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8 09:38:57

레미 킬미스터

<colbgcolor=#000><colcolor=#fff> 레미 킬미스터
Lemmy Kilmister
파일:external/gipsypaladini.com/Lemmy-1.gif
본명 이언 프레이저 킬미스터
Ian Fraser Kilmister
이명 이언 프레이저 윌리스
Ian Fraser Willis
출생 1945년 12월 24일
영국 스태포드셔 주 스토크온트렌트
사망 2015년 12월 28일 (향년 70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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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장르 하드 록, 헤비메탈
악기 보컬, 베이스 기타
소속 호크윈드 (1970~75)
모터헤드 (1975~2015)
활동 1965년 ~ 2015년
자녀 2명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생애2.2. 뮤지션으로서의 삶
3. 음악적 특징4. 개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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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EMMY IS GOD[1][2]

영국의 로큰롤 밴드 모터헤드의 작곡가/리드싱어/베이시스트. 동시에 로큰롤 트리뷰트 성격의 컨셉 밴드인 헤드캣의 리더이기도 하였다. 마초적 이미지의 헤비한 음악, 항상 턱을 높게 치켜들고 더 높이 세운 마이크를 내린채 걸걸하게 내지르는 특유의 외침같은 보컬 자세로 익숙하다.

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생애

1945년 크리스마스 이브 잉글랜드 태생으로 본명은 이안 프레이저 킬미스터(Ian Fraser Kilmister). 1967년 런던으로 상경해 71년부터 스페이스록 밴드 호크윈드에 가입하여 베이시스트로 활동하였으나 75년 마약 복용 혐의로 검거되면서 해고당한다.[3][4] 이후 친구를 포함한 멤버들을 규합해 자신의 밴드인 Bastards개자식들를 만들고 밴드명 때문에 방송출연이 금지되자 1975년 밴드명을 Motörhead로 변경하면서 본격적으로 오버그라운드에 이름을 알린다. 이후 말년까지 투어를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다 2015년 생일파티 이틀 후부터 몸의 이상을 느껴 입원해 검진을 받게 되는데, 뇌와 목에서 말기 암이 발견되어 2~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고 퇴원하여 12월 28일 작고하였다.[5]
2016년 1월 9일 치루어진 레미의 추모 및 장례식
2016년 1월 9일, 레미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모터헤드의 매니저 토드 싱어먼의 진행 아래 레미의 아들 폴 인더, 미키 디[6], 롭 핼포드, 데이브 그롤, 슬래시(기타리스트), 로버트 트루히요, 라스 울리히 그리고 트리플 H 등등 생전 고인과 깊은 연이 있던 사람들이 참석하여 추모의 뜻을 전하였다.

문서명은 레미 킬미스터이지만, 보통 팬들은 성을 떼고 "Lemmy"(레미)라고만 부른다.

2.2. 뮤지션으로서의 삶

터프하고 '놀 줄 아는' 남성의 아이콘으로서 80년대 초반부터 급부상하여 마초적인 음악인의 플래그십이 되었다. 모터헤드 동시기 또는 그 이후 세분화된 헤비메탈 하위장르들이 흔히 흑마술과 박쥐 뜯어먹는 음악(...)으로 이미지가 각인된 것에 비해 이쪽은 경쾌한 로큰롤의 느낌을 일부 간직하고 있어서 나름 대중적인 면이 있었다. 본인의 외모부터가 근육질에 큰 코, 각진 턱, 수염, 긴 흑발이어서 '멋진 남자'의 아이콘으로 기능하며 걸걸하고 가래끓는듯한 하루에 줄담배를 100개피 정도는 펴야 나올듯한 보컬로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고... 음악이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WWE의 레슬러 트리플 H의 등장곡으로 쓰인 The Game을 떠올리면 된다.[7]

그냥 보면 악기 좀만 다루고 쾌락만 추구하는 겉멋만 든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Ace of Spades, Overkill, Too Late Too Late, We Are Motörhead, Damage Case 등 많은 히트곡들을 써낼정도로 능력자이다. 초창기 앨범의 히트곡만으로 앨범도 거의 내지않고 수십년동안 울궈먹는 여타 밴드와[8] 달리 데뷔 때부터 레미가 죽는 해까지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안에 앨범을 꾸준하게 내왔고, 2015년 그가 죽은 해에 마지막 유작인 Bad Magic은 23번째 앨범이었다!!.

