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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산업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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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보혁명
2.1. 활판 인쇄술에 따른 정보혁명2.2. 한국에서의 정보 혁명
3. 스마트 혁명4. 영향5. 기술 혁신6.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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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하는 1980년대 사무실의 모습

20세기 중후반 컴퓨터, 인공위성, 인터넷의 발명으로 촉진되어 일어난 산업혁명이다. 이전에 없었던 정보 공유 방식이 생기면서 정보 통신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또한 컴퓨터의 발달로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 공정이 가능해짐으로써 산업의 자동화, 무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앞선 두 혁명과 달리 역사가들이 정립한 개념은 아니다. 정립되지 않은 개념인 만큼 종료시점도 의견이 분분하다.[1] 제러미 리프킨은 오늘날에도 3차 산업혁명이 진행중이라 보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인공지능의 발달 이후는 4차 산업혁명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2011년 제러미 리프킨의 책 '3차 산업혁명'을 통해 대중화 되었다. 리프킨 이전에는 1980년 앨빈 토플러가 책 제3의 물결을 발표하면서 비슷한 개념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보화의 주역인 컴퓨터는 1946년, 인공위성은 1957년, 인터넷은 1969년에 처음 등장했으나 당장 보급되지 않았고, 일반 가정 및 개인에게 와 닿은 시기는 1977년에 처음 등장한 일반 가정용 데스크톱 컴퓨터, 1990년에 등장한 월드 와이드 웹을 계기로 보급이 가속화되었다. 노트북 컴퓨터도 데스크톱과 비슷한 시기에 처음 등장했지만 본격적인 보급 가속화는 2000년대 중반부터 이루어졌으며, 1980년대에 처음 등장한 태블릿 PC, 태블릿 컴퓨터 1990년대에 처음 등장한 스마트폰 2010년대 초반에 들어서야 보급이 가속화되었다.

이처럼 발명 이후 초기에는 보급이 더디지만, 기술이 발전될 수록 훨씬 더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다. 휴대용 인터넷 기기와 SNS(소셜미디어)가 보급되면서 이 혁명은 사회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2010년대부터 중동 지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민주화 혁명이 한 예이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 정보 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의 창안이 지구의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그 전보다 압도적으로 편리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 정보혁명

20세기 IT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인해 나타난 사회/문화적 변화상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기술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디지털 혁명"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사회를 "정보 사회"라고도 부른다. 앨빈 토플러는 농업 혁명, 산업 혁명에 이은 제 3의 물결이라고 불렀다.

2.1. 활판 인쇄술에 따른 정보혁명

흔히 정보 사회를 정의할때 "대중의 정보접근성 진일보"를 주요 기준으로 삼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과거 활자의 발명은 정보 혁명의 사상적인 원류라고 볼 수 있다. 을 필사에 의존하여 만들던 시절, 이를 일반 대중이 접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으나 활자 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중의 정보 접근성이 크게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중요성으로 볼 때 정보 혁명이라 불릴만한 사건이긴 하지만, 주로 정보 혁명이라는 용어는 20세기 중반 이후의 IT 기술 기반 사회를 지칭하는 데에 쓰인다.

2.2. 한국에서의 정보 혁명

한국에서는 1980년대 중후반 이후에 컴퓨터가 사무용으로 보급되기 시작되면서 서서히 기초가 닦였다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대중화된건 1990년대부터로 1990년대 초~중반은 PC통신 삐삐가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1990년대 중후반 IT 벤처기업붐과 PC방 활성화, 휴대폰 유행과 1999년 ADSL 기반의 초고속 인터넷 국민PC 사업이 성공한 이후 가정 단위의 개인용 PC 인터넷 대중화가 이뤄진다.

2002년 말부터 VDSL, FTTx 등을 거치며 오늘날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의 원형격 형태들이 대거 등장한다. 한마디로 세상 자체가 바뀌게 된다. 정보화 혁명의 영향물로 2007년에 나무위키의 전신인 리그베다위키가 생겨났다.

