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0 07:57:20

남오세티야 전쟁

남오세티아 전쟁에서 넘어옴
1. 개요2. 배경3. 전개4. 각군의 실태
4.1. 차포떼고 싸워야 했던 조지아군
5. 결과
5.1. 조지아의 피해5.2. 무기 압수: 21세기형 렌드리스(...)
6. 후폭풍
6.1. 대한민국에 끼친 영향
7. 사카슈빌리의 거취
7.1. 긍정론7.2. 부정론
8. 그 뒤

영어: Russo-Georgian War
조지아어: რუსეთ-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ს ომი
러시아어: Вооружённый конфликт в Южной Осетии

1. 개요

2008년 8월 8일[1] 조지아 남오세티야를 공격함으로써 발발한 전쟁으로, 여기에 남오세티야를 지원하는 러시아가 개입을 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확대된 전쟁이다. 결국 러시아 조지아[2]간의 전쟁이다. 같은 해 8월 12일 종료되었다.

이하의 자료들은 남오세티야 전쟁을 다룬 각종 만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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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가 맞고 난 뒤 떠올리는 깃발들은 미국, 나토, 그리고 유럽 연합이다. 즉 이렇게 처 맞는데 왜 다들 안 돕냐고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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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 엉클 샘을 원하는대로 실컷 외쳐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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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 보이에게 요술봉을 쥐어주고 그걸로 이 우리 안에 갇혀있다며 찔러보라고 옆에서 부추겼는데, 막상 꼬마가 불곰에게 붙잡혀서 쥐어터지자 바로 모르는 척을 하곤 뒤돌아서고 있다. 만평 하나만으로 해석하자면, 미국이 조지아를 살살 꼬드겨서 러시아와 싸움을 붙인 후, 정작 미국 본인은 싸움이 일어나자 슬그머니 사라지는 모양새다. 깨알같이 부시의 손에 남겨진 사카슈빌리의 잘려나간 팔과 부러진 NATO 요술봉을 주목해보자.

2. 배경

21세기 들어 고유가 영향으로 부활에 성공한 러시아와 그와 대치한 미국 유럽 연합 사이에서 전개된 파워 게임이 촉발시킨 전쟁이다. 소련 붕괴 이후 조지아의 영토였던 남오세티야[3]가 분리독립을 선언하자, 이를 반대하는 조지아 정부가 군을 파견해 1991년 이후로 1년간 내전이 벌어졌다. 이를 1991~1992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후, 러시아가 개입한 3자 합의에 의해 츠힌발리 지역을 공동관리하기로 하고 겨우 정전에 합의하게 되고, 이로 인해 오세티야와 러시아의 밀월관계가 시작된다. 반대로 조지아는 소련 최후의 외무상을 지내기도 했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에 의해 경제 발전을 명목으로 서방과 급속히 접근하게 되고, 조지아는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로부터 생산되는 원유 천연가스의 주요 수송로이기도 해서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BTC 송유관 등을 집중적으로 투자하였다.

2003년, 장미혁명으로 셰바르드나제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미하일 사카슈빌리는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한 적도 있는 친미파에다 반러 민족주의자로서, EU에게 조지아의 NATO 가맹 합의를 이끌어내고 미국에게는 거액의 군사원조를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2006년, 남오세티야 자치주의 독립찬반투표에서 잠재되어 있던 문제가 터진다. 선거 결과는 독립파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조지아 정부는 이를 '러시아에 의한 강제병합음모'라 비난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다.

이에 대해서는 조지아 측과 러시아 측의 주장을 모두 검토해 봐야 한다.

현재의 남오세티야가 있는 남캅카스는 원래 오세트인들의 땅이 아닌 조지아인들의 땅으로, 17세기에 캅카스 북쪽에서 넘어온 오세트인들을 당시 조지아인들이 세운 카틀리 왕국의 국왕이 남캅카스 일대에 거주하도록 허락한 것이 남오세티야의 시초이다.[4] 오세트인들은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 국가를 세운 적이 없으며, 이들이 조지아 북부에 정착해 들어온 것은 약 300여년 정도이다. 조지아 입장에서는 지금의 남오세티야 지역은 고대부터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자신들의 영토이며, 남오세티야 전쟁은 단순히 일부 지역에서의 반국가적 폭동을 진압한 것에 불과한데다 러시아가 여기에 개입해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조지아의 영토[5]인 남오세티야를 무단 점거한 행동은 명백한 강대국의 침략이자 내정 간섭일 뿐이다.

하지만 위의 주장 역시 UN 평화유지군으로 정당하게 주둔한 러시아군을 섣불리 침략자로 규정한 서술이라는 문제가 있다. 개전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지고 보면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한 러시아군이 아니라 그들에게 선제공격을 가한 조지아에게 개전 책임이 있음이 분명하다. UN에게 승인을 받아 UN 평화유지군을 맡게된 러시아군을 조지아가 공격한 것은 일방적인 공격이며 명백한 선전포고이자 전쟁 범죄 행위다.

3.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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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8월 7일 조지아군이 남오세티야를 침공. 이 때 UN 평화유지군으로 들어온 러시아군 몇 명 사망.
  • 8월 8일 러시아군은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해당 주를 침공하여 조지아군과 전투.
  • 8월 9일 러시아군은 조지아군을 일시 제압하여 츠힌발리에서 축출. 동시에 러시아군은 조지아 전역에 공습을 시작함. 이에 대해 조지아 대통령은 계엄령을 발령하고 조지아 전역을 전시 상태로 선언함. 또한 휴전을 러시아 측에 요청하였으나 러시아 정부가 거부함.
  • 8월 12일 조지아는 러시아에게 사실상 항복을 했으나, 러시아는 공세를 멈추지 않음.
  • 당일, 러시아는 전쟁을 시작한 지 5일 만에 조지아에 대한 공격을 종료함.
  • 8월 13일 조지아와 러시아는 프랑스가 내놓은 평화안에 합의함.
  • 8월 14일 미국이 조지아 사태에 개입할 뜻을 선언하자 러시아가 반발함.
  • 8월 16일 러시아가 평화안에 최종 서명.
  • 8월 23일에 러시아가 철군협정에 서명하면서 군대를 철수했지만, 미국은 국경 인근 완충지대에 군대를 남긴 것이 협정위반이라며 반발함.

