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18:32:53

김성근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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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아들 김정준 · 김응용 vs 김성근 · 인맥
구설 김성근/구설 · 김성근의 저주
관련 밈 절이 싫어서 중이 떠났는데 절이 쫓아와요 · 위기의 XX를 구할 마지막 희망 · 한화의 김성근 감독님 사랑해 · 세이콘 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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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김성근의 저주의 실제 사례3. 원인
3.1. 선수 육성, 리빌딩의 철저한 거부3.2. 심각한 혹사와 비과학적인 훈련3.3. 프런트와의 불화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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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성근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포기 안 남는다.
감독 김성근. 구단 모기업 부도로 존속 자체가 불투명했던 쌍방울을 제외하고는 모든 팀이 김 감독이 떠난 1~2년 후 암흑기를 맞아 선수단 리빌딩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당시 김 감독 야구의 '투수 총아'들은 (혹사로 인한 부상 때문에) 쉽지 않은 야구 인생을 걸었고 또 걷고 있다. - 김성근 야구 '에이스' 총아인가 제물인가
KBO 리그 유명한 저주 중 하나로, 김성근이 경질된 후 그 팀이 암흑기에 빠지는 것을 일컫는다. 여타 기담으로 도는 'XX의 저주'류와는 달리 이건 김성근에게 명백한 책임이 있다.

김성근이 맡았던 팀은 대부분 그가 경질당하고 나서 후임 감독 시절에 성적이 더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원래 '김성근의 저주'라는 표현은 "김성근을 버리면 화를 입는다." 또는 "김성근을 자르면 팀이 망한다."는 의미로 김성근 광신도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김성근이 재임 시절 팀을 망치고나서 그가 떠난 후 팀은 후유증에 시달리며 부진에 빠지고, 구단과 후임 감독들이 뒷수습하느라 고생한다"는 뜻으로 바뀌었다.

김성근 특유의 무리한 지옥훈련 혹사 그리고 유망주를 팔아 노장 선수를 영입하는 윈나우 정책으로 인한 급격한 선수단 노령화에 따른 후유증에 기인한 것으로 흔히 김성근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 남지 않는다는 말로 회자되곤 한다. 즉 김성근의 막장 행각으로 팀이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이지, 김성근을 잘랐기에 저주에 걸린 것은 아니라는 의미. 그의 팬덤들이 주장하는 김성근 없으니 팀이 망해간다는 해석은 인과관계를 잘못 따진 오류이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서는 김성근의 저주/사례를 참조.

사실 김성근의 저주는 김성근 본인의 임기 중에 이미 나타난다. 김성근이 감독을 맡아던 팀들의 성적을 보면 한결같은 공통점이 첫해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후 점차 순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2010년 단한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전년도보다 성적이 상승한 적이 없다. 팀평균자책점 역시 마찬가지로 항상 김성근 부임 첫해에 가장 낮고 이후 계속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1986년 단 한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전년도보다 평균자책점이 낮아진 적이 없다. 항상 부임 첫해에 선수들을 쥐어짜서 좋은 성적을 내지만, 이내 그 후유증으로 차차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투수진 역시 역시 쥐어짜기 운영으로 첫해에는 나름 강력한 모습을 보이지만, 바로 다음해 부터는 후유증으로 투수들의 구위가 모두 떨어지고, 돌아가면서 부상으로 이탈하기 때문에 점점 무너진다.

2. 김성근의 저주의 실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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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인

기본적으로 김성근의 야구는 극도의 위험 회피와 선수 쥐어짜기이다.

자기 임기 내에 최고의 성적을 내는 데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일체의 모험요소를 배제하고[1] 철저하게 검증된 선수들로만 엔트리를 꾸려서 무자비하게 쥐어짠다. 김성근의 특징인 베테랑 우대, 신인 홀대, 과도한 경기개입, 투수혹사, 스몰볼 성애에서 나온 쥐어짜기 1점 번트 야구 및 포지션 고려 없는 대타/대주자 기용, 잦은 수비 교체, 비과학적인 훈련, 부실한 체력 관리, 프런트와의 대립 모두 이런 관점에서 기인한다.

이렇게 자신의 임기 동안 팀을 혹사시키며 전력을 쥐어짜낸 뒤 경질되면 팀은 그 후유증에 휩싸이게 된다. 그동안의 혹사와 피로 누적으로 선수들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이며, 유망주들은 김성근이 트레이드로 내보내 남아있지 않고, 김성근이 억지로 군입대를 금지시킨 선수들은 김성근이 경질되고 나면 앞다투어 서둘러 군입대한다. 거기에 김성근이 영입하여 1~2년간 단물을 빼먹은 노장 선수들은 이제 기량 쇠퇴로 고액 연봉만 축내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상황이다. 한 마디로 빈 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즉, 김성근의 저주는 결국 김성근 본인이 팀에 저주를 뿌리는 셈이다. 이것이 다른 야구계의 저주들과 상당히 차별화되는 점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김성근/야구 스타일 항목 참조.

