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4 15:18:10

라우리 퇴르니

라우리 알란 퇴르니
Lauri Allan Törni
파일:Lauri Törni.webp
출생 1919년 5월 28일

[[핀란드 왕국|]][[틀:국기|]][[틀:국기|]] 비푸리[1]
사망 1965년 10월 18일 (향년 46세)

[[베트남 공화국|]][[틀:국기|]][[틀:국기|]] 꽝남성
복무 핀란드군(1938~1944)
무장친위대(1941/1945)
미합중국 육군(1954~1965)
최종계급 핀란드 방위군 대위
친위대 대위
미합중국 육군 소령[2]
주요 참전 겨울전쟁
계속전쟁
베트남 전쟁
주요 서훈 만네르헤임 십자장
수훈 비행 십자장
동성 훈장
퍼플하트

1. 개요2. 인생의 전반기3. 겨울전쟁4. 계속전쟁5. 종전이후6. 베트남 전쟁7.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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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풀네임은 라우리 알란 퇴르니. 핀란드 출신의 군인. 핀란드군, 나치 독일 무장친위대, 미군의 세 군대를 모두 복무한 인물이다. 독일 오토 스코르체니와 비견되는 인간흉기로 유명하다.

2. 인생의 전반기

1919년 5월 28일,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한지 얼마 안 된 핀란드 왕국 비푸리에서 태어났다. 이 해 7월에 핀란드 왕국은 현재에도 존속하고 있는 핀란드 공화국으로 체제가 바뀐다.

3. 겨울전쟁

겨울전쟁 당시, 스웨덴 의용군으로 구성된 중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전투에 나갔다. 그런데 스웨덴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몰라서, 중대 지휘는 모두 수신호로 했다고 한다. 1급과 2급 자유훈장을 받았지만, 고향인 비푸리는 소련령이 되고 말았다.

4. 계속전쟁

파일:라우리 퇴르니.jpg
SS 소위 라우리 퇴르니
겨울전쟁이 끝난 뒤 술에 절어 지내던 퇴르니는 독일군 무장친위대의 외인부대 모집에 응해 제5SS기갑사단 "비킹"에 들어갔다. 부사관으로 임명되었지만 독일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같은 문제가 있는 다른 병사들과 함께 핀란드로 송환되었다.

중위 계급을 받고 기관총소대장으로 계속전쟁에 참전했으며, 3급 자유훈장과 독일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1944년 6월 9일에는 만네르하임 십자장과 5만 마르크의 포상금을 받았지만, 포상금은 술 마시는 데 다 써버렸다고 한다.

얼마나 소련군의 후방을 들쑤시고 다녔는지, 소련군은 퇴르니에게 생사불문하고 300만 마르크의 현상금을 걸었다고 한다.

핀란드가 소련과 단독강화를 하자 U보트를 타고 독일로 망명해서 계속 싸웠다. 최종계급은 무장친위대 대위였다.

5. 종전이후

1945년에는 핀란드 경찰에 반역혐의로 체포됐다. 1948년에는 "핀란드와 소련에 적대하는 무장 세력에 무기를 공급한" 혐의로 기소됐고 투르쿠 지방교도소에 수감됐다가 탈출했다. 스웨덴으로 가려했으나 다시 체포돼 형기가 6개월 늘어났다. 1948년 유호 파시키비 대통령이 사면하면서 겨우 풀려났다.

퇴르니는 새 삶을 찾아 베네수엘라행 화물선에 올랐고 이어 미국행 노르웨이 선박을 탔다. 밀입국자였던 퇴르니는 배에서 뛰어내려 헤엄쳐 미국 땅을 밟았다. 1950년 9월 20일이었다.

돈도 없고 영어도 할 줄 몰랐지만 퇴르니는 뉴욕까지 진출해 핀란드 이민자 사회에 정착했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그의 군 동료들이 "뒤를 봐줬다"고 한다. 1954년 1월 27일 미국 시민권을 받으면서 래리 앨런 썬(Larry A. Thorne)으로 개명했고, 다시 군인 생활이 시작됐다.

