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7 14:28:48

데이브 머스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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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 'Em All
1983
Ride the Lightning
1984
Master of Puppets
1986
...And Justice for All
1988
Metallica
1991
Load
1996
Reload
1997
St. Anger
2003
Death Magnetic
2008
Hardwired... to Self-Destruct
2016
72 Seasons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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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데이브 머스테인
Dave Mustaine
파일:davemustaine_book_2_decibel_2020jpg-1170x780.jpg
본명 데이비드 스콧 머스테인
David Scott Mustaine
출생 1961년 9월 13일 ([age(1961-09-13)]세)
캘리포니아 라 메사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포지션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소속 그룹 메탈리카 (1982-1983)
메가데스 (1983-)
MD.45 (1996)
활동 기간 1979년 ~ 현재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커리어
2.1. 일생 및 음악 활동2.2. 메탈리카와의 관계
3. 연주 스타일4. 사용 장비5.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e3313e534d6d3bb4cf6ad313cc52ffc8.jpg
파일:external/cdn.quotationof.com/dave-mustaine-6.jpg
▲ 80년대 청년 시절
사진으로 보이는 거칠고 똘끼 충만한 모습[1]
▲ 90년대 애아빠 시절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50px-Mustaine-CzechMar2008.jpg
파일:external/www.megadeth.com/Signed%20BW%20-%20DM3.jpg
▲ 2008년 아저씨 시절 ▲ 2014년 할아버지 시절
파일:Dave_Mustaine_Megadeth_2022.jpg
▲ 2022년도 모습
메가데스의 리더, 기타리스트 겸 보컬.

미국 스래시 메탈 밴드 메가데스의 작사/작곡자 리드보컬 겸 기타리스트이다. 메가데스 결성전에는 메탈리카 기타리스트였다.

2. 커리어

2.1. 일생 및 음악 활동

데이브는 1961년 9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라메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2명의 누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데이브와 어머니, 누나들은 술주정뱅이인 그의 아버지를 피해다니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데이브는 13살때인 1974년 기타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고, 16살때 작곡을 시작하였다.[2] 1979년부터는 'Panic'이라는 밴드에 가입해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Panic 시절에 만든 Jump in The Fire, Mechanix[3], Phantom Lord, Metal Militia는 훗날 메탈리카 1집에 수록되게 된다. 한편, Panic 멤버들에게 술, 담배, 마리화나를 접하면서 중독될정도로 돈을 들이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게 된다.

1981년, 패닉의 멤버들이 사고로 사망하면서 해체되다시피 한다. 데이브는 패닉을 떠나 메탈리카에 멤버로 가입하고 밴드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활약한다. 당시 머스테인은 클리프 버튼이 밴드의 가입을 한 차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밴드에 있으면 밴드는 분명히 음악적으로 한 단계 상승할 것이다. 밴드의 근거지를 옮겨서라도 그를 밴드에 가입시켜야 한다."면서 마지막까지 클리프 버튼을 추천한 멤버였다고 한다. 제임스 헷필드는 밴드의 원 베이시스트이자 매니저인 론 맥고브니와 같은 룸메이트인데다 친구여서 처음에는 라스와 데이브의 주장을 반대했다고. 클리프 버튼이 밴드에 들어왔을 때 머스테인은 버튼이 자신의 음악성을 인정해 줄 것이라며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막상 가입한 버튼은 "화성학도 모르면서 무슨 밴드의 리드 작곡가냐"라며 그의 음악을 혹평했다고 한다.[4] 그래도 멤버들 중 유일하게 음악을 정식적으로 배운 사람이기에 못 들은 척 넘어갔다고. 또한, 이 시기 자신의 성격이 점점 광폭해지고[5] 알콜 중독이 말로 설득해서 치료되지 않을 수준으로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밴드의 별명이 알콜리카였을 정도로 밴드 내에 알콜 중독이 만연한 분위기였기에[6]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머스테인은 뉴욕에 위치한 녹음실에서 1집 < Kill 'Em All> 녹음을 하기로 한지 딱 1달 전인[7] 1983년 4월 11일 알콜 중독과 행실 불량이라는 이유로 추방당한다. 메탈리카의 다른 멤버들은 데이브 머스테인을 추방하기 전날 밤, 머스테인을 술에 만취하게 한뒤 그의 고향으로 가는 그레이하운드 버스에 강제로 실어서 내보냈다고 한다.[8] 아침에 술에서 깬 머스테인은 자신이 갑자기 버스 휴게소에 앉아있다는 것에 놀라서 밴드 멤버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라스 울리히에게 "너는 밴드에서 해고당했다. 앞으로 연락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절망감과 분노에 휩싸여 눈물을 흘리면서 휴게소 냅킨에다가 뭔가를 끄적거렸는데 이것이 훗날 메가데스 3집에 실린 Set The World A Fire의 가사가 된다. 참고로 머스테인은 돈이 없어서 버스 휴게소에서 고향 집까지 20블록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고 한다. 훗날 머스테인은 메탈리카에서 해고된 이후 긴 시간동안 메탈리카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9][10][11]

