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15:17:29

도농복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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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도농복합시와 도농통합시3. 역사4. 목록5. 도농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도시
5.1. 안산시의 도농복합시 전환5.2. 경기도
6. 광역시의 도농통합7. 도농분리 및 통합의 지명8. 여담9. 대한민국 외

1. 개요

지방자치법
제10조(시·읍의 설치기준 등)는 그 대부분이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인구 5만 이상이 되어야 한다.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지역은 도농(都農) 복합형태의 시로 할 수 있다.
1. 제1항에 따라 설치된 을 통합한 지역
2. 인구 5만 이상의 도시 형태를 갖춘 지역이 있는 군
3. 인구 2만 이상의 도시 형태를 갖춘 2개 이상의 지역의 인구가 5만 이상인 군. 이 경우 군의 인구가 15만 이상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4. 국가의 정책으로 인하여 도시가 형성되고, 제128조에 따라 도의 출장소가 설치된 지역으로서 그 지역의 인구가 3만 이상이고, 인구 15만 이상의 도농 복합형태의 시의 일부인 지역

제3조( 지방자치단체의 법인격과 관할)
④ 제10조제2항에 따라 설치된 시에는 도시의 형태를 갖춘 지역에는 을, 그 밖의 지역에는 ·을 두되, 자치구가 아닌 를 둘 경우에는 그 구에 읍·면·동을 둘 수 있다.

| Si in an urban and rural complex form[1]

도시(시가지 지역)와 농촌(교외 · 지역)을 한데 묶어 설치한 .

도농복합시는 시와 별도의 법정 유형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도농분리)시에 읍·면을 설치하거나 반대로 도농복합시의 모든 읍, 면을 동으로 분동할 수 없다. 이를 법령상으로 가능케하려면 지방자치법에 해당 시를 도농복합시로 전환하는 조문과 해당 도농복합시를 시로 전환하는 조문을 추가하는 일부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후에 통과되어야 한다. 태백시가 인구 감소에도 읍·면을 설치할 수 없고 안산시가 대부동을 대부면으로 고치기 위해 도농복합시 전환 법령을 추진하는 이유도 도농복합시가 아닌 (도농분리)시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반 시를 도농복합시로 전환한다면 법리적으로는 기존 시를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를 폐지하고, 폐지된 시의 관할구역을 관할하는 새로운 도농복합시를 설치하게 된다. 그리고 해당 법령에서 기존의 법정동이나 으로 전환하는 조항을 포함할 수 있다.

2. 도농복합시와 도농통합시

유사 개념으로 '도농통합시(都農統合市)'가 있다. 다만 도농복합시와 도농통합시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도농복합시는 하위 행정구역으로 동 이외에 읍·면을 포함하는 시는 전부 해당되지만, 도농통합시는 도농분리되어 승격했던 시와 잔여 지역인 군과의 통합으로 설치된 도농복합시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995년 도농통합 당시 형성된 도농복합시들과 그 이후에 도농통합이 이루어진 통합 여수시[2], 통합 청주시[3]는 도농'통합'시라 불릴 수 있지만, 1995년 이후로 군이 시로 승격하여 생긴 용인시, 양산시 등의 도농복합시들은 도농이 분리된 적이 없기 때문에 도농'통합'시로 불릴 수 없다. 특이 케이스로 고양시의 경우 1994년 3월 16일 일부개정된 법률 제4741호 구 지방자치법 제7조 2항에 따른 도농복합시 제도가 신설되기 전인 1992년에 고양군의 읍·면을 전부 행정동으로 전환시키며 승격했기에 사실상 도농복합시이지만 법적으로는 지방자치법 제10조 1항에 따라 설치된, 하위 행정구역으로 읍과 면을 둘 수 없는 (도농분리)이다.

3. 역사

조선시대의 수도 한성부는 양주목[4]과는 도농분리되었으나 한성부 내부를 살펴보자면 도시지역인 사대문안과 농촌지역인 성저십리가 합쳐진 도농복합 형태였다. 한성부의 하위 행정구역인 방의 경우, 사대문안 지역은 오늘날의 동에 가까웠지만, 성저십리 지역은 오늘날의 면에 가까웠다.

