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일본 |
1. 개요
러시아어: Японо-российские отношения일본어: 日露関係 (にちろかんけい)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 전반적으로 불편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양국은 세계 각국을 자국어의 글자 순으로 나열하면 상대국이 제일 뒤에 온다. 러시아어의 키릴 문자 기준으로 일본(Япония의 Я)이 제일 마지막이며, # 반대로 일본어의 오십음도를 기준으로 러시아(ロシア의 ロ)가 제일 마지막이다. #[1]
2. 역사
일본과 러시아가 접촉한 지 어언 20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 세월이 무색하게 우호적이었던 시기는 매우 드물다. 양국이 본격적으로 대면하기 시작한 19세기 이래로 러일전쟁, 제2차 세계 대전, 냉전 등 적대적인 사건들이 주를 이뤘다. 1990년대~ 2010년대의 탈냉전 기간에 그나마 우호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엔 쿠릴열도 분쟁의 해결과 평화조약의 체결이 논의될 정도였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본이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참여하면서 관계가 다시 냉각되었다.이러한 갈등 위주의 역사는 동아시아의 여러 다른 대국관계와 비교해도 이례적이다.
- 중러관계: 공공의 적에 대한 이해 관계가 일치하고 권위주의 체제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 중일관계: 한국보다 적극성이 낮긴 했지만 일본이 중국 중심의 질서에 순응하는 관계였다. 근대에 중일전쟁으로 원수지간에까지 갔지만 전후에는 여러 정치적 여건으로 말미암아[2] (민간 감정은 여전히 썩 좋진 않으나) 정부간 관계는 생각보다 우호적이다. 1978년엔 중일평화우호조약을 체결했다.
- 한러관계: 구한말 일제의 국권 침탈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조선은 친러 정책을 폈고, 러시아 제국은 일제의 대륙 진출을 저지하고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을 돕던 관계였다. 냉전 시기엔 이념 대립이 있었지만 북한의 뒷배를 봐주는 것은 주로 중국이어서 주된 갈등 대상은 아니었고, 탈냉전 후 러시아가 반서방 노선을 타는 중에도 적당히 현상 유지를 지속했다. 다만 늘 그렇듯이 북한이 변수로, 2024년에는 2022년 이래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파병하면서 한러관계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 한중관계: 전근대엔 한국이 중국에 조공하면 중국은 한국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관계였고, 근대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협력하는 관계였다.
- 한일관계: 미국을 사이에 둔 간접적 동맹이다. 1960년대~ 1980년대의 냉전 국면과 2010년대 중후반 이후의 신냉전 국면 속에서 안보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독도 등 역사적 이슈가 있지만 양국은 오늘날 상대국이 관광객 1위일 정도로 인적 교류가 활발하다.
2.1. 초기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 제국-일본 제국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양국은 각각 에도 시대와 로마노프 왕조의 제정 러시아 시대였던 18세기 초에 덴베가 캄차카 반도에서 표류하던 것을 러시아 탐험가들이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처음 조우했다. 이 때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덴베를 통해 일본어 교육이 실시했고 덴베 본인도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표류하여 러시아까지 방문했던 다이코쿠야 고다유가 예카테리나 대제의 초상화를 일본으로 가져왔고, 초상화를 히다야가 모사한 바 있다.
정부 차원에서의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된 것은 19세기이다. 양국은 식민 개척 과정 도중 양 세력의 영향권이 맞물리는 사할린과 쿠릴 열도의 영유권을 두고 본격적으로 대적하는데, 1855년 러일 화친 조약을 맺어 사할린을 공동 관할구역으로 만들고 쿠릴의 경우 이투루프(에토로후) 이남을 일본이, 우루프(우룻푸) 이북을 러시아가 확보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5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영토를 교환했는데 공동 관할지였던 사할린은 러시아에, 우루프 이북의 러시아령 쿠릴 열도 전역은 일본에 양도되었다.[3]
1891년 방일한 니콜라이 러시아 황태자가 일본인 경찰관에게 피습되는 오쓰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 제국은 열강으로 같은 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부설하는 등 동아시아로 진출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당시 러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했던 일본 제국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외교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러시아의 보복을 두려워해 민관을 가리지 않고 사죄의 뜻을 표현했다. 러시아 제국은 일본 제국의 범죄자 처벌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이후 일본과의 외교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참고로 오쓰 사건의 판결은 정부로부터 독립된 일본의 근대적 사법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전국이 된 일본 제국은 전리품으로서 요동반도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고서 통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급격한 팽창으로 인한 만주 일대의 자국 영향력 저하를 우려한 러시아 제국이 자신들과 의견이 일치하는 독일, 프랑스와 함께 삼국간섭을 주도, 일본 제국의 요동반도 영향력 행사를 포기하도록 일본을 압박하였다. 삼국간섭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한 일본은 이에 굴복하여 요동반도를 타의적으로 포기하였지만 이에 대한 반발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이 거세졌다. 또한 한반도에 대한 종주권과 관련해서도 양국 간의 갈등이 빚어졌고 이는 후술하는 러일전쟁으로 귀결되었다.
