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27 19:48:13

스헤르토헨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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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rtogenbosch
스헤르토헨보스
국가 네덜란드
노르트브라반트
면적 117.81km²
인구 154,205명[1]
시장 잭 미커스(Jack Mikkers) ('''[[자유민주국민당|
자유민주국민당
]]''')
시간대 UTC+01:00( 서머타임 적용)
스헤르토헨보스 행정 사이트

1. 개요2. 역사3. 지리4. 기타

[clearfix]

1. 개요

스헤르토헨보스 네덜란드의 도시로 노르트브라반트 주의 주도다. 네덜란드 내에서도 드물게 표기법이 ''s-Hertogenbosch'로 독특한데, 발음하기 어렵고 길다 보니 대부분은 '덴보스'라고도 부른다 한다.

2. 역사

이 스헤르토헨보스라는 길고 발음하기 어려운 도시 이름의 유래는 12세기 말 도시의 탄생 설화와 이어진다. 이 스헤르토헨보스는 "공작의 숲"이라는 옛 표현 "des Hertogen bosch"의 줄임말인데 이 도시의 이름에서 지칭하는 공작은 바로 브라반트 공국의 공작 헨리 1세. 헨리 1세의 가문은 예로부터 - 적어도 8-9세기 즈음부터 - 이 도시가 세워질 지역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헨리 1세가 늪지대에 둘러싸인 숲 지역에 도시를 세우면서 스헤르토헨보스의 역사가 시작되고 도시 이름이 이와 같은 것도 이것이 이유다.

헨리 1세가 세운 이 도시는 헨리 1세가 26세가 되었을 무렵 도시로서의 권리가 주어졌으며 1185년 무역권을 얻었다. 다만 위의 설화와는 모순되게도 스헤르토헨보스가 역사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196년이다. 이는 스헤르토헨보스의 도시 헌장은 사라졌기 때문.

헨리 1세가 이 도시를 세운 이유는 홀란드 공국을 비롯한 다른 공국들로부터 해당 지역을 방어하고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서라 여겨지며 이의 연장선상으로 1203년 도시 성벽을 세운다. 이 성벽은 후술하듯 오랜 기간을 거쳐 개선되고 파괴되는 등 사건사고들을 겪지만 오늘날에도 남아 있어 스헤르토헨보스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로 남아있다.

14세기 들어서는 도심 지역이 확장되어 도시의 벽들도 확장되었으며 스헤르토헨보스도 당시 네덜란드 지역의 북방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르네상스 시기 예술가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은 히에로니무스 보스인데 보스가 13살 무렵 목격한 1463년 도시의 대형 화재는 보스의 대표작들에 영감을 주었다고 여겨진다.

1520년까지 스헤르토헨보스는 번영하여 당시 (현) 네덜란드 지역에서 위트레흐트 다음으로 가장 인구가 많았던 도시였다. 하지만 스헤로트헨보스의 번영은 이후 찾아온 전화로 인해 끝나게 된다. 네덜란드 독립전쟁 당시 독립된 주교령이었던 스헤르토헨보스는 합스부르크 세력에 가담하여 칼뱅주의 반란을 진압, 네덜란드 공화국군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으로 도시의 긴 전쟁기가 시작된다.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휴전이 끝나고 30년 전쟁이 발발하자 1629년 도시는 네덜란드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나 독립전쟁 당시 가톨릭 합스부르크 편을 들었던 스헤르토헨보스의 가톨릭 인구와 "브라반트인"들은 추후 암암리의 차별을 받게 된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평화가 맺어진 후에는 도시는 계속해서 방어 시설을 확장해 나갔으나 1794년 프랑스 혁명군에 의해 점령되고 이후 바타비아 공화국의 일부로, 그 다음에는 프랑스 제1제국에 넘어갔다 1814년 프로이센에 점령당한다. 2세기의 전쟁 기간 동안 1526년 18,571명이었던 인구는 바닥을 찍은 1665년에는 9,000명까지 추락하게 된다.

1815년 네덜란드 연합 왕국이 설립된 이후 스헤르토헨부스는 노르트브라반트 주의 주도가 되었으며 산업화 및 재건이 이루어져 경제발전의 수혜를 보았다. 하지만 동시에 보수적인 시정은 1878년까지 역사적인 성벽 밖으로 도심의 확장을 제한하여 주거난을 겪고 당시 네덜란드에서 영아사망률이 가장 높은 도시이기도 했었고. 또한 보수정부가 도시에 위협적인 노동자 활동 저지를 위해 노동자들을 불러올 산업화와 인텔리를 불러올 고등교육 시설 건설을 막았고 이는 스헤르토헨보스가 네덜란드 내에 중요도가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1940년 독일군에 점령되어 도시 외곽에 스헤르토헨보스 강제수용소가 세워져 약 30,000명의 수용수들이 감금되었다. 그 중 유대인들은 12,000명. 그러다 1944년 영국군에 의해 해방된다.

전후 네덜란드의 여타 다른 도시들처럼 급진적인 재건을 겪어 도시의 많은 역사적 건물들이 도시 개발을 위해 쓸려나가고 도시의 유명한 성벽도 이 시기 큰 훼손을 당한다. 그 예시로 1956년에는, 스헤르토헨보스에 남아 있는 네덜란드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벽돌 건물인 '모리안'을 도시 정부가 철거하여 도로를 건설하러 시도하고 이는 큰 반발을 낳은 끝에 무산된다. 1963년 즈음부터 사적지 보호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오늘날에는 도시의 성벽을 비롯한 많은 역사적 건물들이 도시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

3. 지리

도시 북쪽으로는 뫼즈 강이 흐르며 뫼즈 강에 맞닿아 있지는 않지만 도시의 운하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고 있다. 기후로는 서안 해양성 기후를 띈다.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이 강세를 띄어 무신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이 사실상 양분하고 있다.

4. 기타

현지에서 도시 이름을 스헤르토헨보스라고 풀네임으로 말하고 다니면 십중팔구 외지인인 줄 안다. 현지인들 거의 대부분은 공식명칭이 아닌 덴보스라고 부르기 때문.[2] 덴 하흐의 원래 이름도 '스흐라펀하허(s-Gravenhage)'라는 이름이 있지만 덴보스와는 달리 '덴하흐'가 정식 명칭이 되어 아무도 그렇게 안 부른다.

여담이지만, KBS 취재진이 여기서 일어난 폭력시위에 대해 보도를 하면서 도시 이름을 '헤르토헨보스'로 s를 묵음처리하는것으로 착각하여 오타를 내었다.

네덜란드 축구 2부리그 에이르스터 디비시 참가 구단인 FC 덴보스의 연고지이다.


[1] 통계인구, 2019년 1월 기준. [2] 우리나라에서 '한국'이나 '우리나라'가 아닌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면 공식 석상이 아닌 이상 어색한 거랑 같은 이치다. 한국에는 지명이 긴 경우가 별로 없어서 사례가 적지만, 부산진구에서 진구라고 줄여쓰냐 마느냐가 외지인 판독기인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