2008년 초에 있었던 조지아군과 USEUCOM(미 유럽군) 합동의 <Immediate Response 2008>에 심기가 불편해진 러시아는 4월에 MiG-29로 조지아군의 UAV를 격추시키더니, 7월에 조지아 국경 부근에서 <Caucasus Frontier 2008>이라는 군사훈련을 강행, 게다가 훈련 종료 후에도 병력을 철수시키지 않아 양측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진다. 서로가 군사행동을 계속 경고하는 과정에서 접경지역에서는 남오세티야 무장조직의 도발과 조지아 정부군의 반격이 지속, 확대되었다. 그러나 서방 정부들 사이에는 곧 닥쳐올 올림픽을 앞두고 어느 쪽도 본격적 충돌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그 섣부른 기대는 결국 최악의 형태로 무너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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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총리[6] 조지 워커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진.

2008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는 8월 8일, 조지아군의 포격이 시작되어 평화유지군[7]으로 있던 러시아군 18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을 입었다. 러시아군은 바로 제58군 예하 제135독립차량화소총병연대를 선봉으로 반격을 시작했고, 러시아군과 조지아군은 남오세티야 수도 츠힌발리 시내로 진군, 본격 충돌이 시작되었다. 올림픽 개회식장에서 푸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전쟁의 결과는 러시아군의 참전을 예상 못했던 조지아측의 참패였다. 전쟁 당시 러시아가 투입한 병력 수는 주둔 중이었던 조지아군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8] 압도적인 차이의 공중·기갑·해상 전력으로 10일, 츠힌발리를 장악했고 여세를 몰아 조지아 국경을 월경, 12일에는 거점도시 고리(Gori)[9]에 제76근위 공중강습사단을 투입해 점령하여 후퇴하는 조지아군의 허리를 끊어버렸다. 동시에 압하지야 방면으로도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어서 결국 조지아군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패퇴하게 된다.

인터넷 역시 공격대상이 되었는데, 전쟁 초기부터 조지아의 인터넷망에 러시아 전자전 부대의 소행으로 보이는 대대적인 해킹과 디도스 공격이 시작되어 인터넷망이 마비가 되어버렸다.

또한 이렇다 할 공중전력은 이스라엘에서 개량사업을 받았던 Su-25 몇 대가 전부였던 조지아군은 개전 초기부터 러시아군이 제공권을 장악하면서 지상부대는 일방적인 학살을 당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관련사진을 보면 아예 러시아측 공격헬기가 유유히 날아디니며 기총소사를 퍼부었는지 조지아군 측의 파괴된 경장갑차나 군용차는 대부분 지붕에 구멍이 뜷려 있고 내부는 피범벅이다. 러시아군은 자국의 Su-25 Mi-24를 동원하여 조지아군의 기갑부대를 섬멸하기 시작했으며, Tu-22M으로 수도 트빌리시의 대통령궁과 주요 군사지역과 공군기지를 폭격하여 조지아 내각은 한 곳에서 전투지휘를 못 하고 소련 시절 건설되었던 여러 벙커들을 전전해야 했다.

당시 NATO 회원국이 아님에도 조지아는 파격적으로 나토의 항공감시정보처리소에서 러시아 공군을 감시할 수 있었으며,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에서 상당한 양의 방공무기들을 제공받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특히 조지아 방공망은 러시아의 Tu-22M을 격추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Tu-160을 발진시켜 미사일 단 두 발로 중앙방공망을 통채로 날려버림으로서 개전 2일만에 조지아 방공망을 마비시켰다. 제공권은 물론이고 러시아 흑해 함대가 해상봉쇄를 가해 제해권까지 장악하면서 조지아군은 모든 면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 심지어 러시아 해군 소속 호위함 한 척이 함대함 미사일도 아닌 함대공 미사일로 조지아 해군 함정들을 유린하기도 했다. 뭐, 애당초 조지아 해군 소속 함정들은 대부분 고속정 수준의 소형 함정들 뿐이었지만. [10]

러시아군은 수도 트빌리시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장악했고, 조지아군은 사용할 수 있던 모든 해상전력인 미사일 고속정 5척이 해상봉쇄를 뚫기 위해 접근하다가 북해함대 소속 프리깃 한 척에게 2대가 격파당하고 퇴각하고 만다. 결국 미군 원조물자 야적장이 있던 군항 포치(Poti)시를 점령당하자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제안한 화평교섭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14일에 조인된 교섭으로 조지아는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둘 다 잃어버리게 된다.

화평교섭 이후로도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군을 앞세운 러시아군의 진격은 계속되었고 사실상의 전투 종결은 미국 정부 특사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트빌리시에 도착한 16일이 되어서였다. 당시 러시아군은 트빌리시 55km 앞까지 진군한 상태였다.

결국 미해군 제6함대와 NATO 혼성함대가 흑해로 들어와 당시 포치 항구를 봉쇄하던 러시아 흑해 함대와 대치하는 상황에 이르자 러시아는 프랑스의 화평교섭을 받아들이고 종전을 선언한다.

4. 각군의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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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힌발리의 평화유지군 본부 앞에 버려진 후 전소된 조지아군 T-72 전차.[11]

러시아는 비록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군 내부의 고질적인 장교단과 군장비 정비의 부실함이 푸틴 집권 이후에도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공군의 경우 압도적인 항공전력을 가지고도 개전 후 철도망 마비조차 확실히 하지 못 한다거나, 개전 하루 만에 Tu-22M 1기와 Su-25 3기[12]를 손실하였다.[13][14] 이후 조지아 공군은 러시아 공군의 Su-24 2기와 Su-25 1기, 그리고 Mi-24 1기를 추가로 격추했다고 밝혔고 러시아는 이를 부인했다.

그나마 통신시설은 제대로 작살을 내놓아서 체면은 살렸다. 덤으로 조지아의 요충지 고리시에 일부 러시아군이 진입한 것이 함락된 것으로 잘못 전파되어, 조지아 사령부가 수도 방위를 위해 주력부대를 재배치하는 틈을 노려 주력군에게 공습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히기까지 했다.

