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31 20:47:38

강한섭

파일:강한섭.jpg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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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평론가, 대학 교수.

2. 생애

1958년 6월 27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희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제2대학 대학원에서 유학하며 영화 평론가로 활동했고, 독일문화원을 오가며 영화에 대한 열정을 키운 한국 영화운동 초기 세대였다.

1979년 전양준, 정성일, 안동규, 신철 등과 함께 동서영화연구회에서 주로 활동을 했고, 이후 비평지 '프레임' 동인으로 활동하며 일찍이 한국영화 비평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왔다.
1994년 공연윤리심의위원회 영화 분야 수입심의위원을 지냈고, 같은 해에서 서울예술대학교의 교수로 지냈다. 이후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을 10년동안 활동하다가 서울예술대학교의 산학협력단 대표이사로 1년 2개월 동안 지내기도 했다.

2008년 5월 28일 영진위의 4기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임기는 2011년 5월 27일까지 3년이었다.

2009년 6월 발표된 정부의 '2008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영진위는 최하등급인 E등급을 받았다. 100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공공기관 평가에서 6개 등급 중 최하등급인 E등급을 받은 기관은 영진위가 유일했다. 영진위는 기관장 평가에서도 최하인 미흡 판정을 받았다. # 정부는 2008년 공공기관 평가에서 나쁜 등급을 받은 한국소비자원, 한국산재의료원, 한국청소년수련원, 그리고 영진위의 기관장 해임을 청와대에 건의했다. #

강한섭 위원장은 이후 2009년 6월 29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사표를 제출했고, 7월 2일 사표가 수리되었다.

영진위 위원장을 사퇴한 후에는 강단으로 돌아와 서울예술대학교 영화과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영화비평에 열정적이었던 강한섭 교수는 1990년대부터 국내 대표적인 평론가로 주목받았다. 영화 평론가 강성률 광운대학교의 교수는 "비평가를 지망하던 시절 강한섭 교수의 글을 열심히 읽었다"며 "영화 안으로 파고들기보다는 영화 밖으로 나가서 다시 영화의 길을 찾는 그 모습이 좋았고 방대한 지식과 영화를 이해하려는 치열한 노력에서 많이 배웠으며, 한 번도 어려운 수사학으로 도피하지 않은 것이 좋았다"고 회고했다.

2021년 12월 10일, 오랜 지병으로 인해 향년 63세로 사망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날은 12월 13일이다.

사망이 전해진 소식에 영화계에서는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영화 신과 함께를 제작한 리얼라이즈 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SNS로 "마음이 착잡하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