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5 10:04:43

글렌 존슨

글렌 존슨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PFA_UK_logo.png
}}} ||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파일:dl.beatsnoop.com-3000-3uTaqEY1AQ.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글렌 존슨
Glen Johnson
본명 글렌 매클라우드 쿠퍼 존슨
Glen McLeod Cooper Johnson
출생 1984년 8월 23일 ([age(1984-08-23)]세)
잉글랜드 런던 그리니치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 체중 85kg
직업 축구 선수 ( 라이트백 / 은퇴)
주발 오른발
선수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유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00~2002)
프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02~2003)
밀월 FC (2002 / 임대)
첼시 FC (2003~2007)
포츠머스 FC (2006~2007 / 임대)
포츠머스 FC (2007~2009)
리버풀 FC (2009~2015)
스토크 시티 FC (2015~2018)
국가대표 54경기 1골 ( 잉글랜드 / 2003~2014)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
5. 여담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 국적의 전 축구선수로, 주 포지션은 풀백이었다.

2. 클럽 경력

2000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2002년 1군팀으로 승격되었지만 밀월 FC로 임대되어 8경기에 출장하였다. 다시 소속팀에 복귀하여 15경기에 출장하였다. 2003년에 첼시 FC로 이적하였고, 8월 18일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하였다. 데뷔 초에는 나름 잘 나가는 신성 대우를 받았으나 파울루 페레이라에 주전자리를 빼앗기며 팀에서도 자리를 잃어 갔다. 2006년 8월 5일, 포츠머스 FC로 임대 이적이 발표되었다. 또한 2007년 8월 31일 같은 팀의 완전 이적을 결정하였다. 2007년 1월 17일, 밀월 소속 벤 메이와 함께 변기와 수도꼭지를 훔치다가 체포되었다. 각각 80 파운드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2.1. 리버풀 FC

2009년 6월 26일, 포츠머스 FC에서 리버풀 FC로 이적하였다. 전 시즌까지 주전 라이트백이던 알바로 아르벨로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라이트백이 필요한 리버풀이 존슨을 영입한 것이다. 이적료는 약 1,750만 파운드이다.[1] 2009-10 시즌 25경기 3골을 기록하며 주전자리를 차지하였다. 사실 이 시즌에 리버풀에는 존슨의 경쟁자가 유망주인 마틴 켈리[2]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스쿼드가 얇았다.

2010-11 시즌 28경기 2골을 기록하였다. 이 시즌에는 로이 호지슨의 뻘짓으로[3] 제대로 된 레프트백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케니 달글리시 대행 체제에서는 레프트백으로 뛰기도 했다. 존슨의 자리는 마틴 켈리로 메꾸면서 호지슨 시절보다는 어느 정도 수비를 안정화시켰다.

2011-12 시즌 23경기 1골을 기록하였다. 이 시즌에는 호세 엔리케가 리버풀에 오고, 존 플라나간이 백업으로 있었기 때문에 존슨이 레프트백 알바를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1골은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기록한 첼시전 결승골인데 찰리 아담의 롱패스를 공격지역에서 받아 멋진 퍼스트터치와 드리블 돌파로 애슐리 콜과 말루다를 따돌리고 득점했다.

2012-13 시즌은 리그에서 36경기 1골을 기록하며 수비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단계까지 성장하였다. 특히 리버풀이 호세 엔리케의 부상과 피파질 백업 레프트백의 부재 등으로 고생할 때 글렌 존슨이 또다시 왼쪽에서도 활약하는등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사실상 2000년대 중반 리버풀의 라이트백을 책임진 스티브 피넌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13-14 시즌 초반에는 공격도 수비도 안 되는 잉여로 전락했다. 부상도 잦아서 꾸준히 쓰진 못했다. 왼쪽에는 알리 시소코가 더 최악의 폼을 보이고 있는데도 선발로 출전하니 양 풀백들의 부진을 보는 리버풀 팬들의 기분은 좋지 못했다.[4] 다행히도 존 플라나간이 성장하여 왼쪽 주전 풀백을 차지하고 존슨의 폼도 초반보다는 올라왔다.

14-15 시즌에선 다시 리버풀 수비수 중 제일 잘한다. 그럼에도 잦은 부상과 컨디션 저하로 팀 주축으로서의 역할에서 제외됐고, 고작 15회의 선발에 그쳤다. 계약이 얼마 남지 않은 글렌 존슨은 리버풀에 남고 싶었고 재계약을 희망했지만 리버풀은 결국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글렌 존슨은 자유계약으로 방출당했다.