소련군에서 알짜전력을 물려받은 러시아군이 저런 상태였음을 감안하면, 그보다 훨씬 곁다리 전력을 물려받은 조지아군은 더 막장임을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다. 조지아군은 총병력 3만 7천명에 공군은 요격기가 한대도 없고, 그나마 지상공격기인 Su-25가 20대 미만이 있었으나, 제공권이 없는 상태에서 Su-25가 출동해봐야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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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포 안에 들어온 조지아군: "살려줘!!"
한마디로 말해서, 조지아군은 맨땅에 헤딩을 한 것이었다. 사실 러시아는 미국과 군사력으로 맞짱을 뜨려고 생각하는 유일한 나라인 만큼[15] 강국이라 하는 중국과 미국마저 러시아군과 싸워서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

조지아군은 초반에 비교적 선전을 했다고는 하나, 거점 도시들을 무기력하게 내주고 보급이 끊기면서 근 2년 간 서방화된 군대의 역량을 정상적으로 펼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흑해 해전에서 보여주듯 적군인 러시아군마저 놀랄 정도의 뛰어난 함대 기동을 선보이며 비록 군장비는 열세일지 몰라도 군인들의 역량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의 대공미사일은 괴물이었다. 더구나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시킨 대공미사일조차 소련 때 만들어져 불하된 러시아제였기 때문에 러시아는 오히려 타국에 Tu-22M이나 Su-25와 같은 중무장한 자국기 격추를 홍보하며 대공미사일 세일즈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16]

4.1. 차포떼고 싸워야 했던 조지아군

조지아군은 2007년부터 미국으로부터 일부 부대를 시작으로 무기 및 군사훈련 지원을 받으며 동구권에서 서구권으로 체계를 개편하는 시발점에 있었다. 문제는 그 서구화된 군대는 다 이라크에 가 있었다는 것이다.

샤카쉬빌리 정권의 친미 친서방 정책과 이에 대한 미국과 서방권의 화답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샤카쉬빌리의 조지아 정부는 미국과 서방세계의 우호도도 쌓고 더 많은 지원도 이끌어내기 위해 이라크 전쟁 이후 치안이 혼란에 빠진 이라크에 자국군을 파병한다. 이 파병규모는 초창기에는 800여 명이었으나 2007년에 규모가 급격히 확대되어 1개 여단 총 2,000여 명에 달했고 이는 이라크 파병국 중 전쟁주도국인 미국과 영국의 뒤를 잇는 3위에 해당되는 규모이며 조지아 지상군 전투부대의 20~25%를 차지하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샤카쉬빌리나 조지아 군 수뇌부가 러시아와의 전면전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때문에 이런 대규모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한 것이지만, 하필 그 시점에 전쟁이 터졌다. 개전 직후인 8월 9일 조지아 정부는 급히 이라크 파병부대에게 본국 귀환명령을 내렸으나, 애시당초 조지아같은 소국에게 타국에 있는 자국군을 급히 본국으로 소환할 수단이 철저히 부족했다. 육로는 당연히 불가능, 항공로의 경우 이라크와의 거리는 그나마 가까운 편이었지만 수송기가 없었다. 자국 국적 민항사라도 있으면 여객기라도 징발했겠지만 역시 없었다. 급히 타 국적 민항사들에게 전세기 임대를 요청했지만 자국도 아닌 타국 정부의 군사 목적 전세기 임대를 흔쾌히 수락할 항공사는 없다. 더군다나 조지아의 제공권을 바로 러시아가 쥔 상황에서 병력을 여객기로 나르다가는 러시아 전투기에 격추당할 뿐이었다.

그나마 개전 초기 일부 선두 부대가 (격추시켰다간 자칫 잘못하면 3차대전 찍어야 하는) 미군 수송기 편으로 급히 본국으로 귀환하여 이라크 파병군용 사막색 위장복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전선으로 향했지만 미국도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각오할 순 없었던 지라 수송기 지원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전면적인 철수 지원은 종전 후에나 이뤄졌다.

결국 예상못한 일이긴 하지만 자국 방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데다, 기대했던 NATO 가입은 커녕 전쟁기간동안 NATO나 미국의 도움을 받지 못한 조지아는 이라크 파병군을 정식으로 철군시킨다. 그러나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아주 포기할 수 없었던 지라, 이듬해에 병력규모를 줄인 800여 명 선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한다.

5. 결과

승전국인 러시아는 남오세티야의 모든 영역을 신속하게 접수하였다.

이 전쟁으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 공화국이 실질적으로 독립했고 조지아는 즉각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저 두 나라를 독립국으로 인정한 것은 러시아와 친러시아 국가인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나우루, 투발루 5개국뿐이다. 바누아투는 압하지아만 승인하고 남오세티야는 승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나마도 바누아투는 후에 압하지아 승인을 취소했고 투발루는 두 곳의 승인을 철회했다. 블라디캅카스쪽 국경도 폐쇄됐다가 2010년대 중반부터 다시 열렸다.

5.1. 조지아의 피해

미국은 조지아군 재건을 위해 3억 달러를 투입한다고 밝혔으나, 여전히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서 조지아군은 여전히 무력한 상황이다. 사실, 미국도 그 직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진 데다가 러시아와의 불필요한 외교 마찰을 피할 필요성도 있었다.

또한 기세등등해진 러시아는 조지아에 최신 무기를 제공한 이스라엘 우크라이나를 압박하여 군수물자 수출을 전면 막아버린다.[17]

조지아 정부는 무리하게 군사도발을 강행하는 바람에 대박 대신 쪽박을 차게 된다. 블라드미르 푸틴의 외유와 메드베데프의 휴가라는 러시아의 정치공백을 노려서 병력을 동원했다고는 하나, 러시아 흑해함대가 해안을 완전히 봉쇄한 상황에서 장기전에 돌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미국의 군사지원은 그 전해인 2007년에 막 시작된 상태였고 사실 조지아군의 전력으로 러시아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조지아군은 서방식 무기로 서방식 훈련을 받았으나, 정작 혼란스러운 전투에서 조지아군 보병들의 손에 들린 것은 그들이 원래 사용하던 AK 소총이었다.

총리를 비롯한 내각 총사퇴로 국내 불만을 겨우 무마시킴으로써 사카슈빌리는 2013년까지 정권을 지킬 수 있었으나 러시아는 현재도 군사적 압력을 계속하고 있다.

