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5 22:20:27

게르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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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서게르만 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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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인 (북게르만 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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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과 스테레오타입3. 역사4. 오해: 게르만 족 = 독일인?5. 게르만족 위주의 국가·지역6. 게르만족 관련 인물
6.1. 로마 제국 말기의 게르만족 인물들
7.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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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유럽어족 중에 게르만어파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총칭하며 오늘날의 스웨덴 인, 덴마크 인, 노르웨이 인, 아이슬란드 인, 잉글랜드 인, 네덜란드 인, 독일인 등에 해당되는 개념이다.

지금은 게르만 족들이 역사를 거치며 섞여서 다양한 민족으로 호칭되고 있기 때문에 현대에서 '게르만'이라고 하면 주로 4세기의 민족대이동 이전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게르마니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원시 게르만 민족을 뜻하게 되었다. 여기서의 부족은 원시 씨족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최근의 연구 성과는 같은 부족으로 묶인 집단도 굉장히 다원화된 구성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으며, 부족의 이름은 주로 정치적인 주도권을 지닌 소수 집단에 의해 정해지는 편이었다.

사용 언어와 인종을 기준으로 비교적 넓게 나뉜 민족 개념은 'nation'보다는 'ethnic group'에 가까우며, 통일 국가와 절대왕정 체제를 이룩한 프랑스와 달리 작은 소국가로 분열이 이어졌던 독일 게르만어파를 기준으로 'ethnic group' 개념으로서의 게르만 민족을 내세우며 민족 국가의 틀을 잡는 데 이용된 것이라 볼 수 있다.

2. 특징과 스테레오타입

흔히 게르만 족 하면 금발을 떠올리지만, 우리가 자주 접하는 스테레오타입의 금발이나 적발은 오히려 켈트 족이나 슬라브 족 쪽에 가깝고, 실제로 게르만 인종의 모색은 굉장히 다양하다. 라틴 인과의 혼혈이 일어난 독일어권에서 암갈색이 나타나는 것은 빼더라도 네덜란드에서는 주홍색, 스웨덴에서는 진한 황금색, 노르웨이에서는 은색, 덴마크에서는 잿빛 회색이나 검은색이 나타난다. 즉 애초에 게르만족이라는 것이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동일한 씨족 집단이 아니기에 모든 게르만 인이 금발이라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오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게르만 국가들의 경우 대체로 체격이 큰 편이다. 남성의 경우 네덜란드의 평균 신장은 183cm,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3국의 평균신장은 181cm. 체중도 상당해서 남성 평균 체중이 80kg이 넘으며. 여성도 평균 167~170cm에 평균 체중이 60kg 대 중후반 정도로 큼직하다. 하지만 잉글랜드 남성 평균신장은 177cm으로 라틴 족인 프랑스와 비슷하다.

영화 등으로 게르만족은 일반적으로 야만인들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도 농경을 중시하는 정주민족이긴 매한가지였다. 다만 기후적, 토양적 요인 탓에 목축과 사냥의 비중이 로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건 사실이다.[1]

개인차가 있긴 하나, 한국에서는 먼나라 이웃나라를 통해 대체로 질서나 원리 원칙을 크게 강조하는 등 합리적인 걸 좋아하고,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널리 퍼졌다. 결벽증이 심해서 항상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는 고정관념도 있다.[2]

종교적으로 대부분 개신교가 주류이며 오스트리아, 스위스, 벨기에, 독일 남부( 바이에른 등 非 프로이센) 등 특정 지역에선 가톨릭을 믿는다. 대표적 개신교 교파는 북유럽 일대의 루터교회 영국 성공회, 감리회가 있으며 이 중 영국계 개신교단들인 성공회 등은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해 아시아 오세아니아에도 진출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도 교세가 크다.

현대의 게르만 국가들을 생각하면 의외라 여겨질 수도 있는데 라틴계 민족들에 비해 게르만계 민족들은 전통적으로 부계 사회 성향이 강한 편이었고 이로 인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중세시대의 상속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살리카법이다. 다만 현대에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부계사회적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약해진 편이다. 출산율의 경우, 과거에는 남동유럽과 별 차이가 없었으나 1960년대 이후로는 피임약이 빠르게 보급되고[3] 기독교적 가치관이 많이 축소되면서 애들을 잘 안 낳는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만화에서도 이러한 1970년대의 시대상이 반영되었던 것이다.

2010년대에는 크레디트 스위스나 OECD의 조사 결과 때문에 받는 소득은 평등하지만 쌓아놓은 자산을 보면 빈부격차가 매우 심각한 나라들이란 인식도 생겨났다(...). 특히 독일과 스웨덴.