구한말까지의 [5] 시가지 지역과 교외(농촌) 지역을 모두 거느리는 행정구역이었으나,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는 시가지 지역만을 관할하는 행정 구역으로 그 성격이 바뀌고, 교외 지역은 으로 분리하도록 했다. 또한 의 인구가 5만 명을 넘으면 해당 읍을 기존 군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부로 승격시켰다.

일제는 본국에서 하던 대로 시읍면(부읍면) 제도를 시행하고자 했기 때문에[6] 시와 군이 분리되는 것 자체는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7] 이 시읍면 자치는 제1공화국 때 공식적으로 시행되었고( 미국의 행정구역 체계가 시읍면 제도와 비슷하기도 했다.), 제3공화국 이후 읍면 대신 군이 자치단체 격을 갖도록 바꾸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8]. 읍이 부(시)로 승격, 분리되면서 알짜 지역을 빼앗긴 기존 군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 도넛 모양의 군이 되는 경우: 2014년까지 존속했던 청원군, 현재 일부가 도넛 형태인 완주군이 대표적이다. 전국적으로는 중심지를 잃은 군들 대부분이 해당되었다. 여기에 일일이 사례를 들기 힘들 정도로 숫자와 규모가 매우 방대했다.
  • 군 영역이 월경지로 변하는 경우: 현 완주군, 옛 양주군, 시흥군, 제천군, 천안군, 승주군, 통영군 등. 이에 중심지로 가로막혀 월경지가 된 사례 중에 갈라진 두 지역의 규모가 비등하면 독립된 군으로 승격시키는 사례도 있었다. 현재의 남양주- 구리시로, 원래 양주군의 동남부 지역이었지만 노해면(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노원구)의 서울 편입과 중심지 의정부의 시 승격으로 분단되면서 오히려 덩치가 더 큰 동남부 지역을 남쪽의 양주라 이름짓고 별도의 군으로 떼어 놓았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같은 지역이며 생활권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시가지 지역(시)과 교외 지역(군)으로 분리되어 생활권과 행정구역의 불일치로 인한 불편 등 광역행정 문제를 초래하고, 군의 독자적 발전 가능성 약화 등의 문제가 야기되었다.

사실 도농분리제는 도시와 농촌이 별개의 공동체를 이뤘던 봉건제에서 유래한 제도로 에도 막부 때까지 봉건제를 시행했던 일본에는 적합한 제도이지만 도시가 행정중심지로서 주변 농촌들을 통치하는 중앙집권적 전통을 가진 한국에는 부적합한 제도일 수밖에 없었으나, 일제가 이러한 조선의 특성을 간과하고 도입한 걸 그대로 시행해온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1995년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부분 (재)통합되었다. 이를 통해 행정구역의 역사적 동질성을 회복하고, 행정구역과 도시권·생활권을 일치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통합 시 인구수가 50만이 넘는 경우는 과대시가 되어 대도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통합에서 제외되었는데, 이 때문에 구 청주시+ 구 청원군, 전주시+ 완주군 등이 통합되지 못했다.

1995년 이후에도 통합 논의는 계속 나오고 있지만 성사된 사례는 1998년 삼여통합, 2006년 제주시+ 북제주군 서귀포시+ 남제주군의 통합, 2014년 청주-청원 통합뿐이다.

2020년대를 기준으로 수도권의 경우 도농복합시의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낮은 편이고, 특히 서울과 접경해 있는 도농복합시는 인천광역시, 남양주시[9], 김포시[10], 양주시[11]밖에 없다. 반대로 비수도권은 2022년 기준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12][13], 전주시, 목포시, 동해시, 속초시, 태백시 7개 시를 제외한 모든 도시가 도농복합시다. 이조차도 강원 영동과 광역시를 제외하면 두 곳 뿐이다.

4. 목록

도농복합시 목록을 참조할 것.

