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8:59:45

곽명리

성명 곽명리(郭明理)
생몰 1878년 3월 28일 ~ 1946년 1월 1일
출생지 황해도 해주군 해주면 동영리
사망지 황해도 해주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곽명리는 1878년 3월 28일 호아해도 해주군 해주면 동영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원산감리교회 전도사로서 목회 활동을 수행하다가 1919년 2월 27일 정춘수로부터 서울로 가서 오화영에게 독립청원 계획에 대해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오화영으로부터 그동안 서울에서 추진된 만세운동 준비 상황과 계획을 듣고 독립선언서 300매를 받았다. 이후 서울을 떠난 그는 2월 28일 원산에 도착했고, 곽명리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정춘수는 밤중에 이진구(李鎭九) 등 14명을 진성여학교(進誠女學校)에 모아놓고 의논한 끝에, 다음날인 3월 1일에 만세시위를 결행하기로 하고 밤새워 태극기를 제작했다. 곽명리는 이 자리에서 독립선언서를 이하순(李可順)에게 줘서 각지에 배포하게 했다.

3월 1일, 이하순은 곽명리로부터 받은 독립선언서 중 50매를 함경남도 각 관청에 발송했고, 나머지 선언서와 새로 작성한 선언서 2,000매를 원산 광성학교 생도에게 줘서 군중에게 배포하게 했다. 이후 이들은 3월 1일 오후 2시경 원산부 원산리 시장에서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일로 체포된 곽명리는 5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해주 일대에서 목회 활동에 전념하다가 1946년 1월 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곽명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