3.1. 선수 육성, 리빌딩의 철저한 거부

일단 당장 자기 임기내에 성적을 내는데만 급급하고 그뒤는 내 알바 아니라는 태도를 보인다. 이때문에 선수단 구성과 운영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한다. 당장 자기 임기, 올 한해, 이번 달, 오늘 경기에서의 승패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선수라면 내보내자 마자 무조건 잘해야 한다. 당연히 이미 1군에서 충분히 검증된 베테랑을 선호한다. 소위 계산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육성과 1군 적응에 시간이 걸리는 신인 혹은 노망주는 거의 쓰지 않는다. 1군에서 검증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신인은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다. 즉 신인을 중용해서 성공하면 해당 시즌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성적에도 큰 보탬이 되지만, 만일 실패하면 당연히 성적이 안나온다. 하지만 팀의 미래를 위해선 점점 기량이 하락세에 접어드는 노장들에게 체력안배를 해주면서 신인급들도 꾸준히 출전시켜서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

하지만 김성근은 성적이 안나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인지 소위 계산이 안되는 신인들, 유망주들에겐 제대로된 기회를 주지 않는다. 팀의 미래를 위해서, 내년 시즌을 위해서, 다음 경기를 위해서 가능성이 보이는 신인을 성적에 관계없이 꾸준히 1군에 내보내면서 경험을 쌓게한다? 김광현급이 아닌 이상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심각한 투수 혹사로 비판받는다는건 비슷하지만, 최소한 야수육성과 리빌딩에선 인정받는 김응용, 강병철, 김경문[2] 감독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신인 선수가 보이면 햄 구워맥이면서 잘 챙겨주거나 꾸준히 중용하며 해태와 삼성을 강팀으로 이끈 김응용이나 강병철의 양아들이나 김경문이 두산과 NC에서 보여준 타자 화수분[3]은 김성근 체제에선 절대 있을 수 없다.

이렇듯 1군 즉전감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미 전성기가 지나서 하락세에 접어든 베테랑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신인을 맞바꾸는 트레이드에도 적극적이다. 구단이 프랜차이즈 스타를 기대하고 키우던 연고지 출신 유망주도 당장 1군에선 못쓰겠다 싶으면 즉시전력감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면서 다른 팀 노장과 트레이드한다. SK 왕조 시절 김광현 최정이 오랫동안 투-타 막내였던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노리타들은 SK 스카우터들이 무능해서 감독님이 키울만한 신인이 없었다고 강변하지만 나이 마흔이 다되가는 은퇴직전의 최동수, 권용관 같은 노장에 한해 반짝하고 2군에 묻혀 있던 안치용, 이재영 같은 선수들을 받고 전년도에 2차 1번으로 입단한 선발투수 유망주 박현준을 트레이드한게 김성근이다. 그리고 이 선수들은 역시나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몇년 안돼서 모두 방출되었다. 단 안치용이 2011시즌 후반기에 불꽃 맹타를 보여주었지만, 역시나 다음해에는 그냥 본래의 안치용으로. 박현준이 승부조작으로 제명되면서 묻혔지만 김성근이 맡는 팀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트레이드가 항상 있어왔다. 2008년에는 20대 중반의 군필 포수 유망주 정상호를 은퇴가 얼마 안남은 이숭용과 트레이드 할려다가 실패한 적도 있다. SK 김성근 감독과 히어로즈 이광환 감독이 트레이드에 합의했으나, 막판에 히어로즈 이장석 사장이 끼어들어서 추가로 현금 1억을 요구하면서 무산되었다. 실제 이숭용은 불과 3년뒤인 2011년 은퇴했다. 40대 1루수를 고작 2~3년 쓸려고 서비스타임이 한참 남은 20대 군필 포수 유망주를 줄려고 한것이다.

2015년 한화에서도 즉시전력감 확보 명분으로 1픽 유창식에 20대 초중반의 군필 외야수인 오준혁, 노수광 김광수까지 묶어서 죄다 내주고 서른을 코앞에 둔 대졸 미필 임준섭, 신고선수 출신 이종환과 바꿨다. 양훈도 과도한 체중 감량 후 회복이 더디자 32세의 이성열 허도환을 받아오는 조건으로 즉시 트레이드했다. 이때문에 한화 리빌딩 하라고 데려왔더니 다른 팀 리빌딩 시켜주고 있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LG시절 당뇨병 환자 심성보까지 데려 왔고 한화 감독인 지금도 한번 자신의 팀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는 권용관까지 데려 오는 데서 엿보이듯 타팀에서 하향세때문에 방출된 노장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이렇듯 새얼굴을 홀대하고 즉전감 베테랑만을 선호하면서 정작 20대 선수들을 혹시 쓸때가 있을지 모른다면서 자기 임기 중에는 군대도 안보낸다. 한화 이글스 암흑기의 시작인 김인식 감독이 가장 비판받는 점도 이것이다. 김인식 감독도 정작 1군에선 쓰지도 않으면서 20대 선수들의 군입대를 계속 늦췄다. 이러니 한화의 신진 선수들은 1군에서 경험을 쌓는 것도 아니고, 병역도 해결 못한 어정쩡한 상태로 몇년을 허송세월했다. 그리고 이 모든게 후임 한대화 감독 시절에 폭발, 한해에 군복무중인 선수만 20명이 넘어가버렸다.

SK 시절만 해도 투수 채병용, 고효준, 이영욱, 조영민이 군 야구단 입단 가능 시기를 넘기는 바람에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을 해결했고, 모창민 이재원은 계속해서 붙잡혀 있다 부모까지 나서서 읍소해 감독 동의 없이 상무에 입대한 전적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김성근 감독과 SK 프런트간에 골이 생기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김성근은 SK에서 경질된 이후에 이 문제를 야구도 모르면서 현장을 무시하는 프런트의 월권식으로 언플을 해댔다.

