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01 12:51:04

다카하시 다이스케

다카하시 다이스케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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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 하계 올림픽
1908 1908 런던 파일:스웨덴 국기.svg 페르 토렌 1920 1920 안트베르펀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마르틴 스틱스루
동계 올림픽
1회 1924 샤모니 파일:스위스 국기.svg 조르주 가우치 <colbgcolor=#3c3b6e,#141425> 2회 1928 생모리츠 파일:벨기에 국기.svg 로베르트 판제이브룩
3회 1932 레이크플래시드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몽고메리 윌슨 4회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
5회 1948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디 라다 6회 1952 오슬로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제임스 그로건
7회 1956 코르티나담페초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데이비드 젠킨스 8회 1960 스쿼밸리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svg 도널드 잭슨
9회 1964 인스브루크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앨런 10회 1968 그르노블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트릭 페라
11회 1972 삿포로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트릭 페라 12회 1976 인스브루크 파일:캐나다 국기.svg 톨러 크랜스턴
13회 1980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미국 국기.svg 찰스 티크너 14회 1984 사라예보 파일:체코 국기.svg 요제프 사보프치크
15회 1988 캘거리 파일:소련 국기.svg 빅토르 페트렌코 16회 1992 알베르빌 파일:체코 국기.svg 페트르 바르나
17회 1994 릴레함메르 파일:프랑스 국기.svg 필립 캉델로로 18회 1998 나가노 파일:프랑스 국기.svg 필립 캉델로로
19회 2002 솔트레이크시티 파일:미국 국기.svg 티모시 괴벨 20회 2006 토리노 파일:캐나다 국기.svg 제프리 버틀
21회 2010 밴쿠버 파일:일본 국기.svg 다카하시 다이스케 22회 2014 소치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데니스 텐
23회 2018 평창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24회 2022 베이징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쇼마
25회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파일:국기.svg ? 26회 ? 파일:국기.svg ?
  • 1912년 올림픽에는 종목으로 추가되어있지 않았고, 1916년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됨.
  •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동하계 올림픽 개최 주기가 2년마다 번갈아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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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1896년) ~ 50회(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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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회 1896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길버트 푹스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2회 1897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구스타프 휘겔
3회 1898 런던 파일:스웨덴 국기.svg 헤닝 그레난더 4회 1899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구스타프 휘겔
5회 1900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구스타프 휘겔 6회 1901 스톡홀름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7회 1902 런던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8회 1903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9회 1904 베를린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0회 1905 스톡홀름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1회 1906 뮌헨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길버트 푹스 12회 1907 빈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3회 1908 트로파우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4회 1909 스톡홀름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5회 1910 다보스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6회 1911 베를린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7회 1912 맨체스터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프리츠 카글러 18회 1913 빈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프리츠 카글러
19회 1914 헬싱키 파일:스웨덴 국기.svg 괴스타 샌달 20회 1915 취소 WWI
21회 1916 취소 WWI 22회 1917 취소 WWI
23회 1918 취소 WWI 24회 1919 취소 WWI
25회 1920 취소 WWI 26회 1921 취소 WWI
27회 1922 스톡홀름 파일:스웨덴 국기.svg 일리스 그라프스트룀 28회 1923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프리츠 카글러
29회 1924 맨체스터 파일:스웨덴 국기.svg 일리스 그라프스트룀 30회 1925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1회 1926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2회 1927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3회 1928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4회 1929 런던 파일:스웨덴 국기.svg 일리스 그라프스트룀
35회 1930 뉴욕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36회 1931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37회 1932 몬트리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38회 1933 취리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39회 1934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0회 1935 부다페스트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1회 1936 파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2회 1937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
43회 1938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 44회 1939 부다페스트 파일:영국 국기.svg 그래험 샤프
45회 1940 취소 WWII 46회 1941 취소 WWII
47회 1942 취소 WWII 48회 1943 취소 WWII
49회 1944 취소 WWII 50회 1945 취소 WWII }}}}}}}}}
51회(1946년) ~ 100회(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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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1회 1946 취소 WWII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2회 1947 스톡홀름 파일:스위스 국기.svg 한스 게르슈빌러
53회 1948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4회 1949 파리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5회 1950 웸블리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6회 1951 밀라노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7회 1952 파리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8회 1953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
59회 1954 오슬로 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 60회 1955 빈 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
61회 195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 62회 1957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드 젠킨스
63회 1958 파리 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드 젠킨스 64회 195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드 젠킨스
65회 1960 밴쿠버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 66회 1961 프라하 취소사베나 548 비행기 추락사건
67회 1962 프라하 파일:캐나다 국기.svg 도널드 잭슨 68회 1963 코르티나담페초 파일:캐나다 국기.svg 도널드 맥퍼슨
69회 1964 도르트문트 파일:독일 국기.svg 만프레트 슈넬도르퍼 70회 196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랭 칼마
71회 1966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2회 1967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3회 1968 제네바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4회 196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티모시 우드
75회 1970 류블랴나 파일:미국 국기.svg 티모시 우드 76회 1971 리옹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77회 1972 캘거리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78회 1973 브라티슬라바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79회 1974 뮌헨 파일:동독 국기.svg 얀 호프만 80회 197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소련 국기.svg 세르게이 볼코프
81회 1976 예테보리 파일:영국 국기.svg 존 커리 82회 1977 도쿄 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83회 1978 오타와 파일:미국 국기.svg 찰스 티크너 84회 1979 빈 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85회 1980 도르트문트 파일:동독 국기.svg 얀 호프만 86회 1981 하트퍼드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87회 1982 코펜하겐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88회 1983 헬싱키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89회 1984 오타와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90회 1985 도쿄 파일:소련 국기.svg 알렉산더 파디프