5.2. 무기 압수: 21세기형 렌드리스(...)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종전 협상이 끝나 조지아에서 철군하기 전에 조지아의 남은 가용 전력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하여 사용 가능한 무기들을 모조리 압수하였다. 살아남은 T-72는 물론이고 Su-25와 각종 군사 장비, 러시아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BUK-M1, OSA까지 모조리 압류했다. 또한 미군과 조지아군의 합동 훈련 때 사용된 많은 양의 미군 장비들이 포치 항구에 집결해 있었는데 진입한 러시아군은 이 물자들을 모조리 노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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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험비를 노획한 러시아군.[18]

덕분에 러시아군은 미제 군수품으로 잔치를 벌였다. 러시아군은 미제 헬멧과 미제 BDU 군복으로 갈아입고 전차(우크라이나에서 구입한 T-72) 등 가져갈 수 있는 모든 차량을 싹쓸이했다. 또한 서방제로 개량된 각종 전자 장비를 압류함으로써 상당한 이득을 챙기게 되었다.

해군의 경우 전쟁 전에는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고 있었으나, 종전 후 러시아가 쓸만한 함선들은 전부 폭파시켜 전술적 의미의 해군을 아예 없애버렸다. 이 영향으로 사실상 해안경계 수준밖에 안되는 조지아 해군은 아예 명칭을 해안 경비단으로 바꿔버렸고 현재까지도 병력 531명에 소형 경비정 몇 대 정도가 전부이다.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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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제 방공 미사일 시스템인 파이썬이나 Derby을 장착한 SPYDER 방공 체계도 노획했다. M16 소총, M4 카빈 소총도 대량으로 노획해서 일부는 노획 전시회로, 나머지는 전부 불태워서 폐기했다. M4 탄창류 같은 건 포장 박스만 까 보고 그냥 내무실에 버리고 갔다. 대신 소련제 군장이나 총기는 죄다 탈탈 털어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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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부 주둔지엔 " Ancle(Uncle) Sam thenks(thanks) for uniform for russian airborn(airborne)"[19][20]라고 낙서까지 하고 떠났다. 또한 개전 초기 제공권과 제해권이 완전히 장악당하자 러시아군은 일방적으로 조지아군을 몰살시켰고, 조지아군은 가진 자산을 모두 버리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은행까지 털었다고 한다. 조지아 군 측의 파괴된 장갑차량을 보면 공중으로부터 중화기 사격을 받은 듯 지붕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차량 내부는 피범벅이 되어 있는 살벌한 사진이 꽤 많다.

괴멸당하기 전 신속하게 퇴각함으로써 조지아군은 병력 손실은 최대한 막아 냈으나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주요 군사 시설이 모두 파괴되었고, 위에 서술했듯 갖가지 장비들이 모조리 파괴당하거나 강탈당함으로써 사실상 무장 해제 당한 셈이다. 조지아군이 퇴각하면서 무기를 길가에 버리고 떠나기도 했다. 약 80대 정도 있던 조지아군의 T-72 전차 중 파괴된 것은 20대가량이나 나머지 차량은 버려져서 러시아군은 약 60여대의 T-72를 획득했다. 그 중 40여 대는 지금 당장이라도 사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A급이었다.

6. 후폭풍

사실 남오세티야 전쟁은 병사 몇명이 죽고 다치니 하는 점보다 전쟁을 전후하여 벌어진 정치적 여파가 훨씬 크고, 그 정치싸움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새로 생긴 러시아를 견제하는 미국의 주된 전략 중 하나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나라들에 "너네 이제 한물 간 러시아랑 놀지 말고 우리 미국 편 해라!"라고 대놓고 추파를 던지는 것이었다. 즉, 러시아가 예전 자기 땅덩어리들에 영향력을 찾아서 미래에 다시 강대국이 되어서 미국을 위협하는 것을 막는 것. 이를 위해서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나라들에게 막대한 양의 경제적 지원은 물론이고 러시아로부터 스스로를 방어를 할 수 있게 군사 부분에서도 상당한 지원을 해준다.

조지아군과 미군이 합동 훈련을 한 것과 미군 군사 고문단이 조지아군을 훈련시킨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조지아는 그런 대(對) 러시아 포위망의 일부로서, 미국은 장기적으로 해당 국가들에 미군 기지를 건설해서 유사시 러시아군의 도발까지 막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가 이전 같이 미국을 위협할 거대한 가상 적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주변국에 이러한 정책을 펼치던 미국과 유럽국가들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던진 셈이 되었다. 이 전쟁이 일어난 직후 러시아 국방장관의 발언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TV에서 대략 "주변국들이 우리한테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인가는 그들한테 달려있다."는 연설을 한다. 즉, 이전 독립국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세지로서, "니네도 조지아 꼴 나기 싫으면 우리한테 알아서 기어라!"라는 의미다.

실제로 이 때를 기점으로 친미 정권이 들어서있던 소련권 국가들이 투표에서 패배하여 친러파로 돌아서게 되었으며, 대표적으로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으로 수립된 친서방 정권이 선거에서 패배하고 친러 정권이 수립되었다. 주변 군소국가들이 러시아에 유화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확연해졌다. 미국의 전략에 전면적으로 반격하는 셈인데 미국은 내부의 경제적, 군사적 문제로 인해 이를 그냥 눈 뜨고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21]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 공화국을 친러 세력으로 굳혀 장부상으로도 이득이 남는 전쟁을 했다. 그러나 사카슈빌리 정권을 전복시키지는 않았는데, 러시아가 조지아의 내정에 개입하는 것은 국제적인 비난을 살 수 밖에 없고, 괴뢰 정권을 세웠다가는 자칫하면 조지아의 민족주의를 자극해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같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장기전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 정부가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정부처럼 자국민도 외면한 쓰레기 정부였다면 베트남 처럼 접수 후 괴뢰 정부를 세울수 있었겠지만, 조지아는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가 될 공산이 컸고, 또한 사카슈빌리 정권 자체도 그럭저럭 평이 나쁘지는 않았기에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조지아군을 상대로 승전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전술적 단점과 부족한 역량을 노출했던 58군 사령관을 해임해 버렸다. 안습. 사실, 조지아와 러시아의 국력 차이를 생각하면 고작 조지아를 상대로 여러 문제를 노출한 지휘관은...

