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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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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게임 라스트오리진의 등장 캐릭터에 대한 내용은 37식 다이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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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시대|
아스카
시대]]
다이카(大化) 하쿠치(白雉) - 슈초(朱鳥) - 다이호(大宝) 게이운(慶雲) 와도(和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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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 시대|
헤이안
시대]]
엔랴쿠(延暦) 다이도(大同) 고닌(弘仁) 덴초(天長) 조와(承和) 가쇼(嘉祥) 닌주(仁寿) 사이코(斉衡) 덴난(天安) 조간(貞観) 간교(元慶) 닌나(仁和) 간표(寛平) 쇼타이(昌泰) 엔기(延喜) 엔초(延長) 조헤이(承平) 덴교(天慶) 덴랴쿠(天暦) 덴토쿠(天徳) 오와(応和) 고호(康保) 안나(安和) 덴로쿠(天禄) 덴엔(天延) 조겐(貞元) 덴겐(天元) 에이간(永観) 간나(寛和) 에이엔(永延) 에이소(永祚) 쇼랴쿠(正暦) 조토쿠(長徳) 조호(長保) 간코(寛弘) 조와(長和) 간닌(寛仁) 지안(治安) 만주(万寿) 조겐(長元) 조랴쿠(長暦) 조큐(長久) 간토쿠(寛徳) 에이쇼(永承) 덴기(天喜) 고헤이(康平) 지랴쿠(治暦) 엔큐(延久) 조호(承保) 조랴쿠(承暦) 에이호(永保) 오토쿠(応徳) 간지(寛治) 가호(嘉保) 에이초(永長) 조토쿠(承徳) 고와(康和) 조지(長治) 가쇼(嘉承) 덴닌(天仁) 덴에이(天永) 에이큐(永久) 겐에이(元永) 호안(保安) 덴지(天治) 다이지(大治) 덴쇼(天承) 조쇼(長承) 호엔(保延) 에이지(永治) 고지(康治) 덴요(天養) 규안(久安) 닌페이(仁平) 규주(久寿) 호겐(保元) 헤이지(平治) 에이랴쿠(永暦) 오호(応保) 조칸(長寛) 에이만(永万) 닌난(仁安) 가오(嘉応) 조안(承安) 안겐(安元) 지쇼(治承) 요와(養和) 주에이(寿永) 겐랴쿠(元暦)
[[가마쿠라 시대|
가마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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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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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ruby(大, ruby=たい)] [ruby(化, ruby=か)]
율리우스력 645년 7월 17일 ~ 650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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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주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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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최초의 연호(年號). 시기는 율리우스력 기준 645년~650년.

2. 특징

아스카 시대 중기로, 제36대 천황이였던 코토쿠 덴노가 다스린 시기. 야마토국을 고대 중앙집권국가로 일신시킨 다이카 개신이 이때 일어났다. 연호의 출전은 서경, 한서, 송서 등에서 따 왔다고 한다.

3. 주요 사건

이하는 전부 율리우스력을 사용한다.
  • 원년 (645)
  • 2년 (646)
    • 1월 22일: 다이카 개신 시행. 율령제가 도입되고 새로운 토지, 행정, 조세제도가 실시되었다.
    • 4월 12일: 박장령(薄葬令) 시행. 신분에 따라 능묘의 규모가 제한되었고, 순장이 금지되었으며, 천황의 릉을 조성하는 시간을 7일 이내로 제한했다. 이후 전방후원분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고훈 시대의 끝을 의미한다.
    • 9월: 다카무코노 구로마로(高向玄理)가 견신라사로 신라에 파견된다. 일본서기에는 ' 임나의 조를 폐지하는 대신 김춘추를 일본으로 데려와 인질로 삼았다'고 나와 있는데, 신라를 야마토의 번국으로 서술하려는 일본서기의 의도가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춘추는 그 후 금방 돌아갔다고 한다.
  • 3년 (647)
    • 7색 13계의 관품이 제정되었다.
    • 에조의 침입에 대비하여 코시노쿠니(越国)에 누타리노키(渟足柵)를 지었다. 지금의 니가타현 니가타시에 위치했다.
  • 4년 (648)
  • 5년 (649)
    • 5월 15일: 우대신 소가노쿠라야마다노 이시카와마로(蘇我倉山田石川麻呂)가 모반 의심을 사 조정군에 공격당하자 자결했다.
    • 19계의 관품이 제정되었다.
    • 신라 진덕여왕이 사탁부 사찬 김다수(金多遂)를 보내 인질로 삼았다.
  • 6년 (650)
    • 3월 16일: 아나토노쿠니(穴門国)[3]의 고쿠시(国司)[4] 구사카베노 시코부(草壁醜経)가 흰 을 헌상했다.
    • 3월 22일: 흰 꿩을 헌상받은 것을 기념으로[5], 연호를 하쿠치(白雉)로 바꾸었다. 아나토노쿠니의 조역(調役; 공물 헌상)이 3년간 면제되었다.

[1] 지금의 나라현 아스카무라 [2] 지금의 오사카시 주오구 [3] 후일의 나가토노쿠니(長門国). 현재의 야마구치현 서부. [4] 쿠니의 행정관으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 [5] 당시에 흰 꿩은 길조로 여겨졌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