데이브의 해고는 이미 징조가 있었다. 해고당하기 전년도이자 데이브가 메탈리카로서 활동한 1982년 내내 그는 알콜과 마약에 절어 있었고, 알콜리카로 유명한 멤버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으로 중독 증상과 성격 문제가 심각했다. 다른 멤버들과 말싸움을 하는 것은 예사요, 수틀리면 잘못이 어느 쪽에 있든 주먹부터 내질러 댔다. 단순히 멤버들의 파워게임 결과 잘린 것이라고 하기엔 뭐한게, 당시 매니저와 스태프들도 데이브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연습실에 개를 데려오곤 했는데, 한 번은 개가 론의 차 위로 올라가 칠을 다 긁어 놓았다. 화가 난 제임스는 개를 걷어찼고, 데이브는 곧바로 제임스와 론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날리며 그들을 감싸는 라스에게 욕지거리를 해댔다. 이 일로 데이브는 해고되었다가 다음 날 사과하고 간신히 밴드에 복귀하였다. 또한, 데이브는 1982년 내내 론을 구박하고 괴롭혔으며, 12월에는 만취한 채로 그의 베이스 기타에 맥주 한 캔을 통째로 부으며 그의 실력을 모욕해 론을 자진탈퇴하게 만든 전적도 있었다. 데이브 머스테인은 "경고도 안 주고 이렇게 쫓아내는 게 어딨냐"고 서러워했지만 본인의 감상일 뿐 사실 이치에 맞는 변명은 아니었다.

이 해고 사건은 데이브의 인생에 씻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훗날 2002년경 제이슨 뉴스테드의 탈퇴와 제임스 헷필드의 기약없는 재활원 생활로 잠정적 해체 상태와 다름이 없던 메탈리카의 리더 라스 울리히는 밴드 재건을 위한 과거사 정리 차원에서 데이브를 만나 과거 이야기를 하고 사과의 말을 전했는데, 데이브는 '내가 메탈리카를 나온 이후 겪어온 일들에 대해 생각해 봤냐'고 물었고, 라스는 두말 잔소리할 것 없이 농담 한 마디 안 섞고 미안하다는 말을 했는데, 할 말이 많았던 데이브는 '아니 사과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겪어온 일들에 대해 생각을 해 봤냐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나만 보면 '이예에에~ 메딸리카~'하고 놀려댔지. 라디오에 메탈리카 이야기가 나오면 난 바로 라디오를 껐어. 왜냐고? 내가 일을 다 망쳐버렸다는(I fucked up) 생각만 드니까.'라며 본인의 후유증을 줄줄이 털어놓았다. 또한 '난 아직도 우리 둘이 뒷마당에 구멍을 파고 대마를 피워 댔던 시절이 기억나. 그런데 밴드에서 쫓겨나면서 난 내 덴마크인 친구[12]하고도 더이상 만날 수 없게 됐지.'라며 메탈리카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더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음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당시에 너희들이 나더러 '데이브, 넌 맛이 갔어. A.A.[13]라도 가 봐.'라고 말해 줬다면... 지금의 난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라며 거칠었던 본인의 과거를 후회하고 메탈리카 멤버들이자 친구들이라고 생각해 왔던 라스와 제임스에게 애착을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20년간 틀어져 지내면서 이미 엎질러진지도 한참 된 물인지라 되돌릴 수는 없다만.

참고로 메탈리카에 늦게 들어온 클리프 버튼만이 상대적으로 데이브 문제에 중립적이었으며, 데이브 머스테인의 방출 뒤에도 가끔 데이브와 대화에 응할 만큼 원만한 관계였다고 한다. 아래 인용문은 이에 대한 데이브의 인터뷰.
(3집 수록곡 In My Darkest Hour에 대해) 클리프의 부고를 듣고 쓴 곡이다. 내 친구인 마리아 페레로가 전화해 클리프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해줬다. 난 이것을 사적인 문제로 받아들였다.[14] "야 이 개새끼들아, 우린 한 밴드에 속했던 형제들인데, 형제의 사망 소식을 제3자한테 전해들어야 하는 거냐?" 이제 생각해보면 사람은 화가 나면 이상한 짓을 하는 거 같다. 난 전화해준 마리아에게 성질을 부렸는데, 그 당시 나는 정말, 정말로 화가 나서, 앉은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곡 하나를 쓰고 가사를 완성해버렸다. 그 곡을 쓰면서 정말 고통스러웠다.

밴드에서 해고된 이후, 데이브 머스테인은 세션 기타리스트로 일하면서 캘리포니아의 한 싸구려 아파트에서 폐인으로 살아간다. 이 당시 그는 1집 <Kill Em All>의 대다수 곡들에 작곡자로 표기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사람들이 메탈리카에 대한 것을 물어봐도 메탈리카에 대해서는 일절 거론하거나 듣지 않고 묵묵히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1983년의 어느 날, 술에 취해 자고 있던 데이브는 아랫층에 사는 베이시스트 데이빗 엘렙슨이 시끄럽게 베이스를 연주하는 소리에 깨어나서 화가 난 채로 데이빗 엘렙슨에게 시끄럽다며 소리를 지르며 따졌고[15] 그는 데이브의 집으로 찾아가서 미안하다며 자신의 데모 테이프를 건넸다. 데이브 머스테인은 그의 데모 테이프를 듣고 클리프 버튼처럼 뛰어난 연주를 하는 베이시스트가 또 있었구나 하고 놀라워하며 데이빗 엘렙슨에게 밴드 결성을 제의하였다. 밴드의 이름은 바로 메가데스였다.