3. 역사

파일:Germanic_tribes_(750BC-1AD).png
기원전 750년부터 기원후 1년 사이 게르만족의 이동
독일 지역이 이들의 주 영역이었다는 인식이 있으나, 실제 게르만족은 전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내려왔다. 기원전 700년 이전 게르만족은 스칸디나비아 남안과 유틀란드 반도에서만 거주하고 있었다. 기원전 600년 ~ 300년 사이 게르만족은 대거 발트해를 남하하여 발트해 남안에 거주하게 되었고 이후 남하를 계속하여 켈트족을 몰아내고 중부유럽을 차지하여 정주하게 된다.

기원전 120년 유틀란드 반도에 대기근이 닥치자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게르만족의 일파인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튜튼족) 등이 살 곳을 찾아 남하하다가 로마와 맞닥뜨리게 된다. 로마는 이들이 이탈리아로 침공할 것을 우려하여 수차례 군대를 보냈으나 전멸하고 집정관이 연이어 전사하고 말았다. 이에 큰 위협을 느낀 로마는 기원전 105년 무려 12개 군단을 동원하는 총력전을 펼쳤으나 아라우시오 전투에서 8만명이 전사하는 로마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악의 참패를 당하게 된다. 이에 로마 시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고, 국가적 위기를 맞은 로마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지도하에 로마의 사회 체제를 뒤엎는 군제 개혁을 실시했다. 그런데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은 곧장 이탈리아로 진격하지 않고 이베리아 반도 갈리아를 유랑하면서 선주민들과 전투를 치르며 전력을 소모하다가 급기야는 분열되고 말았다. 한편 로마군은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으로 직업군인화되어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었다. 분열된 게르만족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이탈리아로 접근해 오자 로마군은 기원전 102년 마르세유 인근에서 테우토니족을 격퇴했고, 이어 기원전 101년 알프스산맥을 넘어오느라 약화된 킴브리 족을 밀라노 인근에서 섬멸했다. 킴브리 족과 테우토니 족은 전멸했고 여자들과 어린이는 자결하여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때 군제 개혁으로 로마군은 용병화되어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이행하는 중요한 한 원인이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킴브리 전쟁 참조.
파일:Germanic_dialects_ca._AD_1.png
기원후 1년경 게르만어의 분포
파랑: 북게르만어
빨강: 북해 게르만어
주황: 저지 프랑크어
노랑: 고지 독일어
초록: 동게르만어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만 족과의 경계를 라인 강에서 엘베 강으로 확장하기 위해 11개 군단을 투입하여 10여년에 걸친 대규모 게르마니아 정복 사업을 펼친다. 그러나 서기 9년에 아르미니우스가 이끄는 게르만 족 연합이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로마군을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면서 로마 제국은 게르마니아 정복을 포기하게 되고 로마와 게르만 족의 국경은 라인강 도나우 강으로 확정된다.

토이토부르크 전투 이후에도 게르만 족과 로마는 라인 강과 도나우 강에 이르는 넓은 지대를 국경으로 마주하면서 수시로 크고 작은 전투가 이어진다. 3세기에는 게르만 족의 한 부류인 고트 족, 프랑크 족, 알레마니 족이 로마를 공격하여 로마에게 타격을 주기도 했다. 동시에 게르만 족과 로마 사이에 조심스러운 교류가 진행되기 시작되어 게르만 족은 로마 사회로 조심스럽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게르만족의 범위는 굉장히 넓었고 그 속에 많은 부족들이 있었으므로 로마는 일부 게르만족과는 대립각을 세우는 한편 다른 일부 게르만족과는 동맹을 맺는 식의 정책을 쓰며 게르만족을 다루었다. 4세기에 들어설 무렵엔 게르만 족과 로마 사이에 상당한 교류가 진척되어 용병으로 당시 이미 상당히 와해되어버린 로마의 국방제도를 메워주기도 하고, 로마 농민들이 경작을 포기한 변경지대에 대신 이주하여 그 땅을 경작하고 세금을 내기도 했다.