5. 도농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도시

1995년 개편 당시에 도농통합이 고려되었으나 도농통합이 현재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은 곳으로는 다음이 있다.
  •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과거 수원군)
    수원시가 수원광역시 승격을 노리고 여러차례 통합을 시도해봤지만, 화성시 오산시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 화성시는 급격한 성장으로 역 내 총생산 전국 1위, 재정자립도 전국 1위를 달성했으며, 특례시 조건을 충족할 정도로까지 인구가 불어났기에 수원과의 통합 필요성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역사적으로도 한때 수원군이었다고는 하나 이는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한 결과물일 뿐 그전까지는 남양군과 수원도호부(화성유수부)[14]로 오랫동안 다른 행정구역으로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수원군은 일제가 억지로 통합시킨 결과물이고 수화오 통합은 일제의 만행을 답습하는 행위라며 반대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1 #2 통합에 성공할 경우, 통합시 면적은 약 861.93㎢, 인구는 약 236만 명으로 대구광역시와 맞먹는 수준의 기초자치단체가 탄생한다.
  • 의정부시- 양주시- 동두천시(과거 양주군)
    구리, 남양주도 한때 양주군이었지만 생활권, 도시 비대화, 불균형 등의 문제가 있어 재결합은 전혀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의정부가 통합에 가장 적극적이며 동두천과의 통합은 어려워지자 그나마 호의적인 양주만이라도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 그러나 양주에서는 서울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여론도 있어서 쉽지 않다. # 의양동 통합에 성공할 경우 면적은 약 487.59㎢로 늘어난다.
  • 구리시- 남양주시(과거 남양주군)
    남양주시의 경우 이미 미금시+남양주군의 통합으로 탄생한 도농복합시이고[15] 구리시만 제외된 것으로 이는 두 도시간의 통합 논의가 활발하지 못한 이유가 되고 있다. 수원, 의정부와 반대로 도시 지역인 구리시가 통합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다른 지자체와 다르게 이미 남양주의 규모와 위상이 구리보다 높기 때문에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는 탓으로 보인다. 일단 인구부터 구리가 19만, 남양주가 66만으로 구리의 3.5배나 되며 면적은 아예 비교 불가 수준이다. 구리시는 시 단위 지자체 가운데 가장 면적이 좁다. 고만고만한 시가지가 분산된 남양주 입장에서는 이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의 중심인 구리가 필요하고, 구리 역시 남양주가 있기에 매우 풍족한 대중교통(버스) 인프라를 공급받고 이들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로 상권 유지가 가능한 만큼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이나 그 관계는 결코 좋지 못하다. 구리시는 차라리 남양주시에 먹힐 바엔 차라리 서울특별시로 흡수되겠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통합 논의에 별 진척이 없자 남양주시는 구리와의 통합 대신 다산신도시를 개발해 남양주시의 새로운 중심지로 삼아 자생을 꾀하려 하지만, 다산신도시도 도농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상 구리만큼 입지가 완벽하지는 않은데다 현재 개발 진척 상황 역시 상업 시설이 빈약하여 이미 갖춰진 다른 지역의 상권에 의존하는 소규모 신도시 모델과 별반 다르지 않은 문제가 있다. 통합에 성공할 경우 면적은 약 491.45㎢로 늘어난다.
  • 성남시- 광주시- 하남시(과거 광주군)
    원래 같은 지역이었다고는 해도 남한산이라는 자연적 장벽으로 세 지역이 분리된 탓에 각각 독자적으로 발전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그래서 2010년 광역시 승격을 노리고 통합을 추진했으나, 통합시 명칭과 청사 위치 갈등 및 야당과 시민단체의 거센 비판으로 무산되었다. # 통합에 성공할 경우 면적은 약 665.61㎢로 늘어난다.