정리하자면, 러시아군은 차질을 빚기도 했지만 조지아를 완전히 떡실신을 시킴으로써 정치적·전략적으로 많은 이득을 얻게 되었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우수한 전술과 역량으로 이라크군을 압도하면서 관광을 태웠지만, 잘못된 전략으로 베트남 전쟁 시즌 2를 찍은 것과는 대조적인 셈이다.

물론, 러시아가 이득만 얻은 것은 결코 아니다. 러시아가 전쟁에서 승리하며 조지아에 심각한 타격을 가한 셈이다. 이와 더불어 조지아 내정에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비장의 외교 카드를 다 써버렸다. 러시아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 조지아의 주요 수출품인 생수 와인 수입에 제재를 가했고, 전쟁이 터진 이후 압하지아 남오세티야의 독립을 승인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러시아가 조지아 내정에 개입하고 간섭하기 위한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히든카드였다. 한 마디로 "조지아, 너네 말야. 우리 러시아 말 잘 들어라. 그러면 우리가 너희 와인과[22] 생수도 많이 사주고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도 독립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줄게."라면서 조지아를 상대로 유화책을 사용하면서 어르고 달래고 압박을 했는데, 이 전쟁으로 인해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가 사실상 독립해버렸다. 그 결과, 러시아는 조지아 내정간섭을 하고 정치에 개입할 여지가 아예 없어져 버렸다. 게다가, 전쟁까지 치뤘으니 조지아는 러시아에게 매우 적대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지아는 경제구조상 러시아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고[23] 그렇기 때문에 국가전략면에서 러시아를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다. 게다가, 러시아에 대한 무역은 수출시장 기준이라서 어떻게든 대체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물론, 러시아도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남오세티야 탈환을 넘어서 조지아 전체를 뭉개버리려는 치명타를 가하는 총력전으로 강행돌파한 것이다.

6.1. 대한민국에 끼친 영향

이 전쟁에 대해, 2년 뒤 한반도에서 벌어진 연평도 포격 사태를 거론하기도 한다. 실제로, 당시 미국 중국도 아닌 북한의 포격을 한국이 일방적으로, 그것도 민간인이 사는 지역에까지 대놓고 얻어맞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보복을 불허하고, 그렇다고 적극 개입하여 북한을 응징하지도 않았다.

물론, 이후에는 여러 가지로 지원도 많이 해주고 조지 워싱턴함을 서해에 투입하는 등 무력 시위도 몇 차례 도와줬지만 조지아도 전쟁이 끝난 뒤에는 여러 모로 도와준 만큼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겠지만...

하지만 연평도 포격 사태는 북한이 사카슈빌리처럼 대책 없는 전면전을 강요해온게 아니라 쌍방 포격만으로 끝났고, 우리 해군의 피해가 적어서 전면전으로 확대될 여지 자체가 거의 없었기에 불발된 것 뿐이다. 전쟁은 결코 장난이 아니며, 시작하기는 쉬워도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24]

그리고, 경제 규모가 큰 나라가 전면전을 벌일수록 세계에 미치는 후유증도 커진다. 미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장기적으로 보면, 현재 상황에서의 전면전 돌입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기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단순 교전 정도로 끝났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애초에 교전국의 경제 규모와 충돌의 강도 자체가 다른데 말이다. 전쟁이 일어나도 기껏해야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의 소국에 불과한 조지아와 2015년 기준 세계 경제 11위인 한국[25]의 사례를 1:1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애초에 미국과 조지아는 확고한 동맹도 아니었으며 미국에게 있어 조지아는 없어선 안될 정도로 중요한 동맹도 아니었다. 애초부터 조지아는 미국의 군사동맹국도 아니고 단지 "친해지려는" 단계에 불과했다.

2013년 김정은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그리고 전쟁 위협 발언을 쏟아놓은 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 당시 주한미군은 첨단전력을 끌고 와서 무력시위까지 벌이며 북을 압박했고, 결국 김정은은 공언과 달리 아무 도발도 못 하고 꼬리를 내렸다. 서부전선 포격 사건 당시에도 한미 공군이 F-15 등 전투기로 합동 무력시위를 벌이고 미국 공군 공중급유기까지 군산공항에 끌고 왔을 정도였으며, 주한미군 MLRS가 급히 통일대교를 건너 사격태세를 유지했다. 그만큼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다.

그리고 러시아 중국 태평양 진출을 저지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터키와 함께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우방국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미 상호 간에는 엄연한 "상호방위조약"이 있다.[26] 하지만 조지아의 경우에는 아예 미국 및 나토가 개입할 명분 자체가 없었다.

7. 사카슈빌리의 거취

이 전쟁은 사실 조지아 대통령 사카슈빌리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도박이었다. 배경 설명에는 안 나와있지만 2007년 사카슈빌리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정치적 위기에 처했고 지지율은 땅에 떨어져 있었다. 2008년 1월에 간신히 재선되기는 했지만 사캬슈빌리는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가 저렇게 남오세티야를 대놓고 공격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미국을 믿었기 때문이었고, 러시아가 미국 눈치를 봐서 조지아에 손을 못 대거나 아니면 미국이나 나토가 러시아군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일하게 맞장뜰 수 있는 상호확증파괴가 가능한 핵전력을 보유한 러시아를 건드린다는 것은 미국도 할 수 없었고 조지아가 털리는 것을 모르는 척 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전면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그냥 우방이 손해보는 것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7.1. 긍정론