참고로 20세기 초에 러시아내 타타르, 바시키르인 등 일부 튀르크계 무슬림들이 일본으로 이주했다. 타타르, 바시키르인들은 일본에서 모스크를 세우면서 타타르인 공동체, 바시키르인 공동체를 형성했다.
2.2. 근대
2.2.1. 러일전쟁
일본 입장에서는 아시아의 패권국 청나라를 상대로 승리하여, 청의 한반도의 영향권을 잘라 내었고, 식민지배의 기반을 마련한다. 일본의 세력 확대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러시아는 한반도 내 패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두 나라는 한반도를 놓고 대립을 벌였다.하지만 당시 정세상 러시아와 일본의 패권 다툼은 일본에 크게 불리한 대결로 여겨졌다. 애시당초 러시아에 있어 일본은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약소국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며 일본을 지원하는 미국과 영국 역시 일본의 역량을 의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대피하자, 한반도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유한 러시아는 일본을 꾸준히 압박하였다. 궁지에 몰린 일본은 심지어 아관파천마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에 몰렸다.
러시아가 태평양 지역에 가진 부동항이 없기 때문에 부동항을 가지기 위해 한국과 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러시아 내에선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복잡한지라, 정작 러시아는 충분한 전쟁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일본은 이미 전쟁을 할 마음을 굳히고 있었고 내부에서는 전시 동원체제의 확립과 아시아주의 라는 이념무장, 만주 지역에 대한 대러시아 첩보망을 갖춘 상태였다. 모든 게 러시아에게 불리했다. 결국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약소국이라 생각했던 아시아의 신생 제국 일본에 패배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 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축출했고, 열강들로부터 한반도에 대한 독점적인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입지를 바탕으로 1905년 을사조약으로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어 조선의 식민지화 작업에 착수했다. 또한 러시아령이던 사할린 섬을 북위 50도선을 기준으로 반분하고 그 이남에 가라후토청을 설치해 다스렸다.
2.2.2.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의 동맹국이던 프랑스와 일본의 동맹국이던 영국이 협상국을 결성하고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함에 따라 러일관계도 재설정되었다. 일본은 러일전쟁 도중 노획한 러시아 함선들을 러시아에 다시 되팔았다. 전쟁 기간 동안 만성적인 군수품 부족에 시달렸기에 러시아는 1916년 일본에도 접근해 포탄,소총,카빈총,산포, 곡사포 등을 결제했다. [출처]2.2.3. 소일관계
자세한 내용은 소일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2.3. 현재
러일 양국은 소련 붕괴 후에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식으로 평화 협정을 맺지 않았다.러일 갈등의 대부분은 쿠릴 열도 분쟁이다. 2000년대 이후 일본은 북방영토 문제를 집중적으로 쟁점화했으며, 러시아 역시 끊임없이 일본 근해에 폭격기를 근접 비행시키거나 대미 협력국인 중국과 공동 해군 작전을 쓰가루 해협 부근에서 벌이는 등의 대일, 대미 무력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그나마 쿠릴 열도 문제를 제외하면 양국은 최대한 외교 관계를 훼손하려 하지 않는 편이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탈냉전 이후 2000년대~2010년대는 역사를 통틀어서 러일관계가 제일 우호적인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베 신조가 블라디미르 푸틴한테 익살스럽게 달려갔던 것도 그 한 단면이다. # 푸틴이 일본에 방문했을 때 예고 없이 일본 유도 도장에 가서 대련한 적도 있고, # 노다 총리와 유도 이야기를 하며 '아리가토' 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 2005년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유도 영웅을 만나고, # 일본 토종견인 시바견을 선물받기도 했다. #
이러한 관계는 러시아가 유로마이단 이후 반서방의 기조를 강화하면서 조금씩 금이 갔다. 일본은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사태 이후 서방국들과 공조하며 러시아에 적극적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추가 제재를 단행하거나 #, 친러시아파 자산을 동결하고 #, 독자 제재까지 검토했다. # 러시아는 더 나아가 2023년 전승기념일에 일본이 전범국임을 명시할 정도이다. # 본래 2020년에 일본과의 우호관계를 위해 일본을 제외하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의 날'로 이름도 바꿨었는데 이러한 조치를 완전히 되돌린 것이다. 즉, 2010년대의 밀월은 2020년대에 들어서 완전히 없던 얘기가 된 셈이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남중국해 등의 분쟁에 대해서 중국 편을 들고 있다. 중, 러가 동시에 센카쿠 열도에 진입했을 때,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다르다며 중국 쪽에만 항의를 했다. #
