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문화훈장 수훈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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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조택원 무용가 |
1975 안수길 소설가 |
1976 홍종인 언론인 |
1977 최석채 언론인 |
1978 방정환 독립운동가, 아동문학가 |
1979 고유섭 미술사학자 |
1980 전봉초 음악가 |
1981 김소월 시인 |
1982 이효석 소설가 |
1982 조지훈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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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홍승연 언론인 |
1983 천관우 언론인 |
1983 이육사 독립운동가, 시인 |
1984 이원수 아동문학가 |
1984 장발 미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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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강소천 아동문학가 |
1986 홍진기 언론인 |
1987 김남중 언론인 |
1990 모윤숙 시인 |
1990 주시경 독립운동가, 국어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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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김상만 언론인 |
1994 나운영 음악가 |
1994 이숭녕 국어학자 |
1995 공병우 한글연구가 |
1995 김소희 국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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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문신 미술가 |
1995 정명훈 음악가 |
1995 이대원 미술가 |
1995 류경채 미술가 |
1996 송석하 민속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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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신용호 기업인 |
1996 조병화 시인 |
1997 신순남 미술가 |
1997 홍두표 언론인 |
1997 최창봉 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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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정진숙 출판인 |
1997 고병익 역사학자 |
1998 방우영 언론인 |
1998 김연준 작곡가 |
1999 방일영 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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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방종현 국어학자 |
1999 김세형 음악가 |
1999 이유태 미술가 |
1999 김흥수 미술가 |
1999 장준하 독립운동가,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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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송건호 언론인 |
2000 황순원 소설가 |
2000 백남준 미술가 |
2000 서정주 시인 |
2001 김기창 미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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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김천흥 국악인 |
2001 장우성 미술가 |
2001 김수영 시인 |
2001 최영희 역사학자 |
2002 임권택 영화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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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오지호 미술가 |
2003 박동진 국악인 |
2003 윤석중 아동문학가 |
2004 구상 시인 |
2004 이혜구 음악사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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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박성용 기업인 |
2005 정세영 기업인 |
2006 신상옥 영화감독 |
2006 김동원 연극인 |
2006 차범석 극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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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조남철 바둑기사 |
2007 송도균 언론인 |
2007 노성대 언론인 |
2007 송범 무용가 |
2008 박경리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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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이청준 소설가 |
2008 김영랑 시인 |
2009 유현목 영화감독 |
2010 전숙희 수필가 |
2010 앙드레 김 패션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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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김영환 군인, 6.25전쟁기 해인사 폭격명령 거부 |
2011 박완서 소설가 |
2012 지관 해인사 주지 |
2012 이건희 기업인 |
2012 허동수 기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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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김형규 국어학자 |
2013 이우환 미술가 |
2014 호머 헐버트 선교사, 한글 체계화 공헌 및 한글 보급·한글 홍보 공로 |
2014 전형필 문화재수집가 |
2014 이은관 국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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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백성희 연극인 |
2016 임영웅 연극인 |
2017 박맹호 출판인 |
2018 최인훈 작가 |
2018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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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정지용 시인 |
2018 황병기 국악인 |
2020 서세옥 미술가 |
2019 김성환 시사만화가, 대표작《 고바우 영감》 |
2020 손창근 미술품소장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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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윤여정 영화배우 |
2021 이어령 문화부장관, 작가, 정치인 겸 문학평론가 |
2021 박서보 화가 |
2022 송기숙 작가 |
2022 송해 희극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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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우창 문학평론가 |
2022 김지하 시인 |
2022 이정재 배우 |
2022 황동혁 감독 |
2023 이미자 대중음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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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조수미 성악가 |
2023 이미경 기업인 |
김흥수
金興洙 | Kim Sou[1] |
|
<colbgcolor=#cdaca7> 출생 | 1919년 11월 17일 |
함경남도 함흥 | |
사망 | 2014년 6월 9일 (향년 94세)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화가 미국 무어 미술대 초빙교수 덕성여대 교수 |
학력 | 도쿄미술학교 |
배우자 | 장수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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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화가. 하모니즘의 창시자.하나의 캔버스를 화면분할하여, 한쪽에는 '여성의 누드나 한국적인 것을 그린 구상화'를 넣고, 다른 한쪽에는 '기하학적 도형으로 된 추상화'를 넣은 하모니즘 미술을 만들었다. 구상과 추상을 한 화면에 융합하여 조형주의 예술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2. 생애
3. 조형주의(하모니즘) 선언문
음과 양은 서로 상반된 극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세계로 어울리게 될 때 비로서 완전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의 세계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추상주의의 등장 이후 세계의 화단은 구상주의와 추상주의가 서로 반목적인 상극을 이루어 왔었다. 사실적인 표현은 틀 속에 얽매어 있다고 볼 수 있는 반면, 추상적인 표현은 우연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있다는 것은 완전치 못함을 의미한다.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울려 완전을 이룩하듯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두 작품 세계가 하나의 작품으로 용해된 조화를 이룩할 때 조형(造型)[2]의 영역을 넘은 오묘한 조형(調型)[3]의 예술세계를 전개하게 된다. 이것은 궤변이 아니다. 진실인 것이다. 극에 이른 추상의 우연의 요소들이 사실 표현의 필연성과 조화를 이룰 때 그것은 더욱 넓고 깊은 예술의 창조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July 7, 1977, KimSou
추상주의의 등장 이후 세계의 화단은 구상주의와 추상주의가 서로 반목적인 상극을 이루어 왔었다. 사실적인 표현은 틀 속에 얽매어 있다고 볼 수 있는 반면, 추상적인 표현은 우연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있다는 것은 완전치 못함을 의미한다.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울려 완전을 이룩하듯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두 작품 세계가 하나의 작품으로 용해된 조화를 이룩할 때 조형(造型)[2]의 영역을 넘은 오묘한 조형(調型)[3]의 예술세계를 전개하게 된다. 이것은 궤변이 아니다. 진실인 것이다. 극에 이른 추상의 우연의 요소들이 사실 표현의 필연성과 조화를 이룰 때 그것은 더욱 넓고 깊은 예술의 창조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July 7, 1977, KimSou
4. 작품
4.1. 승무도
4.2. 파천
4.3. 누드 1980
4.4. 염 Thought 1977
5. 여담
- 김흥수의 하모니즘은 한 때 미국의 데이비드 살르를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으나, '조형주의(하모니즘) 선언문'의 재발견을 통해서 데이비드 살르 보다 훨씬 더 빠른 시기에 김흥수가 먼저 작업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받았다. (데이비드 살르는 1983년 부터 김흥수와 비슷한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김흥수의 하모니즘 선언은 1977년도 이다.)
- 프랑스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에 의해 김흥수의 하모니즘은 독창적인 형식미학으로 인정받게 됐다. 레스타니는 '한불수교 100주년 양국 현대회화작가 교류전'에 출품한 김흥수의 그림에서 감동을 받고, 그의 회화가 하모니즘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 1999년 한국 미술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문화훈장을 수여 받았다.
- 사제지간으로 만난 43살 연하의 장수현씨와 3번째 결혼을 해서 화제를 모았다. 그전에 김흥수는 2번을 결혼하고 이혼한 이력이 있었다. 아이러니 한것은 이런 연하의 부인이 정작 김흥수 본인보다 2년 먼저 2012년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 여기에서 자세한 내용을 볼수 있는데, 김흥수 본인이 스스로의 일대기를 수기형식으로 쓴것이라 볼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