1985년, 메가데스의 1집이 발매되자 메탈리카의 멤버들은 라디오 공개 인터뷰에서 "데이브 머스테인은 밴드 멤버들에게 망언을 많이 하고 다녔다, 우리들은 그를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로 품어갈려고 했지만 그는 항상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기에 그를 해고할 수 밖에 없었다."며 데이브 머스테인을 비난했고 그 모습을 본 데이브는 마음을 고쳐먹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음악성을 알리기 위해 라이브에서 그 놈들(메탈리카)보다 훨씬 뛰어나게 연주하겠다"고 어필하기 시작했다. 또한 데이브는 메탈리카 2집 타이틀 곡, Ride the Lightning의 코러스 리프와 같은 앨범에 수록된 The Call of Ktulu의 메인 리프는 자신이 메탈리카에서 해고당하기 직전 메탈리카 멤버들에게 들려준 미완성 곡을 메탈리카가 2집 작업 중에 편곡하여 수록한 것이고 메탈리카 3집에 수록된 Leper Messiah에서도 자신이 개발한 이른바 '스파이더 코드' 전개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곡의 크레딧에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메탈리카 측에서는 해당 곡들을 만들 때 머스테인은 이미 밴드에서 해고된지 오래였다며 데이브의 주장은 억지라고 반박하였다. 그러자 데이브 머스테인은 메가데스 4집에서 그 미완성 곡에 마티 프리드만과 즉흥적으로 고난이도의 속주 솔로를 덧붙여서 Hangar 18이라는 곡을 만들어 수록하였다. 7집에서는 메탈리카에 자신의 후임으로 들어온 커크 해밋이 만든 Enter Sandman의 리프를 꼬아서 Trust라는 곡도 만들었다.

메가데스 메탈리카. 슬레이어, 앤스랙스와 더불어 세계적인 4대 스래쉬 메탈 밴드로 추종받으며 메탈리카 다음으로 가장 상업적인 성공을 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데이브 머스테인의 술과 마약 중독, 데이브가 자신과 갈등을 빚은 멤버들을 수시로 해고하는 등의 밴드 외적 이유로 인한 활동 중단 등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2002년에 데이브 머스테인은 왼팔 신경이 압박을 받아서 마비가 오는,[16] 기타리스트로서는 절체 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2002년에 메가데스를 잠시 해체하였다. 당시 그의 왼팔은 물건을 들어올리기는 커녕 왼손으로 주먹을 쥐기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포기 하지 않고 재활 치료를 시작하였고 마침내 2004년, 재활 치료를 끝내고 메가데스를 재결성 하였다. 이후 메가데스는 계속 활동을 하고있다.[17]

2010년에 성대에 종양이 생겨 제거 수술을 받았다. 의사가 앞으로 보컬을 하는데 치명적일 것이라고 했으며 실제로 2009년에 비해 보컬 역량이 빠르게 쇠퇴하였다. 2015년에 척추 수술을 받은 후에는 더욱 쇠퇴해 제임스 헷필드 보다도 보컬 역량이 쇠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보컬을 도맡아 하고 있다. 메탈리카의 제임스 햇필드에 비해서 목 관리는 잘 했는데 데이브도 이제 2016년 기준으로 만 54세. 당연히 목소리가 제대로 나올리 없다. 팬들 사이에서도 이제는 새로운 보컬을 찾아야 한다는 등의 발언도 나오는 것을 보아하니 이제 더 이상 커버해 줄 목소리도 안나오는 것 같다...

2017년 10월, 트위터로 들어온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이전 몇 달간 벌레에 물려 걸린 라임병으로 고생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2019년 6월, 최근 후두암에 걸린 사실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렸다. 본인 언급으로는 완치확률을 90%까지 높이는 쪽으로 자신의 주치의와 계획을 세우고 항암치료에 들어갔다고 한다. 다만 항암치료로 인해 향후의 2019년 투어는 모두 취소되어 팬들과 멤버들에게 미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18]

그리고 얼마뒤 메가데스 공식 유튜브 채널에 Thank you 라는 제목의 짧은 멘트 영상을 올리며 자신은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고, 지금껏 나를 지지해준 가족과 친구들, 전세계의 팬들에게 감사하며 우리는 함께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거라고 스스로와 모두에게 격려의 인사를 표했다.

2020년에 암이 완전히 나았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 다만 전세계적인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덕분에 아직까지는 본인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며,코로나바이러스를 꼭 주의하라며 격리수칙을 지키며 부득히 외출할 경우 손을 꼭 씻으라는등 팬들에게 메세지를 보내는것도 잊지 않았다. https://youtu.be/UKTUoWSyHMo

2022년 4월 22일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짧은 쇼츠영상을 올리다가 2022년 5월 17일부터 본격적인 Vlog를 올리기 시작했다.

나이가 나이이고 음악계의 영향력도 지대한 인물이 개인 유튜브를 개설하니, 좋은쪽으로 의아해하고 신기해하는 반응들이 대다수이다.

2.2. 메탈리카와의 관계

데이브 머스테인은 메탈리카에서 굴욕적으로 해고당했음에도 그건 비즈니스적인 문제지, 속으로는 계속 친구요 형제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데이브를 큰 슬픔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는데, 1986년 클리프 버튼이 밴드 투어 이동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듣게 되었다는 것. 메탈리카 멤버들은 클리프의 사망 소식을 데이브에게 전하지 않았으며, 그의 친구인 마리아 페레로로부터 간접적으로 전달 받았다. 밴드에서 갈라서게 되었지만 여전히 친구 사이라고 믿었고, 퇴출 당한 이유가 자기 잘못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던 데이브 머스테인은 왜 그가 사망한 소식을 내게 알리지 않았냐며 라스와 제임스에게 엄청난 실망감과 분노를 가지게 되었다.