방출되는 순간 웨스트 햄 베식타쉬 등과 링크가 뜨고있다. 허나 실제로 협상에 다다른 클럽은 오랫동안 오른쪽 풀백 문제가 있던 스토크였고, 곧이어 오피셜이 떴다.

그리고 리버풀엔 나다니엘 클라인이 들어와서 맹활약을 선보인다.

2.2. 스토크 시티 FC

2.2.1. 2015-16 시즌

2015년 7월 12일, 스토크 시티로 이적하였다, 등번호는 리버풀 시절에는 2번이었으나 8번으로 바꾸었다. 측면 수비수로서는 생소한 번호라 이런 기사가 떳다.

15-16 시즌 1R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문전에서의 찬스를 날려먹으면서 친정팀과의 의리를 입증하였다.

그 뒤로는 상당히 좋은 활약을 펼쳤다. 8R에는 EPL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기사[5]

2.2.2. 2016-17 시즌

11월 11일 데일리 메일에서 수아레스 알레이스 비달을 대신할 풀백으로 존슨을 원하고 있다는 기사가 떳다. 어이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리그 종료 후 계약 만료자 명단에 뽑혔지만 4월 계약 연장하였고, 총 25경기에 출전했다.

2.2.3. 2017-18 시즌

시즌 초반 휴즈 감독의 3백 집착과 폼 저하로 선발로는 영 보기 힘들다. 허나 첼시를 홈에서 맞이한 경기에서 센터백의 줄부상으로 오랜만에 선발로 출전했다, 하지만 휴즈 감독이 굳이 스리백 경험이 없는 존슨을 스리백으로 갈아 넣었고 팀은 어이없는 교체[6]와 함께 4점을 내주고 패배했다.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되어 FA 신분이 되었으며, 19년 1월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은퇴했음을 밝혔다.

3. 국가대표 경력

2003년 11월 18일 덴마크 전에서 A 대표로 데뷔하였다. 2010년 5월 24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유럽) 몰타와 슬로베니아와의 2연전을 함께할 잉글랜드 국가대표 스쿼드에 클라인을 대신해 뽑혔으나, 부상으로 낙마했다. 그 자리는 마이클 킨으로 대체되었는데, 리그 출장에는 지장이 없으나 오랜만에 대표팀으로 뛰나? 했던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겼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여담

  • 존슨이라는 성 때문에 국내 축구팬덤에서는 글렌 잦이로 통한다. 거기에 풀네임의 미들네임인 쿠퍼까지 같이 보면 이러한 별명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 과거 경기 도중에 동료에게 발리 패스를 날렸는데 실수로 코너 플래그를 맞추는 신기를 보여준적이 있다.
파일:글렌 존슨 깃발타카.gif
* 첼시 FC 시절인 2005년 2월 20일 FA컵 5라운드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서 골키퍼를 본 적이 있다. 교체인원이 없는 상황에서 카를로 쿠디치니가 퇴장당해 골키퍼를 봤는데 로랑 로베르의 프리킥을 막아냈다.


[1] 그러나 2000년대 후반은 포츠머스가 심각한 재정난을 겪던 시기여서 1년 전에 피터 크라우치를 리버풀에서 데려올때 할부로 지급하기로 했던 이적료가 남아있었는데 그 금액만큼을 퉁치다보니 포츠머스는 1,750만 파운드의 반 정도만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포츠머스는 결국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승점 삭감 등의 수모를 겪으며 강등당했다. [2] 그나마도 켈리의 본 포지션은 센터백이었다. [3] 부상이 많다고는 하나 파비우 아우렐리우를 거의 써 먹지 않았고 다니엘 아게르를 왼쪽으로 배치하는 기행을 보였으며 전에 소속된 풀럼에서 데려온 폴 콘체스키는 공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리버풀 수비를 크게 약화시켰다. [4] 본래 주전 풀백인 호세 엔리케는 부상으로 한 시즌을 날려버렸다. [5] 오버래핑 센스가 대단하다. 리버풀 당시 문제가 되던 수비도 상당히 개선되었고, 그럼에도 시야가 좁지 않아 속 시원한 스루 패스가 종종 터지기도, 팀 내 A B S라인의 키패스 순위 뒤를 따르는 중. [6] 유일한 전문 중앙 수비수이던 인디 아펠라이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