4세기 후반, 동방에서 갑자기 훈족이 나타나자 난리가 나버렸다. 갑자기 동쪽에서 훈족이 나타나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연맹왕국 비스무리한 것까지 형성하면서 게르만족 중 가장 잘나가던 동고트족을 휙 밀어버리자 이들이 서진하면서 주변의 여타 게르만족들을 도미노 쓰러뜨리듯 밀어버렸고, 그 결과 일어난 것이 이른바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로 인해 로마의 영토와 유럽, 아프리카 각지에 게르만족들이 각자의 왕국을 세우게 된다. 대표적인 왕국들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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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년 말의 유럽

로마는 여러 모로 이들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그게 잘 먹히지 않은 게, 로마도 인력 부족이라서 이들이라도 받아들여 머릿수를 채워야 했던 안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족째로 이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전사를 군에 편입시켜 계속 인력을 충원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인적, 물적 자원은 동로마 지역이 풍부한데 그 지역은 절반 이상이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대치 전선에 그게 투입되어야 하는지라(...). 이때 로마 병사들이나 지휘관들이 게르만족이기 때문에 이들을 막지 않았다는 것은 전형적인 편견이라 하겠다. 실제로는 스틸리코 등의 게르만 혈통의 로마인들은 라틴계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해가며 분투하기도 했다.

사치와 퇴폐에 빠진 로마 제국이 게르만족 용병들을 쓰게 되어 차츰 군사력이 저하되어 기강이 빠져 결국 망했다는 것은, "기존의 해석"인 동시에 틀린 해석이다. "최근의 재평가"가 아니다. 수십 년 된 얘기가 최근의 재평가인가?

로마군의 중추를 형성했던 게르만족들은 적어도 4세기까진 대부분 어디까지나 "로마 시민"으로서 직업 군인으로 복무하던 상비군이었고, 게르만족 출신 병사들과 장교들은 전반적으로 로마에 대단한 충성을 바쳤다. 용병이 정말로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건 로마 제국의 재정이 엄청나게 취약해져 로마군 중 부족 단위로 편제되어 싸우는 단위들이 많아져 버렸기 때문이지, 게르만족 자체가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제국에 인력을 공급해주고 제국을 경모했던 게르만족이 아니었더라면, 제국의 서부 경계는 이미 3세기에 붕괴했을 것이 분명하다.[4]

또한, 라틴족으로 구성된 군단병들이 라틴족에서 게르만족으로 변화되면서 엄격한 기강과 국가에 충성을 보이는 집단이 아니게 되었다는 건 "전통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냥 "틀린 얘기"다. 군단병의 구성 다수가 "이탈리아인"이 아니게 된 시기는 이미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부족 단위로 고용되는 게르만족이 무시할 수 없게 통제 불가능이 되는 건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이후에서부터 일이다.

후기 로마군의 전술 변화는 게르만 족이 로마군의 주력취급을 받으면서 로마 인들 특유의 편제에 따른 세심한 전술적 움직임을 보이기가 어려운 게 결코 아니라, 역으로 "로마군 특유의 편제에 따른 세심한 전술적 움직임"을 게르만 족이 보여줬고, 이에 대한 대응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게르만 족이 야만적이고 무식해서가 아니다.

사치에 퇴폐에 빠져 서로마가 게르만 족 용병들을 쓰다가 무너졌다는 것은 건전하지 못한 오류로, 역사와는 무관한 얘기다.

고대 로마 시절에 쓰여진 갈리아 전기에 따르면 재미있는 게르만의 풍습이 하나 나오는데, 전사의 키와 힘이 동정을 유지하는 기간에 비례해서 커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일찍 잃는 것을 수치스러워하기도 했고, 성경험이 늦을수록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겼다.[5] 그들 사이에서는 가장 오래 동정을 지킨 자가 가장 큰 칭찬을 받았다.(...) 토이토부르크 승리의 비결 대마법사, 대현자 무적의 동자공 연성
파일:Viking_Expansion.svg.png
스칸디나비아인의 정착

8세기와 11세기 사이에는 북유럽에서 온 게르만 족인 노르드인( 바이킹)들이 전 유럽을 휘저었다.

잉글랜드에선 바이킹들이 지배시기인 데인로(Danelaw)가 시작되었다. 잉글랜드에는 바이킹 지배가 두 번 있었는데, 9세기에는 웨식스를 제외한 모든 영토가 바이킹에게 정복당하고, 11세기에는 크누트 대왕이 전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자신이 갖고 있던 덴마크, 노르웨이와 합하여 '북해 제국'(North Sea Empire)을 세웠다. 이 시기 영어는 같은 게르만계 언어라는 동질성 때문에 북게르만어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오늘날에도 상당한 북게르만계 어휘가 영어에 남아있다.