비록 조지아 측은 전쟁에서 완패를 했지만 사카슈빌리 조지아 대통령은 친러파에게 쫓겨나기는 커녕,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강하게 친미 정책을 펼치고 있고 거기에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단절되었다. 게다가 BTC라인의 완공으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종속도 많이 완화되었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친러파에게 쫓겨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하게 친미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어느 정도 조지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그 성과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경찰의 부패 척결이 있다. 전쟁으로 인해 군사, 경제는 완전히 망했지만, 내부적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여러 개혁을 취했기 때문에[27] 전쟁에서 패하고 엄청난 국토 상실이라는 결과를 초래했으나 오히려 사카슈빌리의 친미 정책이 더 힘을 얻었다.
  • 조지아 국민들에게 반러시아 감정을 확대시켰다. 이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국민들이 깨달아 버렸기 때문에 가뜩이나 지배받기 싫어하는 캅카스 민족들의 특징을 가진 조지아 사람들의 저항 정신에 기름을 붓고 신나를 뿌리고 불을 지른 격이 되어 버렸다. 이와 관련된 한 가지 현상으로 전쟁 전에는 조지아 사람들이 러시아어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지만, 전쟁 후 조지아 사람들은 러시아어를 매우 싫어하게 되었다. 교육정책도 크게 바뀌어서 제1외국어는 영어로 지정되었고, 러시아어는 제2외국어로 격하되었다. 그 결과 조지아의 어린이들은 대부분 영어를 할 줄 안다. 전쟁 이후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자국명을 러시아식인 그루지야가 아닌, 영어식인 조지아라고 불러달라고 공식 요청한 것도 이러한 국민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7.2. 부정론

하지만 전후 조지아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격하게 일어났고 야당과 정부 간에 충돌이 심해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반드시 위의 경우처럼 긍정적인 점만 생각해 볼 수는 없다. 게다가 2013년 5월 치러진 총선에서 야당이었던 친러시아 정당 '그루지야의 꿈'이 승리한 데 이어, 10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그루지야의 꿈' 소속 마르그벨라시빌리가 당선되었다. 과거 소련 위성국들도 친러파로 돌아선 상황에서, 조지아도 다시 친러파로 돌아설 확률이 높아졌다.

2013년부터는 이원집정부제를 실시할 것이라 하며, 이바시빌리시가 선거에서 이기긴 했지만 첫 방문국은 미국이 될 것이라 한다. 또한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 "조지아가 다시 CIS에 들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한 말에 "신중치 못한 발언이다."이라고 일축했다. 반드시 친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 다음 행보를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런데 조지아/경제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조지아가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바로 러시아이다. 그만큼 러시아가 싫어도 경제적으로 러시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상 조지아가 강력한 반러 국가로 버틸 수는 없는 상황이다.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은 부패 혐의를 받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로 튀어서 오데사 주지사가 되었다...(우크라이나 대통령 포로셴코가 대학친구) 아니나 다를까 사카슈빌리는 현재 조지아에서 매국노, 파시스트 등등 온갖 욕을 들어먹고 있는 중이다. 현재 마르그벨라슈빌리 대통령과 여당은 친러까지는 아니지만 러시아의 관계개선에 노력하는 인물이다.

8. 그 뒤

러시아의 강경한 행동과 서방의 방관은 러시아 인접국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2009년 9월 오바마 정권이 동유럽[28] MD를 포기하면서 NATO의 안전보장에 대한 동유럽 국가들의 의심은 더욱 강해졌고,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는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 기존의 4개국 연합체인 비셰그라드 그룹(Visegrad Group)을 실질적인 군사동맹으로 개편, 유사시 폴란드 지휘하의 통합군을 결성하기로 했다.

전쟁에서도 쪽박을 차고, 나아가 이 여파로 해외 자본들도 무수히 나가면서 조지아는 경제까지도 우거지상이 된 건 당연했다. 그런 조지아에게 모처럼 돈되는 소식이 바로 이웃 아제르바이잔을 통하여 오게 되는데, 바로 BTK 철도 공사. 전쟁 패배 여파로 공사비가 없다고 하소연하자, 아제르바이잔은 5억 달러를 싼 이자와 같이 우선 빌려주고 부족하면 추가로 빌려준다고 했을 때 사카슈빌리는 모처럼 작게나마 웃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조지아는 이 공사를 착실하게 진행하면서 전쟁 여파로 BTC 파이프라인까지 작살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없앨 수 있었다. 물론 차츰 안정을 찾으면서 조지아 경제는 조금씩이나마 회복세를 찾고 있다.

2010년 3월 15일, 조지아의 한 방송사가 뉴스에서 "러시아가 기습공격을 가해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뻥을 치는 바람에 국민들이 혼란에 빠지고,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직접 성명서를 발표하고 나서야 혼란이 수습되는 촌극이 빚어졌다. 방송사는 정국 혼란이 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뜻의 경고를 보내고자 했다는 해명을 했지만, 전후 2년만에 이런 뻥포를 쏘는 건 제정신인 사람이 할 짓은 아닐 듯.

그리고 사카슈빌리는 2013년에 권력 남용과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고, 3선에 실패한 후 우크라이나로 망명한다. 유로마이단으로 출범한 포로셴코 정권의 조언자가 되었으며, 2015년 5월 29일 아예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취득해 바로 다음날 오데사 주지사로 발령받았다. 이후 그는 오데사 주에서 강력한 반부패 개혁 드라이브를 걸며 인기를 얻었고, 포로셴코 대통령을 능가하는 40%대의 높은 지지율을 가진 주요 정치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5년 12월 16일에는 우크라이나 정부 개혁위원회 회의에서 부패를 척결하지 못하는 아바코프 내무장관의 무능을 질타하다가 분노한 내무장관이 사카슈빌리를 향해 컵을 던지면서 조지아로 돌아가라며 고함을 지르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이듬해 사카슈빌리는 부패로 인해 주지사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며 사퇴했고 반정부 활동까지 히고 있다. 포로셴코는 그의 우크라 국적을 박탈해 주지사 임명 당시 조지아 국적을 포기한 사카슈빌리는 무국적자가 되었다. 2017년에는 부패척결, 선거법 개정, 심지어 포로셴코 탄핵 운동까지 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검찰이 러시아로 망명한 친러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에게 자금 지원을 받고 정권 찬탈을 꾸몄다는 심히 무리수인 혐의로 사카슈빌리를 체포하려다 지지지들이 연행 차량 차문을 뜯고 그를 구출하기 까지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가 사카슈빌리의 국적을 박탈시키면서 무국적자가 되고 네덜란드에 체류허가를 신청했다.

