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05:22:02

김수민(시사평론가)

제6대 경상북도 구미시의원
김수민
金守民 | Kim Su-min
파일:김수민 시사평론가.jpg
<colbgcolor=#808080><colcolor=#fff> 출생 1982년 7월 10일 ([age(1982-07-10)]세)
경상북도 구미시
학력 광평국민학교
금오중학교(구미)
구미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교육학, 사학(한국사) / 학사)
소속 정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약력 제6대 구미시의원
구미풀뿌리희망연대 운영위원
구미 단수피해 시민소송단 공동대표
구미시 아이쿱 소비자생활협동조합 감사
녹색당 언론홍보기획단장
시사평론가
뉴스민 객원전문기자
종교 불교[1]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티스토리 아이콘.svg | 파일:팟빵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정치 활동2.2. 정치 평론 활동
3. 인터뷰4. 선거이력5. 소속 정당6. 저서7. 여담

[clearfix]

1. 개요

김수민은 대한민국의 前 기초의원이자 現 시사평론가다.

2. 생애

1982년 경북 구미시에서 출생해 구미공단 주변 동네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2.1. 정치 활동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노사모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생 시절엔 개혁국민정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순서대로 정당을 거쳐갔다. 2001년 '조선일보 반대 연세인모임'이 발행하는 <조선바보> 편집주간이 되어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안티조선운동에 참여했다. 2002년 강진논쟁에도 참여했다. # 이 당시 이문옥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가 사전선거운동에 따른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에 가기도 했다. 재판 결과는 선고유예. 전역 후 민주노동당 당원이 되었고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노회찬 캠프에 몸담았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이후 진보신당에 합류했으나 2009년 탈당한다.

2009년 2월에 대학 졸업을 하고, 그해 인터넷 언론 쪽 일을 하다가 고향 구미시로 내려가 풀뿌리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2009년 12월 말, 이듬해 열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해당 지역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한다. 2010년 6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 구미시 바 선거구(인동동·진미동)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시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시작했다. 3인 선출 선거구에서 접전 끝에 1, 2, 4위와 표차가 크지 않은 3위를 기록했다. 당시 만 27세 나이였으며 영남 지역 최연소, 전국 무소속 최연소 기초의원이었다.
파일:SuminCouncil.jpg

시의원 재임 기간 꾸준히 의정보고서를 발간했다. #1 #2 #3 재임기간 조례안 대표발의 수와 시정질문 횟수는 시의원 중 1위였고 의회 출석률도 마찬가지로 1위를 기록했다. 5분자유발언도 자주 진행했다. 국외연수는 다녀오지 않았다. # 대표발의한 「구미시 비정규직 권리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는 '2012년 대구경북 5대 인권증진뉴스'에 선정됐다. #

기초의원으로서 그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첫 계기는 2010년 9월 추가경정예산 심사에서 박정희 기념사업 예산의 전액 삭감을 주장한 때였다. 구미 지역 정치인 중 최초로 박정희 기념사업에 반기를 든 것이었다. 친박연합 등이 김수민에게 의원직 사퇴를 이어가지만 이후에도 박정희 기념사업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었다. 훗날 김수민은 “내가 구미에서 친박세력과 맞서 싸웠는데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의 극성 지지층을 두려워 하겠느냐”고 말했다. 2011년 구미 단수 사태 때는 단수 피해 시민소송단 대표를 맡아 소송에 참여할 시민을 모집했다. # 해당 소송은 17만명이 참여했다. 1심, 2심 재판에서 일부 승소했으나 #1 #2 2018년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 결과를 맞았다. #3 2012년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 때는 구미 녹색당, 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사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1 #2

