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8:45:12

강국두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신천 강씨
출생 1887년 11월 14일
평안도 은산군 진북방 오상리[1]
(현 평안남도 순천시 오봉리)
사망 몰년 미상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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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국두는 1887년 11월 14일 평안도 은산군 진북방 오상리(현 평안남도 순천시 오봉리)에서 태어났다.

<매일신보> 1921년 4월 18일자 기사에 따르면, 강국두는 1920년 음력 11월 18일 궁이양, 이병탁(李炳鐸) 등과 함께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을 조직하고 회원 50여 명을 모집했다고 한다. 대한독립청년단은 중국 관전현에 소재한 광복군 사령관 조맹선과 연락을 맺고,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냈다. 또한 조선 내 일본 관청 공무원들을 처단하기 위해 무기를 구입하고, 독립군이 국내로 들어올 때 합류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강국두는 대한독립청년단원으로서 이율수(李律洙) 등과 함께 1920년 음력 12월 평안남도 순천군 북창면 한령리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이후 30여 명의 단원들과 함께 성천군, 개천군, 순천군과 평안북도 영변군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4월 16일에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5일, 그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가 어떤 삶을 보냈고 언제 죽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강국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북창면 중하리가 신설되었다. 인근의 중상리, 용악리와 함께 신천 강씨 집성촌이다.