메탈리카의 Some Kind Of Monster 다큐멘터리에서도 나왔듯이, 메탈리카와 동시대에 활동하면서 그들의 성공에 비해 자신은 맞불만 겨우 놓았다며 2인자의 서러움을 느꼈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고, 메탈리카가 자신을 내쫒은 걸로 모자라 아예 제명하다시피 해버리며, 겨우 그들과 만났을 때는 '친구' 보다는 메탈리카와 메가데스 간의 비즈니스 적인 만남의 느낌이었다며 실망했다는 말을 했었다. 데이브 머스테인은 비록 메탈리카 멤버[19]에게도 상처를 주긴 했지만, 그들을 위하려는, 다른 이들에게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며, 그게 잘못된 것을 본인도 알지만, 그래도 두번째 기회나 아니면 좀 더 신사적으로 헤어질 수 있었다며 아쉬운 반응을 쏟아냈다.
클리프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해 본 것은 공연장이었는데, 메탈리카 멤버들은 아직 나한테 위협당한다 느꼈는지 백스테이지 패스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겁쟁이들 같았다. 공연이 끝난 후에야 (멤버들을) 볼 수 있었고, 공연 끝나고 하는 파티에는 부르더라. 난 그런 파티에 가고 싶은 게 아니라 내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놀고 싶은 거였다. 하지만 그 때 이미 우린 친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In My Darkest Hours의) 첫 공연 때 클리프의 부모님이 공연을 보러 오셨다. 그 곡을 연주하는 것 자체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분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중략) 난 클리프와 작별인사를 할 기회도 받지 못했고, 클리프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천국에서 만날테니 괜찮다. 최소한 그렇게 믿고 있다.
- '15곡으로 말하는 내 인생'이라는 주제로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 중에서

2006년까지도 메탈리카를 까고 다녔고 Mechanix를 연주할 때 시작 전에 엿을 먹이기도 했다. 2006년 Mechanix 라이브 영상

2009년 메탈리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현액될 때 데이브 머스테인의 이름이 오르지 못했는데, 여기에 대해 데이브는 “난 메탈리카의 첫 두 음반에 무수히 많은 곡을 써내며 그들의 커리어 시작에 확실히 기여했다. 메탈리카는 올랐는데 데이브 머스테인이 오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노래 듣는 헤드폰에 쇼트가 난 것이 분명하다. (중략) 아니, 아직 아니다. 언젠가 반드시 나도 오를 거라 확신한다. 난 조급해하지 않는다.”라며 아쉬움을 삼켰다. 메가데스는 26년동안 12번 노미네이트된 끝에 이 해에 열린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메탈 퍼포먼스 부문에서 수상을 해냈다. #

이후 메탈리카와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어 2011년에는 메탈리카 30주년 공연에서 Phantom Lord 를 연주했고, 2012년엔 빅4 콘서트를 함께 하는 등 훈훈한 행보를 보였다. 데이브 머스테인은 제임스 헷필드, 라스 울리히, 자기 자신, 메가데스 베이시스트인 데이빗 엘렙슨 구성으로 프로젝트 작업을 해보고 싶었지만 여러 사업적인 문제와 메탈리카가 화답하지 않으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20]

메탈리카와의 관계가 좋아진 이후로는 '메탈리카와 사이 안좋다는 건 옛날 이야기.' 라며 인터뷰 했다. 옛날엔 라디오에서 메탈리카 노래만 나와도 당장 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2014년 제임스 헷필드의 생일에 트위터로 그는 제임스가 자신의 첫번째 진짜배기 기타 메이트였고 우리가 세상을 바꿨다며 축하인사를 올렸다.

제임스 헷필드와는 서로 암에 걸리고, 우울증에 시달릴 때 위로 문자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프로젝트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메탈리카 퇴출 이후에 서로 얼굴도 안볼 정도로 적개심을 가진 것은 또 아니라서, 1993년엔 메탈리카를 헤드라이너로 한 투어를 같이 하기도 했고,[21] 분노의 대상이었던 라스나 제임스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어색한 사진을 찍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클리프 버튼과는 메탈리카와 갈라선 이후에도 종종 교류하며 친목을 다지기도 했었다. 데이브 머스테인의 자서전에 따르면 한창 씹어대던 80년대~90년대에도 아예 모르는 척 무시한 것은 아니고 가끔 동선이 겹치면 인사는 하는 정도로 지낸 듯 한데, 4집 활동 후반부터 다시 데이브 머스테인이 마약을 하기 시작하자 메탈리카 멤버들이 직접 데이브를 자신들의 방으로 불러 그의 앞에서 마약을 하는 시늉을 하며 데이브를 조롱한 적도 있다고 한다.

3. 연주 스타일

메가데스의 거의 모든 곡을 본인이 만들고 노래도 부르면서 기타 솔로도 연주한다.



메가데스의 프런트맨으로 알려져있지만 실제 메탈씬에서는 뛰어난 역량을 가진 기타리스트로 인정받고, 복잡하고 빠른 리프를 치면서 노래까지 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보통 보컬 겸 기타리스트는 리듬 기타를 맡고 기타 솔로처럼 기타리스트가 부각되는 부분은 리드 기타에게 주거나 같이 연주하는 편인데 머스테인같은 경우에는 근본이 리드 기타리스트라 상당한 양의 솔로도 자신이 연주한다. 사실상 메가데스에는 2명의 리드 기타리스트가 있는 셈.

여타 테크니션 스타일처럼 기타 연주를 들으면 "아! 이건 누구의 스타일이다!"라고 할정도의 고유의 색채가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22], 유연하고 다양한 테크닉과 리프 연주법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기타 실력을 뽐내기보단 이를 바탕으로 좋은 곡을 만드는데 더 집중을 하는편이다.