만 12세 이하 무상 예방접종 실시, 학습준비물비 지원, 주민참여예산제 도입, 보육교사 처우개선비 인상, 진평파출소 신설, 구미독립영화제 개최 등의 공약을 이행하고, 행정사무감사에서 폐기물 수집운반 사기업체의 인건비 갈취와 공원농약 유해물질 등을 폭로했다. 또 진보 개혁 성향의 의원답게 정경유착성 예산 사업, 노동 문제 등에 대해 곧잘 비판을 제기했다. 구미시가 삼성전자에게 '건강한 일터' 인증을 내주자 직업병 제보 사례가 있다며 반발했다. 지역 토호 세력, 박사모, 남유진 시장, 보수 성향 상공인들과 자주 충돌했다. #1 #2 2012년에는 재활용쓰레기 처리업무를 시 직영에서 민간위탁으로 전환하려는 집행부와 이를 막고자하는 김수민이 부딪히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김수민이 재활용쓰레기 처리업무 외주화를 막는 「구미시 폐기물관리 조례」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통과시켰다. # 구미시가 이를 저지하려 법제처에 질의를 한 문건도 남아있다. # 이와 관련한 갈등은 조례 개정 후에도 지속됐다. #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시의원 재선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낙선 원인으로 본인은 첫째 자신이 부족했고 둘째로 선거 구도가 초선 도전 당시와 크게 달랐다는 점을 들고 있다. 초선 때 한나라당 후보 3명, 한나라당 출신 무소속 1명과 경쟁한 반면, 재선 도전 때는 새누리당 후보 3명 외에도 민주당 후보 1명, 무소속 후보 3명과도 경쟁해야 했다. 반새누리당 표심이 여러 갈래로 쪼개져 2~5위 네 명의 후보가 접전을 펼치는 상황이 펼쳐졌고 김수민은 3위 당선자보다 0.6%포인트 모자란 득표율로 낙선한다.

낙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녹색당 경북도당 사무처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3월에는 녹색당 언론홍보기획단장으로 있으면서 무상급식과 관련해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를 비판하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 JTBC와 협업해 학교 인조잔디 유해물질 검출 결과를 폭로하는 활동을 했다. 2016년 총선에서 당 총선대책본부 대변인 겸 홍보본부장으로서 내놓은 여러 논평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총선을 끝으로 정치에서 은퇴하고 시사평론가로 전직한다. 2020년 3월에는 녹색당의 위성정당 참여 시도에 반발해 탈당하고 그뒤로는 무당파로 있다.

2015년에 구미시의회 의원 시절을 복기하는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 시간이 더 흐르고나서 본인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에서 의원 시절 일들을 다시 한번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1 #2 #3

2.2. 정치 평론 활동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직후 대구CBS '라디오 세상 읽기'의 코너 '뉴스 이건 이거다'에 출연해 시사평론가 직함을 달고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김용민에게 스카웃되어 '김용민 브리핑'에 출연했다. 이 시점까지만 해도 수입이 직업 평론가로 살아갈 수준은 안 되었다고.

2017년 초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 뉴스 브리핑에 출연하면서 이때부터 본격적인 직업 시사평론가로 발돋움한다. 이어서 김용민의 뉴스관장에 고정출연을 했다. 한겨레 지면을 통해 본인이 의정활동을 지냈던 구미시가 박삼실( 박근혜· 삼성· 최순실)의 식민지였다며 해당 기업과 인물을 비판하기도 했다. 지역에서 박정희를 무비판적으로 숭배하는 박정희 광신도들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

2018년에도 김용민과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MBC경남 '소수의견'에 출연하기도 했다. 시사평론가 활동 초반부터 2019년 중반까지 김용민을 비롯한 친민주당 계열 인사가 진행하는 방송에 다수 출연했는데, 김수민의 의견과 해당 방송을 듣는 민주당 지지층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그들과 갈등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제19대 대통령선거 홍준표와 TK에 대한 분석, 김종대 인격테러 발언 논란, 2018 평창 동계올림픽/남북단일팀 논란등 여러 사안과 관련해 청취자의 의견에 맞지 않는 김수민 본인의 의견을 내비쳤다가 청취자들에게 악플을 자주 받았다. 이후에도 청취자들과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손혜원 부동산 투기 의혹, 한일 무역 분쟁, 숙명여대 펜스룰 강사 사건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냈다가 악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쌓여온 갈등은 조국 사태에서 폭발한다. 김수민은 조국 교수에 대해 강한 비판을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친민주당 조국 지지자들과 강도 높은 마찰을 빚었다. 그 결과 출연하던 일부 방송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된 김용민과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다. 일부 방송을 하차한 뒤에도 KBS '김용민 라이브'는 김용민과 함께 진행하고 있었으나 이 방송에서도 하차하면서 김용민과 방송을 하지 않게 된다. 2020년에는 이 사건과 관련해 본인이 겪은 일화를 엮어 기고문을 남기기도 했다. # 2021년에는 조국 교수 본인과도 직접적인 마찰을 빚었다. #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녹색당에서 탈당했다. 녹색당은 당원총투표를 거쳐 민주당이 주도한 위성정당에 참여하기로 했고, 김수민은 이에 강력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김수민은 녹색당에 대한 지지조차 하지 않는다. 2021년부터는 다수의 방송에 출연했다. 연말부터는 '윤석열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을 최초 보도한 뉴스버스에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뉴스버스 '김수민의 정치클리어링'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재명 윤석열 두 거대양당 후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했으며 대선 기간 꾸준히 거대양당 바깥의 제3지대 후보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 대선 막판 제3지대 유력 후보였던 김동연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 지지를 표명했다. 심상정 후보가 보수화 됐다고 느끼는 유권자에게는 이백윤 후보를 대안으로 추천했다. # 그러나 그해 지방선거의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정의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정의당이 검찰 수사권 대폭 축소 법안에 찬성한 것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2022년 6월에는 약 1년간 진행했던 주간동아 칼럼 기고를 중단했다. 김수민이 송고한 원고의 20%~30%에 해당하는 분량을 편집부 측에서 임의 삭제한 것이 그 이유였다. 편집부에서 삭제한 내용은 김수민이 윤석열 정부 시행령 개정을 통한 국회 패싱 행위를 비판한 대목이었다. #