딕 체니는 이 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와 싸우자!라는 전쟁 구상을 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못했다 자기가 직접 싸우는건 아니니 큰소리는 맘대로 칠 수 있지 한국에서는 딕 체니의 구상에 대한 옹호론도 나오곤 했으나, 미군이 최강이기는 하지만 최강이라고 해서 만사형통은 아니며,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고전중이던 미군이 또 다시 러시아를 적으로 놓는다는 것은 당시에도 현재도 거의 불가능이었다. 미국의 항공모함 전대가 러시아 연못이나 다름 없는 흑해 앞바다까지 들어와서 남오세티아를 지원하는 것은 러시아와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일이다. 거기다 당시에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경제도 엉망이었는데,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대규모로 전비를 쓰는 미군이 또다시 대규모로 러시아와 대결한다는 것은 경제붕괴를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 특히 체니와 같은 네오콘이나 미군만능론자들이 러시아의 전력이 약화되었기 떄문에, 미군이 조지아를 도우면 미군이 나서면 러시아가 호락호락 물러날 것이라는 생각은 미군만능에 젖은 모험주의적 망상에 가깝다. 1962년 쿠바위기 때만도 당시 소련의 전력은 미국에 한참 못미쳤지만, 소련은 절대로 호락호락 물러서지는 않았고, 전세계는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
더군다나 남오세티야 전쟁의 발발 자체는 조지아가 남오세티야에 UN 평화유지군으로써 주둔중이던 러시아군을 공격하여 벌어진 일인데다 조지아에 주둔중인 미군 부대도 없었기에,이에 미국이 끼어든다면 또 명분이 없는 전쟁으로 변해 베트남 전쟁때처럼,아니 그보다 더 심한 수준의 반전주의 물결이 미국 전역에 몰아칠 수도 있는 일.

여담으로, 톰 클랜시는 이미 2001년 고스트 리콘을 통해 이 전쟁을 예언했다.

이 전쟁이 전혀 엉뚱한 소재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조지아와 러시아 양쪽 다 맥도날드가 진출해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29] "세계는 평평하다"로 유명한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은 자신의 1999년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맥도날드가 진출해 있는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라는 자본주의에 의한 평화 이론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아시발꿈. 이 불안정한 세계에서 이 주장은 이미 여러 번 빗나가는데 바로 이 책 나오던 1999년만 해도 코소보 전쟁이 벌어져 맥도날드가 진출한 세르비아도 미국과 나토 같은 맥도날드가 예전에 진출한 나라들에게 신나게 폭격당해 버렸다. 실제로, 코소보 전쟁 당시 세르비아 맥도날드 가게들이 불바다가 되고 부숴지는 일이 벌어지면서 맥도날드 세르비아 지점에서는 "우리도 폭격맞습니다. 맥도날드라고 나토나 미군이 공습 안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하소연하는 걸개를 달기도 했다. 또한, 중국 대사관 오폭 때도 중국인들이 중국에서 사업하는 맥도날드 몇몇 지점을 박살내버리기도 했다. 결국, 맥도날드가 미국의 상징적인 프랜차이즈라서 반미 시위라도 벌어지면 심심하면 항상 부숴지는 셈이다.

그 와중에 세르비아 맥도날드 지점들도 폭격을 당했으니 당시에도 뭔 헛소리냐는 비아냥을 듣던 터였다. 2014년 시점으로 이 이론이 빗나간 가장 최근의 전쟁이 남오세티야 전쟁이 되겠다.

레니 할린 감독이 조지아의 시각에서 본 영화 '파이브 데이즈 오브 워(5일 전쟁)'를 제작했고, 러시아에선 러시아 시각으로 본 풍자 로봇 영화 '어거스트 에이트'를 제작했다. 둘 다 시가전을 비롯 전반적인 전투 고증 자체가 잘 되어 있다. 파이브 데이즈 오브 워는 조지아인 전쟁 기자가 러시아에게 침공당하는 남오세티야에서 살아남기, 어거스트 에이트는 디셉티콘같이 표현된 조지아군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 확대정책과 미국&EU간의 파워게임은 이 전쟁으로 끝나지 않고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전쟁을 통해 시즌2를 찍게되었다. 다만 전면적인 군사 침공을 감행한 조지아와는 달리 경제위기로 인해 동질감이 흔들리던 지역민들의 분리주의 운동을 조장하고, 뒤에서 인력과 무기 등을 지원해 주면서 온, 오프라인 미디어를 통해 이를 정당화하는 일명 '하이브리드 전쟁'이 진행되는 중.

전쟁 후 조지아는 유럽 연합 가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실 조지아는 그전부터 유럽 연합 가입을 추진해왔지만 논의는 흐지부지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쟁 이후, 조지아는 서방을 향해 나토와 유럽 연합의 회원국이 되어야 자국의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홍보했고 유럽연합 역시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조지아와 유럽 연합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조지아는 동유럽에서도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해 있는 지리적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30] 경제 수준도 동유럽 국가들 중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유럽연합 가입이 그렇게 쉽지 않은 상황. 일단 2014년, 조지아는 유럽 연합 가입을 위한 첫 단계인 포괄 협정을 서명했다.