솔로잉 스케일과 스타일로는 마이너 펜타토닉에 크로매틱 노트로 요약되는데 마티가 쓴 솔로를 제외한 웬만한 대표곡에서 다 들어볼 수 있을 정도.[23] 때문에 커크 해밋만큼은 아니지만 솔로가 약간 반복적이라는 평이 있다.

하지만 데이브 머스테인의 진정한 유산을 꼽으라면 다들 '스파이더 코드'라고 불리는 왼손 연주법을 만들었다는 것을 꼽는다. 단순한 파워 코드들을 거미발을 움직이듯이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코드 이동을 하는 방법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검지와 약지로 4, 5현 파워코드를 잡고 연주를 하다가 잠깐씩 중지와 새끼로 5, 6현 파워코드를 잡아 변주를 더하는 방식이다. 이 특이한 방법 때문에 단순한 파워코드 전개에도 사운드를 좀 더 풍부하게 연주 할 수 있다.

보컬로서는 메탈 보컬리스트하면 생각나는 시원하게 질러대는 보컬과는 거리가 멀지만 특유의 씹어 뱉는듯 탁하게 읊조리는 보컬은 항상 짜증만땅으로 들리면서도 시니컬한 가사와 어울려 메가데스만의 개성이라 할만하며, 여기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메탈계의 음유시인 일반적인 시각에서 노래를 잘부른다고 할 수 있는 보컬은 아니긴 하다. 제임스 헷필드의 경우와 비슷하게 처음부터 노래까지 하려던 것은 아니었고 보컬을 영입하려 했으나, 적당한 사람을 구할 수 없어서 결국 자신이 보컬까지 겸하게 된 경우. 그럼에도 자기 보컬의 특징과 장점을 살린 송라이팅으로 헤비메탈계에 이름을 남겼으니 분명히 음악적 노력이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역설적으로, 머스테인의 이런 지나치게 개성있는 목소리와 이에 특화되어 만들어진 보컬 라인 때문에 메가데스의 곡은 다른 사람이 커버해도 원곡의 느낌을 살리기 아주 어렵다.

4. 사용 장비

메탈리카 시절과 메가데스 초기에는 B.C. Rich의 Perfect 시리즈를 이용하였다. 1집 활동 전후로 핑크색~붉은색이던 기타를 검은색으로 리페인팅했으며 2집 활동 후반에 분실 혹은 도난당했다고 한다. 이후 Jackson 사의 King V 모델을 사용했고 잠시 ESP Dean에서도 시그니쳐 모델이 나왔으며, 지금은 현재 깁슨 엔도서이다. 위 사진에서 연주하는 기타가 딘에서 나온 데이브 머스테인 시그니쳐 모델인 VMNT 시리즈이며, 그중 'ANGEL OF DETH' 모델이다. 자신의 시그니처 픽업인 Seymour Duncan의 액티브 픽업 '라이브 와이어'가 달려있는데, 이 픽업은 액티브이면서 패시브의 사운드에 가깝게 만들어져서 액티브 픽업의 대명사인 EMG와는 소리가 꽤 다르다.[24]

헤비 셰이프 기타를 특별히 좋아하는 기타리스트이다. 그중에서도 Flying V 스타일을 가장 좋아하여 현재 사용하는 거의 모든 기타가 V 셰잎이다. V 기타만 사용하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 좋아했던 마이클 쉥커의 영향이라 한다. 딘의 데이브 머스테인 시그니처 기타는 V 쉐입과 익스플로러 쉐잎 2종류가 나오고 있다.

2021년 2월자로 앤도서를 깁슨으로 변경하고 깁슨에서 플라잉브이와 어쿠스틱 시그니쳐, 깁슨의 자회사인 에피폰에서 저가형 시그니쳐 기타가 나오고 있다. 디자인은 플라잉브이에 익스플로러 헤드가 붙은 형태로 잭슨의 디자인과 비슷하다. 해외 리뷰어들의 평은 대체적으로 안좋은 편인데, 가격 거품이 많이 끼었다고 까인다. 에피폰 버젼은 의외로 깁슨보다 낫다는 모양.