프랑크 왕국에서는 롤로가 북쪽 해안에 정착해 노르망디 공국을 세웠다. 이 지역에 정착한 바이킹들은 프랑스의 문화를 받아들여 프랑스화하였고, 노르만 족이라 불렸다. 1066년 노르망디 공작인 윌리엄 1세는 잉글랜드를 정복하는데, 노르만족까지 바이킹으로 친다면 잉글랜드는 총 3번에 걸쳐 바이킹의 침략을 받은 것이다. 노르만 족 정복자인 로베르 기스카르는 남이탈리아에 시칠리아 왕국을 세우고, 더 나아가 노르만 족 기사들은 십자군 전쟁 안티오키아 공국에 정착하여 활동하였다.

한편 동쪽으로 간 바이킹들은 우크라이나 일대를 정복하였고, 정복자 류리크의 후손들은 키예프 공국을 세웠다. 바이킹들은 더 남하하여 동로마 제국에서 바랑인 친위대로 복무하기도 하였다. 노르망디 공국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에는 앵글로색슨 족 출신 바랑인 친위대도 늘어났다.

옛날에는 수많은 게르만 부족들이 있었지만, 후대에 프랑크 왕국 등 통일 국가가 생기면서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먼 타지에 왕국을 따로 차린 경우 현지인들과 동화되어 사라졌다. 그래도 프랑크 왕국과 독일 왕국에선 부족 공국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언어나 지명 측면에서 현재까지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는 게르만 부족들은 아래를 들 수 있다.
중세가 끝나고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독일 북부,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서유럽 북부, 북유럽의 게르만 국가들이 각각 개신교 교파들을 국교 혹은 그에 준하는 문화적 기반으로 삼게 되었고[6] 이후에도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게 되면서 ( 북부) 게르만족 = 개신교라는 인식도 생기게 되었다.[7] 한편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독일의 바이에른 주, 벨기에, 스위스의 아펜첼이너로덴 주 같은 경우 국왕이나 영주가 종교개혁 세력과 반목한 역사적 이유 등으로 인해 가톨릭이 주류인 편이다. 물론 현재는 유럽의 전체적인 추세가 그렇듯 무종교인들이 대다수라지만 문화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구별이 가능한데, 개신교가 주류였던 지역은 전통의상이나 요리 등이 가톨릭 지역보다 대개 간소한 편이다.

4. 오해: 게르만 족 = 독일인?

파일:German_Germanic.png

독일인은 게르만 족의 일부일 뿐이지, 독일인이 게르만 족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

'German'이라는 영어 표기 때문에 게르만 족을 '독일 민족'과 같은 개념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영어가 국제 공용어로 되면서 이 오해는 거의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어로는 독일(German)과 구분하여 게르만 족을 Germanic이라 부른다.

만약 영어로 독일이 'Germany'가 아닌 'Teutony'나 'Teutonland'였다면 이런 오해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영어 표현과는 별개로 "게르만 족은 원래 현대의 독일 지역에서 살았으니 독일이 게르만 족을 대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위에서 서술했듯 원래 게르만족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유틀란트 반도에서 기원하였다. 굳이 출신 지역으로 따지자면 북유럽 노르드인들이 원조 게르만족에 가깝다는 것이다.[8] 게다가 독일인들의 경우 게르만족 혈통만 있는 게 아니다. 게르만족 남하 이전에는 켈트족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로마제국이 팽창함에 따라 현 독일 중남부 지역은 로마의 라틴족도 많이 진출하였다.

