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04 23:24:24

강창보


파일:강창보 독립운동가.jpg
<colbgcolor=#0047a0> 출생 1902년 12월 29일
제주도 제주
사망 1945년 1월 7일
대전광역시 대전형무소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일제강점기 제주도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2015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1902년 12월 29일 제주도에서 태어난 강창보는 김석익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서울에 있는 중동학교에서 중등 과정을 수료하였다.

청년학관을 다니면서 그는 사회과학을 연구하게 되었고 1921년 제주도에서 반역자구락부를 조직해 독립운동에 몸을 담게되었다.[1] 1924년 송중현, 김택수 등과 함께 사상단체인 신인회를 조직하였고 교육부 간사로 활동하며 제주지역 청년들에게 신사상을 설파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출옥 후 조선사회운동자동맹에 참여해 일제 식민통치로 인해 파생된 민족모순, 계급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주의 운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1927년 신간회 제주지회를 결성하는데 참여하였고 같은 해 8월 조선공산당 가입하여 사회주의 비밀조직인 제주도 야체이카의 창설을 주도하였다.[출처]

1928년 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경기도 검찰부에 2년간 구금되었던 그는 1930년 12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제주도로 돌아와 제주지역의 사회주의자들과 '제주도사회주의운동자간담회'를 가지면서 사회주의 운동을 이어나갔고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을 벌였다. 1931년 청년동맹의 신재홍, 이익우 등과 함께 결성한 조선공산당 제주 야체이카의 책임자가 되었고 청년·여성·노동자 단체들을 지도하며 항일활동을 주도하였다. 1931년 8월에는 세금 불납 운동, 강제 묘목 배포 반대 투쟁 등을 이끌었고, 어업 노동자들의 투쟁 가운데 가장 큰 규모에 조직적이었던 1932년 1월 해녀투쟁에도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에 검거되었으나 유치소를 탈출한 후, 일본 오사카로 피신하였다.[출처]

일본에서도 노동운동을 전개해 1939년에 조선문제시국연구회를 조직하고 조선신문을 발간하였으며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토건노조에도 참여하였다. 독립운동을 이어가던 강창보는 1943년 4월 일경에 의해 체포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45년 1월 7일 옥사하였다.[출처]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 디지털제주문화대전 [출처]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 [출처]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