5. 여담

  • 1988년 판테라 다임백 대럴을 영입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비니 폴까지 데려가야 한다고 해서 실패. 비니 폴이 싫었던 게 아니라 드러머 닉 멘자를 먼저 영입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 이 시기 판테라는 필립 안젤모 영입 직후로 글램 메탈 짝퉁밴드 소리듣던 흑역사 끝물이라, 만약 성사됐다면 미국 헤비메탈 씬에 매우 큰 if를 남겼을 것이다.[25]
  • 1991년 Pamela Anne Casselberry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며 자녀로 아들 저스티스와 딸 일렉트라가 있다. 촌티 팍나는 작명센스 딸인 일렉트라는 모델 겸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다. 일렉트라 머스테인이 부르는 A Tout le Monde.
  • 바디가 큰 기타를 주로 사용하고 연주하거나 노래부를 때 구부정하게 자세를 잡을 때가 많아 약간 왜소해 보이지만 실제로 만나 보면 체격도 좋고 키도 크다.(프로필 상 183cm) 헌데 관점에 따라서는 이 자세가 보기만 해도 등이 아파오는 자세(...)라는 의견도 있는 듯 하다. 참조
  • 컴맹 혹은 기계치가 많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과는 달리 컴퓨터를 상당히 잘 사용한다. 대부분 담당 엔지니어들한테 믹싱을 다 맡기는 경우들도 있지만 데이브의 경우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일일이 직접 다하는 만큼 장비를 다루는 법을 익힌 듯하다. 그 이외에도 스마트폰이나 여러 신문물을 잘 활용.
  • 메가데스에 소속했던 기타리스트들은 대부분 머스테인의 독재 때문에 자발적으로 탈퇴하거나 해고된 경우가 많다. 데이브 머스테인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취미에 '새로운 기타리스트한테 메가데스 곡 가르치기'라는 말을 항상 하지만, 그렇다고 오지 오스본처럼 젊은 유망주를 고른건 아니고 A급 기타리스트들을 여러번 받았다. 메가데스 최악의 기타리스트라는 말을 듣는 제프 영도 오디션 때 Peace Sells... But Who's Buying? 앨범에서 크리스 폴란드의 솔로를 귀로 듣고 30분만에 완벽하게 그려서 데이브에게 보여주었다. 다만 마티 프리드먼이 들어오고 4집 앨범인 ' Rust in Peace' 앨범 이후에는 데이브가 아닌 리드 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만의 입김이 강해졌고, 마티는 10년동안 메가데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 한국 메탈 커뮤니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여러가지 망언과 흉폭한 행동으로 악명이 높다. 과거에는 메가데스 곡에 나타난 정치, 종교,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가사들 때문에 머스테인은 의식있는 모두까기 독설가로 포장되었고 2001년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그나마 자신이 하는 말에 조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독교 우파 계열, 그것도 뉴 월드 오더같은 음모론을 믿는 기독교로 개종해서인지 음모론을 신봉하거나 "오바마는 미국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나 "릭 샌토럼은 최고의 공화정 입후보자이다".아무말 대잔치하는 것에 가까운 모습이다. 아들딸도 있는 양반이... 이 양반이랑 비슷하다.
    • 2015년 11월 호주 브리스번 공연에 문제가 있었던 것에 대해 기타 테크니션의 잘못으로 몰면서 그에게 '그 새끼는 완전 인성이 쓰레기구만!', '다시는 그놈의 빌어먹을 엉덩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군.' 등의 욕설을 퍼부었고 공연 직후 그를 해고했다. 이것이 논란이 되자 머스테인은 '기타 테크니션에게 사과하진 않겠지만, 용서는 하겠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 양반 아직 팔팔하구만'이라고 받아들이면 편하다.(...) 그리고 2016년 2월 페라스코프에 올라온 투어에 사용될 장비를 소개하는 영상에서 '나를 증오하는 놈들은 이거나 받으시지.'라면서 미들핑거를 날려서 또 구설수에 올랐다. 또한 글렌 드로버가 기타로 재직하던 시절 공연 도중 자신의 인 이어 모니터(In-ear monitor)의 오작동에 크게 분노하여 FlyingV를 테크가 있는 쪽으로 던져버렸다. 글렌 드로버가 맞지 않은게 다행일 정도로 힘껏 던졌고 자연스럽게 던지는 폼을 봐서는 한두번 해본 솜씨는 아닌듯... 영상[26]
  • 대안 우파 성향의 언론인인 알렉스 존스와 친하다. 그의 방송에서 인터뷰도 했다.
  • 비록 언행이 난폭하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 최소한 예의는 있다. 기본적으로 메가데스 밴드와 멤버를 아껴주는 팬들과 어린이들[27]에게는 기본적인 예의를 다하고 상상 외로 친절하며[28] 고인드립은 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이가 틀어진 후라도 전 멤버가 사망하면 공연에서 항상 추도사를 읊으며 그립다는 말은 반드시 해준다. 특히 2016년 그룹의 전성기를 함께한 닉 멘자가 공연 중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나서, 뉴욕 공연 도중 펑펑 울면서 보컬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링크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은 결혼도 하고 자식도 있고, 또 여러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 어느정도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그는 2003년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2007년 10월 서울에서 메가데스 멤버와 더불어 세계 태권도 연맹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4살때 어머니가 개신교 계열의 사이비 종교에 빠졌던 바람에 종교에 대해 꽤나 부정적이었다고 한다.[29] 그 후 음악을 접하면서 자신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고했지만 마약과 술 조차도 그것을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 때 그를 도와주었던 인물이 바로 앨리스 쿠퍼였고, 머스테인은 지금 그를 대부로 모신다. 데이브 머스테인이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기 시작했을 때가 앨리스 쿠퍼와 교류를 시작한 이후 부터다. 메탈 뮤지션치곤 가족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좋은데, 이는 앨리스 쿠퍼로부퍼 영향을 받은 것 https://youtu.be/t_mqEucOGkA