그나마 신인들도 활용한다는 게 투수는 불펜 노예, 야수는 플래툰이나 백업이라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매 경기 5~6이닝 이상을 완급조절하면서 던져야 하는 선발 투수 키우는게, 당장 1이닝만 집중해서 던지는 불펜 투수 키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러니 당장 가능성이 보이는 젊은 투수가 나오면 바로 써먹기 위해서 불펜 노예로 굴리는 것이다. 신인야수는 빠르게 써먹기 위해서 좌우놀이용 대타, 아니면 대수비, 대주자 요원으로만 활용한다. 물론 1군 시즌 운영을 위해선 주전 이외에도 대타, 대수비, 대주자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자리는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들한테 돌아가는게 일반적이다. 반면에 김성근은 주전 자리는 노장들로 무조건 채워놓고, 신인급 선수들한테는 아예 기회 자체를 주지 않는다. 그래놓고 당장 눈에 띄는 능력 한두가지를 활용하기 위해서 대타, 대수비, 대주자 요원 등 백업으로만 쓰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포수 이재원. 포수는 육성에 긴 시간이 필요한 포지션이다. 대부분의 팀이라면 이재원 같은 대형 포수 자원은 2군에서 차근차금 수비를 다듬고 미리 상무 경찰청에 입대시켜서 충분한 경험을 쌓게 한뒤에 1군에 콜업할 것이다. 혹은 1군 포수진이 허약하다면 입대를 미루게 하는 대신에 빠르게 1군에 콜업해서 실전경험으로 실력을 쌓도록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성근은 이재원이 좌투수 공을 잘친다는 이유로 임기내내 좌투수상대 대타 요원으로만 1군에 데리고 다니면서 군입대도 계속 늦췄다. 1군에서 포수경험을 쌓는것도 아니고, 병역해결도 못하고 어쩌다가 한번씩 나오는 대타만 몇년씩. 기량향상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20대를 그냥 허송세월 한것이다.

선수가 실력을 쌓기 위해서 경험이 중요한데, 정작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신인들한테는 극히 제한적인 롤(불펜 원포인트, 우투 상대 대타, 대수비 등)만을 부여하니 선수가 클 수가 없다. 게다가 어쩌다가 새얼굴이 가능성을 보이면 다른 팀 선수와 트레이드 추진. 노망주 투수 박희수도 가능성을 보이자 트레이드를 추진하였고 실제로 롯데, 두산과 트레이드 카드를 맞추었다는 소문까지 있으나 프런트가 막아버려서 실패했다. 만일 박희수까지 트레이드했다면 이후 SK는 정말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그리고 한화의 미래인 하주석도 2016년도부터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가치가 올라가자 하주석을 트레이드 카드로 매물로 올라오고 타 구단과 카드를 맞추는 중이라는 썰이 올라왔었고 이 소식에 기겁한 빗발치는 팬들의 문의전화 끝에 트레이드 불가 자원이라고 해명하였다. 근데 이 사건 이후 운영팀장이 짤리면서 트레이드 하려다가 걸린거 아닌가? 라는 주장도 커뮤니티에 올라왔었다.

따라서 임기 내내 신인은 가뭄에 콩나듯하며, 그나마도 1군에서도 구른 선수들은 혹사와 플래툰 기용으로 인해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당연히 1군 평균 연령은 점점 올라가고, 김성근이 짤릴쯤 되면 주전중에 20대는 거의 없고 노장들만 가득한 노인정이 된다. 그렇게 한화가 그 꼴이 되면서 실제로 일어났다.

그외에 다른팀에서 방출된 선수들, 사실상 선수생명이 끝난 노장들도 쓸데가 있을 지 모른다면서 무조건 모으고 보자 식이다. 쓸데없는 노장들은 모조리 긁어모아, 젊은 선수들은 군대도 안보내니 당연히 선수단 규모가 다른 팀에 비해서 매우 비대해지며, 인건비도 많이 들어가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SK만 해도 05년, 07년 데뷔한 최정 김광현이 김성근이 경질되는 11년까지 야수조와 투수조 막내였다. 이 해에 최윤석 김태훈이 올라오면서 겨우 막내에서 벗어났다. 여기에 다음 항목의 혹사까지 더해져 김성근이 짤릴 즈음이 되면 선수단은 만신창이 상태. 그리고 이 모든 뒷감당을 프런트와 후임 감독들이 해야 한다.