91회 1986 제네바 파일:미국 국기.svg 브라이언 보이타노 92회 1987 신시내티 파일:캐나다 국기.svg 브라이언 오서
93회 1988 부다페스트 파일:캐나다 국기.svg 브라이언 오서 94회 1989 파리 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95회 1990 핼리팩스 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96회 1991 뮌헨 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97회 1992 오클랜드 파일:독립국가연합 기.svg 빅토르 페트렌코 98회 1993 프라하 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99회 1994 치바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100회 1995 버밍엄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
101회(199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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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white> 101회 1996 에드먼턴 파일:미국 국기.svg 토드 엘드레지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02회 1997 로잔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103회 1998 미니애폴리스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104회 1999 헬싱키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105회 2000 니스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106회 2001 밴쿠버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107회 2002 나가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108회 2003 워싱턴 D.C.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109회 2004 도르트문트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110회 2005 모스크바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테판 랑비엘
111회 2006 캘거리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테판 랑비엘 112회 2007 도쿄 파일:프랑스 국기.svg 브라이언 주베르
113회 2008 예테보리 파일:캐나다 국기.svg 제프리 버틀 114회 2009 로스앤젤레스 파일:미국 국기.svg 에반 라이사첵
115회 2010 토리노 파일:일본 국기.svg 다카하시 다이스케 116회 2011 모스크바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17회 2012 니스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18회 2013 런던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19회 2014 사이타마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120회 2015 상하이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121회 2016 보스턴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122회 2017 헬싱키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123회 2018 밀라노 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124회 2019 사이타마 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125회 2020 몬트리올 취소 COVID-19 126회 2021 스톡홀름 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127회 2022 몽펠리에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쇼마 128회 2023 사이타마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쇼마
129회 2024 몬트리올 파일:미국 국기.svg 일리야 말리닌 130회 2025 보스턴 파일:국기.svg ?
131회 2026 프라하 파일:국기.svg ? 132회 ? 파일:국기.sv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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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륙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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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회 1999 핼리팩스 파일:일본 국기.svg 혼다 다케시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2회 2000 오사카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3회 2001 솔트레이크 시티 파일:중국 국기.svg 리청장 4회 2002 전주 파일:캐나다 국기.svg 제프리 버틀
5회 2003 베이징 파일:일본 국기.svg 혼다 다케시 6회 2004 해밀턴 파일:캐나다 국기.svg 제프리 버틀
7회 2005 강릉 파일:미국 국기.svg 에반 라이사첵 8회 2006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일본 국기.svg 오다 노부나리
9회 2007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에반 라이사첵 10회 2008 고양 파일:일본 국기.svg 다카하시 다이스케
11회 2009 밴쿠버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2회 2010 전주 파일:미국 국기.svg 아담 리폰
13회 2011 타이페이 파일:일본 국기.svg 다카하시 다이스케 14회 2012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5회 2013 오사카 파일:캐나다 국기.svg 케빈 레이놀즈 16회 2014 타이페이 파일:일본 국기.svg 무라 타카히토
17회 2015 서울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데니스 텐 18회 2016 타이페이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9회 2017 강릉 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20회 2018 타이페이 파일:중국 국기.svg 진보양
21회 2019 애너하임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쇼마 22회 2020 서울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23회 2021 시드니 취소 COVID-19 24회 2022 탈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차준환
25회 2023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일본 국기.svg 미우라 카오 26회 2024 상하이 파일:일본 국기.svg 카기야마 유마
27회 2025 서울 파일:국기.svg ? 28회 ? 파일:국기.svg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885C2 20%, #FBB132 20%, #FBB132 40%, #000 40%, #000 60%, #1C8B3C 60%, #1C8B3C 80%, #ED334E 80%); font-size: 1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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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프리 파이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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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회 1995-96 파리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우르마노프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2회 1996-97 해밀턴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3회 1997-98 뮌헨 파일:러시아 국기.svg 일리야 쿨릭 4회 1998-99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5회 1999-00 리옹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6회 2000-01 도쿄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7회 2001-02 키치너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8회 2002-03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9회 2003-04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캐나다 국기.svg 엠마뉴엘 산두 10회 2004-05 베이징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11회 2005-06 도쿄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테판 랑비엘 12회 2006-07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프랑스 국기.svg 브라이언 주베르
13회 2007-08 토리노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테판 랑비엘 14회 2008-09 고양 파일:미국 국기.svg 제레미 애봇
15회 2009-10 도쿄 파일:미국 국기.svg 에반 라이사첵 16회 2010-11 베이징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7회 2011-12 퀘벡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8회 2012-13 소치 파일:일본 국기.svg 다카하시 다이스케
19회 2013-14 후쿠오카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20회 2014-15 바르셀로나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21회 2015-16 바르셀로나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22회 2016-17 마르세유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23회 2017-18 나고야 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24회 2018-19 밴쿠버 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25회 2019-20 토리노 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26회 2020-21 베이징 취소 COVID-19
27회 2021-22 오사카 취소 COVID-19 28회 2022-23 토리노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쇼마
29회 2023-24 베이징 파일:미국 국기.svg 일리야 말리닌 30회 2024-25 오를레앙 파일:국기.svg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885C2 20%, #FBB132 20%, #FBB132 40%, #000 40%, #000 60%, #1C8B3C 60%, #1C8B3C 80%, #ED334E 80%); font-size: 1em;"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FFFFFF)"