6. 베트남 전쟁

퇴르니의 다양한 경험을 눈여겨본 그린베레가 1956년에 퇴르니를 스카우트했다. SS 문신을 지우고 풍부한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딕스, 카슨, 베닝, 브랙 기지에서 근무했다.

1956년 이란 산악지대에 1급 기밀문서를 실은 수송기가 추락하자 팀을 이끌고 기밀문서와 시신을 모두 수거하여 귀환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대위 계급을 받고 특수부대 훈련교관으로 임용돼 1963년 베트남전에 처음 참전했다. 캄보디아 국경 지대에 전진 기지를 설치하는 임무였다.

썬은 학교와 병원을 짓고 캘리포니아주의 포트 브래그로 복귀한 뒤 청동성장과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민간인 생활을 못견딘 그는 미 정부가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최고비밀부대인 베트남 군사지원사령부(연구 및 관찰 그룹)에 다시 지원해 라오스 국경 넘어 정찰 임무에 투입됐다. 소련이 두번째로 침공한 핀란드 계속 전쟁 당시 소련군 후방에서 광범위한 정찰활동을 벌인 그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1965년 10월 18일 특수부대 소령 신분으로 아무런 표식이 없는 헬리콥터를 타고 북베트남군의 보급로인 호치민 루트의 탐색에 투입됐다. 나쁜 날씨 때문에 헬기가 실종됐다.

50차례 이상 수색작전이 벌어졌지만 썬을 포함한 부대원들의 구조에 실패했다. 이는 그가 라오스에 투입됐다는 공식 기록이 없는 탓이 컸다. 썬은 1966년 10월 19일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다. 사망 후 소령 계급이 추서되었으며, 1999년 그의 유해를 미 육군 유해발굴단이 찾아 2003년 신원을 확인하고 동년 6월 26일 무장친위대원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대한 공적과 헌신을 인정받아 현재 알링턴 국립묘지에 그의 무덤이 있다.[3]

7. 매체에서의 등장

베트남 차우독에 있던 썬의 부대주둔지를 방문했던 미국 작가 로빈 무어는 1965년 출간한 소설 "그린 베레"에서 썬을 모델로 삼아 주인공 스벤(스티브) 코르니를 창작했다.[4]

1968년 존 웨인이 주연하고 감독해 만든 영화 "그린 베레"에서 퇴르니는 "이상적인 특수부대 장교, 전투, 특히 비정규전에 모든 것을 바친 특수부대가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으로 묘사됐다.

스웨덴의 전쟁사 전문 헤비메탈 밴드 Sabaton의 앨범 Heroes의 수록곡 중 "Soldier of 3 Armies"라는 노래가 바로 라우리 퇴르니의 헌정곡으로 수록되어 있다.


[1]
[[러시아|]][[틀:국기|]][[틀:국기|]] 레닌그라드주 비보르크
[2] 사후 추서 [3] 이는 소속만 무장친위대일 뿐 그 어떤 전쟁범죄에도 가담하지 않았고, 나치 독일의 체제에 전혀 협조하지 않은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는 하는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친위대(나치 독일)가 소속된 것 자체로 유죄인 범죄조직으로 규정된 것을 생각해 보면 웃기는 얘기다. 귄터 그라스 같은 경우도 아니고, 퇴르니는 조국이 나치를 손절하자 끝까지 나치 편에 서서 싸우겠다고 탈영까지 한 사람이기 때문에 도덕성의 측면에서 옹호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때 핀란드와 발트 3국에서는 역사 문제로 인해 소련이라면 이를 갈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반소 감정으로 소련군과 더 싸우기 위해 아예 독일로 가버린 경우가 종종 있긴 했다. 심지어 지금도 발트 3국에서는 무장친위대를 비롯해 독일군에서 복무한 군인들을 영웅으로 예우하고 있을 정도.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나치 독일이 저지른 심각한 행위를 생각하면 그나마 국방군도 아니고 무장친위대로 복무한 것 자체가 썩 깨끗한 경력은 안 되긴 하지만 미국이 동부전선쪽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제3국에 해당하다 보니 지역의 특수한 역사성이나 개인적인 제반요소를 감안하여 그냥 어물쩡 넘긴 케이스인 듯. [4] 소설에서도 그의 이력이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