그나마 삼성이나 SK는 후임 감독들이 어떻게든 팀을 추슬렀지만 LG는 김성근을 경질시킨 뒤 도저히 재평가를 할 수 없는 초대형 무리수를 일으켰다.[4] 결정적으로 이 과정이 한 시기에 다 일어나버리는 바람에 이 때 LG는 팀 기반 자체가 무너졌다. 결국 10년동안 비밀번호의 행진을 한 후 그 다음해인 2013년에 와서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그리고 한화도 김인식 감독부터 시작된 긴 비밀번호가 찍히기 시작하고 2014년 말까지만 해도 군복무에서 돌아온 유망주들이 대거 복귀하면서 잘만 리빌딩했다면 희망은 있었을것이다. 하지만 김성근 부임 이후 지속적인 유망주 유출, 호구 트레이드, 무계획적 FA 및 노장영입, 기이한 투수진 운용으로 한화 선수단은 그야말로 풀 한포기도 안 남은 쑥대밭이 되었고 10년 비밀번호를 찍은건 물론이고 10년 이상의 비밀번호를 찍게 생겼다가 한용덕이 일단 급한 불은 끄긴 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3.2. 심각한 혹사와 비과학적인 훈련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 스포츠 의학, 체계적인 피지컬 트레이닝 방법론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다. 21세기에 아직도 2차대전 일본군 마냥 정신력으로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면서, 노-오-력을 강조한다. 웃긴건 정작 김성근의 아들 김정준은 입스(yips) 증세로 고작 1군 5경기만에 은퇴했다는 것이다. 입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중압감으로 호흡이 가빠지고 손에 경련이 오는 증상'으로 입만 열면 정신력을 강조하는 양반이 정작 자기 아들의 정신력은 못고친 것이다. 즉 정신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문제가 있으며, 그 잘난 노오력만으론 안된다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아들 김정준의 사례로도 증명되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선수의 체력과 컨디션을 무시한 극한의 지옥훈련을 밀어붙인다. 스프링캠프기간부터 여타 야구단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긴데다가 중간에 쉬는 날도 거의 없다. 2010년대 이후로 대부분의 KBO 구단들은 4일 훈련 하루 휴식 일정이며, 자율훈련이 정착된 넥센은 3일 훈련 하루 휴식이다. 게다가 매일 휴식도 없이 다른 구단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장시간 훈련하며 심지어 식사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 2016시즌 한화 이글스 스프링캠프때는 점심을 훈련 도중 짬짬이 먹는 김밥이나 우동으로 때운다는 기사가 나왔다. 중고등학교 운동부만 해도 반찬 하나라도 더 주던가 각종 간식을 챙겨주는 식으로 영양보충에 신경을 쓰는데, 프로구단에서 이런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충분한 휴식과 영양보충이 없는 훈련은 오히려 몸을 축낼 뿐인데, 김성근 감독이 맡는 팀들은 항상 새벽부터 밤늦게까지의 강행군으로 선수는 녹초가 되고, 피로 누적으로 전지훈련 단계부터 부상자가 속출한다. 안승민의 증언에 의하면 시즌 마무리 캠프(또는 교육 리그) 훈련을 갔는데 폭우가 쏟아지는데 연습게임을 못하게 되자 러닝 훈련을 지시했다고 한다. 문제는 첫째 훈련을 3시간 이상 강행했다는 점과 둘째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명목인지 나이 오십 넘은 코치들까지 모두 같이 뛰었다는 것. 성적이 나기 전에 다 감기 걸려 죽을 지경이다. 눈이 쌓여서 운동장을 못 쓰게 되자 휘발유를 부어서 녹인 다음 훈련한 적도 있다고 한다.


시즌이 시작돼도 이런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선수의 플레이가 맘에 들지 않거나, 성적이 부진하면 매일같이 지옥펑고, 특투, 특타를 반복한다. 휴식일인 월요일에도 선수들을 불러내서 훈련, 훈련, 훈련. '던지면 던질수록 어깨는 강해진다'식의 과학적 근거가 없는 속설을 믿다 보니까, 문제가 생기면 훈련시간을 늘리는 것으로만 해결할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니 김성근이 맡은 팀들은 항상 시즌 초반에는 잘나가다가, 무더위가 시작되는 6월쯤 되면 선수들의 체력고갈과 부상자 속출로 주춤한다.

반면에 김성근과 정반대의 야구관을 가진 류중일, 로이스터 감독은 항상 여름 이후에 치고 나간다. 상식적인 5선발 로테이션에 시즌 초반부터 불펜투수와 타자들의 체력관리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여름에도 다른 팀에 비해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기 때문이다. 2016시즌 삼성이 무너진건 시즌초반부터 대규모 부상자 속출로 선발, 불펜, 타격이 모조리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선수들의 체력관리가 거의 되지 않아서 여름 이후에도 치고 나가지 못했다.

왕조 시절 SK에선 워낙에 좋은 선수들이 많으니 봄에 엄청난 승수를 쌓아놔서 버티기가 됐지만, 그 이전이던 이후던 다른 팀에선 그게 안되니 항상 여름을 지나면 무너진다. 예외적으로 2016시즌 한화는 반대로 봄에 부진하고 여름에 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이는 추위 때문에 독감 환자가 속출했던 일본 고치현 스프링캠프의 영향으로 5월까진 선수들의 몸상태가 엉망이었기에 그렇다. 그렇다보니 초반에 승수를 벌지 못하고, 오히려 6월쯤 되니 그제야 시즌을 치룰만한 컨디션이 돼서 오히려 성적이 상승한 것.