2010년대 들어 가장 획기적인 영향은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집에서만 할 수 있던 인터넷을 이제 밖에서도 폰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2020년대 들어 눈에 띄는 영향은 2010년대 중반에 대중화된 유튜브 등 각종 SNS 열풍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2] 덕분에 기존 오프라인 방송국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3. 스마트 혁명

스마트 혁명은 스마트폰을 위시로 한 스마트 기술의 성장으로 촉발된 것을 따로 분류하는 용어이다. 이는 기존 정보 혁명의 연장선 상에 있으나, 모바일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한 기동성 증가, 그리고 기술의 표준화로 인하여 수많은 분야[3]에 적용할 수 있다는 범용성의 증가를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4. 영향

IT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정보접근성이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지식의 관리 및 창출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IT의 발달로 인해 컴퓨터를 활용해 각종 지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됨은 물론이고 초고성능의 컴퓨터를 이용해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해 봄으로써 이전까지 없던 방법으로, 시간과 돈을 보다 절약해 각종 예측 및 연구를 할 수 있게되어 다양한 학문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4]

또한,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수 많은 지역에서 다른 나라의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국가 등에서 정보를 차단하는 것이 급격히 어려워지는등 민주주의의 확산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통신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다면 인간은 말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로 남는다. 한국인 대부분은 외국인을 바다 건너 만나는 사람을 기록한 책으로밖에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구글이나 유튜브나 여러 커뮤니티를 이용해 외국의 정보를 접하고 외국인을 보는 것은 이제 너무 당연해서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는 상대도 마찬가지. 세계는 통신기술의 발달 덕에 서로의 정보와 삶을 너무나 당연하게 개인적인 단위부터 세계를 좌우할 정도까지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 언어가 안 통하고 서로 문화가 다른 사람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것은 정보화 시대 이전 세대에겐 마법 같은 일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그리고 전쟁에 놓인 사람들의 상황의 디테일에 한국인이 관심을 가지고 소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보를 통신하는 기술의 고도화 덕이다. 그리고 이는 다른 국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5]

유럽, 일본 등 타 선진국에 따라잡혀 가던 미국이 다시 독보적인 선진국으로 오르는데 큰 역할을 한 혁명이기도 하다. 90년대 이래 미국의 1인당 GDP는 일본이나 서유럽에 거의 따라잡히거나 심지어 역전당하기도 했지만[6] 3차 산업혁명이 거의 미국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2000년대 말부터 다시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고, 2010년대에는 2~3만 달러 이상으로 격차를 벌리면서 다시 독보적인 선진국이 되었다. 2023년 기준 미국의 1인당 GDP는 7만 달러로 3~4만 달러대인 일본이나 서유럽 국가들과 압도적인 격차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한국과 중국의 격차보다도 큰 것이다.

5. 기술 혁신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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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은 1960년대로 추정된다. 다만 이것도 불분명하다. [2] 2010년대 중반부터 열풍이 불었지만 2020년 코로나-19로 매우 대중화되었다. [3] 스마트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분야들을 떠올려보자. [4] 일부 생명과학부분에서 엄청난 혜택을 보고 있는데 생체분자의 상호작용 등을 컴퓨터로 예측, 신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분석 하는 등 분야에 따라선 연구방식이 크게 달라진 경우도 흔하다. [5] 당장 1955년에서 1975년 까지 진행된 월남전만 해도 베트남의 접경국인 라오스,캄보디아 정도가 그나마 어떤 지 알수 있었다. 그 이외 국가에 거주하는 이들은 뉴스나 신문 등으로 밖에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밖에 몰랐다. 또한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의 경우 폭격이나 공습등이 사람들에 의해 기록 된 경우가 많으나 거의 반세기전에 일어난 월남전의 경우 일부만 영상이나 사진으로 기록되었을 뿐 나머지는 생존자들에 듣지 않고선 정확히 어땠는지 잘 모른다. [6] 일례로 일본의 1인당 GDP는 거품경제로 인해 1987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의 1인당 GDP를 앞질렀고 심지어 1995년에는 미국의 1.5배까지 격차를 벌렸다. 그러나 현재는 미국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