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3 21:55:02

리상벽



1924년 3월 30일 ~ 1997년 12월 25일.

1. 개요2. 생애3.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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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 아나운서(방송원)로, 전형규, 리춘히, 김주먹, 최성원 등과 더불어 북한 방송계에서 '5대 방송원'으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2. 생애

1924년 함경북도 청진부 사구리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서 1938년 청진상업보습학교, 1942년 중앙당학교를 각각 졸업하였다. 그는 1945년 8.15 광복을 맞이한 이후에 함경북도 성진방송국 아나운서로 근무했으며 1947년부터 평양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근무했다.

방송 생활을 하는 동안에 북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 왔으며, 1960년대 공개방송 <방송음악회>, <방송야회> 등을 진행해 주민들의 박수를 받았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 대표팀 경기의 현지 생중계를 진행했으며,[1]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 13회 세계청년 학생축전 개막식과 폐막식 중계를 진행하게 되어서 굵직굵직 한 행사와 함께하며 전형적인 '북한 정권의 입'으로 활동 해왔다. 이 타이틀은 전형규 등 후대 아나운서들에게도 전승되었다.

1966년에 인민방송원, 1984년 로력영웅 등 무수한 수훈을 받고 <방송화술론> 등을 지어 후대 아나운서들의 귀감이 되도록 했으며, 탈북 방송작가 장해성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이 썼다는 <화술론>의 실질 저자였다고도 한다.

1997년 12월 25일 향년 73세로 사망하였으며 사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2016년 5월,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에서 김정은이 리상벽을 과학, 문화예술, 체육의 발전을 위하여 힘과 재능을 다 바친 원사, 교수, 박사, 작가, 인민배우, 인민체육인 중 한명으로 꼽았다.

3. 참고 자료


[1] 월드컵 직후 대한민국의 방송 말투를 배우자는 건의를 했다가 혁명화를 가기도 했다는 썰이 있다. 이외에도 훗날 방송에서 리춘히가 회고한 바에 의하면, 1980년대 초반에도 '이색적인 방송문화를 들여오자는 종파분자의 말에 넘어갔다'고 하는데,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무슨 일이 한번 있었던 것은 맞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