상식적으로 스프링캠프를 가는 이유는 따뜻한 곳에서 훈련을 해야 부상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야구계의 혁명가 브랜치 리키가 최초로 스프링캠프라는 개념을 착안할 때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데 2016년 김성근의 한화 이글스가 스프링캠프를 차린 고치현은 엄청난 추위로 선수들이 훈련을 거의 하지 못했고, 인플루엔자까지 유행하면서 선수들이 몸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사실 고치현은 90년대 초반까지는 일본과 한국의 많은 프로팀 1군이 스프링캠프를 차리던 인기 훈련지였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1군 훈련지에서는 배제된 곳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온으로 같은 시기에 오키나와나 사이판 등의 동남아시아나 미국 애리조나 혹은 플로리다로 가면 훨씬 더 따듯하기 때문이다. 일본팀의 입장에서 보면 시차가 없으며, 여권도 필요없이 기차와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으며 언어나 음식 문제도 없다는 이유로 고치현을 선호했지만, 구단 재정이 풍족해진 80년대 말 부터는 비용 상관없이 더 좋은 훈련환경을 찾아서 날씨가 훨씬 따듯하고 시설이 잘 갖추어진 오키나와나 미국 등지로 훈련지를 옮기기 시작했다. 한국 프로팀들도 역시나 똑같은 이유로 21세기 들어서는 대부분 사이판, 오키나와, 미국 애리조나 혹은 플로리다에 1군 스프링캠프를 차리기 시작했다. 아예 여러팀들이 단체로 한곳으로 훈련지를 정해서 자체적인 연습리그를 여는 경우도 생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치현이 수많은 훈련장들이 겨울에 텅텅 빈 것은 아니다. 오키나와나 미국의 최신식 시설은 안되지만, 그래도 과거 일본 1군이 사용하던 그럭저럭 쓸만한 훈련장들이 많이 있고, 그래도 미국이나 동남아보다 싸며, 기온이 낮지만 그래도 연습할만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예산이 제한적인 한일 양국 프로팀 2군이 고치현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에 재정이 빠듯한 독립구단, 대학야구팀들도 가세했다. 선수들도 빠찡코 칠 수 있어서 일본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서 21세기에도 꿋꿋하게 고치현에 1군 스프링캠프를 차리는 감독이 바로 김성근이었다. 이유는 SK 와이번스가 고치현에서 훈련하고 나서 우승했기에 '고치현에는 우승의 기운이 서려있다'는 미신 때문. 추측이 아니라 김성근 본인이 직접 언론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물론 일본 출신인 김성근 입장에선 말이 잘 통하고 익숙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사실 김성근 입장에선 억울 할 수도 있는게 2016년 고치현 스프링캠프가 망가진 가장 큰 원인은 이상기후로 그 해엔 10년만의 폭설과 한파로 오키나와에도 눈이 내렸다. 자세한건 2016년 한파 및 폭설 사태항목 참조. 그리고 일본에서 인플루엔자는 단순히 추위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서 아폴로눈병 유행하듯 그냥 겨울 때 되면 감기처럼 도는 계절성 유행병이라, 인플루엔자는 때 되면 유행하니 예방주사를 맞거나 알아서 조심했어야 하는 수밖에 없다.

시즌이 끝나면 이번엔 마무리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팀들은 1군 주전들은 휴식을 주고,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한 1.5군이나 2군 백업급 선수들 그리고 입단예정인 신인선수들의 기량을 확인하는 목적으로 마무리캠프를 운영한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1군 주전들까지도 전부 마무리캠프에 데려가서 또 지옥훈련을 한다. 비슷한 경우는 KIA 타이거즈의 시절의 선동렬 감독. 주전까지 포함된 대규모 마무리캠프와 장기간의 스프링캠프의 결과로 부상자가 대규모로 쏟아졌다. 그야말로 일년내내 개처럼 굴리는 것이다.

기계도 중간중간 세워서 다시 기름칠하고, 정비를 해야 수명이 길어지는데 사람을 이렇게 일년내내 휴식없이 굴리다보니, 몸이 버티지를 못한다. 오버트레이닝의 함정에 빠져서 오히려 몸이 망가지고, 경기력이 퇴보한다. 몇년동안 김성근 체제에서 구른 선수들은 당장은 나타나지 않더라도 몸에 피로가 누적되있어서, 어느 순간 확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2016년 한화에서 선수단 부상 사실에 대해 은폐와 거짓 발표를 했음이 확인되면서, 실은 이미 김성근 시절에 망가져있었던 걸 김성근이 알려지지 않게 막고 있다가 후임감독때 드러난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2010년대에도 아마추어나 다름없던 1980년대 프로야구 초창기에 하던 투수 운용을 하고 있다. 당연히 선수들, 특히 특유의 벌떼야구를 감당해야 하는 투수진에는 엄청난 과부하가 걸린다. 여기에 전술한 대로 오대산 극기훈련으로 대표되는 비과학적이고 오히려 선수의 몸을 망치는 지옥훈련을 계속하다 보니 선수의 몸이 망가지는건 당연지사. 사실 저 오대산 극기훈련의 경우는 후에 김성근 감독도 저러한 훈련방식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했고, 결정적으로 저 시기에는 저런 훈련방식이 정설로 여겨졌던 때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실제로 가능하다 여겼던 것. 다음 시즌에 재충전을 위한 중요한 시기인 비시즌 기간까지 팀 훈련을 소집해 선수들을 굴렸다. 이것이 선수의 단기적 성장에는 도움을 줬을지 몰라도, 비시즌중 과도한 훈련으로 정규시즌을 망친 선수들의 사례 역시 적지 않다.