앨범 작업할 때도 상당히 진지한 입장이며 절대 허투루 앨범 작업을 하지 않았다. 락 스타로서 놀고 먹긴해도 뮤지션으로서 기본적인 자세를 가지고있다. 과거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가 베이스를 연주할 줄 모르는데도 밴드에 들어갔다고 하였을 때 기본적으로 악기도 연주 할 줄 모르는 놈이 무슨 밴드하냐고 일침을 가했고[9], 메탈리카와 합동 공연 전 리허설을 할 때 메탈리카의 문제점이 드럼에 있다는 것을 바로 캐치할 정도로 음악적 실력이 상당한 것을 알 수 있다. 메탈리카 드럼이 문제인건 웬만한 사람들 다 아는데...

후대에는 레미의 음악을 헤비메탈 내지는 스피드메탈 등으로 분류하며 로큰롤에서 헤비메탈로의 장르 확장을 개척한 대부로 부르지만, 본인은 매 콘서트마다 "Don't forget us. We are Motörhead. We play Rock 'n Roll!"이라는 고정멘트를 하며 자신의 음악을 '꽤 빠른 로큰롤'이라고 정의하는 편이다.[10]

모터헤드의 음악 스타일이 80년대 중후반을 풍미한 스래시 메탈의 태동에 큰 모티브가 된지라, 특히나 '빅4(슬레이어,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스랙스)'를 비롯한 스래쉬 메탈, 80년대 후반 헤비메탈 뮤지션들에게 공통적으로 대부로 존경받는 인물로[11] 전성기 당시 영향력은 소위 말하는 롹커들의 롹커. 오늘날까지도 헤비메탈에 입문하는 음악인 또는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디스코그래피를 거슬러 올라가다 모터헤드의 커버곡을 발견한다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이 스스로 그의 팬임을 언급하는 등 여러 경로로 레미 킬미스터의 발자취를 접할 수 있다.

오지 오스본과는 각별한 사이였고[12] 오지 오스본이 은퇴를 고려하고있을 때 상당한 곡들을 써주었고 히트를 첬다.[13] 이 때 써준 대표적인 곡들이 Mama I'm Coming Home,' 'See You on the Other Side,' 'Hellraiser'[14], 'I Don't Want to Change the World,' 'Desire"가 있다.

오지 오스본과는 클럽에서 처음 만났는데, 이 당시 둘다 뮤지션으로서 자리를 잡은 상태였기 때문에 서로 바로 알아봤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는 주량이나 노는게 리즈 시절 때라 금방 친해졋다고 한다.

저 마초적인 외모와는 달리 상당히 유머러스한 성격에 락 뮤지션으로써 쓸데없는 가오도 안잡고 친화력이 높아서 메탈 밴드 후배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상남자 이미지와는 달리 KITKAT같은 과자 광고에 출연하기도 하였고,[15] 공식적으로 그의 마지막 영상은 핀란드 우유 회사인 Valio의 광고일 정도로 재밌는 아저씨로도 유명했다. 이 광고엔 그의 즉흥 연기가 담겨져있는데, 우유 광고임에도 불고하고 "난 우유 따윈 절대 안마셔, 이 XX들아"라는 대사를 쳐준다. 그리고 광고가 나가던 해에는 레미가 사망한 다음해라서 광고가 끝난 뒤엔 그를 추모하는 글을 보여준다. https://youtu.be/GxmqAkNQP8c 이외에 BBC의 코미디 패널 예능 프로그램인 <Never Mind the Buzzcocks>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3. 음악적 특징

브루스 디킨슨, 오지 오스본, 롭 핼포드와 함께 영국 헤비메탈 그 자체를 상징하는 뮤지션으로 꼽힌다.