{{{#!wiki style="margin-top:-8px;margin-bottom:-8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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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세계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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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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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회(1976년) ~ 50회(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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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회 1976 므제브 파일:미국 국기.svg 마크 코커렐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2회 1977 므제브 파일:캐나다 국기.svg 다니엘 버랜드
3회 1978 므제브 파일:캐나다 국기.svg 데니스 코이 4회 1979 아우크스부르크 파일:소련 국기.svg 비탈리 이고로프
5회 1980 므제브 파일:소련 국기.svg 알렉산더 파디프 6회 1981 런던 파일:미국 국기.svg 폴 와일리
7회 1982 오버스트도르프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윌리엄스 8회 1983 사라예보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토퍼 보먼
9회 1984 삿포로 파일:소련 국기.svg 빅토르 페트렌코 10회 198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에릭 러슨
11회 1986 사라예보 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페트렌코 12회 1987 키치너 파일:미국 국기.svg 러디 갈린도
13회 1988 브리즈번 파일:미국 국기.svg 토드 엘드레지 14회 1989 사라예보 파일:소련 국기.svg 뱌체슬라프 자고로드뉵
15회 1990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소련 국기.svg 이고르 파슈케비치 16회 1991 부다페스트 파일:소련 국기.svg 바실리 예레멘코
17회 1992 헐 파일:소련 국기.svg 드미트리 페트렌코 18회 1993 서울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예브게니 플리우타
19회 1994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마이클 바이스 20회 1995 부다페스트 파일:러시아 국기.svg 일리야 쿨릭
21회 1996 브리즈번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22회 1997 서울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23회 1998 세인트 존 파일:미국 국기.svg 데릭 델모어 24회 1999 자그레브 파일:러시아 국기.svg 일리야 클림킨
25회 2000 오버스트도르프 파일:독일 국기.svg 슈테판 린데만 26회 2001 소피아 파일:미국 국기.svg 조니 위어
27회 2002 하마르 파일:일본 국기.svg 다카하시 다이스케 28회 2003 오스트라바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산더 슈빈
29회 2004 헤이그 파일:러시아 국기.svg 안드레이 그랴제프 30회 2005 키치너 파일:일본 국기.svg 오다 노부나리
31회 2006 류블랴나 파일:일본 국기.svg 코즈카 타카히코 32회 2007 오버스트도르프 파일:미국 국기.svg 스티븐 케리어
33회 2008 소피아 파일:미국 국기.svg 아담 리폰 34회 2009 소피아 파일:미국 국기.svg 아담 리폰
35회 2010 헤이그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36회 2011 강릉 파일:캐나다 국기.svg 안드레이 로고자인
37회 2012 민스크 파일:중국 국기.svg 옌한 38회 2013 밀라노 파일:미국 국기.svg 조슈아 패리스
39회 2014 소피아 파일:캐나다 국기.svg 남 응우옌 40회 2015 탈린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쇼마
41회 2016 데브레첸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다니엘 사모힌 42회 2017 타이베이 파일:미국 국기.svg 빈센트 저우
43회 2018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예로호프 44회 2019 자그레브 파일:미국 국기.svg 토모키 히와타시
45회 2020 탈린 파일:러시아 국기.svg 안드레이 모잘료프 46회 2021 하얼빈 취소 COVID-19
47회 2022 탈린 파일:미국 국기.svg 일리야 말리닌 48회 2023 캘거리 파일:일본 국기.svg 미우라 카오
49회 2024 타이베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민규 50회 2025 데브레첸 파일:국기.svg ? }}}}}}}}}
51회(202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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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유니버시아드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 챔피언
파일:FISU 로고.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바실레프스키
(2003)
파일:일본 국기.svg 다카하시 다이스케
(2005, 2007)
파일:중국 국기.svg 밍 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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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본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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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1929-30년) ~ 50회(1978-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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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회 1929-30 닛코 쿠보 마코토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2회 1930-31 센다이 오이마츠 카즈요시
3회 1931-32 시모스와 사토 킹고 4회 1932-33 도쿄 카타야마 토시카즈
5회 1933-34 도쿄 카타야마 토시카즈 6회 1934-35 도쿄 카타야마 토시카즈
7회 1935-36 도쿄 키타가와 세이지 8회 1936-37 도쿄 카타야마 토시카즈
9회 1937-38 도쿄 카타야마 토시카즈 10회 1938-39 도쿄 칸다 히로시
11회 1939-40 도쿄 아리사카 류스케 12회 1940-41 도쿄 아리사카 류스케
13회 1941-42 취소 WWII 14회 1942-43 취소 WWII
15회 1943-44 취소 WWII 16회 1944-45 취소 WWII
17회 1945-46 취소 WWII 18회 1946-47 하치노헤 아리사카 류스케
19회 1947-48 모리오카 아리사카 류스케 20회 1948-49 스와 취소
21회 1949-50 토마코마이 사카이 카츠미 22회 1950-51 닛코 아리사카 류스케
23회 1951-52 도쿄 ? 24회 1952-53 도쿄 잭 B. 조스트
25회 1953-54 오사카 코바야시 마사미즈 26회 1954-55 도쿄 오하시 카즈오
27회 1955-56 쿄토 스기타 히데오 28회 1956-57 도쿄 사토 노부오
29회 1957-58 도쿄 사토 노부오 30회 1958-59 오사카 사토 노부오
31회 1959-60 도쿄 사토 노부오 32회 1960-61 도쿄 사토 노부오
33회 1961-62 오사카 사토 노부오 34회 1962-63 도쿄 사토 노부오
35회 1963-64 도쿄 사토 노부오 36회 1964-65 오사카 사토 노부오
37회 1965-66 토마코마이 사토 노부오 38회 1966-67 도쿄 코즈카 츠구히코
39회 1967-68 도쿄 코즈카 츠구히코 40회 1968-69 도쿄 코즈카 츠구히코
41회 1969-70 오사카 히구치 유타카 42회 1970-71 도쿄 히구치 유타카
43회 1971-72 삿포로 히구치 유타카 44회 1972-73 오사카 사노 미노루
45회 1973-74 교토 사노 미노루 46회 1974-75 히로시마 사노 미노루
47회 1975-76 도쿄 사노 미노루 48회 1976-77 도쿄 사노 미노루
49회 1977-78 교토 이가라시 후미오 50회 1978-79 도쿄 마츠무라 미츠루 }}}}}}}}}
51회(1979-8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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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1회 1979-80 도쿄 이가라시 후미오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2회 1980-81 도쿄 이가라시 후미오
53회 1981-82 도쿄 이가라시 후미오 54회 1982-83 도쿄 소메야 신지
55회 1983-84 도쿄 오가와 마사루 56회 1984-85 도쿄 오가와 마사루
57회 1985-86 도쿄 오가와 마사루 58회 1986-87 도쿄 오가와 마사루
59회 1987-88 도쿄 카노 마코토 60회 1988-89 도쿄 카노 마코토
61회 1989-90 기타큐슈 후지 타츠야 62회 1990-91 요코하마 카기야마 마사카즈
63회 1991-92 고베 카기야마 마사카즈 64회 1992-93 나고야 카기야마 마사카즈
65회 1993-94 요코하마 아이카와 후미히로 66회 1994-95 고베 아마노 신
67회 1995-96 요코하마 혼다 타케시 68회 1996-97 나가노 혼다 타케시
69회 1997-98 고베 타무라 야마토 70회 1998-99 요코하마 타케우치 요스케
71회 1999-00 후쿠오카 혼다 타케시 72회 2000-01 나가노 혼다 타케시
73회 2001-02 오사카 타케우치 요스케 74회 2002-03 교토 혼다 타케시
75회 2003-04 나가노 타무라 야마토 76회 2004-05 요코하마 혼다 타케시
77회 2005-06 도쿄 다카하시 다이스케 78회 2006-07 나고야 다카하시 다이스케
79회 2007-08 카도마 다카하시 다이스케 80회 2008-09 나가노 오다 노부나리
81회 2009-10 카도마 다카하시 다이스케 82회 2010-11 나가노 코즈카 타카히코
83회 2011-12 카도마 다카하시 다이스케 84회 2012-13 삿포로 하뉴 유즈루
85회 2013-14 사이타마 하뉴 유즈루 86회 2014-15 나가노 하뉴 유즈루
87회 2015-16 삿포로 하뉴 유즈루 88회 2016-17 오사카 우노 쇼마
89회 2017-18 도쿄 우노 쇼마 90회 2018-19 오사카 우노 쇼마
91회 2019-20 도쿄 우노 쇼마 92회 2020-21 나가노 하뉴 유즈루
93회 2021-22 사이타마 하뉴 유즈루 94회 2022-23 카도마 우노 쇼마
95회 2023-24 ? 96회 2024-25 ? }}}}}}}}}
피겨 스케이팅 내셔널 역대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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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
파일:다카하시 다이스케.jpg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동메달 획득 당시
이름 다카하시 다이스케([ruby(髙橋, ruby=たかはし)] [ruby(大輔, ruby=だいすけ)])
Daisuke Takahashi[1]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생 1986년 3월 16일 ([age(1986-03-16)]세)
오카야마현 쿠라시키시
학력 칸사이대학부속중학교
칸사이대학부속고등학교
간사이대학 문학부
종목 피겨 스케이팅
신체 165cm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2000-01 시즌2.2. 2001-02 시즌2.3. 2002-03 시즌2.4. 2003-04 시즌2.5. 2004-05 시즌2.6. 2005-06 시즌2.7. 2006-07 시즌2.8. 2007-08 시즌2.9. 2009-10 시즌2.10. 2010-11 시즌2.11. 2011-12 시즌2.12. 2012-13 시즌2.13. 2013-14 시즌2.14. 2018-19 시즌2.15. 2019-20 시즌
3. 평가4. 기록
4.1. 세계신기록4.2. 득점 이외의 기록
5. ISU 공인 최고점수6. 커리어7. 기타
7.1. 前 코치 니콜라이 모로조프와의 관계