  • 2014년 10월 4일, 샌디에이고에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던 장모가 실종됐다고 한다. 기자회견까지 열며 간절히 찾기 바라고 있지만, 20일이 지나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결국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장모 실종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데이브 머스테인이 멤버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등 밴드 관리를 소홀히 하여 크리스 브로드릭과 숀 드로버의 탈퇴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 2011년부터 시라 포도농장을 만들어 14년 초 와인 사업을 런칭했다. 이름은 Mustaine Vineyards. 제품 이름은 6집 수록곡에서 따온 Blood Of Heroes(...)라고. 머스테인 병기창 재정수입사업
  • 데이브 머스테인은 the drew carey show라는 시트콤에 까메오로 출연한 적이 있다. 영상
  • 마티 프리드먼 하고는 애증의 관계인듯.클리프 버튼 사후 데이브 최애캐 마티도 메가데스 탈퇴 후 직접적으로 데이브 머스테인을 향해 욕한 적은 없지만[30] 데이브 머스테인도 그가 탈퇴한 이후로 한번도 그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한적이 없다.[31] 오히려 '그는 예전과 같은 헤비메탈을 권유하자 반발하여 밴드를 떠났다'라고 하며 아쉬워 했다. 그리고 심지어 메가데스 재결합때도 그에게 같이하자고 권유했을 정도니... 물론 마티가 거절했지만, 그 이후에도 밴드 내에서 데이브 머스테인과 함께하던 기타리스트가 탈퇴해서 공석이 생기면 계속 들어오라고 조르는 듯. 일본에서 라우드 파크 2015때 촬영했던 마티 프리드먼, 제프 루미스, 마이클 아모트의 3자 대면 인터뷰에서 마티가 밝히길 2015년 Dystopia 앨범 발매전에도 공석이 된 기타리스트를 구하기 위해 데이브 머스테인이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이 마티였다고...[32] 이상하게 마티하고 섞이면 성격이 서로 뒤바뀌는 듯
  • 위의 마티와의 관계처럼 머스테인 자신이 실력을 인정하거나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메탈리카 시절 클리프 버튼이 "화성학 기본도 모르는 놈이 무슨 작곡가야!!"고 깠음에도 별소리 하지 않았으며, 손목 부상을 치료하고 밴드를 다시 꾸릴 때 닉 멘자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했다.
파일:attachment/미카 하키넨/128771987364355126.jpg * 핀란드계라 그런지 F1 챔피언인 미카 하키넨과 판박이다.
  • 7현 기타를 매우 싫어한다. 7현 기타가 전통적인 스래쉬메탈 악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7현, 8현 기타 유저였던 크리스 브로드릭에게 6현으로 갈아탈 것을 요구했다. 무었보다 7,8현 기타부터가 기존의 6현 기타부터 음역대가 다르기 때문인데, 만약 7,8현을 쓰는 리드 기타리스트가 다양한 곡과 솔로를 만들어냈다가 밴드를 그만둔다면? 그러면 후임 기타리스트는 비슷한 음역대를 내기위해 7,8현을 사용하는 기타리스트를 새로 뽑아야하는 상황이 온다.
  • 올드스쿨 메탈 계보에 속하는 음악을 하다보니 뉴메탈을 싫어한다. "솔로 연주도 안하는 녀석들이 무슨 기타리스트냐?", " 뉴메탈을 듣느니 차라리 내 눈꺼풀을 뽑아버리겠다.[33]" 등 막말을 뿌리기도 했다. 하지만 Korn( 뉴메탈), 앨리스 인 체인스( 그런지)는 자신의 투어 일정에 넣으면서 저평가된 밴드라고 말했다.[34]
  • 패션 센스가 좋다. 주로 검은색 도배를 하는 메탈리카와 달리 자신의 큰 키와 체격에 어울리는 청바지+운동화 조합을 잘 활용한다.
  • 80-90년대에 샤프한 인상을 풍기는 미남이었다. 초창기 메탈리카 재직 시절, 베이 에어리어의 메탈 씬에서는 꽤 괜찮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노년이 된 이후로는 마약 등 여러 약물 중독의 후유증과 가정사 문제, 암 투병 등의 고생으로 주름이 엄청 늘었다. 그래도 베이 에어리어 동기생들이 탈모로 고생하는 데 반해 이쪽은 머리 숱만 줄고 여전히 장발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 잘 안 알려진 내용으로 건즈 앤 로지즈 공연 중 무대에 올라갔다가 진행 요원들에 의해 쫓겨난 사례가 있다...80년대 당시 음악잡지에도 짧게 기사화 됐었던 사건. 영상 데이브는 건즈 앤 로지스 멤버들과 친분이 있기도 했다. 슬래쉬랑도 잼도 즐겨했던 사이.
  • 스카이다이빙 매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아들이 태어난 후 마약을 끊어야겠다는 일념하에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했는데 마약보다 더 짜릿한 걸 해 보라는 의사의 권유로 스카이다이빙을 시작했다고 한다. Rust in Peace의 Holy Wars... The Punishment Due 뮤직비디오에서 스카이다이빙하는 장면이 나오며, 5집 앨범 Countdown to Extinction에 수록된 High speed dirt는 데이브 머스테인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던 중 높은 고도에서 지상을 바라보며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다.
파일:dave.png
  • 2019년 6월, 인후암을 진단 받았다. 생명에 지장은 없고, 원활한 치료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19년 말 암이 호전되어 콘서트 준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여담으로 암을 치료하는데 대마초가 꽤 도움이 되었다고 인터뷰했다.항암치료하면서 식욕이 엄청 떨어지고 음식을 섭취하기 어려웠는데, 대마초를 피면서 식욕을 돋우면서 몸을 추스리는 데 꽤 도움이 되었다고.