2.3.1. 2016년
2016년에 러시아와 일본은 북극해로 진출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극동방위협력을 강화했다. # #푸틴은 일본과 관계발전을 기대한다는 발언을 했다. # 그리고 2016년 12월 16일, 야마구치 현 나가토 시에서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비자발급 요건 완화 등을 발표했다. # 그리고 외교·국방각료협의(2+2), 북방 영토(쿠릴 열도 4개섬) 특별한 제도 하에서 공동경제활동도 협의했다. # 일본은 러일 간의 안보협력도 강화할 방침도 보이고 있다. #
그러나 러시아는 최근 일본의 사드 배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양국의 관계는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다.
2.3.2. 2018년
5월 21일에 일본의 산케이 신문은 러시아와 일본이 외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2+2 협의를 연내에 개최하기로 합의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 8월 18일에 러시아와 일본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한 화물수송로 정비에 나섰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했다. #9월 10일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방경제포럼이 열렸고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했다. # 그리고 쿠릴 문제 등을 논의했다. #
9월 12일 푸틴이 일본측에 러일평화 조약을 맺자고 깜짝 제안을 해왔다.그에 비해 일본 측은 쿠릴열도 반환이 먼저라는 목소리다. # 일본과 러시아는 11월 중순에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 기간에 현지에서 양국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조정에 들어갔다. #
지난 7월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사할린 섬과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2개의 다리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도쿄 신문이 10월 15일에 보도했지만, 부정적인 의견이 찬성의견과 각각 절반씩 차지했다. # 그리고 12월 6일에 아베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2019년에 열리는 세계유도권선수대회에 참석을 요청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
러시아는 12월 13일에 앞으로 일본과의 평화협상이 진행될 경우, 주일미군문제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 시리아 내전과 관련해서도 러시아와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미국 편을 드는걸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
2.3.3. 2019년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사건으로 인한 갈등 속에서 러시아가 일본의 태도를 보고 이틀 연속 일본 공해 근처까지 가는 무력시위를 벌었다. 그리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1월 21일에 러일 평화조약의 조기체결은 어렵다고 밝히면서 조기체결을 추진하려는 일본을 견제했다. # 1월 22일에 푸틴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모스크바에서 만나서 쿠릴 열도 문제,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 논의했다. #또한 중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강하게 못 나온다고는 해도 어쨌든 미국 입장을 대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5]
일본은 지금도 러시아에 대해서는 반러감정이 있어서 60%이상이 러시아에 대해 비호감이라고 집계되었다. # 그리고 일본의 재특회나 넷우익 같은 사람들은 반한, 반중, 반미 성향 말고도 반러 성향도 자주 보이는편이다.
2월 2일에 일본 어선이 러시아 근해에서 불법으로 조업하다가 러시아 경비정에 의해 끌려갔다고 NHK가 보도했다. #
5월 30일에 러시아와 일본은 외교/국방회의를 개최했지만, 이지스 어쇼어, 쿠릴 열도를 두고 갈등을 벌였다. #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의 미쓰이 물산이 러시아의 노바텍이 추진하는 야말 반도의 북극 LNG-2 사업지분의 10%를 사들이기로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
6월 29일에 오사카의 G20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난항을 겪는 양국간의 평화조약체결을 위한 교섭에 박차를 가하기로 합의했다. # 9월 5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평화조약체결에도 협의를 가지기로 합의했다. #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사이의 긴밀한 관계 등 여러가지 이유로 평화조약을 맺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
12월 17일에 러시아 국경수비국이 조업중인 일본 어선 5척을 어획량 조사를 목적으로 나포해갔다고 NHK가 보도했다. #
2.3.4. 2020년대
자세한 내용은 러일관계/2020년대 문서 참고하십시오.3. 문화 교류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문화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일본/문화 문서 참고하십시오.
