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2 06:26:52

명의택


파일:명의택.jpg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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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4년 2월 3일~ 2007년 4월 24일

대한민국 독립운동가이자 기업인.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고,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국공항사장, 한국항공 회장을 역임했다.

2. 생애

1924년 2월 3일 경성부에서 태어났다. 경복중학교에 다니던 중 이현상, 장의찬, 주낙원, 최고, 홍건표 등 10 여 명과 함께 조국 광복을 위해 친일파 및 일본고관 처단을 하기로 결의하였다. 1941년 명륜전문학교에 진학하자 동지들을 규합해 주낙원의 집에서 항일결사단체인 흑백당을 만들었다.

명의택은 흑백당에서 행동책을 맡았으며, 후일 처단할 친일파 명단을 작성하고, 당시 일본인이 많이 살던 욱정[1]를 방화할 목적으로 휘발유를 구해 은닉하였다. 또한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광복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격문을 뿌리고, 특공대를 조직해 경복중학교 무기고에 있던 교련용 38식 소총 2자루와 실탄, 총검을 탈취하였다.

하지만 1943년 흑백당의 동조자이자 보성전문학교 재학중인 김창흠이 한국어로 일제를 욕하다 경찰에 붙잡혔고, 이후 가택수색 과정에서 흑백당 관련문서가 발견되어 정체가 발각되었다. 이에 흑백당 당원들은 광복군 입대를 위해 2~3인 씩 조를 나누어 만주에 집결하기로 하고, 명의택은 최고와 한 조가 되어 경성을 떠났으나 1944년 1월 만주 일대에서 붙잡혔다.

붙잡힌 후 1944년 12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7년 형을 선고받고 1945년 2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다. 해방 후 대한민국 공군에 입대해 공군 헌병감을 역임하였고, 대령으로 예편했다. 예편 후 대한항공의 전신인 대한항공공사에 입사하였고, 한진그룹이 인수한 후 영업부장으로 계속 근무했다. 1970년 경 대한항공 전무로 승진했고, 1977년 흑백당 활동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을 받았다. 이후 한국공항 사장, 한국항공 회장을 역임 하였다.

1982년 항공의 날을 맞이해 동탑 산업훈장을 받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2007년 4월 24일 사망했다.

3. 여담

  •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하며, 신문기사에도 나올 만큼 화제가 되었다 한다.
  • 동생인 명의창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공군사관학교를 나왔고 공군 중령 예편 후 대한항공 기장으로 근무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1981년 방미 당시 대통령 특별기 기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대통령 순방 당시 스튜디어스 김현숙과 함께 KBS에서 인터뷰를 하여 순방 당시 에피소드를 푼 기록이 남아있으며, 대통령이 샴페인을 권해 음주한 상태에서 비행기를 몰았다고 한다.

[1] 지금의 남산동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