베이스 연주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우선 베이스 앰프의 오버드라이브를 최대치로 설정하고, 기타처럼 코드를 잡고 피킹으로 친다. 이 때문에 레미의 목소리와 베이스의 소리가 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기타 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도 하다.[16] 파워 트리오의 기본적인 1기타+1베이스로 큰 소리를 내다보니 베이스 음량도 최대치로 올려놔서 저음역대가 강조되지 않은 단순하고 일직선적인 음악을 한다. 그리고 그게 모터헤드의 가장 중요한 컨셉이었다.

여러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지만[17] 그가 가장 많이 이용한 베이스 기타는 리켄배커 4000 시리즈의 베이스 기타들이다.[18] 이를 기념하여, 리켄배커에서는 4004 모델을 기반으로 레미의 시그니춰 베이스를 발매하였다. 이름하야 'Rickenbastard'. 시그니춰 베이스를 연주하는 레미의 모습. 정식 발매명는 4004LK이다. 그의 베이스는 장례식 때 마지막으로 소리를 낸 후 박물관에 기증이 되었다.

목소리가 상당히 특이한데, 특유의 긁어대는 듯한 목소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레미의 보컬은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너무 특이하여 모창하기 어려운 사례중 하나로 꼽히곤 한다.[19][20] 단순히 긁는 목소리일 뿐만 아니라, 목소리 자체가 굵직해서 특유의 마초스러운 사운드를 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호크윈드 시절의 공연을 보면 레미의 목소리는 긁는 소리 없이 매끄럽게 흘러가지만 나중에도 들을 수 있는 굵직한 톤이 명확하게 잡혀 있다. 다만 보컬 자체에 음정이랄 게 거의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다소 건조한 느낌을 준다.

또한 특징은 아직까지 레미 킬미스터의 스타일을 직접적으로 계승했다 할 만한 뮤지션은 없다는 점이다. 그가 그만큼 독보적인 존재였고, 대체 불가의 카리스마를 지녔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4. 개인사

친부는 전직 영국공군 군종병이었고 생후 3개월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였고, 어머니는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인 럭비 선수와 결혼을 하였는데 가족들과는 사이가 서먹했던 모양. 학창시절 어느 학생이 여자 애들에게 둘러 쌓여서 기타 연주를 하는 것을 보고 그 때부터 악기 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6살 때 비틀즈 공연을 보고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한다. 그후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밴드를 하면서 음악인으로 살게된다.

학창시절을 웨일즈 서부 끄트머리 지역에서 보냈는데 그 지역의 유일한 잉글랜드 출신인 연유로 시비를 걸어오는 전교생들과 매일 주먹다짐하고 싸워댔다고 한다.[21] 특유의 거친 성격은 이때부터 유래 했었을 것이다. 레미(Lemmy)란 예명은 'Lend me'의 변형인데 이 학창시절에 하루가 멀다하고 돈을 빌려대서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당대 락스타치곤 좀 소박하게 살았는데, 혼자 살만한 적당한 크기의 아파트에 살았으며 쉬는 날에는 집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비디오 게임을 상당히 좋아했는데 여긴 최신 게임기인 엑스박스부터 시작해서 옛날 레트로 게임, 솔리테어 전용 터치 모니터 게임기, 카지노용 슬롯 머신 등 게임 자체를 좋아했다. 오락실에서 게임하고 있는 사진도 심심치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집에 따로 아케이드 게임기를 구비는 해놓았지만, 오락실에 직접 가서 게임을 하는 것을 더 선호한 듯 하다. 종종 LA 자택 주변에 있는 Rainbow Bar & Grill 식당/술집에서 슬롯머신 게임기로 놀았다고도 한다.

