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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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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대표팀이 일본 대표팀을 상대로 도쿄에서 극적인 승리나 대승을 거둘 경우 붙여지는 별명.

2. 축구

2.1.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아시아 예선

역사상 최초의 축구 한일전. 1945년 8.15 광복 이후, 1954년에 있었던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아시아 예선전을 말한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출정식을 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일본에게 지면 현해탄[1]에 빠져 죽으라고 말했다는 썰은 유명하다.[2] 결국 일본에서 열린 첫 한일전은 5:1로 압도적으로 대승했고, 이어서 일본에서 또 열린[3] 2차전에서는 2:2로 무승부를 이끌어내서 대한민국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54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4]의 쾌거를 이뤄냈다.

해방된 지 채 10년도 안됐던 시점이라 국민들은 승전보에 매우 기뻐했으며, 무엇보다도 일본에 35년간 식민지배를 당했던 아픈 기억 때문에 축구경기에서 압승했다는 것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냈다는 것에 환호를 보냈다.

2022년에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첫 경기 후반전 득점 선수 3명이 각 신문사랑 한일 양국이 죄다 뒤죽박죽인 사실이 밝혀졌다. 양국 축구협회에 의하면 남아있는 자료가 없고 당시 선수들도 전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 어쨌든 이겼다는 사실 자체는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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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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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첩 2탄. 보통 도쿄대첩이라고 하면 이 경기를 의미한다.

1997년 9월 28일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벌어진 한일전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홈팀이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0:1로 뒤지던 경기를 후반전에 2:1로 뒤집은 명승부를 말한다. 송재익 캐스터의 "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명언이 나온 바로 그 경기이다.

2.3. 2010 EAFF E-1 풋볼 챔피언십 제 6경기

[[파일:East Asian Football Championship 2010.gif height=50]]
2010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제 6경기
2010. 02. 14.(일) 19:15(UTC+9)
도쿄 국립경기장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
주심: 스트레버 델로프스키 (호주)
파일:800px-JFA_Logo.svg.png
1 : 3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23' (P) 엔도 파일:득점 아이콘.svg 33' (P) 이동국
39' 이승렬
70' 김재성
경기 영상

최종전인 한일전은 그전부터 꾸준히 까임게이지를 축적한 일본의 오카다 감독과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중국전에서 한방에 까임권을 벌어버린 허정무 감독의 단두대 매치가 되었다. 저 유명한 도쿄 대첩의 무대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전반 일찌감치 강민수가 내준 페널티킥을 PK 마스터 엔도 야스히토가 성공시키며 대한민국은 0:1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잠시 후 대한민국도 김보경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영리한 플레이로 페널티킥을 유도해냈고 이를 이동국이 성공시키며 동점이 되었다.

승부의 저울추는 예상치 못한 선수에 의해 기울어졌는데 당시 신예에 불과했지만 선발 출전한 이승렬이 먼 거리에서 뜬금없이 기습적인 중거리슛을 때린 것이 일본 수비수 맞고 붕 뜨면서 골키퍼 키를 넘어가 만세골이 된 것이다. 전반을 2:1로 앞선 채 마친 대한민국은 후반전 초반 김정우가 경고누적 퇴장당하면서 수세에 몰리기도 했으나 일본 공격수들은 번갈아 가면서 삽질을 반복했고, 결국 후반 25분에 찾아온 역습 찬스에서 김재성이 깔끔하게 감아찬 슈팅으로 쐐기골을 박았다. 3:1 시원한 역전승을 거뒀다.

일본은 대한민국 상대로 이길 경우 점수차에 따라 대회 우승까지 바라볼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이 고춧가루를 뿌리며 중국에 우승을 내준 것은 물론 대한민국한테도 밀려나 3위에 그쳤다. 후일담이지만, 이 때 단두대 매치를 벌인 두 감독은 4개월 후 남아공에서 나란히 반전을 보여준다. 허정무호/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일본 항목 각각 참고.

대회 MVP는 두웨이[5]가 수상했고 이동국 이승렬은 중국의 취보, 일본의 다마다 게이지와 함께 공동 득점왕을 수상했다.

2.4. 2017 EAFF E-1 풋볼 챔피언십 제 6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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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7일본동아시안컵 한국 대승.gif
파일:Screenshot_20220809-013940_Gallery.jpg

7년 만에 재현된 도쿄 대첩. 당시 일본은 2018월드컵 아시아 예선 2위[6](B조 1위)로 통과했으며, 일본의 우승이 예상되었으나, 경기가 시작된 지 1분 만에 골대 앞에서 장현수가 파울[7]을 범해 페널티 킥을 얻은 일본에 선취골을 내줬으나, 이후 김신욱의 2골과 정우영, 염기훈 프리킥 추가골로 4-1로, 알제리 쇼크 감독의 일본을 상대로 4:1로 신태용호가 승리하였다. 이 경기의 승리로 2006우승감독 마르첼로 리피의 중국까지 제치고 대회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으며, 일본 입장에선 그것도 알제리 쇼크 할릴호지치 감독임에도 홈 도쿄에서 한국에 4실점 이상을 한 것은 전술된 1954년의 한일전 이후 무려 63년 만이었던지라 충격이 매우 컸다.

3. 야구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을 맞아 도쿄 돔에서 거둔 두차례 극적인 역전승을 말한다. 2015 프리미어 12가 열린 이후에는 주로 후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3.1.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아시아 예선 1경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본선 1라운드/A조 6경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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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판 원조 도쿄 대첩. 선발 투수 김선우가 3이닝동안 안타 7개를 얻어 맞으며 2점을 내주었지만 4회 이진영의 슈퍼캐치 이후 분위기가 넘어가더니 약속의 8회 이승엽의 투런이 터지며 도쿄 돔을 도서관으로 만들어 버린 그 경기다.

3.2. 2015 WBSC 프리미어 12 4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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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열린 첫 WBSC 프리미어 12 대회 4강에서 나온 도쿄 대첩. 일본의 선발 투수 오타니 쇼헤이를 공략하지 못해 8회 말까지 스코어 0:3, 안타수 1:5로 매우 고전하고 있었으나, 9회초 오재원을 시작으로 무려 5개의 안타와 2개의 사사구를 묶어서 4점을 뽑아내는데 성공, 4:3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이 때문에 홈에서 프리미어 12 초대 우승팀이 되겠다는 일본의 목표는 물거품이 돼버렸으며, 해당 대회는 한국이 초대 우승을 차지했다.

4. 관련 문서



[1] 당시 대한해협을 부르던 명칭. [2] 사실 이 말은 이승만이 아닌 장택상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 한 말이라고 한다. # [3] 원래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에 따라 한국에서 열렸어야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를 침략했던 왜놈들이 우리나라에 다시 들어오는 꼴은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임으로써 2차전도 일본에서 치러야 했다. [4] 아시아 독립국가 최초이자 아시아 두번째 본선 진출 [5] 셀틱 FC에서 전반전만 뛰고 방출된 그 선수다. [6] 1위는 이란(승점 22점, A조 1위), 2위 일본은 승점 20점 [7] 원래 일본의 오프사이드 반칙이었으나 오심으로 장현수가 막다가 페널티킥을 선언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