[clearfix]

1. 개요

일본의 前 남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거의 20년에 달하는 싱글 선수 생활을 하였으며, 이 항목은 다이스케의 싱글 선수 경력을 정리한 것이다. 아이스 댄스 커리어는 무라모토 카나 / 다카하시 다이스케 문서 참조.

2.1. 2000-01 시즌

2000 JGP 우크라이나에서 8위를 하며 주니어 그랑프리 데뷔를 했다. 이어진 2000 JGP 중국에서는 9위를 했다. 2000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2.2. 2001-02 시즌

2001 JGP 불가리아에서 은메달, 2001 JGP 일본에서 금메달을 따며 2001-02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해 4위를 기록했다. 2001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동메달, 2001 전일본선수권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파일:2002 피겨 주니어 세계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2002 주니어 세계선수권
2002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였으며 이는 일본 남자 싱글 역사상 최초의 사례이다.

2.3. 2002-03 시즌

만 16세의 나이로 시니어에 데뷔하여 그랑프리 3차 보프로스트 컵 11위, 그랑프리 6차 NHK 트로피 8위를 하였다.

전일본선수권에서 8위, 2003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6위, 2003 사대륙선수권에서 13위를 했다.

2.4. 2003-04 시즌

그랑프리 2차 스케이트 캐나다 7위, 그랑프리 4차 트로피 랄리크 5위를 했다.
파일:2003-04 전일본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2003-04 전일본선수권
전일본선수권에서는 동메달을 따며 처음으로 포디움에 들었고, 2004 사대륙선수권 6위, 2004 세계선수권에서 11위를 했다.

2.5. 2004-05 시즌

그랑프리 4차 컵 오브 차이나에서 11위를 했다. 전일본선수권에서는 6위를 했다. 2005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파일:2005 사대륙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2005 사대륙선수권
2005 사대륙선수권에서는 동메달을 따며 시니어 데뷔 이후 ISU 공인 대회에서 첫 메달을 획득했다.

전일본선수권에서는 6위였으나, 사대륙선수권 동메달의 실적을 인정받아 내셔널 우승자인 혼다 다케시와 함께 2005 세계선수권에 출전했으나, 혼다 다케시가 부상으로 경기 중 낙마하였고 결국 다이스케 혼자 출전한 셈이 되었다. 이에 다음 시즌 열릴 세계선수권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출전권을 지켜야 했지만, 15위에 머무르며 일본 남자 싱글의 올림픽 출전권은 한 장으로 줄어버리고 말았다.

2.6. 2005-06 시즌

파일:2005 스케이트 아메리카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5 NHK 트로피 남자싱글 포디움.jpg
2005 스케이트 아메리카 2005 NHK 트로피
그랑프리 1차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그랑프리 6차 NHK 트로피에서는 동메달을 따며 처음으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파일:2005-2006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5-06 전일본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2005-06 그랑프리 파이널 2005-06 전일본선수권
2005-06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동메달을 땄다.

한편, 다카하시 외에 오다 노부나리가 이번 시즌 올림픽 출전권 도전자로 급부상했다. 오다와 다카하시 둘 다 매우 좋은 그랑프리 시즌을 보냈기에, 한 장 뿐인 올림픽 출전권은 전일본 선수권의 우승자가 가져가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경기 결과 오다가 우승하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듯 했지만, 충격적이게도 컴퓨터 시스템의 오류로 점수 계산이 잘못되었음[2]이 밝혀져 다카하시가 금메달을 받게 되었다. 이에 일본 빙상연맹은 다카하시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오다에게는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부여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출전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은 종합 8위로 마쳤다. 쇼트는 5위로 마쳐 포디움권에 도전할 수 있었으나 프리에서 부진하여 9위에 머물렀다.