  • 속초시- 양양군(과거 양양군)
    속초의 경우 1994년부터 양양과의 통합을 시도해왔으나 양양군의 거센 반발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도 진척이 안 되자 고성과도 통합을 추진했지만 이쪽도 고성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 둘 다 통합 시 속초의 들러리 역할만 하게 될 거라는 이유로 통합을 원치 않고 있어 성사 가능성은 낮은 편. 통합에 성공할 경우 면적은 약 735.84㎢로 늘어난다.
  • 동해시- 삼척시- 태백시(과거 삼척군)
    삼척시가 이미 1995년 도농통합을 했지만 인구가 시 승격 기준인 15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7만 명에 불과하고, 정작 알짜배기 석탄산업, 시멘트산업 등은 40여년 전에 분리된 동해시, 태백시가 가지고 있어 통합에 적극적인 편이다. 그러나 동해의 경우 명주군 묵호읍과 삼척군 북평읍이 각각 반반씩 묶여 시로 승격되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원래 다른 지역이었던 북부 묵호에서의 반대를 어떻게 감당할지[16]와 명분 없는 통합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태백이라고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이, 지형적으로 분리되어 있어 생활권이 남남이다. 이 지역에서는 딱히 같은 지역이라는 소속감이 없고, 하장면, 도계읍 정도를 제외하면 정선, 영월, 경북 봉화 석포면[17]이 정서적으로 훨씬 가깝다.[18] 통합에 성공할 경우 면적은 약 1,671.54㎢(동해시+삼척시만 통합 시 1,368.04㎢)로 늘어난다.
  • 목포시- 무안군- 신안군(과거 목포부, 무안군)
    현재 해결되지 않는 도농복합 지역들 중 가장 오래된 곳이자 갈등이 심각한 사례에 속한다. 목포시는 총 면적도 작지만 그마저도 섬들을 빼면 본토의 면적이 너무나도 좁아 도시 개발을 할 땅이 없고, 이 때문에 전남도청 등의 관공서 이전을 통한 신도시 개발인 남악신도시 개발도 무안군과 공동으로 진행해야 하기에 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통합 시도는 1994년부터 있었으나 무안군의 결사반대하면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신안군은 입장을 바꿔 목포와의 통합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 목무신 통합 시 인구 34만명대로 늘어나 전라도에서는 광주, 전주에 이은 3번째 도시가 되고 광역시를 제외한 비수도권 시군중에서는 10번째로 큰 자치단체가 된다. 그리고 면적은 약 1,156.22㎢로 늘어나며 그로 인해 대도시 특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 전주시- 완주군(과거 전주군)
    본래 한 몸이었어도 갈라진 역사가 이미 80년이 넘어 완주군 주민들 중에 자신들이 전주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완주군 북부 지역은 원래 고산군이라 하여 역사적으로 다른 동네였고, 전주군 관할이었던 역사가 고작 21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명분이 약하다. 고산이라는 이름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을 뿐더러 북쪽 산지에 고립된 형상을 하고 있어, 옛 고산군 지역에서 외부로 나가려면 무조건 고산 시가지를 거쳐야 하는 특성상 고산 사람이라는 인식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편이다. 원래 전주 땅이었던 삼례, 봉동, 이서[19] 등 주변 지역에서는 통합에 비교적 호의적인 편이라지만 여기 안에서도 전주시의 재정 문제, 관광에 올인하다시피 한 빈약한 산업구조에서 파생되는 열악한 복지와 같은 여러 문제로 인해 2013년 통합 찬반투표에서 반대표가 55%로 찬성표보다 10%p 더 높게 나왔다. 전주와 인접한 이서, 전주시청이 될 완주군청이 위치한 용진은 호재를 볼 수 있겠으나 봉동 고산은 다수결의 원칙과 전주와 먼 지리적 환경으로 인해 지역 발전에는 소외되면서 혐오 시설만 받아먹을 수밖에 없다.