별세하기 전까지 최소 2,000명 이상의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친자관계가 알려진 자녀는 아들 둘인데 한 명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입양되었다 2010년대에 와서 겨우 찾았고, 다른 한 명은 6살 때까지 존재를 몰랐다고.. 공연 뒷풀이 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인자리에서 늘 자기 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등 자신의 혈육에 대해선 소중히 생각하는 듯 하다

아들 중에 Paul Inder가 있고 아버지 처럼 음악을 한다, 현재는 예명으로 Paul Inder Kilmister라는 이름을 쓴다. 처음 만났을 땐 자기와 어머니를 책임지지 않은 것을 원망하였으나, 정기적으로 계속 만나고 자기 역시 이쪽 계열 음악과 생활을 하다보니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프로듀서로 주로 활동을 하는 듯 하다.

평생 술과 담배 등, 무엇보다도 놀기를 미친듯이 좋아했다. 평생 놀아온 이력을 고려해보면 칠순잔치까지 치르고 죽기 이틀 전에야 몸에 이상을 느끼고 편안히 눈을 감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것이다. 이하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모터헤드 문서나 한국의 네티즌이 작성한 레미 킬미스터에 대한 글을 같이 읽으면 좋다.

술은 건강이 악화되기 직전까지 근 40년간 하루에 잭 다니엘스를 한 병 이상 꼭 마셔 제꼈다. 얼마나 마셨냐면, 그의 집에 방문했던 뮤지션들이 잭 다니엘스를 권유 받아서 한 병 받았는데 그 때 다들 한 병을 나눠마시라는 줄 알고 서로 나눠 마시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레미는 다른 병들을 가져와서 1인당 1병씩 주면서 본인은 그걸 맥주 마시듯이 마셧다고 한다. 또 투어를 돌아다닐 때마다 모터헤드의 로드크루들은 각종 장비와 함께 무수히 많은 잭 다니엘스가 들어있는 여러개의 박스와 함께 투어를 진행했다.

술과 담배는 많이했지만 헤로인 같은 마약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약물 때문에 이른 나이에 망가진 것을 보고 오랫동안 하고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약은 하지 않았다 하고, 오히려 주변에 마약하는 사람이 있으면 두둘겨 팼다고 한다. 또한 동시대의 많은 락스타들이 난잡한 폭행이나 마약, 음주운전 등으로 온갖 물의를 일으켰던 것에 비해 개인적 쾌락을 즐겼을뿐 상당히 젠틀하고 과묵한 성향이었다. Fast Die Old라는 다큐멘터리에서는 투어에 동행한 오랜친구가 아에 대놓고 헤로인을 복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그는 마약에 대해 회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앞서 여러 뮤지션들의 사례가 있었지만 지미 핸드릭스의 약물복용으로 인한 사망이 결정적이라고 한다. 그렇게 재능이 넘쳤던 뮤지션이 약물로 허무하게 가버려서 짧은 음악 인생을 보내고 가버린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아들인 Paul Inder는 16-17세쯤 아버지와 친하게 지낼 쯤에 늘 강조했던 부분이 마약만큼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였다고 한다.

팬 서비스도 대단해서, 남녀 가리지 않고 사인이나 사진도 거부하지 않았다. 후에 모터헤드의 기타리스트였던 필 캠벨이 어린시절, 레미의 전 밴드 호크윈드의 사인을 받고 싶어 호텔을 서성거렸지만, 유일하게 나와서 팬들을 일일이 상대해주고 사인을 해주었던 건 레미 뿐이었다고 답했다. 또한 물심양면으로 여성이 주체가 되는 밴드들의 데뷔와 활동을 도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 당시 여성밴드들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해보면 시대를 앞서 나간 인물.

메탈리카의 제임스 헷필드의 인터뷰에 의하면 레미가 술이나 오락을 엄청 즐겻지만 그거 때문에 무대 위에서 술취해서 쓰러진다거나, 망언을 한다거나, 스캔들이 나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오히려 소름끼쳤다고한다. 그만큼 공과사를 확실하게 구분해서 무대를 망치는 일이 없었다는 것.