2.7. 2006-07 시즌

파일:2006 스케이트 캐나다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6 NHK 트로피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6-07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싱글 포디움.jpg
2006 스케이트 캐나다 2006 NHK 트로피 2006-07 그랑프리 파이널
그랑프리 2차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2위, 그랑프리 6차 NHK 트로피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작년에 이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2006-07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작년보다 한단계 높은 은메달을 땄다.
파일:2006-07 전일본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7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2006-07 전일본선수권 2007 세계선수권
2006 전일본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연패를 달성한 데 이어 2007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도 우승하며 피겨 남자 싱글 부문 2연패를 달성했다. 시즌 마지막 대회로 2007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정상권에 입지를 굳혔다.

2.8. 2007-08 시즌

파일:2007 스케이트 아메리카 남자싱글 포디움2.jpg 파일:2007 NHK 트로피 남자싱글 포디움.jpg
2007 스케이트 아메리카 2007 NHK 트로피
그랑프리 두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고 1순위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직행하였다.
파일:2007-2008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8 사대륙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2007-08 그랑프리 파이널 2008 사대륙선수권
2007-08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작년에 이어 은메달을 땄다. 이어 전일본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3연패를 달성했다.

2008 사대륙선수권에서 남자 싱글 선수 중 최초로 프리 170점/총점 260점을 돌파하며 우승했다. 점수는 프리 175.84점, 총점 264.41점으로 종전 예브게니 플루셴코의 기록들을 경신하였다.[3] 그러나 2008 세계선수권에서는 4위에 그쳤다.

이 시즌의 쇼트 프로그램 '힙합백조'[4]는 다카하시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렇듯 승승장구하던 다카하시는, 다음 시즌을 준비하던 중 불의의 부상을 당해 2008-09 시즌을 통째로 스킵했다.

2.9. 2009-10 시즌

B급 대회인 핀란디아 트로피에서 우승하며 복귀하였다.
파일:2009 스케이트 캐나다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9-10 전일본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2009 스케이트 캐나다 2009 전일본선수권
컨디션이 다 돌아오지 않았는지 그랑프리 4차 NHK 트로피에서 4위에 머물렀다. 그렇지만 그랑프리 6차 스케이트 캐나다에서는 2위에 올라, 가까스로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2009-10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전일본선수권에서 우승하며 통산 4번째 우승을 달성, 밴쿠버 동계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었다.
파일: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포디움.jpg 파일:2010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2010 세계선수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 프로그램에서 90점대에 오르며 3위[5]를 기록하면서, 프리 스케이팅에서 4회전에 도전했다가 넘어지고 러츠 점프 두 개에서 모두 에지 문제로 감점을 받는 등의 부진을 보였음에도 쇼트 점수의 우위를 바탕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아시아 남자 선수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그 후 2010 세계선수권에서는 시즌 최고 기록을 세우면서 아시아 남자 선수로는 최초의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6]

2.10. 2010-11 시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에 4회전 점프 능력이 어느 정도 돌아오긴 했으나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4회전 점프를 장착한 패트릭 챈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파일:2010 스케이트 아메리카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10 NHK 트로피 남자싱글 포디움.jpg
2010 스케이트 아메리카 2010 NHK 트로피
그랑프리 두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며 그랑프리 파이널에 직행하였다. 그러나 2010-11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최종 4위에 머물렀다.
파일:다카하시 다이스케4.jpg 파일:2011 사대륙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2010 전일본선수권 2011 사대륙선수권
2010 전일본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는 데 그치며 2005년 대회 이후 처음으로 우승에 실패했다. 2011 사대륙선수권에서 우승하며 반등하는 듯 했으나, 2011 세계선수권은 5위로 마무리했다.

2.11. 2011-12 시즌

파일:2011 스케이트 캐나다 남자싱글 포디움2.jpg 파일:2011 NHK 트로피 남자싱글 포디움.jpg
2011 스케이트 캐나다 2011 NHK 트로피
그랑프리 2차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3위, 그랑프리 4차 NHK 트로피에서 우승하며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파일:2011-12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다카하시 다이스케5.jpg
2011-12 그랑프리 파이널 2011 전일본선수권
2011-12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패트릭 챈에 이은 은메달을 땄다. 2011 전일본선수권에서는 우승하며 챔피언 자리를 탈환하였다.
파일:2012 사대륙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yuzuru2012.jpg 파일:2012 월드 팀 트로피 포디움.jpg
2012 사대륙선수권 2012 세계선수권 2012 월드 팀 트로피
2012 사대륙선수권, 2012 세계선수권에서도 모두 에게 우승을 내주고 2위를 차지하였다. 콩라인 그래도 시즌 마지막 대회인 2012 월드 팀 트로피에서 쇼트 94.00점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는 등 선전하여 챈을 제치고 개인 1위를 차지하였고, 일본 팀도 우승했다.

그래도 밴쿠버 올림픽 이후 패트릭 챈을 꺾어 본 몇 안 되는 선수에 속하며[7], 전반적으로 이 시기의 커리어로는 패트릭 챈에 이은 2인자에 가장 가까운 선수였다.

2.12. 2012-13 시즌

이 시즌부터 하뉴 유즈루가 급 부상하면서 일본의 피겨 남자 싱글 간판스타 자리를 위협받기 시작했다.
파일:2012 컵 오브 차이나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12 NHK 트로피 남자싱글 포디움.jpg
2012 컵 오브 차이나 2012 NHK 트로피
그랑프리 3차 컵 오브 차이나에서 2위를 한 데 이어 그랑프리 6차 NHK 트로피에서도 하뉴 유즈루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다.
파일:2012-13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다카하시 다이스케6.jpg 파일:2013 월드 팀 트로피 일본.jpg
2012-13 그랑프리 파이널 2012 전일본선수권 2013 월드 팀 트로피
그렇지만 2012-13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처음으로 우승에 성공하였다. 2012 전일본선수권에서도 하뉴 유즈루에 이은 은메달을 땄다.