    2024년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한 가지 변수가 생겼는데, 전북특별법 특례 중에 '주민 동의 없이 시·군 통합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다. # 다분히 전주완주 통합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5.1. 안산시의 도농복합시 전환

1994년 옹진군 대부면을 편입했으나 대부동으로 개편되어 도농복합시가 되지 못한 안산시의 경우 2014년 말 농어촌 지역임에도 도시 지역으로 편입됨으로 인해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대부면으로 전환(사실상 환원)을 시도하려 했으나 한동안 잠잠했다가 최근에 경기 안산시 단원구 을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이 도농복합시 관련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윤화섭 시장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

일각에서는 면 전환으로 인한 도시계획 변경으로 공장 설립 등이 가능해져 녹지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반발도 있어 # 주민들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시에서는 적극적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대부도의 면 전환이 실현될 경우 이름만 동인 다른 농어촌 지역의 읍면 전환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5.2. 경기도

평택시(평택시+평택군+ 송탄시), 남양주시( 미금시+남양주군)는 도농통합이 이루어졌으나, 경기도의 구 시흥군 지역( 광명시, 안양시, 군포시, 의왕시, 과천시, 안산시, 시흥시)[20]과 구 수원군 지역( 수원시, 화성시[21], 오산시), 구 광주군 지역( 성남시, 하남시, 광주시[22]), 구 양주군 지역의 의정부시는 수도권의 도시화 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도농통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인천광역시 인근의 부천시(구 인천부와 구 부천군의 통합)도 비슷한 이유로 도농통합 대상에서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이와 비슷하게 서울특별시 고양시의 통합이 고려조차 되지 않았는데, 이는 훗날에 서울시로 편입된 고양군 지역이 대부분 옛 한성부 성저십리 지역이었다가 일제에 의해 억지로 고양군에 편입되었던 적이 있는 역사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현재의 광명시 지역을 서울 편입에서 배제했을 만큼( 1981년 광명시 승격) 당국 입장에서도 서울시의 추가 확장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23].

6. 광역시의 도농통합

일단 도농복합 형태를 띠는 광역시는 부산광역시[24], 대구광역시[25], 인천광역시[26], 울산광역시[27]가 있다.

도농통합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광역시(당시 직할시)로는 부산광역시(편입 전: 양산군 일부[28] → 편입 후: 기장군)와 대구광역시( 달성군)이다. 이때 해당 광역시에 편입된 곳은 해당 광역시의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잔여 군으로 남았다가 도로 되돌아간 것이기 때문. 울산광역시의 경우는 도 산하 일반시 시절에 도농통합이 이루어진 경우이고, 인천광역시의 경우는 역사성을 고려한[29] 도농통합이라기 보다는 인천의 영역을 늘리기 위해서 강화군 김포 검단의 편입이 이루어진 것이다[30]. 다만 당시 내무부 문서에 의하면, 이들 지역이 인천 생활권, 인천 경제권이라는 근거로 인천 편입이 추진되었다고 나와있다[31]. 다만 도농복합 형태를 띠는 광역시는 광역자치단체 단계에선 도농통합이 되어있지만 기초자치단체 단계에서는 아직 도농분리다. 자치구을 둘 수 없게 되어있으며, 지역은 별개의 을 만들어 관할하기 때문. 이 때문에 기장군, 달성군, 울주군과 같이 자치구 지역과 같은 고을이였고 군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지가 해당 군이 아닌 자치구 지역인 경우는[32] 도농분리의 불편을 아직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33].

다만 이것을 꼭 비판적으로만 볼 수 없다. 자치구 지역도 자치군 지역과 동일한 옛 고을에 속해있고[34] 여러 자치구들로 파편화 되어있다는 점에서 이것을 부정적 의미의 기초자치단체 파편화로만 보기는 힘들다. 더구나 광역시는 자치시, 자치군 단위 근린행정 위주의 와 다르게 통합된 광역행정 구현 위주의 광역지자체이기 때문에(예를 들자면, 시내버스 노선[35], 택시 사업구역 등이 파편화되지 않음) 광역행정의 측면에서는 도농통합 이전의 도 산하 자치시, 자치군 간 도농분리의 경우보단 낫다. 또한 읍·면 지역을 각 읍·면이 있는 방향에 맞춰서 여러 자치구에 포함시키는 경우 자치구 내에서 열세가 되는 구 읍·면 지역이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도 있다.

형식상으로는 도농통합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도농통합이 1995년 이전에 이미 이루어진 광역시는 광주( 광산군, 송정시 흡수), 대전( 대덕군 흡수), 1995년 이전의 부산( 동래군 중 현 기장군 지역을 제외한 전역 흡수. 광산구와 흡사한 방식으로 편입된 강서구도 포함)이 있다.

7. 도농분리 및 통합의 지명

도농분리 시절 원래 역사적으로 같은 지역임을 드러내기 위해, 군에서 중심 읍이 시로 승격되어 분리되면 시/군 중 한 쪽의 이름을 기존 명칭의 일부를 변형하거나[36] 역사적 연원이 있는 이름( 충주시- 중원군, 강릉시- 명주군, 군산시- 옥구군 등)으로 개칭하였다. 가령 1946년 청주군 청주읍이 청주부로 승격되자 남은 청주군을 청주의 '청'에 '원(原)'을 합성하여 ' 청원군'으로 개칭하였으며, 1949년 수원군 수원읍이 수원부로 승격되자 남은 수원군을 수원의 상징이자 과거 이름인 화성에서 따와 ' 화성군'으로 개칭하였다.

