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2 00:07:01

근대화

1. 개요2. 관련 문서

1. 개요

/ Modernization

근대화의 정의는 국가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1]와 사회적으로는 근대적 관료제[2] 그리고 실증주의적 과학시대로의 진입을 충족해야만 근대화되었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나라가 근대화되었다고 할만한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기에는 어려움으로 특히 비서구권에서 각국의 근대시대 진입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3] 왜냐하면 근대국가로 인정받은 나라들 중에서도 근대국가적 요소가 아니라고 볼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러시아 제국은 서구국가들에게는 근대국가로 취급받았지만 근대화 이후에도 농노제가 오랜시간 유지되었으며 소총을 쓰는 근대군대 안에서 중세적 기사단이란 개념이 공존했었다. 독일 제국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 후 사라지기 전까지 국가 내에 제후국이 존재해서 중앙집권 국가인지 의심되었고, 미국은 윌슨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까지 다른 나라에서는 부정부패 혹은 전근대적 행정제도라고 믿었던 엽관주의가 관료제의 기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화'라는 개념을 단일한 시각으로 보는 것은 좋지 않다. 근대화란 봉건제 국가나 전통적인 정부를 보유한 기존 구식 국가 근대국가를 근대국가로 만드는 것이므로 다양한 기준에서 따로 재가면서 객관적으로 판단해야한다. 예를 들어서 같은 서구 국가라도 영국 프랑스같은 근대화 선발주자들과 이탈리아, 독일 등의 후발주자들은 다른 관점에서 봐야하고, 서구 내에서 제국주의에 들어간 열강국가들과 유럽의 백인국가들임에도 제국주의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는 또 다른 기준에서 봐야만한다.[4] 그리고 서구권 국가에서 보는 근대화는 보통 과학기술적 요건과 산업화를 중점[5]으로 보지만 비서구권 국가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제도의 변경까지 수반해야 근대화로 치는 경우가 많다. 같은 비서구권 국가라도 근대국가의 시점을 동일선상에 넣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중국의 경우 신해혁명부터 근대시대로 중국공산당 신중국 성립을 현대시대로 본다. 일본의 경우에는 메이지 유신을 근대시대의 시작으로 보고 일본제국 패망부터 현대시대로 본다. 한국의 경우 '근세'라는 차별적인 개념을 추가[6]해서 고려시대 중세 조선시대 근세 대한제국시기부터를 근대로 광복 이후를 현대로 보는 관점이 주류다.[7]

근대화와 근대국가라는 관점을 따로 봐야하기도 하는데, 근대화를 시도한다고 해서 반드시 근대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오랜시간 유럽과 경쟁한 오스만제국은 근대화를 위하여 예니체리를 숙청하고 근대 관료제를 도입하려는 1차 근대화 시도, 이후에 탄지마트를 시행한 2차 근대화시도가 있었으나 근대화에 실패했다. 결국 튀르키예가 근대화되는 것은 케말 오스만제국을 무너뜨린 다음에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우고 케말주의를 밀어붙인 후에야 근대국가로 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했으나 서구에서 근대국가 취급을 받은 것은 대한제국 병탄 전후에 이르러서다. 일본이 근대국가 취급을 받기 시작한 것은 러일전쟁 이후므로 당연하다. 또한 근대화가 곧 국가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순진한 생각이다. 예를 들어서 이집트의 경우 서방과 교류가 오래되어 일본보다도 근대화가 빨랐지만 그 근대화에도 제국주의 세력을 견디지 못해서 전근대국가처럼 취급당한 이집트나 프랑스의 지원으로 근대화를 진행하던 베트남이 근대화 과정에서 경제를 너무 침탈당해서 근대화를 완수하지 못하고 식민지화되어버린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다.

사회 구성원들에 의한 자발적이고 점진적인 사회변동을 통해 근대 사회로 이행되는 '아래로부터의 근대화'와 지배계층의 주도하에 강제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이식되는 ' 위로부터의 근대화'가 있다.

2. 관련 문서


[1] 중상주의에서 한단계 더 올라가야만 한다. 적어도 에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국가단위에서 이해하고 운용할만한 수준은 되어야만 자본주의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2] 동양의 유교국가들은 이미 서구가 중세시대일 때 이미 중앙집권제와 관료제를 완성한 바가 있다. 근대 관료제의 기본요건인 공정한 시험에 의한 임용이라는 조건은 충족했지만 선출기준이 행정능력이 아니라 철학시험(유교경전시험)이었기에 근대 관료제로 이어지지 못했다. 대부분의 관료를 과거시험으로 뽑았기 때문에 실무능력이 많이 떨어졌다. 따라서 유교국가들의 관료제 임용방식을 가산 관료제라고 부르며 근대 관료제와 따로 구분한다. [3] 그래서 한국의 근대시대를 갑신정변으로 보는 측부터 광무개혁을 근대시대로 보는 측, 늦게는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계발을 근대화 과정으로 이해해서 대한제국 성립 이후를 근세로 보면서 4.19 이후를 근대로 나눠보는 관점도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구한말부터 근대시대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 [4] 초기 자본주의의 성립의 기본요건은 식민지 개척 혹은 과학기술로 인한 식량충족 인한 인구증가에 의한 시장확보와 그 시장에서 형성되는 자본들이 존재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기술강국에 복지국가에 공업국가라고 보지만 세계 2차대전 때까지만 해도 북유럽은 그냥 자원이나 내다파는 1차산업 국가들이었다. [5]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제국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근대국가로 본다. [6] 그렇다고 중국과 일본에 근세라는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가 서로 큰 차이가 없다보니 애매하며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전까지 막부 봉건체제가 유지되어서 근세라고 할만한 시대가 없다. [7] 한국은 시대구분을 하기가 매우 쉬운데, 왕조가 몇 백년씩 유지되며 왕조가 바뀔 때마다 체제가 진일보해서 확실히 다른 시대로 구분하기 좋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신라는 골품제라는 카스트제도가 유지되던 국가였지만 신라의 다음국가인 고려는 중앙집권적 봉건제국가였고, 그 다음 국가인 조선은 군현제가 완성된 절대왕정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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