2013 사대륙선수권 2013 세계선수권에서는 부진하며 각각 7위와 6위를 기록했다. 시즌 마지막 대회인 2013 월드 팀 트로피에서는 개인 1위, 팀은 동메달을 땄다.

2.13. 2013-14 시즌

파일:2013 NHK 트로피 남자싱글 포디움.jpg
2013 NHK 트로피
그랑프리 1차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4위로 포디움에 탈락했다. 그랑프리 4차 NHK 트로피에서 우승하며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긴 했으나 부상으로 기권했다.

2013 전일본선수권에서 5위에 그쳤으나 그간의 실적을 인정받아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하뉴 유즈루가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역대 2위 기록을 세우며 패트릭 챈을 꺾고 우승한 데다가 전일본 선수권에서도 2연패를 달성하면서, 올림픽에서의 일본의 간판을 하뉴에게 사실상 내 준 분위기였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쇼트와 프리 모두 쿼드를 시도했지만 다운 그레이드가 되고, 심지어 프리에서는 후반 트리플 악셀마저 시퀀스에 언더로테이티드 판정을 받는 깨끗하지 못한 경기를 펼쳐 결국 최종 6위에 그치고 말았다.

2014년 여름, TV 토크쇼에서 은퇴를 암시하는 멘트를 몇차례 남겼고 그 해 10월 14일 은퇴를 발표했다.

2.14. 2018-19 시즌

2018년 7월 1일, 소속사를 통해 은퇴한지 4년 만에 현역으로 복귀하겠다고 발표했다.
파일:우노 쇼마8.jpg
2018 전일본선수권
오랜만에 출전한 2018 전일본선수권에서는 우노 쇼마에 이은 2위를 하여 2019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얻었으나 후배들에게 양보했다. 또한 다음 시즌 국제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견을 이야기했다.

2.15. 2019-20 시즌

2019년 9월 26일, 무라모토 카나와 팀을 결성해 아이스 댄스로 전향한다고 발표했다. 2019 전일본선수권에서는 12위를 하며 싱글선수로서의 커리어를 마감했다.

아이스 댄서로서의 커리어는 무라모토 카나 / 다카하시 다이스케 문서로.

3. 평가

일본 남자 싱글의 간판스타 자리를 근 10년 가까이 유지해 오면서 일본이 남자 싱글에서도 강국으로 떠오르는데 선두주자 역할을 해왔다. 오랜 시간 동안 싱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세계선수권, 사대륙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 등에서 우승 경험이 있고 세계신기록도 몇차례 경신하는 등 유럽과 북미 선수들 가운데 경쟁력 있는 선수로서 활약했다.

파일:다이스케블루스.gif
일본 남자 싱글 선수 중에서는 패트릭 챈과 예술성에서 쌍벽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았었다.[8] 챈이 탄탄한 스케이팅 스킬을 바탕으로 유려함을 보여주는 스타일이라면, 다카하시는 퍼포먼스와 쇼맨십을 중심에 둔 스타일이다.[9] 스케이팅 스킬에 있어서도 챈이 더 뛰어나다는 거지, 다카하시의 스킬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며 다카하시의 스케이팅 스킬이 당대 남자 싱글 선수 중에서도 탑급으로 스텝에서 최고점을 받는 선수였다. 챈이 등장하기 전까진 다카하시의 스텝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원래는 4회전 점프 능력도 꽤 좋았으나 2008-09 시즌의 부상 이후로는 4회전 점프 능력이 꽤 떨어졌다. 러츠를 거의 플러츠에 가깝게 뛰는데도 롱엣지 판정을 잘 받지 않았다. 부상 이전까진 컨시가 나쁘지 않았는데, 2005년까진 큰 대회에서 멘탈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06-07 시즌부터 극복한 모습을 보였고, 2007-08 시즌에는 완전히 극복하여 이 시즌 대회를 휩쓸었다. 쇼트 프로그램인 힙합풍 흑조도 반응이 매우 좋았고 이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래서 다카하시의 최고 기량이 2007-08 시즌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4. 기록

4.1. 세계신기록

  • 2017-18 시즌까지 진행된 채점제에서 3개의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시니어 남자 싱글 총점 기록
날짜 점수 대회 비고
2008.02.15 264.41 2008 사대륙선수권 2011년 4월 28일 패트릭 챈에 의해 경신.
시니어 남자 싱글 쇼트 기록
날짜 점수 대회 비고
2012.04.19 94.00 2012 월드 팀 트로피 2012년 10월 19일 하뉴 유즈루에 의해 경신.
시니어 남자 싱글 프리 기록
날짜 점수 대회 비고
2008.02.15 175.84 2008 사대륙선수권 2011년 4월 28일 패트릭 챈에 의해 경신.

4.2. 득점 이외의 기록

  • 아시아 최초의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메달리스트
  • 일본 최초의 주니어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우승자
  • 2008년 사대륙선수권에서 세운 프리와 총점 세계신기록은 남자 싱글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세계신기록(약 3년 2개월)[10]

5. ISU 공인 최고점수

<colbgcolor=#000000><colcolor=#fff> ISU 공인 최고점수
쇼트 95.55( 2013 NHK 트로피)
프리 182.72( 2012 세계선수권)
총점 276.72( 2012 월드 팀 트로피)

6. 커리어

대회
올림픽 <colbgcolor=#ffe970,#c3a100> 0 <colbgcolor=#c0c0c0,#555555> 0 <colbgcolor=#d7995b,#6d441a> 1
세계선수권 1 2 0
사대륙선수권 2 1 1
그랑프리 파이널 1 3 1
월드 팀 트로피 1 0 1
유니버시아드 2 0 0
주니어 세계선수권 1 0 0
합계 8 6 4

올림픽
동메달 2010 밴쿠버 남자 싱글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0 토리노 남자 싱글
은메달 2007 도쿄 남자 싱글
은메달 2012 니스 남자 싱글
사대륙선수권
금메달 2008 고양 남자 싱글
금메달 2011 타이베이 남자 싱글
은메달 2012 콜로라도 스프링스 남자 싱글
동메달 2005 강릉 남자 싱글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 2012-13 소치 남자 싱글
은메달 2006-07 상트페테르부르크 남자 싱글
은메달 2007-08 토리노 남자 싱글
은메달 2011-12 퀘벡 남자 싱글
동메달 2005-06 도쿄 남자 싱글
월드 팀 트로피
금메달 2012 도쿄 단체전
동메달 2013 도쿄 단체전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남자 싱글
금메달 2007 토리노 남자 싱글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2 하마르 남자 싱글