그러나 1963년 안동시/안동군이 공존하게 되면서[37] 이 관례는 깨지게 되었고 1980년대부터는 굳이 명칭을 다르게 하지 않고 시/군 모두 동일한 명칭을 쓰도록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미 시/군 명칭을 다르게 한 경우도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통일(환원)시킨 경우가 많았다. 가령 1955년 경주군 경주읍이 경주시로 승격되면서 남은 경주군을 '월성군'으로 개칭하였다가, 1989년 '경주군'으로 환원하면서 경주시/경주군이 공존하게 되었다.

이후 도농통합이 될 때에는 지명이 다른 시와 군을 통합하게 되면 시의 지명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지만 1995년 전국적인 도농통합 당시엔 군 지역의 지명을 살리는 경우도 꽤 있었다. 주민 투표로 군 지명을 살리자는 의견이 많은 경우인데, 이 경우는 시 시절의 지명의 인지도가 군보다 유명하다보니 없어진 후에도 오랫동안 널리 쓰이는 경우가 많다(예: 대천, 온양, 삼천포, 장승포 등).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

반대로 통합 당시 사라진 군 지명은 다음과 같다.
다만 ' 월성', ' 선산', ' 청원', ' 옥구', ' 여천' 등의 지명은 각각 경주시 월성동[43], 구미시 선산읍, 청주시 청원구, 군산시 옥구읍, 여수시 여천동 등으로 남아있어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영일'이라는 지명 역시 포항시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8. 여담

도농분리시 시절에 시로 분리되면 리는 동으로 바뀌는 것이 보통이었다. 단, 대한민국에서 행정구역 개편 직후 잠시 동안 시의 밑에 리를 둔 적이 있었다. 서울특별시 1949년 1963년에 확장되면서 편입된 지역들은 1년 정도 동이 아닌 리로 있었다. (예: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방배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방배) 등.

1995년의 대규모 도농통합 개편으로 인한 통합 기조는 고양군 내 원당, 지도, 일산 분리 승격, 분당신도시의 독립 계획이 무산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전주시는 계속해서 완주군과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고, 목포시 무안군 신안군 통합을 바라며, 속초시 동해시 역시 인근 지자체와의 지속적인 통합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금산군 함평군이 각각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편입을 추진하고 있어 비수도권의 시 전부가 도농복합시가 되는 상황도 불가능하지 않다.

청주시는 2014년 (구)청주시와 청원군을 통합하여 출범했으나 '충청북도 청주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에 '도농복합 형태의 시'라고 명시되지 않는 바람에, 도농복합시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한동안 행정안전부에서 도농복합시가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청주시의 항의로 인해 타 도농복합시와 동일하게 취급하도록 바뀌었으며, 차후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해당 법률에서 '도농복합 형태의 시'를 명시하도록 하는 조문 개정 시도도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9. 대한민국 외

9.1. 북한

1955년 시 밑의 모든 리를 동으로 고쳤다가, 1967년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그래서 북한에는 도농복합시가 많다. 남에서는 읍을 시로 승격시키면서 군에서 분리시켰는데, 북에서는 바로 군을 시로 승격시켰기 때문이다. 북한의 군이 규모가 작아서 도농분리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북한의 군이 남한의 읍/면 규모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특히 함경도 쪽으로 가면 단천시처럼 면적이 2,000km²를 넘어가는 거대한 시도 존재한다.

물론 북한에도 해방 후에 승격된 시 중 송림시 신포시처럼 군 전체가 아니라 군의 일부 지역만을 승격시킨 시들도 존재하는데, 의외로 이런 작은 시도 도농복합시에 들어간다. 둘다 면적은 100km²도 안 되지만 송림시는 19동 6리로, 신포시는 16동 6리로 구성.

2003년 9월에 개풍군 개성시로 통폐합시키면서 도농복합시를 만들었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도농분리로 신설된 행정구역의 재통합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고 일부 경계조정에 그친 경우가 많아 평양시- 대동군, 신의주시- 의주군, 해주시- 벽성군, 함흥시- 함주군, 청진시- 부령군 등 여전히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도농분리의 흔적이 남은 경우가 많다.

