화)의 클리셰 가운데 하나. 말 그대로 형제를 주인공으로 하는데 형이 악인이고 아우가 착한 경우로, 반대 개념으로는 형만 한 아우 없다가 있다.이런 류의 이야기는 대개 부모를 여의고 재산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형이 아우 몫까지 가로채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동생이 먼저 태어나 성장한 손윗형제보다 신체적으로나 서열상으로나 약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으로 약자로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1][2] 이런 이야기를 듣는 어린이들은 주로 집안에서 가장 어리고 약한 구성원이기 때문에 공감을 주기 위해 이러한 클리셰가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또 맏이의 권위를 앞세워 약자인 동생을 괴롭히던 형은 결국 벌을 받고, 동생은 형에게 좋은 것은 많이 빼앗겼지만 결국 주변 사람들이나 신적 존재의 도움을 받아 크게 성공하는 모습에서 일종의 인과응보의 형태를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착하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겠다.
약간씩의 바리에이션은 있지만 대부분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1. 위에서도 말했듯이 부모의 유산을 형이 독차지하고 아우를 쫓아낸다. 2. 아우는 어려운 형편에도 착실하게 살아간다. 3. 어느 날 갑자기 아우가 큰 복을 받으면서 형보다 더 잘 살게 된다.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아우가 복을 받는 과정이 핵심인 경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기도 한다.) 4. 그 소문을 들은 형이 배가 아파서 아우를 찾아간다. 5. 아우를 졸라 자초지종을 캐낸 형은 자신도 아우의 흉내를 낸다. 6. 욕심 많은 형은 나중에 "감히 혼자서만 부자가 될 생각을 했겠다?"며 동생을 비웃지만, 복을 받긴커녕 큰 벌을 받게 된다. 7. 아우가 형을 용서해 주자 형이 개과천선하고 아우와 함께 행복하게 살면서 끝. (이 단계는 생략될 수도 있다.) 8. 동생이 용서해 주든 말든 끝내 형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거나(<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심하면 형들이 동생의 행운을 강탈하기 위해 개과천선한 척 하고 접근한 뒤 동생을 역으로 해치기도 한다. 이 정도로 막장인 형은 흔하지 않지만 그림 동화에서는 의외로 자주 나온다. 그 밖에 역시 그림 동화인 <배낭, 모자, 그리고 뿔피리>에서는 행운을 얻은 동생이 자신을 비웃었다는 이유로 형들을 관광보냈다. |
자매들이라도 얄짤없는 법칙. 대부분의 동화 속에는 언니들은 못되고 추하며 막내딸은 착하고 예쁘다고 나온다. 외모의 경우 언니들도 예쁜 경우가 있지만 어쨌든 성격은 더러워서 안 좋은 결말을 맞게 된다.
현실 형제들이 싸움을 벌일 때 동생이 형을 공격하기 위해 꺼내드는 필승 스킬이기도 하다. 대략 '옛날 얘기를 보면 어딜 가든 동생이 착한 놈이고 형은 나쁜 놈이다 → 따라서 우리 형도 나쁜 놈이다'라는 식으로 형을 도발하면 형 입장에서는 멘탈이 나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학부모들이 "어린이들의 정서에 맞지 않고 손윗형제가 무조건 나쁜 아이라는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라고 형을 나쁘게 묘사하는 전래동화는 어린이들에게 손윗형제가 무조건 나쁘다는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해, 현대 동화는 이 클리셰를 비틀거나 옛 판본을 조사해 형을 상냥하고 착한 성격으로 바꾸고 동생을 못된 사람으로 바꾸어 편견을 심지 않게 한다. 그런데 이러면 머지않아 이번엔 동생이 못된 사람이라는 편견이 생기게 된다는 점에서 언발에 오줌누기식 해결법이다.
전래동화 외의 서브컬쳐 등의 착작물에서는 갈모형제 클리셰가 등장할 경우 굉장히 높은 확률로 이 클리셰로 이어진다. 형이 뛰어난 경우 동생은 열등감을 느끼고 삐뚤어지거나, 반대로 뛰어난 형을 존경하며 졸졸 따라다니는 등 여러 갈래의 클리셰로 이어질 수 있지만, 사회 관념상 동생이 더 뛰어날 경우 본인이 느끼는 열등감이 반대 입장일 때와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당장 형 만한 아우 없다는 속담도 형을 좋게 말해주는 속담이지만, 뒤집어 말하자면 '형이 동생보다는 잘 해야지' 라는 강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