게다가 있는 자원을 최대한 쥐어짜는 유형이라 기존 자원이 계속 그 강행군을 견뎌야 한다. 이러니 처음에는 견디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팀 뎁스에는 구멍이 난다. 단적인 사례가 태평양 돌핀스 마지막 해에 기록한 성적. 부상자가 속출했다. 태평양 전후로 맡았던 OB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스는 혹사가 당연시되던 시대라서 묻혔다고 하지만, 36살의 김성길 선발 중간계투 중무리 패전처리로 188이닝을 돌린 것은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그뒤에 쌍방울 레이더스에서도 김현욱을 순수하게 불펜투수로만 쓰면서 157이닝을 던지게 했다.

투수 분업화가 정착된 후 맡은 LG와 SK에서도 혹사 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이동현은 김성근 감독 치하 2년 동안 엄청난 혹사를 겪은 이후 이순철이라는 금지어를 만나 장기 부상의 늪에 빠졌으며,[5] 신윤호 역시 2001년에 엄청난 혹사를 받고, 다시는 그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장문석도 2002년 100이닝을 넘게 던진 이후 KIA 타이거즈로 가서 은퇴할 때까지 부진하였다. SK 불펜진도 마찬가지 였는데 간단하게만 봐도, 그나마 이승호, 김광현, 채병용, 윤길현, 고효준, 전병두 등이 모두 혹사를 당해봤고 역대급 내구성의 정우람을 제외하면 모두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승호는 데뷔 초기부터 신생팀 특성상 얇은 선수층의 영향으로 인해 사실상 철저히 굴려진 결과 어깨 부상을 얻어 2005~2007년을 재활로 보냈고 2008년 중간계투로 복귀한 뒤부터 김성근 아래서 다시 무리했고 결국 FA가 되어 팀을 떠난 2012년부터 몰락해 2016년 은퇴할 때까지 살아나지 못했다. 김광현은 2010년까지 4일 로테이션을 소화할 정도로 이닝을 많이 소화하고 무리한 결과 2011년 부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47구 벌투[6]를 한 뒤 2년간 어깨 부상에 시달리며 재활을 하다가 2013년부터 다시 선발진에 합류해 팀의 에이스로 부활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부상 이전이었던 2008~2010년의 모습에 비하면 조금 주춤하고 있는 편이다. 윤길현은 2009 시즌 후 상무에 입대했으나 토미 존 수술을 받고 아예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 재활을 이행했을 정도였다. 채병용은 선발 요원이었으나 2009년 팔꿈치에 복합 부상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정규시즌부터 그해 포스트시즌까지 철저히 굴려졌고 수술을 받은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으나 제대 후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다가 2016년 어느 정도 부활한 모습을 보였고 고효준은 롤코를 좀 타는 편이었으나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스윙맨으로 굴려진 결과 팔꿈치 부상을 얻고 공익 입대한 뒤 제대 후에는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트레이드되었다. 전병두는 특유의 투구폼으로 인해 부상 위험이 큰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철저히 굴려졌고 어깨 회전근 수술을 받은 뒤 무려 5년이라는 긴 시간을 재활에 매진하다가 2016년 9월 33세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이러한 혹사는 2015 시즌 한화에서 정점을 찍는다. 살려조 항목 참조.

3.3. 프런트와의 불화

김성근 감독은 여러 팀을 거치는 동안 구단 프런트와 사사건건 불화가 많았으며 프로 감독 시절을 통틀어 단 한번도 계약기간을 제대로 마친 적이 없이 경질 당했다. 이렇게 된 것은, 김성근은 프런트를 무시하고 선수단 운영에서 감독의 절대적인 권한을 추구하는 인물이기 때문. 단순히 팀운영에 힘을 보태달라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가 다 하겠다는 뜻이다. 김성근은 FA 영입과 선수 트레이드, 신인 지명, 선수단 복지, 군 입대 문제, 훈련 방식과 일정까지 다른 구단에선 프런트가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들까지 자기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프런트가 사소한 의견을 제시하기만 해도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야구모르는 프런트가 현장에 간섭한다고 사방에 언플을 하고 다닌다. 김성근이 구단에 요구하는 건 오직 자신에게 비난이 돌아오지 않도록 하는 언론플레이, 즉 방패막이 역할 뿐이다. 즉 김성근이 원하는 감독의 역할은 사실상 감독 겸 사장이며, 프런트는 그저 돈이나 바치는 호구로 보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방식은 결과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여러 부작용을 불러온다. 야구단은 엄연히 법인이고 회사이기 때문.

일단 예산이 문제가 된다. 프런트에서 정해준 금액을 쓰는게 아니라 자기 마음껏 돈을 쓰고 모자라면 더 바치라는 식이다. 그나마 프로 구단은 어떻게 감당할 수라도 있지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는 김성근과 그가 데려온 코칭 스태프의 고액 연봉에 해외 전지훈련 등 과도한 재정 지출이 구단 운영에 심각한 부담이 되었고, 결국 3년만에 허민(기업인) 구단주가 포기하고 팀을 해체해버렸다. 고양 원더스를 다룬 파울볼의 가장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일방적인 팀 해체에 선수들이 망연자실하면서 울먹이는데, 김성근은 구단에서 제공한 전용차 벤츠를 타고 유유히 떠난다. 다만 고양 원더스는 애초에 허민이 자신의 이미지포장 겸 야구계진출용으로 만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 10구단 창단이 현실화되고 허민이 기업경영 과정에서의 비리가 드러나는듯 이미지가 실추되자 더이상 필요가 없는 고양 원더스를 과감히 버렸다는 해석.

