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8:59:01

고희준

성명 고희준(高熙俊)
이명 고성봉(高成鳳)
생몰 1897년 12월 19일 ~ 1951년 1월 11일
출생지 충청북도 당진군 마암면 자개리
사망지 경기도 군포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고희준은 1897년 12월 19일 충청북도 당진군 마암면 자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일 오후 3시 광화문 앞에서 수백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에 참가했고, 이튿날에도 종로 보신각 부근에서 시위대열에 가담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서울 시내를 행진했다. 그리고 3월 8일에는 학생 임창준(林昌俊)으로부터 <독립선언서> 10매 및 상인들의 시위참여를 촉구하는 내용의 '시민대회'라는 인쇄문서 10매를 받아 이튿날 종로에서 행인 수십 명에게 배부했다. 이후 3월 23일 밤 종로에서 동대문 방면으로부터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행진하여 오는 수백 명의 군중과 만나자 즉시 이에 참가하여 수건을 흔들며 군중을 지휘하여 시위를 주도했다.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군포시로 이주해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1년 1월 1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고희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9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