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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진(1887)

김두진(독립운동가)에서 넘어옴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예안 김씨[1]
출생 1887년 10월 21일
경상도 예안현 읍내면 중천리
(現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천전리 중천마을 428번지)
사망 1944년 1월 25일 (향년 56세)
묘소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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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3.1 운동 당시 안동군 예안면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2. 생애

1887년 10월 21일 경상도 예안현 읍내면 중천리(現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천전리 중천마을 428번지)에서 아버지 김석규(金錫奎, 1858 ~ 1896. 12. 23)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2] 이후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나자, 안동군에서도 3월 13일부터 만세시위가 열리기 시작했다. 특히 예안면에서는 3월 17일 1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는데, 이에 김두진은 12촌 지간의 족형(族兄) 김형진과 참여해 예안면 경찰서 부근에서 수백명의 군중을 모아 구금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한 일본 경찰들에 맞서 돌과 기와를 던지며 주재소를 공격하고 만세를 불렀다.

이후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고, 이에 공소를 신청해 5월 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이감 판결을 받아 대구감옥에 이감되었다. 그러나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 형사제1부에서 위와 같은 혐의에 대해 공소가 기각되어 결국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44년 1월 25일 별세했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1] 천전파(川前派) 26세 진(鎭) 항렬. [2] 아버지 김석규에게는 첫째 부인 의성 김씨 김노수(金魯銖)의 딸과 퇴계 이황의 후손인 둘째 부인 진성 이씨(? ~ ?. 1. 12)가 있었는데, 김두진은 어느 부인 소생인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