고로 축구계의 아르센 벵거처럼 팀의 재정까지 고려해서 움직이는 인물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 김성근이 감독을 맡았던 모든 팀들은 언제나 페이롤(연봉총액)이 상위권이었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항상 설움을 받았지만, 김성근 감독의 지옥훈련을 통해서 여타 재벌구단을 무너뜨렸다'[7]식으로 미화되고 있는 쌍방울 레이더스도 실제로는 KBO구단중에서 선수단 연봉총액이 1위였다. 그러니 망했다. 그 돈많다는 삼성보다도 더 많은 돈을 쓴게 김성근 체제의 쌍방울 레이더스였던 것이다. SK 와이번스 시절에도 다른 팀에 비해서 훨씬 많이 쓰는 훈련비용 및 코칭스탭 인건비[8] 때문에 프런트와 불화가 심각했다. 김성근이 감독이 취임한 이후 한화 이글스도 페이롤이 대단히 높은 팀중 하나이며 이미 2015년에 지정된 예산을 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2015 시즌 중반에 한화 이글스 갤러리 엠팍에 자칭 '한화 2군 선수'라는 인물이 "지금 한화 2군은 선수가 없어서 경기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육성시스템이 무너졌으며, 예산도 오래전에 초과해서 운영비도 없는 막장이다"라는 요지의 글을 올린적이 있다. 글의 신빙성에 대해서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2016 시즌 이후 미디어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한화의 내부 상황을 볼때 팩트에 가깝다고 여겨지고 있다.

거기에 외국인 선수가 조금만 개성이 강하다 싶으면 자기 말을 안듣는다면서 연봉이 얼마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나던 바로 내친다. 2015시즌에도 후반기에 에스밀 로저스를 글러브를 던지며 화풀이를 해 팀 케미를 해쳤다는 (...) 되지도 않는 이유로 2군에 내려버렸고 딱 2게임차이로 6위에 머물렀다. 만일 로저스에 징벌성 2군행 통보를 하지 않고 계속 선발 로테이션대로 돌렸다면 5강 진출도 가능했을 것이다. 4일 로테이션에 매 경기 120개에 육박하는 공을 던졌던지라 어디까지나 야만없이지만...

선수를 자신의 장기말로 보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들한테도 자신에게 절대 충성하기를 요구하는데, 철저하게 계약관계로 움직이는 서양권 선수들 입장에선 이뭐병. 당연히 트러블이 날 수 밖에 없다. 당장 2016 시즌만 해도 허프와 함께 영입 1순위 용병이던 에릭 서캠프가 몸관리를 위해 60구만 던지겠다고 선언했는데 언플이 통할거라 생각했는지 사방팔방에 이 발언과 함께 장점을 찾을 수 없다느니 외인들이 합쳐서 30승[9]만 해도 5강이 가능하다느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한탄을 쏟아냈다. 당연히 팬/안티 가리지 않고 야구 커뮤니티는 대폭발. 참고로 5위로 턱걸이 가을야구에 성공한 기아조차 풀타임 선발 외인 지크와 헥터가 합쳐서 25승을 찍은 게 다다. (...) 외국인으로 일본 선수들을 선호하는 것도 의사소통 문제도 있지만, 일본 선수들은 상명하복식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나중에는 일본인들이 비밀유지에 철저해서 선호한다는 썰이 돌기도 했다.

이런 막장짓거리의 뒷감당을 다 해야 하는 프런트 입장에선 굉장히 피곤한 인물이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노장 위주의 선수단 구성과 특유의 쥐어짜는 스타일 탓에 성적은 부임 첫 해가 최고이며 그 뒤로는 계속 하락한다.[10] 물론 비슷한 타입인 김인식 감독과 비교했을 때 좀 더 오래 버텨내는 노하우가 있는 인물이긴 하다. 그 노하우란 게 선수와 팀의 미래는 내 알바 아니라는 극한의 투수 혹사 플래툰을 통한 반쪽짜리 선수 만들기라는 게 함정이지만. 헌데 언플을 통해 그 모든 공로를 자기가 가져가고 맘에 안 들면 지원해준 프런트 비난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 인물이다. 프런트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아닌 다음에야 장기집권이 가능할 리가 없다.

가장 큰 비극은 정작 김성근 본인은 항상 팀이 무너지기 직전에 짤린다는 것이다. 김성근은 언제나 부임 초기부터 프런트 및 고참선수들과 불화를 겪는데, 첫 해에는 성적이 좋게 나오니 모기업 고위층들이 감싸주면서 무마가 된다. 하지만 신인홀대와 혹사 후유증으로 성적이 내려가기 시작하면 이런 불협화음들이 외부로 노출이 되고, 높으신 분들 보기에 우승도 못하면서 이미지만 더러워지니 버리는 것이다. 그게 보통 부임 2-3년차. 그리고 가혹한 투수 혹사의 후유증과 주축급 선수들의 줄부상 그동안 미뤄둔 20대 선수들의 군 입대로 선수단이 휑해지면서 팀이 무너진다. 성적이 추락하니 당연히 욕은 후임 감독과 프런트가 다먹고, 김성근은 "봐라, 야구도 모르는 프런트가 현장 간섭하고 나 짜르더니 팀 망가지지 않냐. 조금만 시간이 더했으면 우승도 가능했는데, 아쉽다."식으로 사방팔방 언플을 하고 다닌다.