5. 게르만족 위주의 국가·지역

6. 게르만족 관련 인물

6.1. 로마 제국 말기의 게르만족 인물들

7. 관련 문서



[1] 굳이 비교를 하자면 게르만족은 말갈족이나 여진족과 가장 유사하다. [2] 단,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는 비교적 적당주의라는 이미지가 있다. [3] 사실 꼭 1960년대에 처음 생긴 현상은 아니고 1910년대 제1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의 혼란상이 이어지며 출산율이 크게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한동안 출산율이 크게 반등하다가 1960년대 중후반부터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 [4] 애초에 게르만족이 없으면 제국의 서부 경계가 위험할 이유 따윈 없었을 거라는 얘긴 근거가 없다. 모든 게르만족들이 로마제국에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로마제국에 우호적인 부족들도 많았다. 후기에 게르만 족들의 침입을 격퇴하는 데 자국 내 게르만족의 공이 매우 컸다. [5]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진지하게 부연하자면, 유전이나 섭식상의 이유로 2차 성징이 빨리 나오면 성장판이 일찍 닫히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동정을 지키는 것 내지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과 힘 또는 집단이 높이 평가하는 성질을 습득하는 것이 관계 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는 동서 고금을 통해 찾기 어렵지 않다. [6] 독일 북부와 북유럽은 루터교회, 잉글랜드 성공회, 네덜란드 스위스 개혁교회. [7] 사실 유럽에서 20세기 초까지 개신교가 우세했던 지역에는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헝가리 동부 등 게르만족이 아닌 지역도 포함되긴 한다. [8] 덴마크에서 독일을 가리키는 단어가 '튀스크란'(tyskland)인데 유틀란드 반도 북부인 '튀'(thy) 지방에 살던 사람이 남쪽으로 내려가 만든 나라란 뜻이다. [9] 생물학적으로 유전자가 단절됐다는 얘기는 아니고, 동고트족은 이탈리아에, 서고트족은 에스파냐에, 반달족은 이탈리아와 (결과적으로) 아랍에 동화되었다. 여기서 한마디, 한국사람들은 인종과 민족을 빈번하게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인종은 유전적 요인과 관련이 깊고 민족이라 함은 같은 문화(언어, "의.식.주."의 생활양식, 풍속 등)를 공유하는 집단이라는 뜻이 강하다. 거기에 더해서 민족의 정체성과 동질성 추구라든지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민족의 중요한 요소이다. 즉, 민족이 가진 기존의 문화를 내버리고 다른 문화권에 동화되어버리면서 기존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민족은 사라지는 것이다. 부르군트는 프랑크/프랑스에 합병당한 후에도 부르고뉴 공국으로 오랫동안 정체성을 유지하였으나 나폴레옹과 히틀러라는 재앙적 인물들에 의해 쓸려나갔으며 랑고바르드족은 이탈리아 반도에 정착한 후 역시 이탈리아에 동화되었다. [10] 흔히 게르만족 하면 떠오르는 국가. [11] 앵글로색슨족도 게르만족에 포함된다. 언어학적으로만 따지면 영어가 주류 언어로 되어버린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도 게르만 족에 포함시킬 수 있다. [12] 잉글랜드 주민들도 앵글로색슨 족과 켈트 족, 노르만 족 등의 혈통이 섞여 있다. 잉글랜드 주민의 혈통에서 앵글로색슨 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1/3정도라고 한다. [13] 엄밀히 말해서 다민족 국가이긴 한데, 앵글로색슨과 독일계 등 게르만 백인이 전체 인구 민족들 중 가장 많다. 미네소타, 위스콘신, 노스다코타 등 북서부 내륙은 북유럽계도 많은 편. [14] 전통적으로는 동게르만족으로 분류되어왔으나 이들의 언어는 서게르만어파인 고지 독일어와 같은 계열이다. [15] 흑인(정확히는 흑인 하면 떠오르는 인종인 니그로이드가 아니라 남아공을 포함한 남부 아프리카에 많이 사는 카포이드)계 주민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이지만 해당 지역에는 네덜란드계 백인인 보어인 및 영국계 백인이 많이 산다. 그리고 남아공 서부 지역에는 흑인과 서게르만계 백인(보어인 또는 영국계)의 혼혈인 컬러드가 많이 산다. [16] 독일과의 접경지라서 독일계 주민들이 소수 거주한다. [17] 프랑스라는 국명 자체가 프랑크족에서 유래했지만 현대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라틴족(남부)이나 켈트족(북부) 정체성이 더 강하다. [18] 1930년대까지 네덜란드어가 통용되던 마을이었다. [19] 동방식민운동,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 프로이센 왕국· 독일 제국의 지배에 따른 영향으로 소수의 독일계 주민들이 산다. 폴란드어의 실롱스크 방언 또한 독일어의 영향을 받았다. [20] 노르만족이라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르만족은 프랑스화된 노르드인을 칭한다. [21]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의 영향으로 해당 지역에 스웨덴계 주민들이 살며 이들은 스웨덴어를 사용한다. 특히 핀란드의 속령인 올란드 제도는 아예 스웨덴어만 공용어다. 핀란드의 다수종교가 루터교회인 것도 핀란드를 지배하던 스웨덴이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에서 루터교회로 개종한 것의 영향이다. [22] 덴마크와의 접경지역이기 때문에 소수의 덴마크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23] 노르망디와 아래의 채널 제도는 바이킹 출신인 롤로가 세운 옛 노르망디 공국의 영지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노르망디는 프랑스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유독 북유럽 색채가 강한 편이다. [24] 서게르만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잉글랜드와 켈트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등지도 북게르만족이 많이 이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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