국제대회:시니어
대회 98–99 99–00 00–01 01–02 02–03 03–04 04–05 05–06 06–07 07–08 09–10 10–11 11–12 12–13 13–14 18–19 19–20
올림픽 8th 3rd 6th
세계선수권 11th 15th 2nd 4th 1st 5th 2nd 6th
사대륙선수권 13th 6th 3rd 1st 1st 2nd 7th
GP 파이널 3rd 2nd 2nd 5th 4th 2nd 1st WD
GP 컵 오브 차이나 2nd
GP 스케이트 아메리카 1st 1st 1st
GP 트로피 에릭 봉파르 5th 11th
GP 스케이트 캐나다 7th 2nd 2nd 3rd
GP NHK 트로피 8th 3rd 1st 1st 4th 1st 1st 2nd 1st
GP 보프로스트 컵 온 아이스 11th
핀란디아 트로피 1st
재팬 챌린지 2nd
유니버시아드 1st 1st
아시안 게임 6th
국제대회:주니어, 노비스
주니어 세계선수권 1st
JGP 파이널 4th
JGP 일본 1st
JGP 불가리아 2nd
JGP 중국 9th
JGP 우크라이나 8th
트리글라브 트로피 1st N
국내대회
전일본선수권 5th 4th 3rd 6th 1st 1st 1st 1st 3rd 1st 2nd 5th 2nd 12th
전일본 주니어선수권 3rd 4th 1st
서일본선수권 1st
칸사이 지역예선 3rd
단체전
월드 팀 트로피 1st T
1st P
3rd T
1st P
재팬 오픈 1st T
2nd P
1st T
4th P
1st T
2nd P
3rd T
6th P
1st T
1st P
1st T
4th P
GP=그랑프리, JGP=주니어 그랑프리, T=팀 결과, P=개인 결과, WD=기권, N=노비스

7. 기타

  • 일본 선수 중 드물게 예술성을 겸비한 선수인데다 '힙합백조' 프로그램의 인기 등으로 한국 사람들 중에도 팬이 꽤 있었던 선수였다. 특히 2008 사대륙선수권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일본 선수라는 점 때문에 받게 되는 기본적인 비호감에서는 역시 자유롭지 않다.[11]
  • 한국 팬들에게 통용되었던 별칭은 닭인데, 다카하시 → 다카 → 닥 등으로 줄여서 부르다가 생긴 호칭이다.
  • 은근 콩라인 속성이 있다. 앞에서 소개한 2011-12 시즌의 경우 말고도, 부상을 당하기 전의 2006-07, 2007-08 두 시즌 동안은 '힙합백조'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예술성과 프리 및 총점 세계 최고기록의 바탕이 된 점프 능력이 겸비되었으나 정작 이 두 시즌의 중요 대회 우승 기록은 2008 사대륙선수권 1회였고, 세계선수권에서는 2위와 4위였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두 시즌 모두 2위를 차지하였다
  • 나이가 비슷한 오다 노부나리[12]와는 선수 생활 기간 내내 국내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전반적으로 다카하시가 우세했다. 경기에서의 라이벌 관계 말고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둘러싼 해프닝도 있었다. 또한 모로조프 코치 사건 등 오다와 얽힌 사연이 많은 편이다.
  • 다카하시와 오다의 라이벌 관계는 일본이 남자 싱글의 강국이 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2006 세계선수권에서 오다가 4위를 하며 일본의 남자 싱글 출전권을 2장으로 늘렸고, 2007 세계선수권에서는 다카하시와 오다가 나란히 출전해 다카하시가 2위에 오르며 출전권을 3장으로 늘렸다. 그 후 이 두 선수의 후배인 코즈카 다카히코가 가세하면서 일본 남자 싱글 올림픽 및 세계선수권 출전권은 지금까지 계속 3장을 유지 중이며,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하뉴 유즈루가 결국 금메달을 땄다. 이후로도 우노 쇼마, 카기야마 유마, 미우라 카오 등 다카하시는 일본 남자싱글의 계보를 이어나가게 해준 선배 중 한 명이다.
  • 일본의 여자 선수들과도 열애설이 심심찮게 돌았다. 모로조프 코치 밑에 있을 때는 안도 미키와도 열애설이 있었고, 2011년에는 아사다 마오와도 열애설이 돌기도 했다. 다만 후자는 전자에 비해 그리 신빙성은 없었던 편이었다.

7.1. 前 코치 니콜라이 모로조프와의 관계

유명한 코치 중 하나인 니콜라이 모로조프와는 그 관계가 깊었는데, 모로조프를 만나기 이전만 해도 다카하시는 평범한 아시아 선수 중 한 명이었고, 시니어 데뷔 후 꽤나 고전하고 있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출전권이 걸린 2005년 세계선수권을 대차게 말아먹은 후 모로조프와 같이 일하게 됐고 그때부터 다카하시만의 특색이 생기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코치를 맡게 되었던 2005-06 시즌 모로조프가 다카하시에게 주문한 컨셉은 '섹시'였다.[13] 본래 수줍음이 많았던 성격의 다카하시는 굳은 결심을 하고 도전하였다. 그 결과 첫 그랑프리 시리즈 우승, 첫 시니어 내셔널 우승 등의 성과를 얻었다. 또한 2007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하였다.[14]또한 피겨 프로그램의 혁신이라고도 불리는 '힙합백조' 를 위해 다카하시에게 뉴욕 댄스스쿨을 4개월동안 다니게 하기도 했다.[15] 2008 세계선수권에서 4위로 아쉽게 시즌을 마감했지만 그 이후 인터뷰에서도 "니콜라이가 골라주는 곡은 대체로 좋다. 다음 시즌 곡은 모로조프가 좀 더 머리를 식힌 후에 알려줄 것 같다. 모로조프의 존재는 나에게 플러스가 된다." 라며 모로조프와 계속 함께할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나고 얼마되지 않아 오다 노부나리가 모로조프의 밑에 들어가게 되고, "라이벌이므로 같은 코치 밑에 있는 것은 힘들다, 나에게 집중해 줄 수 있는 사람 쪽이 좋다." 라며 모로조프를 떠나 선수 생활 시작을 함께 했던 나가미츠 우타코 코치 밑으로 돌아갔다.[16]