오히려 이런 점이 더 진짜 마초이즘에 가까운 편이라 락메탈계에서 대표적인 마초로 아직도 꼽히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헤비메탈 뮤지션들중에 레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22]

나치 관련 물품을 수집하는 걸 좋아해서 이런 쪽에서 꽤나 까였다. 레미 본인은 그냥 멋있어서 모았던 거라고. 자기가 사귀었던 흑인 여자친구들도 그거 보고 뭐라 안그랬는데 애먼 데서 괜히 트집잡는다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한적 있다. 생전 정치 성향은 아나키즘이나 리버테리안에 가까웠다. 다만 2차대전 직후에 태어난 세대여서 논란이 좀 더 있었는 듯하다. 한국으로치면 6.25 전쟁 직후에 태어난 뮤지션이 북한이나 일본 제국 군인관련 물품을 수집을 한 것.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유럽군인들에게 나치의 물품들은 주요 컬렉팅 대상이였다. 그것도 돈이 돼서가 아니라 단지 멋지다는 것 때문에. 실제 나치 관련 물품은 현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높게 치는 디자인들이다. 군 상층부에서 군사사기고양 및 입대율을 높이기 위해서 아예 대놓고 패셔너블하게 디자인을 하도록 했기 때문에 디자인 자체만 까놓고보면 멋스러운 디자인들이 많다. 나치와 일본군이 워낙 막장이어서 본의아니게 디자인에 의미부여가 된 것 뿐이지 실제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나치물품들은 디자인으로 까일만한 물건들이 절대 아니다. 애초에 레미는 노래나 평소 인터뷰에서 이들의 사상에 대해 말한적도 없다. 상기하였듯이 아나키즘적 성향이어서였는지, 인터뷰 등에서 정치와 관련된 질문을 받으면 "모든 정치인들은 다 XXXX들이야(All politicians are assholes)"라는 취지의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참고

또한 이러한 성향에 걸맞게 인종차별주의를 규탄하기도 했다.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입장. 동시에 이를 "심히 멍청한 짓(So fxxxxxg dumb)"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참고 영국의 록 음악 역사를 보면 흑인 음악에서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의 이유로 제대로 된 공연도 하기 힘들었던 흑인 블루스 뮤지션들이 영국에서는 대스타 대우를 받기도하는 등 흑인 뮤지션에 대한 입장 자체가 달랐다. 이 흑인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고 등장한 밴드들이 대표적으로 비틀즈와 롤링스톤즈가 있다.