3년 넘게 버틴 매우 드문 사례가 SK와이번스인데, 이것은 우승을 3번, 준우승을 1번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5년 차에 혹사후유증과 성적하락이 현실화될 즈음 재계약을 안 하겠다는 폭탄 발언을 하자마자 4년동안 3번 우승한 감독을 바로 내친 것이다. 당시엔 신영철 사장, 민경삼 단장 이하 SK와이번스 프런트들이 천하의 개쌍놈 수준으로 욕을 먹었지만, 현재는 "그때 짤랐기에 SK가 버틸 수 있었다"로 재평가되고 있다. 물론 4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번의 우승이라는 업적을 폄하당해선 안되겠으나 김성근 치하에서 5년 가까이 우승권을 유지할 정도로 우수한 선수를 육성해 쌓아놓은 SK프런트와 조범현 감독 이하 코치들도 인정 받을 건 받아야 한다.

좋은 예가 삼성의 비밀번호 556. 분명히 원인은 조급한 리빌딩과 맹목적인 양아들 기용으로 선수단 장악에 실패하고 팀을 와해시킨 김성근이다. 당시 상황은 김성근 구설수 삼성 라이온즈 시절 항목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김성근은 그전에 잘렸고, 이미 만신창이가 된 선수단을 데리고 비밀번호를 쓴건 후임인 우용득 백인천이었다. 밑밥은 다 깔지만 터지기 전에 잘리니 커리어를 겉으로만 보면 실패가 거의 없는 명감독으로 보인다. 물론 이 해고까지 본인이 다 계획했을리는 없다. 그냥 아무리 좋은 프런트라도 4년 이상 못버티게 만드는 특유의 독재자 기질이 문제인거다.

삼성 이전에 부임했던 태평양 돌핀스에서도 부임 첫해에는 정명원, 최창호, 박정현 신인 투수 3인방을 쥐어짜서 3등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2년 차엔 투수 혹사 후유증으로 5등으로 내려앉았고,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시즌 직후에 해임되었다. 참고로 당시는 7개구단 체제였다. 그리고 김성근 후임으로 차례로 들어선 박영길, 정동진 감독 시절에는 멀쩡한 투수가 없어서 시즌 운영이 불가능한 수준. 박영길은 성적 못낸다고 1년만에 짤리고, 그 뒤를 이은 정동진 감독은 그래도 모기업에서 상황을 이해하고 임기를 보장해준 덕분에 투수들 재활시키느라[11] 2년을 날린 후 3년차에 인천연고팀 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까지 올리는데 성공한다.

야구계에서 '김성근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 남지 않는다.'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4. 관련 문서


[1] 신인 배제/노장 우대. 1점 번트 야구가 이런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2] 단 이쪽은 투수 혹사만을 비교해보면 김성근보다 낫다고 보기도 힘들고,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김성근보다도 악랄하다. 까는 별명으로도 세이콘 드립에서 따온 '세이'이 있으며, 아예 우승 못 한 김성근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 이에 대한 설명은 김경문/감독 스타일 항목으로. [3] 다만 두산에서의 타자 화수분의 경우 두산 2군 시스템의 덕을 상당히 많이 본 결과물이기도 하다. 물론 2군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것과 1군 감독이 2군 유망주를 과감하게 올려쓰는 것은 명백히 다른 문제다. 김성근 감독은 저렇게 잘 만들어놔도 2군 유망주를 안 쓰거나 트레이드로 내보낸다는 게 문제. [4] 뛰어난 기량의 중고참 선수들을 내치고 대체 전력 육성에 완벽히 실패+ 기량이 하락/재활을 하게 되는 선수들이 나오는 원인 제공, 그리고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결과적으로 남 좋은 일만 시켜준 트레이드는 덤. [5] 그러나 이동현의 경우 은퇴 기자회견에서 많은 팬들은 2002년 당시 너무 많이 던져서 수술을 하게 됐다고 하는데, 김성근 감독님이 나를 그만큼 기용해주셔셔 성공할 수 있었다며 김성근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기기도 했다. '은퇴' 이동현, "김성근 감독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6] 놀랍게도 이 당시에는 김성근의 입지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이런 벌투를 했음에도 옹호론이 대다수였다. 구글에 '김광현 147구'를 검색하고 2011년도 글들을 보면 정말 소름돋는 논리의 쉴드글들이 나온다. [7] 김성근 본인부터 이런 식으로 십수년째 언플을 하고 있다. 이런 언플에 속아넘어가면서 노리타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8] 특히 많은 숫자의 일본인 코치들. [9] 2016년에 이를 실현시킨 외국인 투수 듀오는 통합우승을 차지한 두산의 더스틴 니퍼트- 마이클 보우덴(22승+18승)이 유일하다. [10] 유일한 예외가 07년보다 고승률이었던 08년의 SK. [11] 부임 첫해에는 투수조의 절반이 재활군이었다. 참고로 정동진 감독은 국내 야구계에서 재활군을 설치해서 부상 선수들의 재활을 체계적으로 관리한 최초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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