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03:06:40

맬본 스트리트 탈선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사고 당시3. 사고 이후4. 유사 사고


파일:맬본 스트리트 탈선 사고.jpg

1. 개요

Malbone Street Wreck

1918년 11월 1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발생한 열차 탈선 사고.

2. 사고 당시

1918년 11월 1일 금요일. 주말인데다 러시 아워라 지하철역에 사람들이 엄청 붐볐다. 당시 25세의 기관사 안토니오 에드워드 루치아노(Antonio Edward Luciano)가 운전하는 BRT(Brooklyn Rapid Transit) 소속 열차엔 무려 650명의 사람이 탑승했다. 기관사는 경력이 짧은데다 이 노선은 아예 처음이었는데, 당시 북미 열차기관사 노조연합 Brotherhood of Locomotive Enginner가 파업을 했고, 몇몇 경력 있는 사람들이 파업에 참여하는 바람에 단지 2시간의 교육만 받고 투입됐다. 루이스 본인은 이게 기회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노선이 처음인지라 스케줄에 못맞춰 역에 정차하고, 열차 선로가 잘못되어 있어 엉뚱한 터널에 들어가는 등의 크고 작은 사고들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루이스는 더 서둘러 속도를 냈다.

열차는 맬본 스트리트 인근의 터널로 들어갔다. 프로스펙트 파크 역 진입부에는 다른 노선과의 합류 전에 입체교차를 하는 구조였는데, 이 구간에 S자 커브가 있었다. 이 커브길에선 원래 최소속도 10km 로 달려야 했다. 하지만 열차는 이를 훨씬 넘는 속도인 시속 48km로 달렸다. 너무 빠른 걸 눈치 챈 기관사는 속도를 낮췄으나, 이미 늦었다. 오후 6시 42분, 열차는 탈선했다. 열차의 첫번째 차량이 먼저 탈선하면서 이윽고 뒤의 두 차량도 탈선했고, 다른 차량도 탈선했다. 다행히 첫번째와 4번째 차량에선 사상자가 적었다. 하지만 두번째와 세번째 차량에선 사상자가 나왔다. 하필이면 이 열차는 나무로 만들어졌고, 나무로 만든 차량이 콘크리트 덩어리인 터널에 부딪히면서 피해가 컸다. 사람들은 구겨지고 부서지는 열차에서 나뒹굴었고, 팔다리가 잘려나간 사람, 머리가 잘린 사람들이 나왔다. 서드레일에 떨어지면서 감전사한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터널 안의 구겨진 차량 안에서 갇힌 채 구조대를 기다려야 했다. 얼마 안가 열차 내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구조대원들이 도착했다. 사고가 일어난 시간이 한밤중인데다, 터널 안이라 어두워 구조대원들이 도착하는데 45분이나 걸렸다. 구조대원들은 사다리를 내려 터널로 들어가 사람들을 구조했다. 인근 경찰서에서도 경찰들이 구조를 지원했다. 부상이 비교적 덜 심한 사람들은 직접 걸어 나와 구급차에 올라탔다. 하필이면 당시 스페인 독감 때문에 인근 병원이 꽉 찬 상태라 임시병동을 만들어 부상자들을 치료해야 했다.

결국 사고로 102명이 사망, 250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상자 상당수는 두번째와 세번째 차량에서 나왔고, 이중 두번째 차량에선 생존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사고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열차 사고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사고 이후 안토니오는 집에 돌아갔으나 얼마 안가 체포됐다. 재판이 열렸다. 재판에는 사고에서 살아남은 기관사 안토니오와 BRT 회사의 회장과 부회장을 포함한 6명이 기소됐다. 하지만 전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안토니오는 당시 스페인 독감을 앓고, 3살 딸을 잃은 것과 경험이 부족한게 곂쳐서 사고를 일으킨 것 때문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망자 중 14명은 그린 우드 공동묘지에 묻혔다.

BRT 측은 나무로 만들어진 열차가 사상자를 더 내게 했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목재 열차를 퇴출시키고, 전부 철제 열차로 교체했다.

맬본 스트리트는 이후 이 사고를 연상시킨단 이유로 지역명을 Empire Boulevard로 변경했다.

Brooklyn Rapid Transit은 뉴욕 시에서 요금을 올리지 못하게 제한받고 있었고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 사고까지 터지자 이듬해인 1919년에 파산했다. 회사는 Brooklyn–Manhattan Transit Corporation으로 개편되어 살아남았지만 1940년에 뉴욕 시에서 노선 전체를 인수하여 공영화했고, 이들 노선은 뉴욕 지하철의 일부가 되었다. 사고 지점이 포함된 노선은 몇 차례의 변화를 거쳐 뉴욕 지하철 셔틀선 프랭클린가 셔틀로 운행하고 있다.

2018년 11월 1일 사고 100주기를 맞아 추모식이 열렸다. #

2019년 11월 1일 인근 프로스펙트 파크 역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4. 유사 사고

  • 1974년 12월 1일, 똑같은 곳에서 다시 탈선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이때는 열차가 서행하고 있었기에 일부 승객이 경상을 입은 것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