  • 젊은 시절 몸을 너무 혹사 시켰던 것과 팔에 마비가 왔던 일 때문인지 2022년 기준으로 만 60세가 되었어도 꾸준하게 몸관리를 하는 중이다. 리드 기타리스트 키코 로레이루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보면 공연 대기실에 전담 트레이너와 같이 운동을하고 팔과 손가락 근력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 후술하겠지만 이때는 항상 분노게이지 MAX 상태였다. [2] 처음 작곡한 곡은 Jump in The Fire라는 곡으로 훗날 메탈리카 1집에 수록되었다. 참고로 본래 가사는 자위행위에 관한 것이었다고(...). [3] Mechanix의 가사는 주유소에서 성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상상하는 내용이었는데 데이브 탈퇴 후, 묵시록의 4기사에 대한 내용으로 가사를 바꾸어서 The Four Horsemen이라는 제목으로 메탈리카 1집에 수록되었다. 초기 데모 테이프인 No Life 'Til Leather에서 Mechanix라는 제목으로 오리지널 데모 버전이 수록되었다. [4] 머스테인은 2000년대 들어서야 왼팔의 재활을 담당한 지도사에게 화성학을 처음 제대로 배웠다고 하니 그때까지 했던 작곡은 음악적 이론에 기반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감각에 더 크게 의존하여 작곡을 한 것들이다. [5] 데이브 머스테인은 알콜 중독 문제 외에도 관객이나 다른 사람들이 메탈리카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하면 다짜고짜 달려드는 등 호전적인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다. [6] 데이브의 회고에 의하면 밴드 멤버들은 하루에 평균 맥주 8박스를 해치웠다고 한다. [7] 메탈리카 1집의 녹음은 1983년 5월 10일에서 5월 27일까지 진행되었다. [8] 메탈리카는 녹음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뉴욕에 도착해서 대기 중인 상태였다. [9] 하루아침에 쫒겨나 전세계 메탈 팬들로부터 루저 소리나 듣게 된 2인자로서 평생을 살아온 열등감이 서려있다. [10] 자신의 광폭했던 성격과 알콜 중독이 말로 설득해서 치료되지 않을 수준이었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왜 자신이 가족같이 여기고 함께 꿈을 꾸던 제임스와 라스가 하루 아침에, 두번째 기회도, 사전 경고도 없이 그를 다짜고짜 쫒아내고 메탈리카의 역사에서 영원히 제명해버렸는지에 대한 끝없는 상실감과 배신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11] 특히 제임스와 데이브는 공통점이 많았다. 알코올 중독자에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아래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는 어머니가 있었다. [12] 라스 울리히. [13] 알콜중독자들이 만든 자발적 재활모임. [14] 흔한 업계 부고 소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 [15] 이때 데이브는 창문을 통해 화분을 던졌다고 한다. [16] 만취한 상태로 의자에 거의 누운채 기대어 잠이 들었는데 하필이면, 팔을 깔아 뭉개는 자세로 잠이 들어서 팔에 피가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17] 다만 이때 메가데스의 창립멤버였던 데이브 엘렙슨이 메가데스 저작권,상표권 문제로 소송하면서 크게 싸웠고 재결성 후에도 엘렙슨을 받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엘렙슨이 재가입한 뒤 활발히 활동하면서 앙금을 씻은 듯 보였으나 사생활 관련 문제로 다시 해고했다. [18] 본래 항암치료는 조금이라도 젊으면 경우에 따라 다소 강한 항암제를 투여하여 그 부작용이 강하게 오는 경우가 많다. [19] 제임스 헷필드, 라스 울리히 [20] 제임스 헷필드는 제이슨 뉴스테드의 프로젝트 계획에 딴지를 걸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만약 이를 승낙했다면 이기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1] 인터뷰에서 메탈리카와의 앙금은 이제 끝났다고 말하면서도, 메탈리카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냉랭히 대답하고, 인터뷰 도중에 메탈리카의 공연을 알리는 The Ecstasy Of Gold가 연주되고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성이 울리지마자 표정이 굳어져버리는 등, 여전히 관계가 개선되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메탈리카-메가데스 팬덤에서는 꽤 유명한 동영상... [22] 이런 색채는 도리어 마티 프리드먼이 가지고 있었다. [23] Holy Wars나 Peace Sells, Hangar 18에서 자신의 파트 등. [24] 아이러니(?)하게도, 혹은 우연히도 옛 동료인 제임스 헷필드와 자신의 후임자 커크 해밋은 항상 EMG 픽업을 쓴다. [25] 해당 영입이 성사됐다면 1990년에 나온 두 밴드의 전설의 명반 Cowboys from Hell Rust in Peace는 없을지도 모른다. [26] 유투버들은 마침 연주곡이 The System Has Failed 앨범의 수록곡이라서 The System Has Failed라고 비꼰다. 그리고 Flying V가 드디어 flying한다고 놀리는 댓글도 있다. [27] 공연도중에 인파에 떠밀려오는 아이를 스테이지 위로 건져주기도 했다. 참고로 메탈이나 펑크 공연장에 어린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다. 밀고 들어오는 것은 기본이고 슬램이나 머슁 등 춤사위가 벌어질 때는 건장한 성인들도 부대낄만한 상황이 연출된다. [28] 한 이슬람교도 팬이 그에게 라마단 기간 인사를 남겨달라고 트윗으로 요청하자 5분만에 그렇게 했다. 트위터 링크 [29] 여담이지만 한 때 몸담았던 밴드 메탈리카의 제임스 헷필드도 어머니가 크리스천 사이언스라는 기독교 계열 사이비에 빠졌다가 암에 걸리고 치료를 거부하는 바람에 사망하였다. [30] 마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친 메탈 뮤지션들과는 달리 성격이 유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장난식을 제외하면 남을 비난하는 인터뷰는 한적이 없다. [31] 데이브가 메가데스 전 멤버들과 '주니어'라는 애칭으로 부르던 데이빗 엘렙슨 조차도 방송에서 까던걸 생각해보자. [32] 어찌 이렇게 대화가 흘러갔냐면 제프 루미스가 예전에 메가데스 기타리스트 공고 모집을 할때 오디션을 지원했다가 떨어졌다고 말하자, (정확히 말하면 당시 너무 어려서 그냥 돌려보낸것) 마티가 반응한 것이다. [33] I'd Rather Have My Eyelids Pulled Out Than Listen to Nu Metal [34] 비슷한 예시로 스티브 바이 역시 이런 계열의 기타리스트들한테 컬쳐쇼크를 받으면서 기타리스트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35] 컨트리 뮤직으로 가수에 데뷔했는데 내슈빌은 컨트리 음악의 수도라고 불리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