러시아를 대표하는 인형인 마트료시카는 일본을 방문한 러시아인이 일본의 오뚝이 인형에서 착안하여 만든 것이다. 또한 일본의 유도가 러시아로 전해져 삼보의 뿌리가 되는 등, 근대부터 많은 문화 교류가 있었다. 현대에도 대도숙 공도 등의 일본 무술들은 러시아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근대 일본의 소설들은 러시아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만화가, 애니메이터 중에서도 러시아 예술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꽤 있다.
일본과 정치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일본 요리는 인기가 있다. 특히 일본과 가장 가까운 러시아 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지역민들이 좋아한다. 가끔 유명 관광지나 지하철, 대학 부지를 코스프레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기행을 벌이는 러시아인들도 있다. 또한 2015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가수 오리가도 일본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홋카이도는 러시아와 매우 가까운 곳이라서 러시아어 표기를 볼 수 있고 러시아 선원들이 홋카이도에서 머무는 경우도 있으며 홋카이도에서는 러시아어 수업이 매우 활발한 편이다. 그리고 소수지만 홋카이도를 비롯한 일본 내에는 러시아 혼혈들도 있다. 일본에도 러시아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어서 이들의 대부분은 러시아인들이지만, 일부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독일계 러시아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반면에 러시아 제국, 소련시절에 건너온 볼가 타타르인, 바시키르인, 크림 타타르인 등 투르크계 민족들은 일본에 건너온 경우도 있지만, 이들은 터키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러시아에도 소수의 일본인 공동체가 있고 일부는 러시아에 귀화했고 정치인으로 활동한 경우도 있다(예컨대, 이리나 하카마다라는 러시아의 정치인은 일본인과 러시아인 혼혈이었다).
반대로 일본도 러시아랑은 관계가 껄끄러운 관계이지만 홋카이도를 통해 정착한 러시아-일본 하프도 존재하고 일본 특유의 백인에 대한 환상이 강한데다가 인근 국가 중 백인 비중이 가장 많은 러시아인지라 러시아인 캐릭터만 봐도 일본이 가장 많으며 대다수가 러시아-일본 혼혈을 지닌 일본국적 하프나 러시아 국적 미남미녀로 등장한다.
닌텐도가 2016년부터 러시아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 중인데, 포켓몬스터썬·문을 러시아 국가에 정발하였지만 러시아어는 없었다. (그 이전까지는 영어판을 유럽연합에 수출하고 EU에서 러시아로 재수출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닌텐도 스위치에는 본체 언어에 러시아어까지 포함되어 있다.
러시아와 일본은 문화 교류가 있는 경우도 있어서 일본에서도 러시아 관련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러시아어) 그리고 일본은 19세기에 러시아 제국과 교류를 많이 했기 때문에 러시아 관련 학문이 뛰어난 편이고 자료도 매우 풍부한 편이다. #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은 유학생들이 각각 러시아와 일본에서 유학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다 일본에서는 러시아에서 러시아어 어학연수를 받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어) 그리고 일본에서도 토르플이 실시되고 있고 러시아쪽에서도 JLPT가 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도 일식의 인기가 높은 편이라서 초밥을 판매하는 식당이 흔한 편이다.
상술했다시피 일본은 러시아 제국과 교류를 많이 했고, 50년대에 소련과 수교를 했기 때문에 러시아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연구수준이 매우 높다. 그리고 노어노문학과도 일본 내 주요 대학에 설치되어 있고 러시아어 수업도 활발한 편이다.[6]
하지만 외교관계가 좋지 못하다보니 항공 노선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7]이라 일본인들이 러시아를 방문할 때 서울, 부산을 경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8] 그 반대인 러시아인이 일본에 방문할때도 마찬가지.