2019년 6월 20일에 러시아의 세르게이 보로실로프 하원의원이 조지아를 방문하자 1만명이 시위를 했다. #


[1]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이다. 백악관도 아니고 국내 시찰 상황도 아닌, 전세계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 개막식장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총리(당시)의 통보를 받았다. [2] 전쟁 당시엔 러시아식 명칭인 그루지야로 알려졌고 또한 대한민국의 공식 표기법이 그리하였다. 하지만 2009년 그루지야 외무부에서 명칭을 영어식인 조지아로 써달라고 부탁하였고 이후부터 조지아로 불리게 된다. [3] 조지아인이 아닌 소수민족 오세트인이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4] Ossetian Question 1994, p. 39. [5] 남오세티야는 현재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미승인국이다. 타국의 승인이 필요적 국가 성립의 요건은 아니라는 것은 고려하자. [6] 참고로 이 시기는 푸틴이 전쟁 개시로부터 딱 3달 전인 2008년 5월에 임기가 만료되어서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서 총리가 된 상태였는데(이 당시 대통령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말인즉 러시아도 정권 교체가 일어난지 얼마 안되어서 전쟁같은걸 바로 결정할 수가 없는 혼란스러운 시기여야 정상인데도 정권 교체 3달만에 바로 전쟁을 개시했다는 점에서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실세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메드베데프는 3선 연임을 금지하는 러시아 헌법을 비껴갈 목적으로 푸틴이 잠시 대리로 앉혀놓은 인사였고, 저 시기에도 진짜 실세는 푸틴이였으니 실상은 러시아에선 정권 교체가 일어난적이 없기에 저렇게 빠르게 전쟁을 결정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7] 덕분에 전쟁 초기에는 러시아군들이 눈에 아주 잘띄는 흰색, 파랑색 UN군 방탄모를 착용하고 작전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8] 심지어 당시 예비역으로 돌려져 있던 T-62도 나타났다!! 언제적 전차야 이거. [9] 이오시프 스탈린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조지아 국토의 정확히 한 가운데 있으며 교통의 요충지라는 것이 이 전쟁에서 더 중요하다. 고리가 함락된 이후 조지아는 국토를 분단당했다. [10] 실제로 함대공 미사일은 소형 함정에 대해 굉장히 효과적인 타격 수단이 된다. [11] 러시아군의 T-72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조지아군 소속이다. [12] 한 기는 아군 맨패즈의 오인사격. [13] 다만 조지아와 러시아가 각각 주장하는 격추 수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Su-25의 생존력으로 미사일을 맞고도 귀환에 성공한 사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실제 러시아는 미사일에 맞고도 생환한 Su-25를 공개하기도 했다. [14] 다만 이 부분은 러시아군 특유의 공군 교리를 감안해 볼 때 약간은 다르게 볼 여지가 있는, 일종의 계획 하의 피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러시아군의 방공망 제압은 전역 초기의 항공작전을 통해 방공망을 평가한 이후 일거에 전역의 방공망을 제압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며, 실제로 개전 2일째 조지아 공군의 방공망은 완전히 격멸되었다. [15] 미국에서 신무기를 개발하면 그걸 카운터할 무기를 진지하게 만든다. 러시아 외에 어느 나라도 이런 식으로 무기를 개발하지는 않는다. 군사력과 함께 국력이 받쳐주어 가능한 일. [16] 러시아의 대공 미사일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라이벌급 기술력을 지닌 미국은 넘사벽으로 압도적인 공군과 해군 항공대를 가지고 제공권을 장악하는것이 기본 교리이기 때문에 자국의 지대공 미사일 개발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17] 이스라엘은 러시아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으나 이 일로 분노한 러시아가 이스라엘과 대립하던 하마스 측에 최신 무기를 제공했고, 이에 이스라엘이 항의하자 이전에 이스라엘이 그랬듯 러시아는 무시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두 손 들고 러시아 인근 국가들에 대한 무기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18] 다른 미제 장비들은 말 그대로 미군이 조지아군에게 지원한 장비였지만, 이 험비는 미군 소속으로 합동훈련 종료 후 귀환을 위해 항구에서 선적을 기다리다가 노획된 것이다. 당연히 미국은 이거 우리거거둥? 하면서 반환을 요구했지만 러시아는 교전 상대방국에 있던 군사장비 압수한 거거둥? 하면서 그 요구를 거부했다. 전투함이나 최첨단 스텔스기, 미사일도 아니고 일개 험비에 불과했던지라 미국도 그냥 반환 요구 및 항의 몇 번 하고 포기했다. 그도 그렇지만 험비가 러시아군 차량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니 그냥 연구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19] 러시아식 영어. 똑바로 쓰면 '미국님들 러시아 공수부대에 옷줘서 고마워요' 정도. [20] 정작 미국인과 조지아인, 외국인들에게는 엉망인 스펠링 때문에 "영어 공부나 해라 돌대가리들아"라고 비웃음을 샀다(...) [21]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권은 경제를 모두 러시아에게 맡기려고한 무능한 친러 정부에 반대한 시위대 때문에 무너졌다. 하지만 신정부의 병크들로 인하여 동부가 아예 분리독립을 시도하게되었다 [22] 조지아는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권, 동유럽에서는 아주 유명한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며, 러시아가 조지아산 와인 수입 제재를 실시하자 조지아와 러시아 양국에서 난리가 났다고 할 정도로 조지아의 중요한 수출 품목이기도 하다. [23] 제정 러시아에서부터 소련까지 약 300년 간 지배를 받았다. [24] 예시로 1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이 있다. 1차 세계대전은 프랑스와 독일의 국지전에 이나라가 끼고 저나라가 끼고해서 유럽 전체의 전쟁이 되어버렸고, 베트남전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1년안에 끝내버릴것이라 추측했으나 게릴라와 공산군의 끝없는 공세로 지연전이 되어 결국 미군이 패배했다. 이라크전은...말할것도 없는 세계 최악의 적을 향한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시작점이 되어벼렸다. [25] 참고로 여기서 조지아를 초박살낸 러시아의 경제가 12위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 여전히 산업구조가 지극히 2차 산업에 기초해있으므로 세계적인 경제적 영향으로 보자면 한국이 그 러시아보다도 영향이 크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러시아의 파급력이 더 클 수 있어도, 영국, 호주 등에 다음가는 미국의 우방국인 대한민국의 전쟁의 파급력 역시 전혀 무시할 수 없다. [26] 다만, 미국이 이러한 조약을 일방적으로 무시한 전력이 있기는 하다. [27] 개혁, 개방 정책의 한 예로 조지아에 우호적이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거라 예상되는 국가에게 파격적인 비자법을 제정했다. 대한민국 국민 역시 이 법의 혜택을 받아 조지아에 360일 무비자로 입국 및 체류할 수 있다. 말이 1년 중 360일 무비자 체류이지, 이 정도면 사실상 비자 전면 폐지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EU 쉥겐조약에 의해 2014년 9월 1일부터 90일 무비자 바뀌었다. [28] 체코 폴란드 [29] 각각 1999년 1990년(그러니까 소련 당시!)에 맥도날드가 진출하였다. 특히 1990년에 개점한 푸쉬킨광장점은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상징 중 하나였다. [30] 캅카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조지아가 있는 캅카스 지역은 동유럽이 아니라 서아시아로 여겨지기도 할 정도로 유럽에서 변두리에 속하는 지역이다. 스탈린 같은 경우 일본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본인을 아시아인이라 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