웃긴 것은 모로조프의 반응이다. 보통 선수가 코치를 찾아가는 관행과는 다르게 모로조프는 본인이 선수에게 컨택을 하는 타입이라고 한다. 다카하시와의 첫 컨택도 2001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본인이 먼저 제안했다고 했었고, 오다에게도 코치를 받기 1년 전부터 모로조프에게서 오퍼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별 당시 모로조프는 다카하시와의 결별이 다카하시의 소속사의 트러블 때문이라며, 다카하시에게 "나와 소속사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라는 주옥같은 명대사를 날려주었다. 이때 다카하시는 그 대신 소속사를 선택했고, 그때문에 오다와 사제 관계를 맺기도 전에 결별했다는 것이 모르조프의 주장이다.[17]

미묘한 것은 그 후 다카하시는 모로조프와 관련해 최소한의 언급만 했던것과는 반대로 모로조프는 마치 찌질한 구남친 마냥 틈만나면 다카하시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다카하시는 내가 키웠다. 드립이다. 실제로도 모로조프는 결별 이후에도 꽤나 오랫동안 다카하시를 신경쓰고 있었고, 보통 그가 맡았던 탑 스케이터와의 작별은 그들의 은퇴라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는데 다카하시만은 그러지 못했다며 그에 대한 미련으로 가득차 있었다라는 심정을 드러내었다. 또한 다카하시가 그의 제자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선수였으며, 그의 성공에 질투하기도 했었다는 말도 했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다카하시는 은퇴 대신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현역을 지속하게 되는데, 2012 세계선수권 이후 모로조프를 그의 팀에 영입했다. 당시 다카하시는 세계선수권 직전 그 사실을 들었고, 대회가 끝나서야 느긋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매 시즌 안무가를 생각할 때 그의 이름을 떠올리긴 했지만 다시 일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그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놀랬다고 밝혔다. 이번 모로조프와의 재결합은 이전의 풀 코치였던 것과는 반대로 어드바이저의 역할 정도로, 다카하시는 그와의 재결합을 승부같은 구석이 있다라고 표현했다. 반대로 모로조프는 앞으로 더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싶다며, 소치에서는 그가 메달을 따도록 본인이 갖고 있는 온 힘을 다 주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 둘의 사이가 남들이 보기에도 미묘했던 건지 한 기자는 대놓고 모로조프에게 "다카하시가 당신을 필요로 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당신쪽이 그를 더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인가?"라는 돌직구를 날렸었고, 모로조프는 "그도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1] 원래는 자를 쓰나 상용한자가 아니기 때문에 인터넷 등에서 글자가 깨지는 경우가 있는 듯 하다. 때문에 일본 위키피디아에서 髙橋大輔 라고 검색을 하면 高橋大輔로 리다이렉트 되고 기본정보 위쪽에 본래의 표기법은 髙橋大輔 입니다 라고 적혀 있다. 리그베다 위키에서는 이 선수의 성 高橋를 타카하시라고 표기하지만, 한국 기사에서 이 선수의 성을 보통 다카하시라고 표기하는 데다가 나중에 소개할 별명과도 연관이 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카하시라는 표기를 썼다. [2] 경기를 끝냈을 때는 오다의 점수가 가장 높아 우승자로 발표되었고 시상식까지 마쳤다. 그런데 시상식 직후 오다가 프리에서 자약룰을 어기고 같은 점프를 세 번 뛰었는데도 세 번째 점프가 무효 처리되지 않은 것이 발견되어 점수를 정정한 결과 순위가 뒤바뀌어 다카하시가 1위, 오다가 2위가 되었다. [3] 이 기록은 3년 간 지속된 후 2011 세계선수권에서 패트릭 챈에 의해 깨졌다. 신채점제 이후 남자 싱글 세계신기록 중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기록. 참고로 밴쿠버 올림픽 시즌 이후 경기 제도가 바뀌고 또한 이론적 만점이 존재하는 아이스 댄스를 제외한 피겨 스케이팅의 나머지 3종목 중 가장 오래 지속된 세계기록은 7년 간 깨지지 않은 김연아의 여자 싱글 총점 기록 228.56점이다. [4] 백조의 호수 음악 일부를 힙합 버전으로 편곡하여 선보인 작품이다. [5] 참고로 쇼트 90점대를 기록한 3명이 최종 포디움을 차지했다. [6] 그런데 이 대회에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반 라이사첵은 불참하였으며, 은메달리스트 예브게니 플루셴코는 대회 직전에 기권을 했다. 빈집털이 [7] 다른 선수들은 토마스 베르너,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하뉴 유즈루가 전부이다. [8] 물론 스케이팅 스킬은 챈이 훨씬 우위에 있다. [9] 다만 느끼하다는 평가를 종종 받기도 한다. [10] 참고로 전 종목을 통틀어 가장 오래 지속된 세계신기록은 약 7년 간 유지된 김연아의 총점 228.56점이다. [11] 본인은 일본인이지만 김연아를 선수로서 존경한다고 언급한적이 있다. 실제로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갈라 연습때 김연아와 같이 사진을 찍는 모습이 포착되는 등 김연아에 대해 호의적인 면을 보였다. [12] 다카하시보다 1살 어리다. [13] 쇼트 '록산느의 탱고'는 성인 남성의 윤기나는 섹시함, 프리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애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섹시함의 컨셉이었다. [14] 이 당시 다카하시는 인터뷰에서 "니콜라이가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라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15] 심지어 비욘세 백댄서와의 만남을 주선해 댄스를 배우게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16] 당시 오다 노부나리는 본인이 모로조프 밑에 들어가게 되어 좋은 사제 관계를 깨트린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17] 그러나 모로조프가 그 후 결별의 진짜 원인은 재정적인 측면도 아니여서 미스테리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