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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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c5b356> 고구려 제18대 국왕 고국양왕 | 故國壤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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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양왕릉으로 추정되는 천추총 전경. | |||
출생 (음력) |
<colbgcolor=#fff,#1f2023> 355년 1월 전후[1] | ||
고구려 국내성 | |||
사망 (음력) |
391년 5월 (향년 30~40대) | ||
고구려 국내성 | |||
능묘 | 고국양(故國壤)[2] | ||
재위기간 (음력) |
고구려 제18대 국왕 | ||
384년 11월 ~ 391년 5월 (6년 5개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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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c5b356> 본관 | <colbgcolor=#fff,#1f2023> 횡성 고씨 | |
성씨 | 고(高) | ||
휘 | 이련(伊連) / 이속(伊速) / 어지지(於只支) | ||
부모 |
부왕
고국원왕 모후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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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형 고구부 | ||
왕후 | 고담덕의 모후 | ||
자녀 | 태자 고담덕 | ||
종교 | 불교 | ||
시호 | 고국양왕(故國壤王) | ||
국양왕(國壤王)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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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구려의 제18대 태왕.고국원왕의 차남이자 소수림왕의 동생이었으며, 광개토대왕의 부왕이다.
할아버지, 형, 아들, 손자가 한국사 교과서나 개론서에는 무조건 나오는 명군인지라 마치 동로마 제국의 요안니스 2세처럼 묻히는 감이 있고, 심지어 안 좋은 쪽으로라도 인지도가 있는 아버지보다도 묻히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형의 뒤를 이어 아들의 정복 사업을 위한 기반을 단단히 쌓은 군주였다.
2. 생애
故國壤王 諱伊連 【或云於只支】 小獸林王之弟也 小獸林王在位十四年薨 無嗣 弟伊連卽位
고국양왕(故國壤王)의 이름은 이련(伊連)【혹은 어지지(於只支)라고도 했다.】이고 소수림왕의 아우이다. 소수림왕이 재위 14년 만에 죽었는데 아들이 없었으므로 아우 이련이 즉위했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양왕조-
소수림왕 시절에는
부견의
전진이라는 거대 국가가
중국의 화북 지역을 확 휘어 잡고 있어서
요동 방향으로 진출을 할 수 없었지만, 마침 고국양왕이 즉위한
383년 ~
384년은 전진이
비수대전에서 대패해 순식간에 무너지고, 다시 화북 지역의 혼란이 시작되어 여러 나라로 나뉘어지던 시기였다. 그리고 고구려와 가까운 요동에는 전연의 후신인
후연이 세워지게 되었는데, 바로 고국원왕 시절 고구려의
수도까지 침공해서 고국양왕의 할아버지인 미천왕의 능을 도굴해 갔던 철천지 원수
모용선비족의
모용수가 다시 재건한 국가였다. 고구려로서는 후연이 자리잡기 이전에 고국양왕의 할아버지 미천왕과 아버지 고국원왕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이들을 처단할 필요가 있었다. 385년 6월 고국양왕은 후연을 습격해
요동군과
현도군 2군을 빼앗고 남녀 10,000명을
포로로 잡았다. 제6대
태조대왕이 처음으로 요동군을 공격한 이래 처음으로 요동 지역을 고구려가 획득한 것이었다. 그 후 옛
북부여의 유민이었던
여암(餘巖)이 385년 7월
요서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후연의 상황은 더욱 더 악화되어 갔다.고국양왕(故國壤王)의 이름은 이련(伊連)【혹은 어지지(於只支)라고도 했다.】이고 소수림왕의 아우이다. 소수림왕이 재위 14년 만에 죽었는데 아들이 없었으므로 아우 이련이 즉위했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양왕조-
그러나 후연을 건국한 세조 성무제 모용수의 아들 모용농이 30,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반격에 나서 385년 11월, 요서의 여암을 토벌한 후 고구려가 차지한 요동 땅도 도로 빼앗아갔다. 모용수는 386년 황제로 즉위하면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고, 고구려는 요동 진출을 뒤로 미뤄야 했다. 다만 이때의 요동 공략은 훗날 광개토대왕이 요동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있어서 전초전이 되었다고 보기도 하고, 요동 주민들을 끌고 오는 등 아예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
390년 백제의 진사왕이 보낸 진가모의 군대에게 도곤성을 빼앗겼다. 392년에는 불교를 권장하고, 종묘사직을 수리하는 등 형인 소수림왕이 실행했던 정책을 이어받아 유교와 불교를 장려했으며, 당시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태였던 신라로부터는 실성을 받아 인질로 붙들어 놓는 등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로 연결되는 신라 복속 외교를 위한 전초전을 마련했다.[3]
광개토태왕의 (능비의) 원년과 고국양왕의 (《삼국사기》 기사의) 말년이 겹치는 것은 승하한 후 즉위한 것이 아니라 생전에 양위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와 비슷한 사례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태조대왕 또한 동생 혹은 아들인 차대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으며, 신라 하대의 진성여왕도 죽기 전에 효공왕에게 물려주고 몇 달 뒤에 승하했다. 그리고 조선의 태종도 세종에게 양위했다.