CBS 표준FM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브리퍼로 출연중이며, 뉴스민에서 객원전문기자를 지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화물연대 파업 탄압에 대한 ILO 서한 전문을 입수하고, 이재명 경기도지사 시절 법인카드 유용에 연루된 배모씨가 총무과 업무분장표와 별정직 전체 명단에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등 특종 보도를 하기도 했다. '뉴스버스', '뉴스토마토'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거대양당을 혁파할 개혁신당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단, 현재까지 나타난 여러 신당들에 대해서는 '거대양당의 부속 노릇을 하는 기회주의자들'이라며 강한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씨네21 '디스토피아로부터' 지면에도 연재를 시작했다.

3. 인터뷰

"윤석열 가족 의혹은 조국 시즌2?…민주당은 이 말 못 한다" 중앙일보 2021.11.08.

4. 선거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 구미 바

[[무소속(정치)|
무소속
]]
4,086 (21.14%) 당선 (3위) 초선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녹색당(대한민국)|
파일:녹색당(대한민국) 흰색 로고타입.svg
]]
2,985 (13.46%) 낙선 (5위)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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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지선 (경북 구미시 바선거구) 6회 지선 (경북 구미시 마선거구) }}}}}}}}}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개혁국민정당|
파일:개혁국민정당 글자.svg
]]
2002 - 2003 창당


[[민주노동당|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5 - 2008 입당


[[진보신당|
파일:진보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 2009 창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9 - 2012 탈당


[[녹색당(대한민국)|
파일:녹색당(대한민국) 흰색 로고타입.svg
]]
2012 창당

2012 - 2014 재창당


[[녹색당(대한민국)|
파일:녹색당(대한민국) 흰색 로고타입.svg
]]
2014 - 2020 당명 변경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20 - 현재 탈당

6. 저서

  • 『다당제와 선거제도』,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지식공유지대 eCOMMONS, 2020. 무료 PDF 다운로드

7. 여담

  • 초선 출마 때는 박노자 교수가 추천사를 써줬다. # 이후 재선 출마 때는 조국 교수, 故 노회찬 전 의원, 홍세화 노동당 전 대표가 추천사를 써줬다. # 추천사를 써준 인물들의 이름값이 대단히 높은 편이다. 직접적인 인연이 있는 노회찬 의원과 홍세화 전 대표는 이름만 빌려주고 후보 본인이 추천사를 쓴 후 해당 인물들에게 허락을 받았는데, 특별한 인연이 없던 조국 교수는 직접 추천사를 써주고 수정도 몇 차례 해주었다고. 조국 교수가 구미시의원 시절 자신을 알아봐주고 추천사를 써준 것에 대해 김수민 본인은 “지금 와서 보면 조금 기분 나빠(웃음)”라고 회상했다.
  • 어그로를 끄는 악플러 키보드 배틀을 피하지 않는 편이다. SNS 페이지 및 각종 게시판에서 댓글로 싸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도서)의 예비 필진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최종 명단에서 빠졌다. # 10만부 판매 돌파 기념으로 진행된 온라인 북 콘서트에는 참여했다. 해당 도서의 별칭인 '조국흑서'라는 이름을 김수민이 제일 먼저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윤석열 대선 후보의 고발사주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등을 거치며 이 책 필진들과 다른 행보를 하면서 사이가 멀어진다.

[1] 김준우의 공작실 4화 4분 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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