9.1.1. 이북5도위원회

대한민국 헌법에 의한 명목상 영토는 이북5도청이 관리하고 있는데 실효통치 지역인 남한과 달리 이북지역은 일제강점기 당시 이뤄진 도농분리 지역에 대하여 통합이 이뤄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지역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행정구역 개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9.2. 해외

  • 미국은 기본적으로 도농분리제이나, 한국의 도농복합시에 해당하는 consolidated city-county가 존재하는 등 복잡하다.
  • 캐나다는 도농복합과 도농분리가 공존한다. 토론토 오타와 같은 간판급 대도시들의 경우 도농통합을 실시했다.

[1] 지방자치법 영문법령 [2] 구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 1998년, 이른바 삼여 통합 [3] 구 청주시+ 청원군, 2014년 [4] 사실 양주 자체가 고려시대에 경기 북부권 고을들을 느슨하게 통합하면서 생긴 지명이다. [5] '부'는 이후 1949년 '시'로 개칭되었다. [6] 시정촌 제도는 일본에서 1888년에 시행되었다. 시정촌 제도 실시 이전에는 일본에도 군이 있었으나 1921년 군제폐기법이 통과되어 군의 행정기능이 없어지면서 오늘날에는 지리적 구분으로만 남아있다. [7] 물론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일본인들이 많은 지역을 우선적으로 부로 지정했다. [8] 물론 제3공화국 때는 실제로는 지방자치제를 실시하지 않았다. 조항만 저렇게 바꿔놓은 것. [9] 1995년 미금시+ 남양주군 통합 [10] 1998년 김포군에서 승격 [11] 2003년 양주군에서 승격 [12] 그러나 광산구 내 생활권이 지금도 뚜렷하게 동부 송정, 비아, 하남 등 도시 지역과 서부 삼도, 본량, 동곡, 임곡, 어룡, 평동을 중심으로 한 농촌 지역으로 나눠져 있다. [13] 광산군과 송정시는 1988년이 아닌 1995년 전국적인 도농통합 때 편입됐다면 지금처럼 舊 광산군 전체가 통째로 광산구가 되는 것이 아닌 송정시를 송정구로 하고 나머지 광산군 지역은 그대로 광산군으로 편입됐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서창과 대촌도 광산군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94년 1월 99년 10월 두 차례 광산군 환원 운동이 있었지만 광주광역시 산하의 자치군이 아닌 전라남도로의 환원이었기 때문에 광주광역시의 무관심으로 끝내 무산되면서 부산, 대구, 인천, 울산, 세종과 달리 행정구역상 도농복합시가 되지는 못했다. [14] 1793년 정조가 수원도호부를 유수부로 승격시키면서 이름을 화성유수부로 개칭했다. [15] 원래는 1994년 남양주군을 구리시, 미금시에 분할 편입하려 했으나(구리시 + 남양주군 진접, 진건, 별내, 퇴계원 북부 4개면 #(면적 174.54㎢), 미금시 + 남양주군 화도, 수동, 조안, 와부 남부 4개면) 남양주군의 반대로 무산되고 # 그 대신 미금시와 남양주군 전체가 통합되어 현재의 통합 남양주시가 되었다. [16] 다만 묵호 일대는 말이 강릉(명주)였지 실제로는 본체와 상당히 멀다. 괜히 묵호읍과 붙어있는 옥계면이 도농통합 당시 동해시로 가고 싶어했던 것이 아니다. [17] 경상북도 소속이지만 석포면은 태백 생활권이고 군청 소재지 봉화읍보다 태백시가 훨씬 가깝다. [18] 그런 이유에서 국회의원 선거구도 16~20대 총선 때만 해도 근처 정선, 더 나아가서 영월군과 엮였지 동해시 - 삼척시와는 따로 놀았다. 다시 동해시 - 삼척시와 묶이게 된 것은 21대 총선 때의 일. [19] 월경지로, 덕진구 김제시에 둘러싸여 있다. [20] 해체 이전의 구 시흥군 영역대로 합치자면 생활권이 너무 다르다는 문제가 있다. 광명시는 서울 영등포권, 안양시· 군포시· 의왕시(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과천시까지)는 안양권, 안산시 시흥시 남부는 안산권, 시흥시 북부는 인천권에 생활권을 두고 있다. 