실제로 선왕이 양위를 했을 경우, 그 선왕이 양위한 해당 년도까지를 그의 치세기간으로 보고, 유년칭원을 하는 것이 유교의 예법이었다. 《삼국사기》에서는 유월칭원법을 사용해 기사가 작성되었지만, 고국양왕이 양위를 했다고 가정했을 경우에 391년을 고국양왕의 치세로 보고, 유년칭원법을 사용했다고 가정하면, 《삼국사기》에서는 392년을 광개토태왕의 원년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설득력이 있는 논리이다.
이러한 사정을 모른 채, 김부식은 유월칭원법으로 인식하여 392년에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줄로 알았고, 그렇기 때문에 연호를 1년씩 밀려 썼다는 것이 골자다. 이 관점에서 접근하자면 분명히 능비의 기록과 《삼국사기》의 기사는 즉위년도에서 사망년도까지 계속 1년의 격절이 생기지만 재위기간을 22년으로 보는 데는 서로 부합하는 면이 있는걸 봐서는, 《삼국사기》의 일괄적인 오기 혹은 칭원법 차이에 기인한 오차가 아닌가 싶다.[4]
여담으로 아버지인 고국원왕은 300년대 출생으로 추정되는데 고국양왕은 35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되므로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매우 많이 난다. 10대 후반~20대 초반에 결혼해서 애를 두던 고대 기준으로 이만하면 손자도 아닌 증손자에 가까운 나이 차이다. 형인 소수림왕도 355년 1월에 태자가 되었기 때문에 고국원왕과 적게 잡아도 40 넘게 차이가 났을 것으로 보는데, 이유는 불명이나 고국원왕이 아들들을 매우 늦게 본 모양이다.
장수 유전자를 가진 고구려 왕가에서 형인 소수림왕, 아들 광개토대왕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오래 못산 것으로 추측되는 왕 중 하나다. 아버지인 고국원왕과 손자인 장수왕이 가문 특유의 장수를 누린 걸 고려하면 이들이 돌연변이었거나 아버지가 사고친 걸 수습하고 나라 재건하느라 너무 무리해서 빠르게 몸이 악화되었을 수도 있다. 사정이 비슷했던 그의 후손인 안장왕도 60대 정도로 산 걸로 추측된다는 걸 감안하면 돌연변이 가능성도 적지 않지만, 안장왕은 장수 유전자가 극에 달한 97세의 장수왕의 유전자 버프가 있어서 둘 다였을지도 모른다.