콘찰롭스키의 영화가 도쿄 영화제에 출시될 예정이나 2023년 10월 현재도 소식이 없다. #(러시아어)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1,000개의 종이학들이 일본으로 보내졌다. #(러시아어)
4. 경제 교류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일본/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
러시아내에도 일본 기업들이 진출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90년대에 러시아 경제가 어려웠을 때, 일본 기업들이 철수한 적도 있어서 갈등이 생긴 경우도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기업들도 러시아에 많이 진출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 일본과 가깝다보니 일본제 자동차들이 많이 보이고 일본제 자동차들을 많이 수입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 중국과 함께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를 많이 수입하고 있다. #
일본 기업들이 러시아에 많이 진출했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양국간 경제교류가 거의 대부분 중단됐다. 도요타사는 2022년 3월 2일부터 부품수급 등의 문제로 인해 러시아 공장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 일본 기업 37곳이 러시아에서 철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
5. 교통 교류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 여권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일본 여권 문서 참고하십시오.
양국을 잇는 항공 노선이 존재한다. 모스크바와 도쿄도를 잇는 항공 노선이 존재하며 일반적으로는 항공 노선을 통해 러시아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홋카이도 왓카나이시와 사할린 코르사코프를 잇는 정기 페리는 2019년을 끝으로 운행이 재개되지 않고 있다. #
러시아와 일본은 정치적으로 갈등이 존재하다보니 무비자정책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블라디보스토크는 일본인들이 잠시동안 무비자로 갈 수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대러제재로 인해 전일본공수, 일본항공은 일본-유럽 노선이 러시아를 경유하지 않도록 항공노선을 변경하기로 했다. #
6. 대사관
모스크바에는 주 러시아 일본 대사관, 도쿄에는 주 일본 러시아 대사관이 존재한다.7. 관련 문서
- 러시아/외교
- 일본/외교 / 일본/외교/비판
- 미러관계
- 한중일관계
- 북일관계
- 북중러관계
- 러시아/역사
- 일본/역사
- 러시아/경제
- 일본/경제
- 러시아 여권 / 일본 여권
- 러시아/문화
- 일본/문화
- 러시아인 / 일본인 / 러시아계 일본인( 잔류 러시아인) / 일본계 러시아인
- 러시아어 / 일본어
- 러시아 요리 / 일본 요리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동유럽 국가
[1]
여담으로 러시아어로 제일 앞에 오는 나라는
오스트레일리아(Австралия)이며, 일본어로 가장 앞에 나오는 나라는
아이슬란드(アイスランド)이다.
[2]
사실 중일전쟁의 주 당사자는
중화민국(현 대만)이고 중화인민공화국 입장에서는 이를 없던 일로 하면서 대인배 행세를 하는 게 이득이었다. 더욱이
중소관계의 미묘함 속에서 미중 핑퐁외교가 시작됨에 따라 중일관계 역시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높았다.
[3]
이를 일본 입장에서는 다소 불평등 조약으로 여기는 듯 한데 일본에 할양되는 우루프 이북의 쿠릴 열도가 사할린 섬의 절반에 비해 물리 면적상 너무 협소하기 때문이다. 당시 신생 근대 국가였던 일본 입장에서 러시아는 너무나 강대한 열강 제국이었으며 그러한 강대국과 사할린을 공동 관할하는 것은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도박이자 모함이었다. 따라서 물리 면적 상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사할린에서 물러나며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마찰을 최대한 회피하고 대신 일본의 체면치레를 위해 러시아가 쿠릴 열도를 일본에 이양한 것이다. 또한 쿠릴 열도는 좁지만 대신 북태평양의 요충지였다는 이점도 있어 나름의 실리성이 있었다.
[출처]
Baryshev Eduard, Transformation in Russian and Soviet Military History, USAF Academy The Issue of Armaments Supply in Russo-Japanese Relations during the First World War (August 1914 – March 1917)
[5]
러시아 외무부의 고위당국자는 "일본과 러시아의 평화조약 체결문제와 일본의 安保理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이 맞물려 있다"고 밝혔고 더 나아가 러시아-독일 관계에는 대립이 없으나 러시아-일본 관계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라면서 반대입장을 내놓고 있다.
[6]
이러한 것은 당시 소련과 적대적이고 외교관계가 없어서 러시아어 관련 학과가 적었던 한국보다 활발한 편이여서 러시아어 공부를 위해 일본어를 배워야 했을 정도였다. 거기에 제2세계에서는 필수 외국어가 러시아어랑 일본어였다.
[7]
취항지 자체는 크게 차이는 없으나 상대적으로 취항사 및 취항 시간의 다양성이 한국에 비해 부족하다.
[8]
한국과 러시아는 충돌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인천광역시,
부산광역시의 독립국가연합 노선은 의외로 풍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