[1] 영화 에어헤드에 나온 명대사. 브랜든 프레이저 : 레미랑 신이 레슬링을 하면 누가 이길까? / 경찰 : 레미? 스티브 부세미 : 땡! / 경찰 : 신? / 스티브 부세미: 틀렸어, 이 븅신아. 이건 함정 퀴즈야. 레미가 바로 신이지롱! [2] 둠 이터널에서도 이스터 에그 형태로 등장한다. [3] 호크윈드가 미국 투어를 돌던 중이었는데,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경찰이 레미가 갖고 있던 암페타민 코카인으로 오인하여 그를 검거하였고, 때문에 레미는 며칠 동안 투옥되어야 했다. 결국 이 때문에 공연 몇 개가 취소되기도 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밴드는 그를 해고하기로 하였다고... [4] 다른 매체에서 레미가 마약을 엄청했다곤 하지만 이는 틀린 이야기고 레미는 이후로 마약엔 손도 대지않았지만 술과 담배는 엄청 해댔다. 술과 담배 역시 Drug에 포함이되기 때문에 생긴 오해. [5] 모터헤드의 매니저 토드 싱어먼(Todd Singerman)은 대외적인 영향을 고려하여 사망 후에 병세를 공개하려 했지만, 레미는 2016년 초 쯤에는 꼭 공개적으로 발표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 것. [6] 모터헤드의 마지막 드러머 [7] 트리플 H는 레미의 열성 팬이어서 레미에게 곡을 부탁했고, 흔쾌히 수락한 레미는 트리플 H가 레슬매니아에서 경기를 가질 때 2차례 입장곡 라이브를 해 주었다. 정확히는 WWE 담당 작곡가인 짐 존스턴(Jim Johnston)이 기본 코드를 만들어서 그대로 쓰려고했는데 트리플 H가 레미 킬미스터에게 본인의 전용 주제곡 참여를 부탁해 짐 존스턴이 작업한 코드를 기반으로 지금의 The Game를 작곡했고 작업한 김에 짐 존스턴이 작곡한 다른 2곡인 에볼루션의 테마곡 Line In The Sand와 King of King도 모터헤드가 녹음해주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레슬러 트리플 H의 외모나 레슬러로써의 캐릭터도 레미 킬미스터스러운 Bad Ass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8] 소위 80년대 락스타 계열쪽의 밴드들이 이런 경우가 유독 심하다. 초창기 앨범의 히트곡으로 수십년간 울궈먹고, 밴드가 해체 후 재결합하더라도 더이상의 새 앨범 작업을 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9] 레미는 시드에게 베이스를 가르쳤던 적이 있는데 그 이후 갑자기 시드가 와서는 '나 섹스 피스톨즈에 가입했어요!' 라고 하자 '너 베이스 못치잖아..?' 라고 한적이 있다. 그래도 친분은 있는듯. [10] 레미가 헤비메탈을 꽤 빠른 로큰롤이라고 정의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로큰롤이 처음 나왔을 때는 꽤 빠르게 연주하는 블루스 음악이라고 정의했었고, 하드 록의 출발선도 로큰롤과 동일했다. 초창기 헤비메탈을 들어보면 딥 퍼플 같은 슈퍼 밴드가 아닌 이상 간단한 코드와 리프를 상당히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정도였다. 헤비메탈은 거기에 좀더 무겁고 건조한 사운드톤을 실으면서 본격적으로 하드 록과 갈라진 것. 하지만 레미의 성격상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시끄럽게 놀면서 즐기면되지 뭘 그렇게 장르를 복잡하게 나누냐"는 식으로 헤비메탈이던 파워메탈이던간에 그냥 즐기면 장땡식으로 정의했을 수 있다. 실제로 TV 프로그램에 나와 리틀 리처드의 곡을 곧잘 부르기도 했다. [11] 2011년 뉴욕에서 스래시 메탈의 빅4들이 함께 모여 콘서트를 하며 모터헤드의 overkill을 전체 다같이 연주한 적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 모터헤드 3명이서 내는 소리가 저 20명보다 더 크다’는 반응이 많았다... [12] 영국 태생이면서 미국에 거주하는 몇 안되는, 메탈 계열의 음악을 하는 동포였기에 그렇다. 두 사람 모두 비틀즈 광팬이었다는 것도 친분을 트게된 요인 중 하나였다. [13] 레미는 오지에게 몇몇 곡을 써준 댓가로 개런티를 받았는데, 그 곡들로 얻은 수익이 여태까지 십여년 넘게 자기가 모터헤드 활동을 하면서 벌었던 돈 보다 더 많은 금액이었기에, 오지가 생각보다 돈을 잘버는 락스타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14] 이곡은 본인 앨범에 본인 버전으로도 수록하였다 [15] 심지어 이 광고에서는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16] 실제로 모터헤드의 공연에 친구인 브라이언 메이와 과거 모터헤드 멤버 에디 클라크, 그리고 스컹크 아난시의 기타리스트 “ACE” 를 불러 총 4명의 기타리스트가 모여(모터헤드의 필 캠벨 포함) <Overkill>을 연주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기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였다. [17] 깁슨 선더버드나 B.C Rich 베이스도 연주한 적이 있다! [18] 4001, 4003, 4000, 4004 베이스를 연주하였다. [19] 해외에서는 레미를 모창하려면 하루에 술 한박스 담배 한 보루 씩을 피면 된다는 농담이 있다. [20] 메탈리카의 전 베이시스트 제이슨 뉴스테드의 백보컬이 레미의 목소리와 비슷하다. [21] 본인 말로는 700대 1로도 싸운 경험이 있다했다. [22] 또래 세대인 퀸(밴드) 브라이언 메이 역시 그의 추도사에서 레미를 두고 "평화주이자이며 생각이 매우 깊고, 진심으로 친구들을 아낄 줄 알았던 사람(Yet as a person he was a pacifist, a deep thinker, and a man who cared profoundly about his friends)"이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