삼국시대의 군소 현들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인접 군현에 통폐합되었지만 일제강점기의 시흥군 지역인 시흥군(곡양현), 과천군(율진군), 안산군만큼은 괜히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이전까지 각 군역을 삼국시대 이후로 계속 유지해온 것이 아니다. [21] 1995년 당시에는 화성군 [22] 1995년 당시에는 광주군 [23] 1990년대 초중반은 위성도시 육성 정책의 하나인 1기 신도시 건설사업을 완성하고 있었기에 위성도시 육성정책의 상징인 광명시를 서울시에 편입할 여지가 없었고, 특히 대규모 도농통합을 추진했던 1990년대 초중반은 정관계에서 서울 추가 확장은커녕 서울 분할 문제에 매달렸던 시기이기도 하다. [24] 기장군, 강서구의 경우 편입후 북구로 편입되었으나 김해군 지역이였다. [25] 달성군, 군위군 [26] 강화군, 옹진군 [27] 울주군 [28] 1973년 부산부(→시→직할시)와 역사적 동질성을 가진 행정구역인 동래군이 폐지되고 인근 양산군에 병합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는 동래부(→ 부산부)와는 별개의 행정구역인 기장군으로 따로 존재하긴 했다. [29] 이때 시흥시 부천시가 인천으로 편입되었다면, 문자적 의미에서의 도'농'통합은 아니긴 했지만 역사성(옛 부천군, 더 나아가 그 이전의 인천부와 부평군)을 고려한 일종의 도농통합이 될 수 있었다. [30] 옹진군의 경우 지역번호 032를 비롯하여 광역행정 상으로 이미 인천과 긴밀하게 얽혀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옹진군의 인천 편입은 나름 타당성이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인천 본토와의 연결성(옛 부천군 도서지역)이 있었고. [31] 이것도 강화군의 경우 현재까지도 인천 생활권이라 보기엔 애매하다. [32] 일례로 달성군청 2005년까지 대구 남구에, 울주군청 2017년까지 울산 남구에 있었다. [33] 이러한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이 달성군이다. 중심지 기능을 대구 도심이 맡고 있으며 다사읍 하빈면 월경지 가창면도 실질월경지다. [34] 여기에서는 인천광역시는 제외한다. 다른 광역시와 달리 인천의 1995년도 확장은 역사적 도농통합(부천, 시흥북부 편입)이 아닌 인천을 키우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이루어진 도농통합(특히 강화, 김포 검단 편입)이고, 1995년 이전의 인천직할시 자체도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라는 두 개의 고을이 합쳐진 도시다. [35] 본토(자치구 지역)와 동떨어진 인천광역시 강화군, 옹진군은 제외 [36] 주로 기존 지명의 앞글자에 '원(原)', '성(城)', '주(州)' 등을 붙인 식이다. 여담으로 조선시대에도 '-주'가 붙은 지명들이 '-원', '-성' 등으로 개칭된 예가 꽤 있다. [37] 원래는 '신안동시'로 승격시키려 했으나 지역 여론의 반발로 ' 안동시'로 승격시킴으로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38] 이미 1991년에 제천군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39] 이미 1991년에 천안군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40] 이미 1989년에 경주군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41] 이미 1989년에 원주군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42] 이미 1992년에 춘천군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43] 다만 여기는 인것만 봐도 유추 가능하듯이 월성군에 소속되었던 지역이 아니라 시내 지역이며 통합 이전에도 경주시였다. 월성군은 월성동을 포함해서 나온 명칭이 아니라 경주의 잔여 지역들을 포괄하는 명칭으로 경주를 대표하는 월성의 명칭을 붙인 것이다. 아주 유사한 경우로 화성시가 있다. [44] 진남포시의 원소속은 삼화군이었으며 진남포시가 분리된 후 잔여지역을 용강군으로 편입시켰다. [45] 원산시의 원소속은 덕원군이었으며 원산시가 분리된 후에도 존치되다가 1942년 잔여지역을 문천군으로 편입시켰다. [46] 중국은 역사적으로 우리처럼 20세기 초중반에 도농분리를 실시한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도농통합을 실시하고 있는데, 과거에 실시된 도농분리의 흔적은 남아있지만, 지방제도가 달라 그 흔적의 양상은 우리와 차이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