3. 《 삼국사기》 기록
삼국사기(三國史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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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 〈고국양왕 본기〉
一年冬十一月 고국양왕이 즉위하다
二年夏六月 요동군과 현도군을 점령하다
二年冬十一月 요동군과 현도군을 다시 후연에 빼앗기다
二年冬十二月 지진이 발생하다
三年春一月 담덕을 태자로 삼다
三年秋八月 백제를 공격하다
三年冬十月 겨울에 복숭아와 자두 꽃이 피고, 소가 말을 낳다
五年夏四月 큰 가뭄이 들다
五年秋八月 농작물이 풀무치 피해를 입다
六年 기근이 들어 창고를 열어 구제하다
六年秋九月 백제가 남쪽 변경 지역을 약탈하다
七年秋九月 백제가 고구려 도압성을 침략하다
八年 신라가 실성을 보내 인질로 삼았다
八年春三月 불교를 숭상하고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수리하다
八年夏五月 고국양왕이 승하하다
4. 대중매체에서
대외적으로 공격적인 확장을 개시했으며 국가 기반을 착실히 다져 광개토대왕이 정복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지만 대중매체 속에서의 취급은 좋지 않다. 말 그대로 아들인 광개토대왕에게 모든 포스를 잡아먹혔다. 시종일관 유약하거나 선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심지어 치세 중에 일궈낸 업적이 태자의 업적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때 광개토태왕은 고작 10대라는 사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떨어져서인데 이전 왕은 한국사를 공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수림왕이고 이후의 두 왕이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인지라 앞뒤로 업적이 밀리는 나머지 잊혀지기 일쑤다.- 만화 《 태왕북벌기》에서는 고구려의 대장군으로 듬직한 마초적 포스를 보여주었지만 큰 비중은 없다. 이 만화부터가 소수림왕의 뒤를 이어 고국양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광개토대왕의 작품이라고 대대적으로 소설을 쓰고 있으니 고국양왕이 왕으로서 한 일에 대해서는 무시당하고 있는 상황.
- 2007년작 MBC 드라마 〈 태왕사신기〉에서는 배우 독고영재가 연기했다. 권력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형 소수림왕의 뒤를 이어 즉위했기에 귀족들에게 휘둘리다가 화천회의 음모로 석실에서 자살하며 이 때 석실에 같이 있던 기하가 고국양왕을 살해한 것으로 본 호위무사 각단이 화천회의 포위망을 탈출해 담덕에게 알려주며 담덕과 기하의 관계가 꼬여버리는 단초가 되어버린다.
- 2010년작 KBS 드라마 〈 근초고왕〉에서는 배우 김주환이 연기했다. 평양성 전투에서 장성한 모습으로 등장해 고국원왕에게 왕족들을 데리고 수도 국내성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그렇게 극에서 퇴장.
- 2011년작 KBS 드라마 〈 광개토태왕〉에서는 배우 송용태[5]가 연기했다. 초반에는 좋았는데 개연수와 대신들의 내란과 담덕세력들이 자주 모여 하는 반목에 점점 시달리며 아들 담망을 먼저 잃고 담주는 모용보에게 억지로 시집을 가고 개연수의 반란와중에 아내를 잃은 이후 겨우 구출된 후 아들 담덕( 광개토대왕)에게 왕위를 물려 주면서 이후 허망하게 지병으로 사망한 모습을 보였으니 드라마를 다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 나의 고국양왕은 그렇지 않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모습.
5. 둘러보기
고구려 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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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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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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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대 영류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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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대 보장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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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 보덕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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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들인
광개토대왕이
374년생이며, 당시 고구려의 결혼 연령이 20대라고 가정하면 고국양왕은 35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형인 소수림왕이
355년 1월에 태자가 된 것을 감안하면 그 전후에 태어났을 수도 있다.
[2]
천추총 추정.
[3]
원래 이 대목에는 '이상 391년 조의 기록이 《
동사강목》에는 광개토태왕 원년의 것으로 되어 있다'는 말이 들어가 있었지만 사실 당연한 것이다. 고국양왕 말년이 바로 광개토태왕 원년이기 때문이다. 틀린 것은 고국양왕이 신라와 수교한 사건이 391년이 아니라
392년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고전종합DB 《동사강목》 제2하 임진년조 참조.
[4]
상세한 정보는
삼년상,
광개토대왕/생애,
광개토태왕,
광개토대왕릉비 문서 참조.
[5]
2000년작 KBS 드라마 〈
태조 왕건〉에서는
홍유 역, 2003년작 KBS 드라마 〈
무인시대〉에서는
이소응 역, 2006년작 KBS 드라마 〈
대조영〉에서는
당태종 역, 2010년작 KBS 드라마 〈
근초고왕〉에서는
모용황 역, 2014년작 KBS 드라마 〈
정도전〉에서는
배극렴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